6. 고통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

by 김희경 작가

6. 고통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


1) 고통은 정말 성장을 가져오는가?



우리가 고통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뭘까. “고통이 인간을 성장하게 한다.”라는 그럴듯한 말 말고, 고통이 실제로 인간에게 주는 것들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생각했다. 사실 고통은 안타깝지만, 성장보다 퇴화를 더 많이 가져온다. 고통을 뚫고 일어나 무언가가 되는 건 기승전결을 가진 영웅 서사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은 고통 덕분에 더 냉소적이 되고, 더 날카로워지고, 때로는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고통은 언제나 ‘성숙’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고통은 인간의 ‘방어기제’를 활성화시킨다. 회피, 부정, 투사, 분열 같은 방어들이 강화되며 오히려 인격의 경직과 퇴행을 유발할 수 있다. Freud, Vaillant 등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타나는 성숙하지 못한 방어기제가 오히려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보았다. 그러니 고통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고통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실제 삶에선 고통 속에서 사람의 무의식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왜곡과 회피를 반복한다.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은 투사되거나, 어떤 대상을 과하게 이상화하며 잠시 회피된다. 스스로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 시작한 도피가 결국 또 다른 고통이 되어 되돌아온다.




2) 예술 속 영웅 서사와 현실의 우리



우리는 영화나 소설, 드라마 속에서 작고 보잘것없는 인물이 역경을 뚫고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며 위로받는다. 그 서사 안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한 줄기 희망을 품는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이 감동적인 이유는 현실에서는 드물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런 삶을 살아간다면 그 이야기는 특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귀하고 소중한 것은 언제나 흔하지 않기에 더 빛난다.


가령 세상 모든 사람이 아름답다면, 우리는 아름다움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비교와 동경은 늘 결핍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런 영웅 서사를 현실의 나에게 무의식적으로 투영하게 될 때 생긴다. ‘나는 왜 저렇게 못 살지?’,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힘들지?’ 이런 질문이 스스로를 할퀴고, 자기비난과 수치심으로 이어진다. 심리학적으로 이것은 이상화된 자기상과 현실 자아의 괴리가 만들어내는 고통이다.


Kohut가 말한 ‘자기대상 이상화’는 잠시 우리를 지탱해줄 수 있지만, 그 이상화가 내면에 내리꽂히면
오히려 현실의 자기를 혐오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것이 고통의 또 다른 그림자다.



3) 고통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때 생기는 일



고통은 인간을 성장시킬 수 있는 재료가 되기도 하지만, 인간다움을 잃게 만드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성경의 욥기서를 보면 고통을 직면한 한 인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성경 속에서 사탄은 하나님께 말했다.“그가 가진 것을 모두 빼앗아보십시오. 그의 믿음이 진짜인지 보시지요.” 욥기는 고통이 어떻게 인간의 관계와 내면을 무너뜨리는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하는 아내, 하나님께 벌 받은 것이니 분명 잘못이 있다는 친구들, 그리고 고통 앞에서 조용히 혼자 남은 욥. 무릎 꿇고 기도하는 장면보다 부스럼으로 뒤덮인 몸을 깨진 도자기 조각으로 긁고 있는 욥의 모습이 더 깊게 다가온다. 이 장면은 인간이 얼마나 나약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움찔한다. 고통을 겪는 사람에게 도덕과 논리를 들이밀며 ‘너의 잘못일지도 몰라.’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런 판단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세계를 위협하지 않도록 합리화하려는 자기 방어기제로 볼 수 있다. ‘그 사람이 잘못했으니까 그런 일을 당했겠지.’라고 믿으면, 나는 안전하다는 착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공감이 아닌, 거리두기용 판단이다. 그러나 고통은 때로 아무런 이유도 잘못도 없이 찾아온다. 그 고통 앞에 선 인간은 애써 외면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소중했던 관계들이 얼마나 부실했는지, 나를 둘러싼 신념들이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고통이 드러내준다. 그러니 자신의 고통이든, 타인의 고통이든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고통은 그 자체로도 무섭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방식이 잘못되면 관계와 세계를 더 깊이 어긋나게 만든다.



4) 고통은 내면의 렌즈를 어긋나게 만든다.



그 어긋난 해석은 결국 우리가 삶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흐리게 만든다. 고통 속에 머무를 때, 우리는 현실을 곧게 바라보지 못한다. 삶의 모든 장면이 흐릿해지고, 관계마저 왜곡된 필터 속에서 해석된다. 눈앞에 있는 것들이 왜곡되고,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가 휘어진다. 그리고 그 어그러진 렌즈는 더 많은 문제를 불러온다. 그래서 인생에 고통이 찾아왔다면 무엇보다 인간관계를 잠시 멈추고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현명하다. 정말 힘이 들 때는 어떤 새로운 관계도 시작하지 말 것을 많은 심리학자들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한 목소리로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고통을 마주하기보다 의존할 대상을 찾는 쪽을 택하기 때문이다.


버티기 힘든 고통 앞에서 우리는 더 쉽게 속고, 더 쉽게 끌려가며, 더 나쁜 관계와 상황에 빠진다. 그래서 가장 아플 때 사기꾼에게 속고, 사이비 종교에 빠지고,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 그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구원”은 실은 고통을 외면하게 해주는 구조물일 뿐이다. '그 사람 덕분에 살았다.'는 말 속에는 고통을 ‘직면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준 것에 대한 왜곡된 감사가 담겨 있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받은 건 구원일까 아니면 스스로를 더 깊은 곳에 가두는 저주일까.


고통을 똑바로 보는 것이 두려운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이상이나 규율에 몰입한다. 그것이 종교든, 사람에 대한 집착이든, 그들은 자기 고통을 보지 않기 위한 열심을 각자 살아간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만든 새로운 구조가 삶 전체를 통제하게 되는 것이 정말 구원일 수 있을까.


나는 지난 날들 속에서 내가 아프기 때문에 깨달은 것들이 있다. 고통 속에 있기 때문에 세상을 어긋나게 바라보고 타인을 어그러뜨릴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알고 싶지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고통을 겪으면 방어적이 되고, 두려움에 휘둘리고,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가 된다. 고통은 아주 쉽게 내 안의 ‘어둠’을 드러낸다. 우리는 모두 고통 속에서 부정적인 자아상으로 고착되거나, 부정적인 나르시시즘에 빠질 수 있다. 자신의 상처만을 중심에 두고, 세상과 타인을 왜곡된 방식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


나는 피해자니까, 나만 옳고, 모두가 나를 몰라준다는 생각. 그 고립된 회로 속에서 인간은 파괴적인 존재가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 마음의 렌즈를 살핀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생각의 렌즈는 과거의 상처로 뒤틀려 있지 않은지,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이 진짜 세상이 맞는지, 살펴보는 게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한 하나의 작업이다. 그 중 하나가 마음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일이다. 글을 쓰면서만큼은 스스로에게 정직하려고 노력한다. 스스로가 만든 허상을 걷어내고, 지금 여기에 있는 나를 정확히 바라보려고 애쓴다. 그 작은 훈련이 내가 나를 지켜내는 방법이 된다.



5) 고통이 문장이 되기까지



매일 글을 적고, 심리학 관련 영상을 보고, 강연을 듣고, 관련 책을 읽으며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더욱 명확히 알게 됐다. 인간은 고통을 숨기려 할수록, 그 고통이 삶에 더 깊이, 더 은밀하게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아프지 않기 위해, 상처받지 않기 위해,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인다. 하지만 그렇게 억눌렀던 감정은 결국 삶의 가장 약한 곳에서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몸이 아프거나, 관계가 흔들리거나, 표현되지 않은 감정이 쌓여버려 터진다. 시간이 지연될수록 고통은 단단해지는 게 아니라, 경직된 인간으로 고착시킨다. 점점 더 편협해지고, 이기적이 되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방어적으로 변해간다.


어느새 진짜 자아는 사라지고, ‘괜찮은 사람’이라는 가짜 역할을 연기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거짓말을 하기 위해 더 많은 거짓을 해야만 하는 ‘리플리 인간’을 볼 때마다, 그 안에서 자신의 고통을 감추려 애쓰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자신의 진실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끝없이 거짓을 쌓아올린다. 그리고 끝없이 자신을 잃어간다. 자기기만은 가장 무서운 고통 회피 방식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스스로가 그것을 고통이라고 느끼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과 소중한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가능한 한 빨리 고통을 마주해야 한다. 시간이 지연되면 그 감정은 단지 고통에 머무르지 않고 자아까지 잃게 만든다. 그 고통은 마치 오래된 얼룩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는 감정의 흔적이 된다.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고통을 감당할 수 없는 나이가 찾아오면 그때는 정말 그 어떤 해결 방법으로도 복구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울 수밖에 없는 상태. 말도, 설명도, 치유도 어려운 텅 빈 통곡만 남는 시점에 이르게 됐을 때에야 회피했던 고통의 벽에 서게 된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 고통이 자녀와 손자에게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직면되지 않은 상처는 세대를 넘어 투사되고, 전염된다. 감춰둔 고통은 말로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고통의 흔적들을 물려받는다. 몸짓, 표정, 침묵, 억압된 감정들 속에서 그 고통은 은밀하게 복제된다. 치유되지 않은 고통은 더 큰 고통이 되어 누군가의 삶을 부수고, 그 부서진 마음은 또다시 누군가를 다치게 한다. 그렇게 상처는 그대로 혹은 더 배가 되어 세대를 통과해 상속된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6) 고통 속에서 발견한 나의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다행인 건 고통은 마주하고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작아진다는 사실이다. 고통이란 건 어두운 창고 같은 곳에 오래 숨겨둘수록 더 커지고, 더 거대해 보인다. 하지만 그 문을 열어 햇빛 아래 꺼내보면 생각보다 작고, 이미 힘을 잃은 조각일 수도 있다.


고통을 직면하기 위해 나는 손으로 쓰고, 눈으로 보고, 소리 내어 말하는 그 단순한 행위들을 찾아했다. 그리고 결국 그런 노력들이 내가 원하던 참된 자유로 이끌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수많은 치유 글쓰기 책들에서 말하는 것처럼, '쓴다는 건 기억을 정리하는 일'이고, '기억을 정리하는 일은 고통을 떠나보내는 일'이었다. 처음엔 감추고 싶었던 것들이 너무 많아 두려웠다. 그것들을 적어 내려가고 입으로 소리 내어 읽는 일조차 숨이 막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들이 나의 손끝에서 흘러나오자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내가 붙잡고 있었던 것과 나를 붙잡고 있었던 것들이 풀어졌다. 내 안에 갇혀 있던 상처가 비로소 ‘바깥’으로 나왔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 처음으로 진짜 자유를 맛봤다. 적어두었기 때문에 더 이상 기억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되는 것도 긍정적인 점이다. 과거의 어떤 장면을 잃지 않기 위해 머릿속에서 상시 상영하지 않아도 됐다. 왜냐하면 과거의 기억들이 이제 ‘기억되어야 할 무엇’이 아니라, ‘기록된 이야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억은 쓰는 순간 고정된다. 왜곡되지 않고, 과장되지 않고, 내가 본 그대로, 내가 느낀 그대로 정직하게 남는다. 그게 나를 살렸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나는 더 이상 그 장면을 반복해서 떠올리지 않아도 되었고, 그 자리에 머물 필요도 없었다. 진짜 자유는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서 시작된다. 모두가 치부라며 숨기고, 그래야 안전하다고 말하던 것들을 나는 조심스레 꺼내어 적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것들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야기가 되었다. 흉이 아니라, 문장이 되었다. 인간은 모두 유일하기에 각자의 삶이 곧 드라마이고, 역사다. 고통은 그 이야기 속에서 우리를 완성시켜주는 가장 진실된 재료가 된다. 그리고 그 재료를 어떤 방식으로 다룰지 오직 ‘나’만 선택할 수 있다.


오직 그 사람만이 가진 이야기(스토리)는 그 사람만의 인생을 완성하고, 나아가 삶을 지탱해주는 뿌리가 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이야기를 통해 누군가 자신의 고통을 마주할 작은 용기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우리는 고통을 마주하면서 진짜 바닥에 있는 자신을 만나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고통을 마주하고, 드러내고, 그 속에 있는 진정한 나를 발견하면서 나는 진짜 나를 찾았다. 그래서 이제는 지난날들을 단지 아프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의 나를 완성한 것들이 과거의 고통들이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물론, 다시 겪고 싶진 않다. 하지만 더는 숨기고 싶지도 않다.


앞으로의 나는 내가 나의 가족, 친구, 연인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이 겪지 않기를 바라는 그 어떤 것도
나 자신에게 먼저 허락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내가 소중한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모든 것을 이제는 가장 먼저 나에게 선물하기로 했다. 이제 남은 인생을 나와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는 버겁지 않고, 두렵지도 않다. 편안하게, 천천히, 내 걸음으로 걸어가도 괜찮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쓸데없이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다. 가진 것이 없다고 스스로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고통은 찾아오고, 행복과 불행은 각자의 몫으로 주어지는 것이니까. 나는 이제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행복을 바라보며, 고통을 바라보는 눈을 천천히 성장시켜간다. 고통이 나를 가르쳤고, 나는 그 배움을 나의 삶으로 실천해나간다. 매일이 아름다울 순 없지만, 그 안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선택할지는 오직 내 몫이고, 내 것이니까. 그러니 나는 오늘, 여기에 산다. 드디어 말이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나로 사는 것이 기쁘고, 행복하다. 열심히 기록하고, 적자. 진짜 나로 살다 가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 하루를 걷는다. 쓰는 사람으로 살아낸 하루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 나의 기록이다. 드디어 나는 고통이 가르쳐준 삶의 배움을 따라,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행복을 바라보며 살아간다.




7) 참고 자료



1. Freud, Sigmund, 『The Ego and the Id』, W. W. Norton, 1923

→ 사용된 개념: 방어기제, 퇴행, 부정, 분열, 자아심리학


2. Vaillant, George E., 『Adaptation to Life』, Little, Brown and Company, 1977
→ 사용된 개념: 성숙하지 못한 방어기제의 사회적 영향


3. Kohut, Heinz, 『The Analysis of the Self』,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1971
→ 사용된 개념: 이상화된 자기 대상, 자기애적 방어, 자기심리학


4. van der Kolk, Bessel, 『The Body Keeps the Score』, Viking, 2014
→ 사용된 개념: 감정 억압의 신체화, 트라우마 기억


5. Alice Miller, 『The Drama of the Gifted Child』, Basic Books, 1979
→ 사용된 개념: 억압된 자아, 진짜 자아의 상실


6. James W. Pennebaker, 『Opening Up by Writing It Down』, Guilford Press, 2016
→ 사용된 개념: 치유 글쓰기, 감정 정화, 서사적 자기표현


7. Gabor Maté, 『When the Body Says No』, Vintage Canada, 2003
→ 사용된 개념: 자기기만과 만성질환, 고통 회피의 신체적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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