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 11. 슬기로운 집순이 생활

11. 슬기로운 집순이 생활

by 김희경 작가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10. 슬기로운 집순이 생활



매일 같이 집순이 생활을 하면서 순차적으로 집 정리를 해 나가는 중이다. 활용하기 좋고 보기 좋게 정리를 하고, 필요 없는 물건은 바로바로 정리해서 버린다. 남편이 말하길 지금이 가장 깔끔하고 보기 좋은 집 상태가 되었단다. 깔끔하게 정리되어 언제든지 무엇이 어디 있는지 찾아 쓸 수 있는 집은 누구에게나 편안함을 준다.


조금 전까지도 주방 정리를 하고, 냉장고 정리를 했다. 냉장고의 경우 필요한 물품들만 구입해서 바로바로 먹기 때문에 거의 비어 있다. 자주 먹고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세일 기간에 맞춰 구입하고 바로바로 먹어서 소진한다. 덕분에 버릴 음식 쓰레기가 별로 없고, 돈과 재료를 낭비하지 않게 됐다.


사실 이런 정리 습관은 단순히 공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마음 챙김(mindfulness)과 유사하게, 정리라는 행위는 마음을 비우고 현재에 집중하게 한다. 눈앞의 물건을 제자리에 두는 행위가 곧 내 안의 혼란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준다. 정리정돈은 단순히 집을 치우는 일이 아니라, 내 삶을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작은 확신을 준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기 효능감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내가 몰두하고 있는 취미생활이라고 한다면 정리정돈 유튜브를 보고 집 정리를 하는 거다. 옷장 정리도 하고, 창고 정리도 하고, 거실 안 가구 위치도 바꿔봤다. 정리 영상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따라 하고 싶어져서 한참 동안 정리를 하게 된다. 평소에는 힘이 거의 없어 누워 있을 때가 많은데, 영상을 보면 마음이 달아서 어디서 나온 지도 모를 힘이 나서 정리를 한다. 남편이 말하길 우리 집은 창고가 가장 깔끔하고 좋단다. 창고에는 남편이 좋아하는 과자와 음료, 기타 등등 물품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지난 주말에 남편과 함께 거실 안 책상 위치를 바꾸면서 거실 정리를 했다. 그랬더니 거실 분위기가 너무 좋아져서 나와 남편 모두 거실에 계속 앉아 있게 됐다. 남편도 거실 분위기가 너무 좋다며 소파 하나 들이고 싶단다. 나중에 이사를 가면 남편이 원하는 아주 우아한 소파를 들이겠다고 하며 공간을 비워뒀다. 비워진 부분이 많을수록 방은 더 깔끔해 보이기 때문에 이 집에서는 생략하기로 했다.


다음 주 중에는 남편 서재 방에 있는 옷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미처 몇 번 입지도 않은(남편이 살이 쪄서) 옷들을 정리하려고 하니 너무 아까운 마음이 든다. 시아버님께 보내드릴까 하다 새것도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어 아쉽다. 그렇다고 버리자니 보풀 하나 없이 깔끔하고 예쁜 옷 들이라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아름다운 가게나 굿윌스토어에 기부해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가지고 있고 싶어서 망설여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어질러진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정신이 확 든다.


정리를 하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온전히 정리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다. 무엇보다 그동안 정리되지 않던 생각들도 가끔 완벽히 정리될 때가 있다. 정리정돈의 힘이 이런 건가 싶어서 자꾸만 하게 된다. 체력적 한계가 있어 한꺼번에 하진 못하고 조금씩 그날그날 나눠서 매일 한다. 아주 작은 변화들이 모여 한 달이 지나면 몰라볼 만큼 주변이 달라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집순이 생활을 하면서 살림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나름대로 규칙을 정해 체력이 있을 때마다 조금씩 하고 있어 부담도 적다. 무엇보다 이제는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 할 수 있을 만큼 능숙해졌다.


정리를 하면서 이 집에 이사 오기 전 원룸 생활할 때가 생각났다. 작은방 하나에 정말 많은 짐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붙잡고만 살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정리를 하다 보니 짐이 가득한 원룸에서 마지막 시험에 실패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덩그러니 앉아 울고 있을 때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때 남편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고, 공부하는데 다 사용해서 모아놓은 돈도 없었다. 거기에 학자금 대출까지 있어서 스스로가 정말 수치스럽고 미웠다. 그런 내게 남편이 말했다.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으니까 건강하게 살아만 있어줘. 그게 내가 유일하게 바라는 거야.”


그때 남편이 했던 말들이 오늘도 내 가슴을 울린다. 언젠가 읽었던 성경 구절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어라.”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였노라. 에스겔 16:6>


남편 말을 들었을 때 왜 이 성경 구절이 떠올랐는지. 제발 살아만 있어 달라니, 이 얼마나 고맙고 감격스러운 말인가. 가장 힘든 시절을 지나온 왔기 때문에 이제서야 말하지만 그때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가족이었다. 가끔 심리상담사들이 가장 힘들 때 마지막 순간에 남아 도움을 주는 사람은 가족뿐이라는 말을 하는 분들이 있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가장 힘들 때 마지막 순간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가족이 아닐 수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순간을 가정하면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불편과 아픔을 감당하게 하는 가족을 견딜 필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나는 건강한 경계를 세워야 한다는 인식을 시작했던 것 같다. 사실 인생에서 벼랑에 서 있을 때 가장 상처를 많이 주는 사람이 가족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마음에 화살을 가득 박아 넣는 사람도 가족이 될 수 있다.


아팠던 그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에 어려운 순간을 위해 나를 아프게 하는 가족을 참아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벼랑에 서고서야 깨달았다. 오히려 아직 남자친구일 뿐이었던 남편이 내 손을 잡아주며 나의 유일한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했다. 그때 우리는 결혼식을 생략하고 혼인신고를 했다. 그리고 남편은 내게 유일한 가족이 됐고, 유일한 가족이다.


심리학적으로 보자면, 남편은 내게 안전 기지(safe haven)가 되어 주었다. 어린 시절 안정적인 애착을 경험하지 못했던 나는 남편을 통해 처음으로 '안전 기지'의 의미를 배웠다. 애착 이론에서 말하는 안전 기지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순간에도 “여기 와서 쉬어도 된다."라는 메시지를 주는 존재다. 내 삶이 흔들리던 순간, 남편은 내 손을 잡아 주며 그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집 정리를 하고 청소를 하면서 과거를 하나하나 떠올릴 때마다 실수를 반복했던 것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럴 때면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싫어지는지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화가 난다. 그럴 때마다 혼잣말을 쏟아낸다. 그러면 그걸 남편이 가끔 듣고는 “괜찮아. 이제 안 그러면 되잖아. 그때는 어쩔 수 없었잖아.”라며 대답을 해 준다. 혼자 하는 말에도 상처받을까 봐 이렇게 신경 써주다니. 내가 남편을 가장 최우선에 두고 어떤 것이든 선택을 하게 된 데는 부족함 없이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남편을 안방 천만 원짜리 침대에 혼자 재우는 이유도, 자는 와중에도 나를 신경 쓰는 남편을 제대로 재우기 위해서다(우리 집에서 가장 비싼 가구로 아직도 할부를 갚는 중이다. 이 침대는 시어머니께서 원하셔서 구입했다. 이외에도 이 집도 시어머니께서 원하셔서 이사온 곳이다. 그리고 이것저것 결국 감당은 우리가 해야한다.). 나는 새벽에 화장실에 가는 경우가 많은데, 남편은 화장실에 가려고 침대에서 내려가다 혹시라도 내가 떨어질까 봐(떨어질 리가 있겠냐마는..) 잠결에 내 팔과 허리를 잡아준다(이 외에도 정말 많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자기가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남편을 제대로 깊이 재우기 위해 혼자 방에 재우고, 나는 거실이나 서재 방에 있는 침대에서 잔다. 사실 에어컨을 트는 거실이 우리 집에서 가장 시원해서 나도 혼자 자는 게 좋다. 사실 내가 남편보다 열배는 더 예민해서 혼자 자야한다.


남편은 어릴 때 받지 못한 사랑을 가득 받아라고 신이 보내주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정말 좋은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복을 받아도 되는지라는 생각을 할 만큼 매일 감사하다. 남편을 위해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매일 집 청소를 하고, 살림 여왕이 되어야지 마음먹게 된 것도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며칠 전엔 남편과 대화를 하면서 서로 하루만 더 살아라고 이야기를 했다.


“오빠가 나보다 더 많이 오래오래 살아. 오빠가 먼저 가면 내가 너무 슬프잖아.”


"네가 먼저 가면 내가 슬프니까 안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라.”


“으잉… 우리 둘 다 서로 슬프고 싶지 않아서 오래 살아라니. 우리 둘다 이기적이로구만. 어쩔 수 없네. 오빠 슬프지 말아라고 내가 하루 더 살아야겠구만. 건강하게 먹고, 잘 자고, 잘 움직이고 그려. 알았지?”


라며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싸울 일도 없고, 싸움 날 일이 생겨도 마주쳐지질 않으니 싸움이 되지 않는다. 남편은 내게 정말 좋은 친구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남편, 좋은 친구, 유일한 가족인 남편이 집에서만큼은 평안하고 행복했으면 한다. 그래서 오늘도 집 정리를 하고 세탁을 하고 청소를 했다. 오늘 밤에는 무엇을 먹여볼까. 그게 지금 하고 있는 유일한 고민이다. 건강하게 잘 먹여야 오래오래 즐겁게 잘 살 테니 말이다. 남편이 있는 곳이 내 집이라고, 내가 있는 곳이 자기 집이라고 우리는 서로에게 말하며 서로의 집이 되어주고 있다.


어디에 살든, 어떻게 살든, 무엇을 먹든 네가 있으면 나는 참 충만할 거야. 고마워요. 내게 와줘서. 나의 가족이 되어줘서. 나의 친구가 되어줘서.


과거의 고통들이 가끔은 내 삶을 송두리째 흔들고 망가트린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속에서 삶의 진짜 의미와 내가 닿아야 할 진실에 닿을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오늘의 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다시 생각해도 나는 참 복에 복을 받은 사람이다. 그러니 이 복을 언젠가 꼭 세상에 돌려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고 고운 생각을 기록에 남겨본다. 이런 마음이 어쩌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외상 후 성장의 증거일까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운 마음과 뿌듯한 마음이 든다.



참고자료


1. Kabat-Zinn, Jon, Wherever You Go, There You Are: Mindfulness Meditation in Everyday Life, Hyperion, 1994

→ 사용된 개념: 마음챙김(mindfulness), 현재에 집중하기


2. Bandura, Albert, Self-Efficacy: The Exercise of Control, W. H. Freeman, 1997

→ 사용된 개념: 자기 효능감(self-efficacy), 삶의 통제감


3. Bowlby, John, Attachment and Loss, Vol.1: Attachment, Basic Books, 1969

→ 사용된 개념: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 안전기지(safe haven)


4. Bowen, Murray, Family Therapy in Clinical Practice, Jason Aronson, 1978

→ 사용된 개념: 가족 관계와 경계(boundary setting), 삼각관계


5. Tedeschi, Richard G., Calhoun, Lawrence G., Posttraumatic Growth: Theory, Research, and Practice, Routledge, 2006

→ 사용된 개념: 외상 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PTG), 고통 속 의미 발견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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