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 10. 책임과 경계

10. 책임과 경계 - 구하지 않음으로 구한다는 것

by 김희경 작가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10. 책임과 경계 - 구하지 않음으로 구한다는 것



스스로를 구하지 못하는 나는, 무력함을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구해야 할 누군가를 찾았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그것은 구원자 콤플렉스(savior complex)였다. 구원자 콤플렉스는 사실 내가 가진 공동의존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타인을 구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는 신념, 그것이 바로 공동의존의 핵심이었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스스로를 돌보는 일은 미루면서도, 타인을 구해야만 내 존재가 의미 있다고 믿었다. 타인을 구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만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고, 그때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 사실을 오랫동안 몰랐을까, 아니면 모르고 싶었던 걸까. 최근까지 이 생각을 하며 지난날들을 돌아봤다.


심리학적으로 설명하자면, 그것은 나를 구하지 못한 무력감을 다른 사람의 문제 해결에 쏟아부은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구원자 콤플렉스는 사실 내가 오랫동안 지녀온 공동의존(co-dependency)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스스로를 구해야 할 시간에, 구하지 않아도 될 타인의 삶에 개입하며 살아왔던 나. 덕분에 나는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라는 칭호를 얻었지만, 칭찬과 애정을 얻은 순간이 지나면 곧바로 공허감이 찾아왔다. 나의 모든 힘과 시간을 타인을 돕는 행위에 쏟아붓고 나면 남는 건 텅 빈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그 텅 빈 마음을 다시 채우기 위해 비슷한 행동을 반복했다.


어린 시절 다섯 살, 여섯 살 무렵이었다(만 나이로는 3살). 내가 어질러놓은 물건만 치우고 있으면 어른들은 한 목소리로 내게 이기적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함께 놀던 언니, 오빠, 사촌들이 어질러놓은 것까지 내가 치워야 한다고 했다. 그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게 역할을 부여한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하는 일에서까지 자연스럽게 벗어났다. 그때마다 나는 의문이 들었다. 각자 자기 몫을 감당하는 것만으로도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최선 아닌가. 보통 아이들은 자기 장난감조차 치우지 않아 엄마의 속을 태운다. 그러니 대여섯 먹은 아이가 자신이 어지른 물건을 치우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의문이 입 밖으로 나온 순간 체벌이 뒤따랐기 때문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그들이 시키는 일을 묵묵히 해냈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이것은 역할 고착(role entrapment)이다. 나의 역할 고착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존재가 ‘조건부’로 주어지는 구속 속에서 나는 '더 해야만 사랑받는다.'는 조건부 사랑(conditional love)을 내면화했다. 이 경험은 곧 '나는 있음 자체로는 사랑받을 수 없다.'는 신념을 심어주었고, 훗날 공동의존 성향의 뿌리가 되었다.


세 살 무렵, 어머니를 여의고 고아원에 맡겨졌다가 아버지의 부탁으로 다섯 살 무렵 친척 집에 맡겨졌다. 그곳은 3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고, 비슷한 나이대의 자녀들도 많았다. 그러나 친부는 새로운 사랑과 새로운 가족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곳에 있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 동생은 아버지가 데려갔다. 그러나 친부는 결국 자신의 아이를 부모 없는 아이처럼 자라도록 방임, 방치했고, 새어머니는 동생을 심각할 정도로 학대했다. 그 때문일까. 동생이 너무 일찍 사이비 종교에 깊이 빠져든 것도. 어쩌면 동생이 사이비 종교를 선택하고 그 속에서 가족을 찾았던 것은 애착 손상(attachment trauma) 속에서 스스로를 지탱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동생은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았다며 오랫동안 나를 전도 대상자로 삼았다. 지속적인 전도 활동은 포기하지 않는 사랑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나를 완벽한 고통 속으로 끌어들이는 과정이었다.


친척들 틈바구니 속에서 살면서 나는 일찍이 '어떤 질문도 삼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어린 시절 내내 말하지 못한 질문과 억울함 들은 억압(repression)되어 내 안에서 굳어졌다. 그리고 그것이 훗날 공동의존 성향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은 자라는 내내, 그리고 성인이 된 내게 효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옭아매는 말들을 던졌다.


“키워줬으면 키운 값을 해야지.”

“예수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라 하셨잖니.”

“가족의 허물을 말하는 건 네 얼굴에 침 뱉는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은 성경을 제대로 읽은 적이 있었을까 싶다. 돌아보면 그들이 원했던 건 효도나 사랑이 아니라, 죄책감을 심어 나를 조종하는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었다. 나는 그렇게 도구화된 인간이 되어갔고, 내가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 채, 그들의 기준에 맞춰야만 착하고 믿음 좋은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다.


노예화는 하루아침에 완성되지 않는다. 만약 누군가가 갑자기 폭력을 휘두른다면 누구나 항의하고 저항할 것이다. 그러나 아주 천천히, 조금씩 경계를 허물며 진행된다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게 된다. 이는 전형적인 트라우마 본딩(trauma bonding)의 과정이다. 피해자는 여기서 '저항할 수 없다.'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에 빠지고, 점점 더 종속된다.


나는 오랫동안 멍청할 만큼 그들이 말하는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고, 점점 종교적 괴물이 되어 갔다. 그러나 이제야 깨닫는다. 과거 내가 믿었던 신은 진짜 신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름만 예수’인 왜곡된 신을 만들어냈고, 나는 그 목소리를 내면화했다. 내 안의 신은 나를 끝없이 죄책감과 수치심에 사로잡히게 만들었고, 그들이 말하는 행동과 말을 해야만 참된 종교인이라고 질책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경험한 왜곡된 신앙의 모습이었다. 진짜 신은 은혜와 자유를 주시는 분이었는데 나는 그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게다가 왜곡된 초자아까지 나서 내가 얼마나 문제 있는 인간인지 끊임없이 소리쳤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내면화된 비판자(Inner Critic)’라고 부른다. 나는 내 안의 이 비판자에게 붙잡혀 살았다. 그 결과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일보다 나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더 힘들고 고통스러워졌다. 내면에 자리 잡은 신이라는 이름의 괴물과 초자아는 나를 끝없이 죄책감과 불안, 두려움으로 몰아넣었다. 그래서 나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성과를 올리고, 타인을 도우면서 극한의 피로 상태까지 나를 몰아붙였다. 심리학적으로 이는 강박적 죄책감(obsessive guilt)이라고 볼 수 있다. 너무 아파 쓰러질 지경에도, 나는 누군가를 돕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그것이 신앙이고 사랑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행위주의(performance-based faith)였고, 은혜가 아닌 강박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몸이 무너졌다. 단순한 피곤이 아니었다. 잠을 자도 회복되지 않는 피로, 이유 없는 통증, 두통과 복통, 어지럼증과 호흡 곤란 같은 증상들이 이어졌다. 몸은 나를 대신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일상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할 정도였다. 심리적 고통이 신체적 증상으로 드러난 전형적인 신체화(psychosomatic symptoms)였다. 그렇게 더는 버틸 수 없게 되었을 때에야, 나는 비로소 구하지 않음으로써 구한다는 역설을 깨달았다.


내가 구하지 않아야 상대도 스스로 자신을 구할 수 있다. 내가 계속 구하는 순간, 상대는 내게 의존했고, 나는 다시 그를 구해야 했다. 그리고 그 관계는 끝없이 반복되면서 나와 상대를 동시에 파괴했다. 더 이상 나도 상대도 서로에게 의존할 수 없게 되는 순간, 상대의 원망은 지금까지의 고마움보다 더 커졌고, 내 안에 있던 무능감은 우주만큼이나 깊고 넓어졌다.


결국 나는 구 가족 모두를 스팸차단해야 했다. 그것만이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들은 이미 가족이라 부르기엔 민망하고, 남이라 하기엔 남보다 못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내 삶에서 제거했다. 경계 설정(boundary-setting)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그리고 나는 이제야 자기 재부모화(self-reparenting)를 통해 스스로에게 울타리가 되어 살아가고 있다.


이제 나는 과거와 단절하고, 나를 존중하는 남편과 새로운 삶을 함께 살아간다. 그의 존재는 내게 안전기지(secure base)가 되어 주었고, 나 역시 그에게 새로운 안전기지가 되어주었다. 드디어 자유롭게 내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오늘을 맞이하면서, 나는 깨달았다. 심리학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분화 (differentiation)다. 분화란 냉정한 단절이 아니라, 건강한 경계를 세운 채로 사랑을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이다.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분리하는 용기이자, 진정한 나와 타인을 향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깊고 많은 두려움과 죄책감이 나를 사로잡았었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말할 수 있는 건, 더 나아지겠다는 용기가 나와 당신을 진정한 자유와 평안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 진짜 나와 타인을 구하는 것. 그것이 내가 40년을 살아오면서 몸과 마음이 부서지며 얻은 깨달음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구하지 않음으로써 나를 구하고, 상대를 구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묵묵히 바라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과 마음을 기도에 더하면서 나의 길과 타인의 길을 축복한다.


드디어 자유롭게 내 삶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오늘을 맞이하면서, 나는 가끔 생각한다. 과거엔 왜 그렇게까지 나를 위험에 스스로 빠트리고 몰아붙였을까. 어찌 됐든 모든 것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들이었다. 그들이 원하는 무엇인가 들어줄 때까지, 원하는 것을 해 줄 때까지 전화를 백 통 넘게 건다고 해도 무시하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럴 때마다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이렇게 해야 빨리 끝나. 나만 참으면 돼. 이렇게 하는 것이 효와 사랑이지.”라며 순응했다. 그리고 그들 역시 같은 말을 반복하고 죄책감을 끝없이 심어주면 결국 들어주게 된다는 것을 학습했을 것이다. 그 결과, 나도 그렇지만 타인 역시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만들었다. 내가 그 순간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타인의 기회를 완벽히 철저하게 차단한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어떤 선택을 하기에 앞서 타인이 요구하는 것이 나의 여정인지, 타인의 여정인지 철저하게 분리해야 한다. 만약 지금 이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내가 참는 선택을 했고, 내 마음을 편안하게 했던 찰나의 행동이 나비효과가 되어 나중에 스스로의 내면을 파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나비의 날개 짓이 폭풍이 되어 우울, 불안 같은 정신질환과 만성 통증 같은 신체 질환으로 이어진다면, 결국 편안하게 하고자 했던 나, 그리고 가족과 타인에게 완벽한 불행을 가져다주게 된다.


작은 참음이 큰 파괴로 이어진다. 그래서 거절은 단순한 이기심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자기 돌봄(self-care)이다. 그러니 진짜 나와 타인을 돕고 싶다면, 타인의 여정을 타인이 제대로 걸을 수 있도록 두고 건강하게 거절하는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어떤 요구를 하든, 나를 먼저 챙기고, 타인을 위해 구하지 않음으로 구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타인을 구하지 않음으로 구하는 것. 그것이 결국엔 모두를 구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기 전,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스스로를 구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자유와 평안에 이르기까지 겪게 되는 모든 감정과 과정들이 당신의 여정이 될 것이고, 진정한 당신을 만나는 길이 되어 줄 것이다.


오늘의 나와 당신의 여정을 응원하며 글을 마친다. 오늘도 나는 구하지 않음으로써 나를 구하고, 그 길 위에서 당신도 스스로를 구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알고 가기: 공동의존(Co-dependency)


1) 정의

공동의존이란 타인의 문제, 감정, 필요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자기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관계적 패턴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알코올 중독자의 가족들에게서 발견된 특성이었으나, 지금은 “타인을 구하려다 자기 자신을 잃는 모든 관계”를 지칭하는 개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2) 주요 특징

(1) 타인을 돕고 구해야만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낌
(2) 나와 타인의 경계가 흐려져 타인의 문제를 내 책임처럼 떠맡음
(3) 타인의 인정이나 ‘착한 사람’이라는 칭호로만 자존감을 확인함
(4) 돕지 않으면 죄책감·불안에 시달림
(5) 건강하지 않은 관계임을 알면서도 반복해서 빠져듦


3) 형성 배경


어린 시절 조건부 사랑(“~해야 사랑받는다”), 역할 고착(부당하게 맡겨진 책임), 애착 손상(부모의 부재·방임·학대) 등이 주요 요인입니다. 이로 인해 “나는 있음 자체로는 사랑받을 수 없다. 대신 타인을 돌봐야 존재할 수 있다.”라는 신념을 내면화하게 됩니다.


4) 심리학적 이해

(1) Bowlby의 애착이론: 불안정 애착이 성인이 되어 공동의존적 관계로 이어짐
(2) Seligman의 학습된 무기력: 반복된 좌절 경험이 “저항할 수 없다”는 패턴 강화
(3) Beattie & Mellody: 공동의존은 결국 ‘자기(Self)의 상실’로 요약됨


5) 회복의 방향

(1) 분화(differentiation): 나와 타인의 삶을 분리하는 용기
(2) 경계 설정(boundary-setting): “여기는 나, 거기는 너”를 구분하기
(3) 자기 재부모화(self-reparenting): 어린 시절 결핍된 돌봄을 스스로 채워주기
(4) 자존감 회복: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는 경험 쌓기


6) 자기 점검

아래 항목 중 3개 이상 ‘그렇다’에 체크된다면, 공동의존 성향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1) 나는 누군가를 돕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낀다.

(2) 타인의 문제를 내 책임처럼 느낀다.

(3) 거절을 하면 버림받을까 두렵다.

(4)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안심된다.

(5) 타인의 감정이 나의 기분을 좌우한다.


참고자료


1) Pia Mellody (1989). Facing Codependence: What It Is, Where It Comes from, How It Sabotages Our Lives. HarperOne.
→ 공동의존(co-dependency), 자기 상실, 조건부 사랑 개념


2) Melody Beattie (1986). Codependent No More. Hazelden.
→ 공동의존 치유의 길, 건강한 경계 설정, 자기 돌봄


3) John Bowlby (1969). Attachment and Loss, Vol.1: Attachment. Basic Books.
→ 애착 손상(attachment trauma), 안전기지(secure base)


4) Murray Bowen (1992). Family Therapy in Clinical Practice. Jason Aronson.
→ 역할 고착(role entrapment), 분화(differentiation), 삼각관계(triangulation)


5) Martin Seligman (1975). Helplessness: On Depression, Development, and Death. W.H. Freeman.
→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개념


6) Judith Herman (1992). Trauma and Recovery. Basic Books.
→ 트라우마 본딩(trauma bonding), 억압, 피해자–가해자 역동


7) Sigmund Freud (1923). The Ego and the Id. W.W. Norton.
→ 초자아의 내면화, 강박적 죄책감(obsessive guilt), 투사적 동일시(projective identification)


8) Heinz Kohut (1971). The Analysis of the Self.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 자기애적 상처, 내면화된 비판자(inner critic)


9) Daniel Goleman (1995). Emotional Intelligence. Bantam Books.
→ 자기 돌봄(self-care), 감정 조절, 경계 설정(boundary-set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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