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선물의 진심을 생각하다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선물을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뭘까. 라는 생각을 참 오래 했다. 내가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보내도 상대방이 원치 않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물이 아니라 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물을 하기 전 상대방의 취향과 사용성을 많이 고려하곤 한다.
이번 명절을 위한 선물들을 준비하면서 어머니 선물 전용 농을(전용 장롱 칸을 만들어 놓음) 열어 물건들을 골랐다. 평소 하나씩 모아두기 때문에 이번 선물도 무리 없이 준비할 수 있었다. 선물을 안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고 상대방이 원하는 거라면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10년 넘게 어머니의 선물을 준비하면서 어머니의 취향을 정확히 알게 됐다. 그래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더 이상 버겁지 않다. 이제는 어머니께서도 내게 선물을 주시니 고맙기 그지없다. 선물을 준비하면서 발견된 귀인을 위한 물건들도 이참에 포장해서 보내기도 했다. 따로 꺼내두고 언제쯤 보낼 수 있나 했더니 신기한 인연으로 연락이 닿았다. 그래서 필요 여부를 물은 후 선물 포장을 했다. 덕분에 장롱에 공간이 많이 생겨서 기분 좋다.
언젠가 어머니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정말 자주 들은 말씀이라 귀에 인이 박힐 정도다. 시어머니는 정말 많은 친우분들이 있으시다. 친우분들은 자녀를 부잣집 딸이나 부잣집 아들에게 시집, 장가를 보냈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부족함이 없으시다. 모이시면 자녀들이 무엇을 해 주었는지 서로 자랑을 많이 한다고 하셨다. 그중 시어머니가 가장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고 했다.
어머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며느리가 준 거냐며 어찌나 부러워하는지, 복이 많다는 이야기를 매일 같이 들으셨다는 어머니의 표정에서 만족감이 느껴졌다. 부잣집 며느리나 사위의 경우 100만 원이 넘는 용돈이나 신용카드를 주고 알아서 원하는 걸 사라고 한다고 한다. 자신의 필요와 취향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 어찌나 서운한지 그런 이야기들을 나눌 때마다 항상 화두에 내가 나온단다. 시어머니의 친우분들을 나는 전혀 모르지만, 그분들은 모두 나를 알고 계신다고 했다. 좋은 점은... 잘 모르겠고, 불편한 점은 좀 있다.
이번 명절도 이전에 준비했던 것처럼 준비했다. 항상 미리 다음 일정을 준비하기 때문에 이번처럼 무리 없이 준비할 수 있다. 한 사람과 오랫동안 연을 잇다 보면 상대의 취향과 원하는 것을 많이 알게 되니 편안하다. 선물을 받으신 어머니의 사진 속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선물을 보시는 걸 보고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선물하는 맛이 이런 거지, 선물이 이런 거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선물은 상대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내가 편하자고, 상대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하는 면도 있다. 그러니 이번 선물도 나 편하자고 했으니, 선물이 되었다.
거기에 기대치 않게 용돈과 먹거리들을 가득 보내주셨으니 이번 명절 풍성한 부자는 내가 되었다. 행복한 명절 기록을 잊어버리기 전에 이곳에 남긴다.
선물은 단순히 물건을 주고받는 행위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언어다. 그 안에는 사랑뿐 아니라, ‘인정받고 싶은 마음’과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욕구’가 함께 들어 있다. 나는 오랫동안 ‘좋은 며느리’이고 싶었기 때문에 무리할 때가 많았다. 어머니의 취향을 기억하고, 원하는 것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 복받는 며느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이 때로 나를 지치게 했지만, 이제는 그것이 사랑의 한 방식이었다는 것을 안다.
주는 행위 안에는 ‘사랑받고 싶은 마음’과 ‘나답게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래서 이제는 인정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평안하기 위해, 그리고 내 마음이 충분하고 따뜻할 때 건넬 수 있는 선물을 하고 싶다. 선물의 본질은 결국 ‘관계 속의 나’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명절의 선물은 어머니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내가 나를 이해하고, 내가 쉴 수 있는 마음을 회복하기 위한 선물이기도 했다. 참 좋았다.
[사진 서체 : 네이버 나눔 명조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