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0. (1) 내 감정을 드러내면 벌을 받고, 내 고통과 말을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나의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10. 내 감정을 드러내면 벌을 받고,
내 고통과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1) 영웅의 서사인가, 신의 은총인가
(2) 고통스러웠던 20대
(3) 도망가느라 바빴던 30대
(4) 내 생각과 마음이 가장 중요해
AI 네컷 만화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나의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트라우마 본드(Trauma Bond). 간헐적 강화. 심리학에서는 두 가지 메커니즘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연결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유지되는지 설명해 준다. 나를 아프게 하지만 때로는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을 경우 특히 가해자가 성인이고, 피해자가 아동인 경우, 아동의 세계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완벽히 부서진다. 아이는 자신을 보호해 줄 유일한 존재가 동시에 상처를 주는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자란다. 성인이 된 이후 가족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해도, 어린 시절의 관계를 완벽히 혹은 비슷하게 구현해 내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어린 시절 형성된 관계가 그 사람의 '세계' 자체가 되었기 때문에, 그 관계 안에서만 안정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때 안정감은 안전(safety)이 아니라, '예측 가능성(predictability)'에서 비롯된다는 점이 가장 잔인한 지점이다. 고통조차 예측 가능하다면, 우리는 그것을 안정이라고 오해한다. 그래서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익숙한 불안정'에 머무르는 것이, 낯선 평안함보다 더 견딜 만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 감정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나는 벌을 받게 될 거야. 그리고 그 벌은 언제나 나 혼자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아이는 성인이 되어서도 학대와 애정 폭탄을 동시에 가하는 상대에게서 확실성이라는 이름의 안정감을 느낀다. 피해자는 그 상황이 자신을 아프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불확실성이 증가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오히려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학대와 애정의 사이클을 예측 가능하다는 이유로 다시 선택한다. 이것이 트라우마 본드의 가장 잔혹한 특징이다. 피해자는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도 있고,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정서적, 심리적 고착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상태를 '피해자의 문제'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트라우마 본드는 선택이라기보다 '조건화된 생존 방식'에 가깝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반복적으로 내면화된 반응은 의식적 선택이 아니라 신체가 기억한 방식으로 자동 재현된다. 따라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약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생존을 위해 배운 전략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내면 구조를 스스로 무너뜨리기란 누구에게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어린 시절 만들어진 내면 세계를 반드시 한 번은 완전히 부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세계를 부수고 나오지 못하면 진정한 자유와 평안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동안 자신에게 안정감을 주는 줄 알았던 관계와 환경이 사실은 자신을 가장 깊게 아프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 안정감이 결국 자신을 잃게 만들었고, 잃게 만들 수 있었던 구조였음을 알아야 한다. 내면 세계를 부순다는 것은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세계가 더 이상 지금의 나를 규정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트라우마 기반의 세계는 생존에는 유효했지만, 삶을 확장시키는 데에는 치명적인 한계를 가진다. 나는 이 장을 통해 그 사실을 조금이라도 더 분명하게 바라보기를 바라며 나와 누군가를 위해 시작한다. 어린 시절의 세계는 생존을 위해 만들어졌을 뿐, 성인이 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계가 아니다. 그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비로소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영웅적 결단이 아니라, 지극히 인간적인 선택에서 비롯된다.
12살 무렵 학교 대표로 나가 글짓기 대회를 치렀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 나는 내 20대를 아름답게 기억하게 해 준 친구를 처음 만났다. 한 달에 네 번, 많게는 대여섯 번씩 각 학교 대표 학생들과 대회장에서 글로 경쟁했다. 쟁쟁한 아이들 사이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매일 글쓰기 연습을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원고지 스무 장에서 서른 장 가까이 되는 글을 원고지에 매일 쓰고 고치는 일을 반복했다. 정말 지루하고 피곤한 작업이었다. 당시 내 글을 봐주시던 글 선생님은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써야 한다며(다작) 매일 같은 양의 글을 쓰게 하셨다. 덕분에 내 가방과 방은 붉은 선과 네모가 가득한 종이들로 가득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시절 글 선생님을 만난 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귀한 만남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도 그분은 내게 가장 귀한 은사님들 중 한 분이다. 정말 고맙고,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주신 분이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이 시절의 반복적 글쓰기 연습은 내 삶의 첫 번째 '탈세계화 경험'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형성된 가족 세계 밖에서 글이라는 또 다른 세계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배운 시간이었다.
매일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친구와 놀 시간이 없을 정도로 글을 쓰고 또 썼다. 지금도 산속에 있는 당산나무 아래에서 근처 버섯 농장의 버섯 냄새를 맡으며 바위 위에서 혼자 글을 쓰고 또 썼던 게 기억난다. 글을 쓰고 나면 글 선생님이 그 위에 붉은 펜으로 띄어쓰기와 맞춤법을 고쳐주셨고, 나는 같은 내용을 다시 원고지에 바르게 써 와야 했다. 사실 이때는 글쓰기뿐 아니라 각종 경진대회에도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내 일상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대회 준비로 빼곡하게 채워졌다. 새 글을 짓는 일도 버거웠지만, 고쳐진 내용을 틀리지 않고 그대로 원고지에 옮기는 일도 쉽지 않았다. 능력도 없이 글을 많이 쓴 덕분에(11살 정도부터 시작했으니 무슨 경험으로 글을 쓰겠는가.) 글을 쓰는 일이 지겨워져 이후에는 산문이 아니라 시 대회에 나가겠다며 선생님과 글제자로서 이별을 선언했다. 산문은 최소 20장 원고지를 써야 하지만 시는 3-5장 정도면 충분했고, 글 간격도 넓었다. 아무튼 선생님과 거의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글을 쓰고 또 쓴 덕분에 글발이 세워진 12살 무렵, 나는 내게 엄청난 경험을 줬던 다른 선생님을 고발하는 글을 극사실적으로 적어낼 수 있었다(1부. 7 (3) 누더기를 걸친 마음 부분 참고). 그리고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매일 쓰기라는 고된 훈련이 내 감정을 처음으로 언어화해 준 시간이기도 했다. 가족이라는 폐쇄적 세계에서는 말할 수 없던 것들이 글 앞에서는 조금씩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내 감정을 숨기거나 삼켜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아이에게, 글은 유일하게 검열 없이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었다. 입으로 말할 수 없었던 감정들이 종이에 먼저 도착했고, 그때부터 아주 조금씩 말해도 죽지 않는다는 경험이 내 안에 쌓이기 시작했다.
글쓰기 대회를 나가다 보면 각 학교 대표로 나온 아이들을 반복해서 만난다. 그래서 어느 순간 그들의 얼굴이 익숙해진다. 그때 만났던 친구도 그랬다. 그 친구는 글을 정말 잘 쓰고 다재다능한 아이라 대회에 나갈 때마다 얼굴을 마주하는 일이 많았다. 그 친구와 친해진 계기는 주장하는 글쓰기 대회에서 우연히 내 옆자리에 앉게 되어서다(무작위로 자리가 배정되는데 우리가 짝이 됐다.). 친구는 연필과 공책을 가져오지 않았다며 내게 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주소와 연락처를 공책 위에 적어달라고 했다. 꼭 갚겠다고 말이다. 그때부터 약 2년 동안 우리는 펜팔을 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 내게 도착하던 친구의 편지는 우리가 중학생이 될 무렵까지 이어졌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편지를 주고받는 일을 멈췄는데 왜 멈췄는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둘 다 각자의 일상으로 더 바빠져서 편지를 주고받는 일도 자연스럽게 끊어졌던 것 같다. 서로의 사진만 주고받고 편지를 멈췄다. 아기 때 사진과 그 무렵의 사진을 서로 나눠 가졌는데, 지금도 친구의 사진이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성인이 된 후 돌려줬던 것 같다. 연필과 공책은 돌려받지 못했지만, 친구와 오래 주고받았던 편지 덕분에 외로웠던 일상이 즐거움으로 채워졌던 기억이 지금도 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참 따뜻하다. 당시의 나는 '친구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따뜻할 수 있는지 제대로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 편지들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누군가와 안전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최초의 경험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 받은 작은 친절들이 성인이 되어 내 세계를 지탱하는 정서적 기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친구와 다시 만난 건 고등학생이 되고 월드컵이 열렸던 날이었다. 붉은 옷을 입고 학교 친구들과 시내에 응원을 나간 일이 있었는데, 수많은 인파들 속에 친구가 있었다. 친구도 나도 서로를 한눈에 알아봤다. 정말 놀라운 만남이었다. 이후 연락을 하다 자연스럽게 끊어졌다. 그리고 다시 스무 살이 되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 학교 교정에서 만났다. 이 친구와는 운명인가 싶을 정도로 특별한 만남들이 이어졌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고 한참 대학 생활을 할 때 친구는 다시 재수를 하겠다고 연락을 해 왔다. 그리고 재수 생활이 끝났다고, 원하는 과에 붙었다는 연락을 해 왔다. 워낙 어릴 때부터 뛰어났던 친구라 의사가 되고 싶었던 것 같은데, 친구는 점쟁이의 말처럼(친구는 점사를 믿는 아이였다.) 수능만 보면 평소 실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친구는 마지막 재수를 했을 때 붙은 과에 입학했고, 입학한 후부터 우리는 완전한 쌍이 되어 매일 같이 만남을 이어갔다. 이 시기의 우리는 서로에게 거의 일상처럼 스며 있었다. 나는 누군가와 이렇게 규칙적이고 안정적으로 관계를 이어가는 경험이 처음이었다. 누군가와 관계가 두렵지 않고, 매일 만나도 불편하지 않다는 사실이 그때의 나에겐 작은 기적처럼 느껴졌다. 그래선지 지금도 나는 그 친구와의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를 믿어보겠다는 용기조차 내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친구는 마지막 공무원 시험을 보러 갔을 때도 내가 점심을 싸 가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 손수 김밥을 만들어 40분이나 버스를 타고 내가 있는 시험장에 왔다. 그리고 손수 만든 김밥 한 줄을 내게 건네며 잘 될 거라고 응원해 주고 갔다. 친구를 생각하면 받은 것이 너무 많아 지금도 미안하고 아쉽다. 살던 집에서 쫓겨나 급하게 방을 찾아다녔을 때도(친구는 자기 집에 빈방이 있다고 와서 살라고 해주었다.), 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져 울 때도 친구는 언제나 내 옆에 있어 주었다. 돌아보면 같은(비슷한) 행동을 나도 할 수 있었을지 의아할 정도로 내게 정말 잘해줬다(친구 말로는 내가 자기에게 정말 잘해줬다고 했지만, 그때 나는 상처와 문제를 많이 안고 있던 아이였다.). 20대 중반에 발생한 살인미수 사건만 아니었어도 친구와 지금도 만나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때 친구는 내 모습을 보고 너무 무서워서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트라우마에 시달렸고, 그 트라우마는 결국 우리의 만남까지 완전히 끊어지게 만들었다. 친구와의 만남과 마지막을 떠올리면 미안하고, 아쉽고, 고맙다. 그리고 내게 다채로운 감정과 행복을 준 친구를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시절 친구는 내 삶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기 직전에 붙잡아준 마지막 끈 같은 존재였다. 가족에게서 경험하지 못한 '조건 없는 돌봄'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보여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 관계는 단순한 우정이 아니라, 내 내면에 남아있던 건강한 가능성을 증명해 준 하나의 증표처럼 느껴진다.
매일 같이(그래도 매일은 아니었다.) 울면서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극단적인 말을 쏟아내던 내게 친구가 말했다.
"살아있는 게 복수하는 거야.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고. 사지 멀쩡하게 태어난 게 감사한 거지. 우리 팔다리 다 달렸잖아. 그러니까 너도 보란 듯이 떵떵거리면서 행복하게 살아. 나쁜 놈들 눈꼴 시리게 말이야."
삶을 스스로 포기하고 싶어질 때면 친구는 이렇게 내 마음을 붙잡아주곤 했다. 내면이 늘 불안하고, 스스로가 불쾌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증오했다. 외모가 아름답다는 말, 몸매가 좋다는 말, 학교에서 사람들이 다가오기 어려울 정도로 예쁘다고(부끄럽지만 여신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세상에 없는 게임 세계에만 존재하는 사람이라고.) 칭찬받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내 내면의 처참함은 '더 예뻐지지 않으면', '더 잘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망가지고 사라질 거라고 속삭였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쳐다보기만 해도 '내게 문제가 있어서겠지.', '나를 칭찬했던 사람들도 나를 알고 나면 실망하고 욕할 거야.'라는 말과 생각을 달고 살았다. 그 말들은 주변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지만, 어린 시절 내내 나를 둘러싸 앉아(정말 둘러싸서 앉으셨다.) 마늘을 까거나, 수건을 개고 있는 나를 향해 분노를 쏟아내던 어른들 덕분에 당연한 사고였다. 그래서 나는 어른이 되고서도 늘 사람들의 눈빛과 말이 무서워 관계를 맺지 못했다. 오늘 사랑해 줘도 내일은 언제든 나를 짓밟고 욕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누군가와 연결되는 것이 늘 두려웠다. 그 두려움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학습된 예측'이었다. 언제 공격이 들어올지 모르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칭찬도, 호의도, 호감도 모두 곧 사라질 것이라고 배운다. 그래서 칭찬을 신뢰하는 능력, 안정적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 자체가 어린 시절부터 애초에 허락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랬던 내게 친구가 말했다.
"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영웅의 일대기 같아. 이제 막 중간 정도 접어든 영웅 일대기 말이야. 그 영웅들이 참 온갖 일들을 다 겪잖아. 그런데 어떻게 한 사람 일생 안에 이렇게 많은 일들이 있을 수 있지? 소설 같기도 하고. 그래서 가끔은 네가 정말 그 모든 일을 겪은 게 맞는지 싶기도 해. 그리고 가끔은 신이 정말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신이 있으면 그렇게까지 널 버릴 수 있을까 싶거든. 그래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어."
친구의 말을 듣고 한참 동안 어안이 벙벙해졌다. '영웅 일대기'라면, 그 영웅 소설들처럼 나는 결국 잘될 운명인 걸까. 아니면 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버린 영혼이었을까. 내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는 나조차 내가 정말 그 많은 과거들을 겪어온 것이 맞는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넌 강하니까 괜찮아.", "하나님이 너를 연단하시려고 주신 고난이야. 이 고난이 끝나면 순금이 되어 나올 거야.", "이 모든 게 신의 은총이야."라는 식의 말을 하곤 했다. 믿음 앞에서 고난은 언제나 너무 쉽게 '신의 은총'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했다. 그리고 그 말들은 위로처럼 보였지만, 내 고통을 한순간에 '의미'로 포장해 버리는 방식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고난을 신의 계획으로 설명해 버리면, 그 고통의 현실과 감정은 사라지고 남는 것은 '견뎌야 한다.'는 의무뿐이다. 그래서 그 시절의 나는 위로를 받는 동시에 더 고립되었다.
최근에 과거를 돌아보고 나서야 그때 친구를 내가 조금 더 보듬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사랑하는 친구가 내 일로 인해 자기에게까지 극단적인 일이 닥칠까 봐 두려움에 떨던 그 행동과 말을 그때 조금만 더 '아픔'으로 이해해 줬다면 지금도 내 곁에 친구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의 행복을 언제나 내 손으로 망가뜨려왔다는 사실과 마주했다. 친구를 떠나보낸 것조차 사실은 내가 행복하길 바라지 않는 내가 스스로 해낸 일이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내면이 망가져 불행을 스스로 선택하고, 자초하고, 그것을 '신이 주신 고난과 역경'이라고 믿었던 내 세상을 깨고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진정한 나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때 누군가를 잃는 것이 단지 사건 탓만은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상처가 깊을수록 사람은 기쁨보다 고통에 더 익숙해지고, 익숙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법이라는 것을. 행복이 낯설면 사람은 종종 그 낯섦을 스스로 끊어내기도 한다. 나는 그때까지도 '고통이 나의 자리'라고 믿고 있었고, 그 믿음이 관계까지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성인이 되고 다시 만난 친인척들은 어린 시절 누구나 그 정도는 맞고 자란다고(진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해봐야 너만 손해라고, 가족 욕 먹여봐야 내가 무슨 득이 있냐고, 누워서 침 뱉기라든지, 하나님 사람은 왼쪽 뺨도 치면 오른쪽 뺨도 내줘야 한다든지, 원수를 사랑하라셨다든지, 일흔일곱 번도 용서하라고 성경에 쓰여 있다든지, 너는 뭐 그리 자세히 기억하냐며 독하다든지 라는 말을 하며 입을 열면 그 대가를 내가 모두 치르게 될 것처럼 이야기했다. 그리고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뉘앙스의 말들도 돌려서 해댔다. 지금 돌아보면 그 말들은 사실 '침묵하라.'는 명령이었다. 내가 겪은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 내 감정을 내 감정으로 인정하지 말라는 것, 상처의 주인이 나라는 사실을 부정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가족 체계에서 금지된 것은 폭력이 아니라, 폭력을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말들은 늘 나를 침묵의 편으로 밀어 넣었고, 말을 꺼내는 순간 벌을 받을 거라는 믿음을 더 깊게 만들었다.
지금 생각은 다르다. 내 얼굴에 내가 침 뱉겠다는 데 누가 뭐라 하겠는가 싶다. 누가 믿든 믿지 않든 마음 가는 대로 살기로 한 선택이 내게 중요한 데다, 쓰고 싶으면 쓰고, 쓰기 싫으면 그만둘 수 있으니 참 평안하다. 그리고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내 글을 읽고 단 한 사람이라도 위로를 받고 자기 세계를 깨고 나올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누군가의 글을 읽고 세계를 깨고 나오기로 결심했던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그 우연한 계기가 되어줄 수 있다면, 내 이야기가 과장처럼 들리든, 믿기 힘든 이야기처럼 느껴지든, 이미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나는 오늘을 살아가면서 매일 생각한다. 혼자 충분히 행복해도 된다고, 행복을 나눌 수 없을 정도로 마음이 가난하다면 굳이 나누지 않고 혼자 행복해도 된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산다. 이 글을 쓰면서 몸에 좋진 않지만 맛이 아주 끝내주는 햄버거를 먹고 있다. 그 기분으로 오늘의 글을 쓰고, 누군가에게 이 글을 띄워 보낸다. 네 삶을 혼자 만족하면서 행복하게 살아도 된다고.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고, 윤리, 도덕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내가 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며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살면 된다고. 그 안에서 진정한 평안과 행복을 충분히 누려도 된다고 말이다. 예전의 나는 행복을 누리려면 누군가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지금의 나는 행복에도 주권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행복을 누리기로 결심하는 일 자체가 어렵지만 그 과정이 치유라는 것도 말이다. 무엇보다 이제는 내 감정을 드러낸다고 해서 예전처럼 벌을 받지 않는다는 것, 믿어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도 내 이야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러니 삶이 영웅 일대기의 서막이었든,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 이야기였든, 신의 은총이었든, 신이 버린 것 같든, 어찌 되었든 일단 세상에 왔고 살아 있으니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끝장나게 행복하게 살아가자고. 나는 나에게, 그리고 당신에게도 말한다. 우리 그냥 행복하게 살자. 최소한 세상이 다 적이 되더라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언제나 내가 내편이 되어 살아가자고 말이다.
2부 10. (1) 영웅의 서사인가, 신의 은총인가
참고 자료
1. Patrick Carnes, The Betrayal Bond, Health Communications, 1997
→ 사용된 개념: 트라우마 본드(Trauma Bond), 학대 관계의 조건화, 반복되는 사이클
→ 이론 분야: 트라우마 심리학, 중독·관계 심리학
2. B. F. Skinner, Science and Human Behavior, Free Press, 1953
→ 사용된 개념: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
→ 이론 분야: 행동주의 심리학, 조건화 이론
3. Judith Herman, Trauma and Recovery, Basic Books, 1992
→ 사용된 개념: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 트라우마 구조, 안전과 회복
→ 이론 분야: 트라우마 심리학
4. Bessel van der Kolk, The Body Keeps the Score, Viking, 2014
→ 사용된 개념: 신체화된 트라우마, 감정·기억의 재생산, 생존 기반 반응
→ 이론 분야: 트라우마 신경생물학
5. John Bowlby, Attachment and Loss, Vol.1: Attachment, Basic Books, 1969
→ 사용된 개념: 애착 형성, 안정감의 오해(안전 vs. 예측 가능성), 반복되는 관계 패턴
→ 이론 분야: 애착이론(Attachment Theory)
6. Donald Winnicott, The Maturational Processes and the Facilitating Environment, International Universities Press, 1965
→ 사용된 개념: 거짓자아(False Self), 진짜자아(True Self), 생존으로서의 적응
→ 이론 분야: 정신분석·발달이론
7. Alice Miller, The Drama of the Gifted Child, Basic Books, 1981
→ 사용된 개념: 독성 양육(Toxic Parenting), 침묵 강요, 감정 무효화
→ 이론 분야: 발달 트라우마, 가족 역동
8. Murray Bowen, Family Therapy in Clinical Practice, Jason Aronson, 1978
→ 사용된 개념: 삼각화(Triangulation), 가족 체계에서의 침묵 규범, 정서적 단절
→ 이론 분야: 가족체계이론(Family Systems Theory)
9. Freud, Sigmund, Beyond the Pleasure Principle, W. W. Norton, 1920
→ 사용된 개념: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
→ 이론 분야: 정신분석학
목차
프롤로그
‘상처’에서 ‘자유’로, ‘의무’에서 ‘선택’으로 나아간 김희경 작가의 신작.
가족이라는 감정적 언어 속에서 길을 잃었던 한 개인이 자아와 회복을 향해 걸어온 심리적 여정.
1.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
혈연이라는 이름이 만든 구조적 폭력
(1) 가족이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을 때
(2) 가장 아름다웠던 날, 가장 잔인한 기억
(3) 생애 첫 기억 속 무가치함의 내면화 시작
(4)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2. 가족이라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한다는 믿음의 해체
(1) 몇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 기억 속에 남은 마지막 장면들
(2) 유일한 내 편이면서, 동시에 나를 파괴한 사람
(3) 누가 나를 구원해 줄까
(4)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손조차 잡을 수 없었다
3. 가족 내에 형성된 내 역할을 점검하라
역할고착(Role entrapment)과
삼각관계(Triangulation)
(1) 역할 고착과 삼각관계, 그리고 세습되는 역할
(2) 아이로 태어나 희생자가 되기까지
(3) 희생양이 된 아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희생양을 자처하다
(4) 희생자 가족 재판에 서다
(5) 반복되는 구조, 멈출 수 있는 용기
-추가 : 가족 속에서 반복되는 심리 구조 6가지
4. 불쌍하지 않은 걸 불쌍하다고 말하지 마라
감정의 무효화(Emotional invalidation)와
2차 피해
(1) 기억 속 어머니의 따뜻한 도시락과
차가운 뒷모습
(2) 감정의 무효화와 2차 피해
: 이중의 상처
(3) 가사노동의 굴레 안에서 사라진 존재들
(4) 반복 강박 속에서 깨달은 진짜 감정
(5) 엄마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챙겨야지
(6) 타인의 불쌍함은 타인의 몫이고,
내 감정을 지키는 건
내 몫이고 나의 책임이다.
5.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에 주의하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통제의 언어
(1)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상처의 유산
(2)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
(3) 왜곡된 사랑과 고통의 반복
(4) 성공을 바란다며 발목을 잡는 사랑
(5) 왜곡된 사랑과 경계의 설정
(6) 자기 사랑의 회복과 치유의 여정
-추가 : 알고 가기
6.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연민은 선택이지만,
용서는 강요가 아니다
(1)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들
(2) 단돈 천원도 못 벌어오는
너는 불필요한 존재야
(3) 나중에 나랑 시골에 집 지어서 같이 살자
(4) 여행이 싫은 이유
(5)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라는 신념
(2)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생존의 신념들
(3)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 공의존, 반복강박
(4)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으니, 네가 이해해야 해라는 말의 함정
- 1. (1) 추가 :
(1)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 심심 출판사]
책 내용 중 ACE 항목을 가져왔습니다.
(2) ACE 점수에 따른 건강
리스크 해석 (Nadine Burke Harris 정리 기준)
2. 내 감정은 타인의 감정보다 중요하지 않다.
감정보다 의무가 우선이다.
(1) 벌써 마흔
(2) 충전되지 않는 삶, 회피에서 글쓰기로
(3)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4) 네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야
(5) 내 감정은 그 누구의 감정보다 중요하다
3. 나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다.
(1) 누구나 마음에 유리조각 하나를 품고 산다
(2) 속옷 속에 숨겨진 이야기
(3) 타인을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
(4) 거짓 행복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다짐
4.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진다.
나는 중재자이자 책임자여야 한다.
(1) 어린 시절의 상처가 30%만 영향을 준다고?
(2) 당신이 해결하지 않은 과거는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다시 반복된다
(3) 파랑새를 만난 줄 알았다.
- 안전기지의 환상, 반복된 구원의 시도
(4) 여우를 피해 갔더니 호랑이를 만났다
(5)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내가 잠식되어 갔다
(6) 무기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7) 효도라는 이름으로 나는 나를 잃었다
(8) 우리는 서로의 부모가 되어주었다
(9) 더 이상 나를 구해줄 사람을
기다리지 않겠다
5.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림받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
(1) 어른이 되었어도 일부 미성숙한 사람들
(2) 내가 나라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3) 네가 너라서, 딸이라서 버려진 거야
(4) 이랬다가 저랬다가
(5) 나라는 사람 그대로 수용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
(6)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고,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없을 때
일어나는 일들
(7) 처음으로 나를 위해 경계를 세우다
(8)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리는 사람들이라면
나도 필요 없다
- 추가 :
(1) 엠패스 테스트
(2) HSP 테스트
(3) GHATGPT
심층리처시를 활용한 HSP,
엠패스, 초예민자에 대한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통합 보고서
6.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
내가 못하면 사랑은 끊긴다.
(1) 너를 버릴 수도 있어
(2)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고 싶지 않은
그대를 사랑해야 할 때
(3) 내 냉장고 열어봐 봐
(4)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될까
(5) 내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뿐이다
7.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1) 저 감은 시어서 못 먹을 거야
(2)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3) 누더기를 걸친 마음
(4) 가면 속에 감춘 마음
(5) 더 이상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8. 내가 선택받지 못한 건 내 탓이다.
(1) 상처의 대물림
(2) 양가적인 감정 안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할 때
(3) 아직도 매일 꿈속에서 살아
숨 쉬는 언니에게
(4) 나는 더 이상 내가 나인 것이 아프지 않아
9. 나는 언제든 내 것을 빼앗길 수 있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볼 자격이 없다.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은 이기적이다.
(1) 붉은 손톱
(2) 너를 통해 나를 봤다
(3) 타인의 과제를 타인에게 돌려주는 연습
(4)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이 타인을 돕는 것이다
10. 내 감정을 드러내면 벌을 받고,
내 고통과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1) 영웅의 서사인가, 신의 은총인가
(2) 고통스러웠던 20대
(3) 도망가느라 바빴던 30대
(4) 내 생각과 마음이 가장 중요해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1. 가족은 모두에게 따뜻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1) 가족 신화와 현실 사이
(2) '가족'이라서 참아야 했던 순간들
(3) 이상화된 가족 상(像)이 주는 심리적 함정
(4) 가족의 언어 속에서 탈출하기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1) 원가족과 선택 가족의 차이
(2) 경계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
(3) 배우자의 원가족과의 관계
: ‘우리’와 ‘그들’의 구분
(4) 혈연이 아닌 유대로 맺는 가족의 힘
3. 자녀는 부모가 선택해서 태어난 가족이다
(1) 돌봄은 책임, 효도는 선택
(2) 불효라는 낙인이 만든 죄책감
(3) 부모의 한계와 자녀의 권리
(4) ‘돌봄의 책임’을 바로 세우기
4. 타인의 시선에 갇힌 나를 구하라
(1) 사회적 자아와 진짜 자아
(2) ‘좋은 딸’, ‘좋은 아내’라는 가면
(3) 인정 욕구와 수치심의 굴레
(4) 타인의 지옥을 내 삶에 끌어들이지 않기
타인의 지옥, 나의 지옥 각자가 걸어갈 길
5. 돕고 싶다면 나를 먼저 도와라
(1) 자기 돌봄은 이기심이 아니다
(2) 심리적 경계와 윤리적 선택
(3) 먼저 나를 구해야 남도 구할 수 있다
(4) 가장 먼저 용서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
스스로를 연민하지 말 것
6. 스스로에게 행복과 자유를 허락하라
(1) 자기 연민과 자기 인정의 차이
(2) 행복을 선택할 권리
(3) 용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4) 가장 마지막에 도달하는 회복의 단계,
그 속도는 온전히 나의 것
1. 삶이 어려울수록 글을 써라.
기록은 치유의 시작이며,
내면의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는 방법이다
(1) 감정을 언어화하는 힘
: 글쓰기로 마음의 무게 내려놓기
(2) 하루 10분 글쓰기
: 짧아도 꾸준히, 무엇을 써도 괜찮아
(3) 나만의 안전한 글쓰기 공간 만들기
(4) 쓰기를 통한 내 안의 목소리 발견
(5) 기록이 가져다준 회복의 흔적과 증거 쌓기
2.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찾기
감정적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한
구체적 실천 가이드
문화, 예술, 취미, 레저의 유익
(1)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작은 실천 만들기
(2) 요리가 즐거워
- 만들고, 먹고, 먹이고
(3) 액세서리를 만들면서 발견한
내 안의 욕구
(4) 식물 속에서 발견한 인생
(5) 작은 소모임 또는 혼자 놀기
(6) 세상과 소통을 멈추지 않기
3. 작은 성취라도 내 노력으로 획득할 것
작은 성취를 통해 내면에 영양제 먹이기
(1) 작은 성취로 자기 효능감 회복하기
(2) 성취를 기록하고 스스로 칭찬하기
(3)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연습
(4) 노력의 과정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와 연습
(5)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기
가족을 다시 정의하는 것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사랑의 이름 아래 스스로를 잃어갔던 시간을 넘어,
이제 나를 회복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