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말고, 함께 있는 사람을 바꿔라
이 책은 저자의 실제 삶에서 비롯된 기억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저자의 주관적 시각에 따른 해석이며, 법적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인물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회복의 여정을 기록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위로와 통찰을 제공하기 위한 진솔한 성찰의 기록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매일 아침 우리 집 근처를 지나가셨다는 이동식 식재료 상 사장님에게서 파를 샀다. 마침 파가 떨어져 어디에서 구입할지 고민하던 차였다. 파, 양파, 고추, 감자... 방송 목소리를 듣고 잠옷 차림으로 뛰어나갔다. 내가 입는 잠옷은 외출복으로 입어도 될 만큼 그냥 원피스 형태다.
“대파 한 단 얼마예요?”
“6천 원.”
“국산이에요?”
“대파는 중국산이 없어.”
사장님의 말에 한마디 더해볼까 하다 그만뒀다. 파만 사면 되니까. 대형마트에서 배달해 먹다 직접 구입하려니 원산지에 더 민감하게 된다. 요즘은 대형마트에서도 텍갈이를 해서 넣는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아침부터 구입해 온 대파를 씻고 손질했다. 냉동실에 넣어두기 위해 깨끗이 씻고 식재료용 타올로 잘 닦고, 잘게 썰어 통에 담았다. 냉동실에 넣어두면 오랫동안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오래 먹을 식재료들은 늘 냉동해 둔다. 파를 썰면서 눈물, 콧물을 쏟는 내 모습을 남편이 귀엽게 바라본다. 출근 준비에 여념이 없는 남편과, 파를 써느라 눈물 쏟는 나. 그 아침 풍경이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남편이 중증 지방간(비알코올성) 진단을 받은 후 우리 집은 외식을 거의 하지 않는다. 게다가 나조차 식재료에 아주 예민하기 때문에 직접 내 손으로 골라 만들어 먹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건강하다는 걸 안다. 엊그제 깨끗하다고 추천받은 한식당에서 외식을 했는데, 이틀 내내 설사를 했다. 아, 나처럼 몸도 마음도 예민한 사람은 참 여러 가지 면에서 신경 쓸 부분이 많다. 파를 열심히 썰어 냉동실에 모두 넣었더니 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든다. 부자가 뭐 별 건가.
남편이 100% 돈을 벌어오기 때문에 어쩌다 보니 주부가 된 나는 주부 노릇을 톡톡히 하기로 했다. 그래서 가사는 100% 내가 도맡아 한다. 남편이 거들려고 해도 뺏어서 내가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왠지 주부로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아서다. 남편은 내게 돈을 벌어오라거나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사람의 꿈이 돈을 많이 벌어 일찍 파이어족이 되는 거지 않냐.”며, “일찍 파이어족이 됐다고 생각하고 건강하고 즐겁게 놀아.”라고 말한다. 거기에 건강하게 오래 살아주는 것이 자기를 위한 일이라는 말울 더한다. 살다 보니 내가 이런 복도 받는구나 싶어 참 내가 복이 많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가끔 1년에 한두 번 만나는 집주인 어르신만 “계속 놀 건 아니지?” 하고 물으신다. 아마 내 능력을 높이 사주시는 것 같다.
남편을 깨워 따뜻한 꿀물 한 잔을 타주고, 파를 한참 썰다, 출근용 남편의 커피를 내렸다. 나름 정신없는 아침을 보낸 후 남편이 출근을 하자 드디어 내 시간이 가득한 하루가 시작됐다. 남편과 함께 있는 시간도 좋지만, 이렇게 혼자 앉아 주저리주저리 글을 적는 시간이 참 좋다. 오늘 저녁 메뉴는 소, 닭, 돼지 중 고르라고 하니 “어떤 요리야?”라고 묻는 남편의 눈빛이 총총히 빛난다. 소는 이렇게 할 거고, 닭은 이렇게 할 거고, 돼지는 이렇게 할 거라고 조잘조잘 설명하니 메뉴로 돼지고기 요리가 선택됐다. 마침 신선한 대파도 생겼으니 오늘 밤엔 매콤 달콤한 돼지고기 볶음을 할 생각이다. 그래서 냉동하지 않은 생생한 대파도 조금 남겨뒀다.
이제 하루의 시작이다. 오늘 하루는 어떤 이야기로 채울까. 온전한 자유가 가득한 하루를 맞이하면서 나도 모르게 책임감을 느낀다. 내 삶을 이제야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는 느낌은 그만큼의 무게와 책임, 그리고 행복이 함께 스며드는 일이다. 오늘 아침 파를 썰며 들은 강의에서 멋진 말을 들었다.
“사람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사람을 바꿔라.”
이 말은 타인을 변화시키려 애쓰지 말고, 관계 맺는 사람 자체를 바꿔라는 뜻이었다.
“You can’t change people. You can only change who you choose to be around.”
(사람은 바꿀 수 없다. 다만, 당신이 곁에 둘 사람은 바꿀 수 있다.)
“Stop trying to change people; change the people you’re around.”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말고, 함께 있는 사람을 바꿔라.)
사실, 타인을 바꾸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차라리 그 시간을 나를 바꾸는 데 쓰는 것이 훨씬 빠르고 현명하다는 걸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깊게 배워가고 있다. 결국 인간관계에서도 ‘통제 가능한 영역’과 ‘통제 불가능한 영역’을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통제의 위치(Locus of Control)’라고 부른다. 타인을 바꾸려는 시도는 ‘외적 통제’에 머무르지만, 내가 관계를 선택하는 건 ‘내적 통제’의 회복이다. 나이가 들수록 바꾸려는 노력보다 선택하는 용기가 관계를 건강하게 만든다는 걸 배워간다. 눈물 콧물을 쏟으면서 손질한 대파처럼, 인간관계도 눈물 콧물을 쏟으며 배웠다는 생각에 파 위로 과거가 한 움큼 지나간다. 그러면서 강의 속 멋진 말이 내 안으로 깊게 들어왔다. 냉동실을 가득 채운 파처럼 내 삶에도 필요한 관계만 잘 선택해 오래오래 신선하게 간직할 수 있기를 바라보며 글을 마무리한다. 일단, 나는 오늘 나를 더 멋지게 바꿔봐야겠다. 나를 바꾸는 것이 훨씬 쉽고 현명한 일이니까.
1. Rotter, Julian B., Social Learning and Clinical Psychology, Prentice-Hall, 1954
→ 사용된 개념: 통제의 위치(Locus of Control) / 성격심리학
2. Seligman, Martin E. P., Learned Optimism: How to Change Your Mind and Your Life, Knopf, 1991
→ 사용된 개념: 내적 통제감 회복과 선택의 주체성 / 긍정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