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을 산다는 건, 어제를 용서하고 내일을 미루는 용기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은 내가 지금 여기에,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인가 라는 거다. 때때로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는 데다,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 보내다 보니 세월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다. 게다가 지금은 누군가 나를 부른다고 해도 거절하는 일이 대부분이다. 언제부턴가 사람과 관계 맺는 것에 두려움을 갖게 된 것 같다. 사람에게 상처를 받으면서도 사람 속에서 해결하려고 했던 과거의 나와 달리, 지금은 누군가와 관계 맺는 것이 시작부터 피곤하게 느껴진다. 정말 좋아해서 잘 보이고 싶은 상대가 생기더라도(여성인 친구를 만들고 싶었다.) 갑자기 내가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지, 오히려 이런 내가 관계를 망치게 될까 봐 손을 접는다. 그러다 보면 어떤 관계든 시작조차 하기 어렵다.
사람이 사람에게 다가간다는 건, 결국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래서 상처받은 사람일수록 관계의 문턱이 높다. 그 문턱은 타인을 거절하기 위해 세운 것이 아니라, 다시는 자신을 잃고 싶지 않다는 내면의 울타리이기도 하다. 그 울타리 안에서 오늘도, 울타리를 뛰어넘을 것인지 매일 고민한다. 매일을 살아가면서 하루하루를 그냥 살아간다.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무색할 만큼, 나는 하루만 산다. 오늘 해야 할 것만 생각하고, 하면서 하루들을 채워간다. 그러다 보면 일주일이 금세 흘러간다. 그리고 주말이 오면 남편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나와 남편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럴 때면 과거에는 왜 그렇게 외부에서 행복을 찾았나, 그렇게까지 애써야만 사랑받는다고 믿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외부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건, 결국 ‘내 안에 빈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공의존자는 이 빈자리를 타인의 반응으로 채우려 한다. 그러나 관계는 채움이 아니라 ‘진정한 나눔’ 일 때 비로소 평안하다. 얼마 전엔 40만 원 가까이 현금을 모아서 (만원, 이만 원씩 모으다 보면 다람쥐통이라고 부르는 내 저금통이 채워진다.) 이참에 시부모님 전기밥솥(최근엔 김치냉장고를)을 바꿔드릴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중 몇 년 전부터 밀려 있던 과태료 청구서를 받았다. 신호 위반 내용이었는데, 40km 구간에서 56km로 주행해서 과태료가 123,900원이었다(아깝다..). 출장 중 주정차 위반이거나 단순 실수였을 텐데, 그 하나하나가 모여 40만 원이 넘어 있었다. 순간 당혹스러웠다. 경찰서에 의뢰인의 대리인으로 갔다가 주차해 둔 차량을 경찰관이 보시곤 청구서를 처리하고 가셔야 한다고 안내해 주셨다고 했다(내고 가지 않으면 번호판을 떼어가신다고.). 별것 아닌데도 돈 들어갈 일이 계속 생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문득, 내가 또 내 삶이 아니라 타인을 채우면서 행복을 느끼려 했구나 싶었다. 누군가의 행복을 보는 일은 참 행복한 일이다. 그런데 타인의 행복을 위해 나의 행복을 태워야만 한다면, 그 순간, 누군가의 행복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
남편이 일 년 내내 필요하다고 했던 키보드를 사러 간 날, 나는 그날도 새로 나온 전기밥솥을 구경하고 있었다. 항상 타인의 행복을 위해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가난에 처하게 한다는 한 공의존자의 고백이 그 순간 떠올랐다. ‘가까운 사람을 가난하게 하는 헌신’, 그것이 공의존의 역설이다. 사랑을 주고 싶어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자신을 불태우는 사랑. 그러나 그 사랑은 결국 가장 가까운 사람의 삶과 에너지를 소모시킨다. 그 사랑은 돌봄을 가장한 자기 상실이었다. ‘받는 법을 모르는 사랑’ 속에서 자기 자신을 넘어 가장 가까운 사람을 태워버렸다는 걸 깨닫고 받아들이는 건, 자신이 만들어놓은 세계가 무너지는 경험처럼 다가온다.
봉사활동을 하든 무료 공부방을 하든 주변사람들을 채우기 위해 과거의 나는 남편의 시간과 힘까지 빼앗아서 타인을 도왔다. 그걸 깨닫고 받아들이기까지(인정) 오랜 시간이 걸렸다. 당시엔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남편에게 봉사활동을 강요했다(지금도 그런 나를 떠나지 않고 곁을 지켜준 남편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랬던 과거력이 있기 때문에 오늘의 나는 어떤 선택을 하든 남편의 입장을 가장 먼저 고려한다. 남편과의 관계는 나를 잃지 않고도 사랑할 수 있다는 걸 매일 새로 배우게 하는 학교 같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챙기는 방법을 배우지 못해 어떻게 하는 것인지 모를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돌보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의 나는 큰 선택이든 작은 선택이든 남편의 행복을 최우선에 두고 결정한다. 내가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남편의 삶을 불안하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일이라면 과감히 그 선택에서 제한다. 그리고 남편을 위한 선택이었는데, 결국엔 그것이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는 걸 깨달을 때가 정말 많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과정을 ‘자기 재부모화(Self-Reparenting)’라 부른다. 내가 과거에 받지 못했던 돌봄과 배려를, 지금 내 곁의 관계 속에서 다시 배우는 일이다. 타인을 돌보며 동시에 나를 길러내는 훈련이기도 하다. 나에게 소중한 사람,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내 옆의 사람을 가장 먼저 챙기고, 행복하게 해 주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가까운 스스로를 아껴가는 삶을 통해 오늘을 살아간다.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지 가끔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종종 들지만, 이제는 대단하게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지금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과거보다는 오늘이 훨씬 더 행복하고, 조금은 평안하다. 공의존에서 회복된 사람의 하루는, 더 이상 ‘해야 하는 하루’가 아니라 ‘살아내는 하루’다. 그 하루 안에는 누군가를 구해야 한다는 의무 대신, 나 자신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자리한다. 그리고 이제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조차, 결국 내가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임을 안다. 그렇게 나는 오늘을 살아내며, 어제의 나를 조금씩 떠나보낸다.
덧붙임 – 공의존이란, 타인의 감정과 욕구를 자기 책임처럼 떠안는 관계의 습관을 말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상대의 문제를 해결해주려 하지만, 그 안에는 ‘나도 사랑받고 싶다’는 결핍된 욕구가 숨어 있다. 그래서 공의존에서 회복한다는 것은, 결국 ‘타인을 바꾸지 않고, 나를 돌보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타인의 기분이 내 기분이 되고, 타인의 행복이 내 존재 이유가 되는 관계의 습관. 회복은 그 습관을 끊는 것이 아니라, 나의 행복에도 같은 무게를 두는 일에서 시작된다.
1. Melody Beattie, Codependent No More, Hazelden, 1986
→ 사용된 개념: 공의존(Co-dependency), 타인의 반응을 통해 자기 가치를 확인하려는 심리 구조
2. John Bowlby, Attachment and Loss, Vol.1: Attachment, Basic Books, 1969
→ 사용된 개념: 애착 손상과 정서적 의존, 안전기지(Secure Base) 개념
3. Donald W. Winnicott, The Maturational Processes and the Facilitating Environment,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1965
→ 사용된 개념: 자기재부모화(Self-Reparenting), 진짜 자아(True Self) 형성
4. Jon Kabat-Zinn, Wherever You Go, There You Are, Hyperion, 1994
→ 사용된 개념: 현재 중심적 자각(Mindfulness), 지금 여기에 머무는 존재 감각
5. Erich Fromm, The Art of Loving, Harper & Row, 1956
→ 사용된 개념: 성숙한 사랑의 조건, 자기애(Self-Love)와 타인애(Other-Love)의 균형
[사진 서체 : 네이버 나눔 명조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