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다람쥐처럼 사는 법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매일 밥을 집에서 먹다 보니 해 먹는 것들이 정말 많다. 사진으로만 남겨두고 ‘언젠가 올려야지.’ 하다 지나간 날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렇게 저장만 해놓고 올리지 못한 게시글이 족히 한 달 치는 된다(더 넘을 수도 있다.). 요리할 때마다 사진이나 기록으로 남겨 놓으면 다음 요리에 참고할 수 있고, 이때 뭘 먹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그날을 추억할 수 있어 좋다. 기록의 순기능이 이런 게 아닌가 싶다.
어쩌다 보니 전업주부가 되어 있다. 어릴 때부터 전업주부는 절대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던 ‘절대’라는 말 때문인지, 결국 전업주부가 됐다. 절대라는 말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고 했던가. 정말 그렇다. 인생은 늘 내가 고집했던 방향과는 다른 곳에서 나를 몰아붙이고, 시험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절대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반드시 돈을 많이 벌어서 잘나가는 파워 여성으로 살 거라고 주야장천 떠들었는데, 전업주부가 되고 나니 오히려 나랑 너무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참, 인생이란 알 수 없다.
일을 언제까지 해내라고 쪼는 상사가 없고, 음식을 알려주겠다며 도와주는 척하면서 쪼아대는 시댁도 없으며, “건강을 먼저 되찾아야 한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는 남편 덕분에 아이도 없다. 그러니 이렇게 천상계 전업주부가 되었다. 매일의 리듬이 느긋하고, 누가 나를 다그치지 않는 평화로운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내 삶의 주인’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 체력 조건에 맞춰 집안일을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만들어 먹고, 남편과 즐겁게 논다. 다들 그래서 딩크족(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을 지향하는 건가 싶을 정도다. 그래도 나는 아이를 꼭 낳고 싶다. 내가 받지 못한 사랑만큼 아이에게 가득 주고 싶어서다.
그런데... 이미 늦은 게 아닌가 싶다. 미루고 미루다 보니 30대 중반이었던 내가 40대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때로는 지나간 시간을 붙잡으려 애쓰는 나 자신이 안쓰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 시간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안다. 첫해 1년 동안은 반드시 취업을 하겠다며 시험을 보고 면접을 봤고, 두 번째 해에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에 6개월 동안 참여했다. 좋아하는 분이 운영하던 글쓰기 모임에도 참여했다가(여성분이고 여성들의 모임이었다), 그 이후에는 법무사 시험을 보겠다며 1년을 사용했다. 그러다 이도 저도 귀찮아서 다 접고 전업주부로 2년을 살고 보니 4년 반이 후루룩 지나 있었다.
물론 그 사이 열심히 취미생활도 했다. 그 내용은 다른 글에서 심도 있게 다룰 예정이다. 어쨌든 이래서 어른들이 “세월이 무상하다.” “세월이 너무 빠르다."라고 말했구나 싶다. 지난 몇 년을 전업주부로 살면서 내가 원하는 음식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통제형 인간인 나를 완벽히 채워주는 것이 요리였다. 요리는 내 마음대로 통제가 가능하지 않은가.). 가끔 귀찮을 때도 있지만, 돈과 건강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하게 된다. 먹을 때는 맛있게 잘 먹어도, 먹고 난 후 위장 문제를 겪게 된다고 생각하면 배달 음식이든, 식당 음식이든 잘 먹지 않게 된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신장 문제와 장 누수 문제가 있었고(응급실에 자주 감), 나 역시 자가면역 질환으로 장 질환과 위장 문제를 끼고 살았다. 그러니 먹고 마시는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매일 음식을 하고, 내 시간들을 내 마음대로 채워가면서 삶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요리를 할 때, 식물을 키울 때, 액세서리를 만들 때, 글을 쓸 때, 빨래를 하고 개키면서도, 삶은 끊임없이 나를 쫓아왔다. 멈춰 있는 듯해도, 삶은 늘 내 뒤를 따라왔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기록들을 꾸준히 남긴 덕분에 지난 4년의 기록들이 빼곡히 남아 있다. 덕분에 과거의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했는지, 바로 어제처럼 기억할 수 있어 좋다. 그 기록들은 언제나 내게 말했다.
“괜찮아, 너는 이미 충분히 잘 살고 있어.”
글을 쓰며 나는 나 자신을 다독이는 방법을 배워갔다. 삶이 내가 원하던 대로, 예상했던 대로 전혀 흘러가지 않아 당황스럽고 슬플 때가 많았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니 오늘의 삶이 그리 나쁘진 않구나 싶다. 이것도 익숙해진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속상하다가도, 내 걸음으로 내가 원했던 방향대로 천천히 걷고 있다는 걸 기록 속에서 발견한다. 그러면 또 오늘을 살아낼 힘이 난다.
언젠가 봤던 법륜스님의 강의에서 누군가 스님께 삶에 대해 물었다. 그랬더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냥 사는 거지, 뭐. 다람쥐가 왜 사는지 생각하고 사나. 그냥 사는 거야. 다람쥐처럼.”
그 말을 듣고 나서 더 이상 삶에 쫓기지 않게 됐다. 그냥 오늘을 사는 것. 사는 것 같지 않아 힘들었던 내가 이제야 “그냥 다람쥐처럼 사는 게 삶이구나.”라는 걸 받아들였다. 삶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삶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우울했던 내가 이제야 삶이 살아진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이제야 극단적일 만큼 밝은 사람들을 볼 때면 그 뒷면에 숨겨진 슬픔과 그늘이 느껴질 만큼 조금씩 익어가고 있다.
더 이상 나도 내 우울함과 아픔을 감추기 위해 극단적으로 밝게 웃고 떠들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의 애정을 받기 위해 과하게 노력하는 나를 천천히 놓을 수 있게 됐다.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나를 놓아주는 나를 만난 건 다람쥐처럼 하루만 살아냈던 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 그저 고맙고 평안하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요리를 하고 기록을 남기고 하루를 정리하는 일들은 나를 회복시키는 ‘자기 조절(Self-Regulation)’의 루틴으로 볼 수 있다. 불안하거나 초조할 때, 일상의 작은 반복은 마음을 다독이고 삶의 리듬을 다시 맞추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이는 ‘안전 기지(Secure Base)’를 스스로 만드는 과정이다. 내 일상과 기록이 나를 지탱해 주는 ‘내면의 집’을 천천히 만들어온 것이다.
다람쥐처럼 하루들을 '그냥' 살아가면서 깨달았다. 삶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살아지는 순간들 속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그리고 하루들 속에서 오늘의 시간들이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했고, 내가 원했던 시간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오늘도 부엌 창문 너머로 햇살이 들어온다. 그리고 나는 그 햇살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어제의 나를 미워하지 않고, 내일의 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오늘을 살아내는 이 평범한 시간이 내가 가장 사랑하게 된 삶의 모양인가 보다.
[사진 서체 : 네이버 나눔 명조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