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 15. 평안이 주는 행복

15. 평안이 주는 행복

by 김희경 작가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15. 평안이 주는 행복


즐거운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 걸까. 영원할 것 같던 명절 연휴가 벌써 끝나고 오늘이 되었다. 이번 명절은 남편과 신나게 놀겠다는 계획을 세워뒀기에 기록이 조금 늦어졌다. 이제 한 시간쯤 지나면 남편이 출근 준비를 시작할 것이다. 맛있는 걸 만들어 먹고,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고, 눈 밑이 까매질 정도로 날을 세며 웃었던 연휴였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갈 줄은 몰랐다.


명절 동안 외출은 두 시간 반 정도 했다. 남편이 1년 전부터 필요하다고 말하던 키보드를 사러 대형 마트에 갔다. 수십 가지 제품 중에서 디자인, 타자감, 소리, 가격까지 꼼꼼히 비교하느라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다. 5만 원대 제품 중 괜찮은 제품들은 대부분 품절이었고, 7~10만 원대 제품 중에 괜찮은 제품들이 있었다. 그 가격대 이상은 너무 비싸서 망설여졌다. 결국 10만 원대 제품들 중에서 선택해 구입했다.


구입 후 돌아오는 내내 남편이 환하게 웃었다. 좋아하는 걸 보니 진작 살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물건을 닳아 없어질 때까지 쓰는 편이라, 기존에 쓰던 선 달린 키보드가 멀쩡해서 굳이 바꿀 필요 있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오래된 물건의 견고함보다 남편의 기분 좋은 미소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연휴 기간 중 시간을 내 남편이 가장 마음에 든다는 제품을 구입했다.


그 외엔 남편의 시댁 방문 외에 집 밖을 나서지 않았다. 둘 다 집순이, 집돌이라 집에 있는 게 가장 편하고 좋다. 함께 놀다가도 각자 시간을 보내고, 또다시 마주 앉아 이야기하며 웃는다. 그렇게 보내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이번 연휴처럼 긴 시간 동안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게 그저 감사했다. 평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 나에게 남편과 함께한 열흘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 오롯이 남편에게 집중했다.


요즘 나는 ‘기억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을 글로 남긴다. 인간의 기억력은 생각보다 금방 바래진다. 사진이나 기록이 없었다면, 이번 연휴에 뭘 먹었는지도 잊었을 것이다. 기록은 나에게 시간을 붙잡는 일이고, 그 시간 속에서 살아 있었던 나 자신을 확인하는 일이다.


길었던 추석 연휴, 남편과 보낸 시간들. 평안이 주는 행복이 어떤 건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내게 주어진 시간과 젊음, 평안이 더 이상 남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내는 지금이 참 뿌듯하다. 남편과 함께한 길 위엔 고된 순간도 많았지만, 함께였기에 지나올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는 남편과 나를 최우선으로 두고 선택하고, 집중할 것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 우리가 함께 웃던 오늘이, 내게 가장 완벽한 명절이자 선물이었다. 고마워. 남편. 그리고 오늘의 나에게도 고마워.


[사진 서체 : 네이버 나눔 명조체]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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