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0. (2) 고통스러웠던 20대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나의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10. 내 감정을 드러내면 벌을 받고,
내 고통과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1) 영웅의 서사인가, 신의 은총인가
(2) 고통스러웠던 20대
(3) 도망가느라 바빴던 30대
(4) 내 생각과 마음이 가장 중요해
AI 네 컷 만화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나의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더 이상 고통과 두려움의 자리에 서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오늘을 살기를 나는 내게 매일 아침 선언하듯 이야기한다. 그 다짐은 다시는 과거의 나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감정을 숨기고 몸으로 버티던 시절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아주 깊은 약속이다. 그래서 이제야 알게 되었다. 20대의 나는 내 감정을 드러내면 벌을 받고, 나의 고통을 세상 누구도 끝까지 들어주지 않을 거라고 믿던 아이였다.
20대 초반, 신림동에서 고시 공부를 하던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같이 공부하면 좋을 것 같은데. 집은 내가 지내는 집에서 지내고. 너는 밥 값이랑 독서실 비만 있으면 돼."
친구의 말에 간단하게 짐을 꾸려 서울로 향했다. 서울에 가기 전 친부에게 10장이 넘는 손 편지를 적어 부탁하는 글을 드렸다. 당시 나는 부탁하는 일을 죄처럼 여기던 아이였다. 그래서 손 편지를 건네고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누군가에게 기대면 처벌받는다는 믿음은 어린 시절부터 오래 남아있던 생각 습관이었다. 친부는 손 편지를 보고 어린 시절 부양 의무를 저버린 자신을 탓하는 것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사실 편지의 대부분 내용은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가 주였기 때문에 친부의 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내 마음을 정직하게 꺼내 보였다고 믿었는데, 돌아온 것은 이해가 아니라 분노였다. 이때 '역시 진심을 드러내면 벌을 받는구나.'라는 생각이 더 깊어졌다. 그날 이후 정직하게 마음을 꺼내 보이면, 결국 상대의 분노를 견뎌야 한다는 공식을 더 깊이 믿게 되었다. 지금에 와서야 어떤 사람들은 정말 귀하고 좋은 말들이 오히려 내면의 상처를 건드리는 경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해한다(사랑한다고 말해도, 저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는 걸 친부를 보면서 알게 됐다.). 그땐 정말 억울했다. 우여곡절 끝에 사법고시 공부에 필요한 돈을 지원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고 가벼운 마음으로 서울행을 했다. 어차피 잘 돼서 다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던 게 지금도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생각한다.
고시 공부를 하던 친구는 40만 원 월세인 아주 작은 방에서 생활했다. 작은 장롱과 책상, 허리 높이의 냉장고가 전부인 두 명이 누우면 자리 하나 더 나지 않을 정도의 좁은 방이었다. 그 방에서 3개월 생활을 하면서 친구와 같은 고시식당에서 밥을 먹고, 같은 독서실에 다니고, 같은 공간에서 잠을 잤다. 그러면서 많은 고민과 생각을 나눌 수 있었고, 친구의 고통을 많이 이해할 수 있었다. 좁은 방에 있었지만, 마음은 더 좁았다. 민폐가 되면 친구에게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친구 눈치를 많이 봤다. 그래서 친구가 시키지도 않은 방 청소와 옷장 정리 등을 하면서 친구가 웃는 모습을 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3개월 동안 신림동에서 생활하면서 여전히 기억나는 것이 딱 하나 있다면 친구 방 책상에 있던 단편 소설집이다. 단편 소설들이 모여있는 책이었는데, 책 이름보다 그 안의 단편 소설 하나만 지금도 생각난다.
단편 소설의 제목은 '아름다움이 나를 저주한다.'라는 제목의 단편 소설이다. 정확한 제목이 아닐 수 있다. 내용은 비만인 남자가 살을 빼기 위해 운동과 식이요법을 하면서 생활하면서 겪는 이야기다. 이야기 내용 중 햄버거 집에서 다이어트를 위해 햄버거 안에 든 고기 패티만 먹는 장면이 나온다. 남자는 고기 패티를 씹으면서 자신의 두툼한 뱃살을 내려다본다. 아직까지도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만큼 각인된 이유는 그때 나도 외모 관리에 최선을 다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외모는 그 시절 내 유일한 방패이자 무기였다.
서울에 가기 전날까지도 400m 운동장을 20바퀴 걷기 운동을 하고(파워 워킹이라고 하는 걷기다.), 30분 근력운동(앉았다 일어서기 100회, 팔 굽혀 펴기, 철봉 매달리기 등)을 하고 갈 만큼 외모 관리에 중독된 상태였다. 당시 나는 외모 관리를 열심히 하면서 커리어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 일상은 운동, 독서, 공부, 글쓰기로 가득 채워졌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구들을 만나지 않았다. 만날 수 없었다. 심지어 운동을 하루라도 빠진 날이 있으면 다시 살이 찔까 두려움과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그래서 새벽 2시가 됐어도 운동장으로 운동하러 나갔고, 관절 문제로 운동을 멈추라는 의사 선생님의 강력한 권고도 무시하고 운동을 했다. 그때의 나는 외모를 관리한 것이 아니라 불안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사실 이런 생활을 하게 된 강력한 이유가 있었다.
20살부터 결혼을 전제로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남자친구가 서울에 살았기 때문에 장거리 연애를 했다. 3년이 지난 어느 날(1천 일이 된 날이었다고 기억한다.). 친구가 말했다.
"넌 정말 좋은 여잔데. 설레지 않아. 객관적으로 봐도 넌 정말 괜찮은 여자거든. 근데 나는 여우 같은 여자를 만나고 싶어. 넌 곰탱이 같아서 여자 같지 않아."
이 말을 들은 날이 하필 만난지 천일이 된 날이었다. 이런 말을 자연스럽게 할 정도로 당시 나는 그 친구에게 있어선 어떤 행동과 말을 해도 떠나지 않을 대상으로 각인되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운전하는 친구 옆에 앉아 그 말을 듣던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적하게 뚫린 도로만 바라보며 그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이후 세상에 유일한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친구는 여우 같은 여자와 바람이 났다. 그리고 나를 처참하게 버렸다. 지금도 그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이제 군대도 가야 하고, 해야 할 것도 많거든. 그러니까 너랑 만날 시간이 없어. 그리고 지금 만나는 친구도 만나고 싶고. 이 친구를 만나고 혹시라도 네가 그리워지면 다시 돌아갈게. 기다릴 수 있지?"
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나는 그 친구를 마음에서 완전히 떠나보냈다. 그 관계에서 배운 건 사랑이 아니라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만 선택받는다는 조건이었고, 이후 모든 인간관계의 뼈대가 되었다. 그때 얼마나 울었던지 한 달 내내 눈만 뜨면 울고 다녀서 어느 날 자다 깬 동생이 내게 말했다.
"그만 좀 처 울어. 그런다고 그놈이 돌아올 것 같아? 언니가 선택한 거니까. 언니가 잘못한 거야.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진짜."
주말마다 서울행 KTX에 몸을 싣고, 친구 집에 계시던 치매 할머니와 주말을 보내고 내려오던 생활을 했던 나는 정말 그 친구의 가족이 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곰탱이 같던 나는 여우 같은 누군가에게 가족을 완전히 빼앗겨 버렸다. 이후 완전히 마음을 접자 그 친구가 내게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 모질게 대할수록 그 친구는 나에 대한 감정이 깊어지는지 지난날동안 한 번도 보여주지 않던 깊은 사랑을 보여줬다. 내게 100일 동안 쓰는 편지도 써줬다. 돌아오는 대가라고 100일 편지를 쓰면 생각해 보겠다고 했는데 정말 쓸 줄 몰랐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굳어버린 나는 그가 다가올수록 더 멀어지면서 상처를 줬다. 지금도 후회하는 부분이다. 내가 다른 남자친구를 사귀고 나서야 겨우 그 친구와 완벽한 이별을 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 친구를 아름답게 잘 보내줄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든다. 왜냐하면 그 이후 그 친구가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도 각자의 상처와 불안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는 상처받고 절절히 울었다. 하지만 그땐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친구가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나도 그 친구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정말 여전히 미안하고, 부끄럽게 생각한다.
유일한 가족이라고 생각했던 친구에게서 버려지고 나서야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확신이 굳어졌다. 그리고 내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는 걸 드디어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먼저 시작했다. 학점에 지나치리만큼 목을 맸고, 관절이 나갈 정도로 운동을 했으며, 폭식과 절식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학대했다. 폭식을 한 날엔 토하기까지 하며 폭식에 대한 죄책감을 덜었다. 이때 먹고 토하기를 얼마나 많이 했던지 성대가 상해 이후에는 노래방에도 가지 않게(못하게) 됐다. 운동을 하면서 지나치리만큼 혹독한 식이요법을 하려면 친구들과 만나 케이크 한 스푼도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도 만나지 않았다. 심지어 특정 몸무게를 유지하겠다고 지나치게 굶고, 운동을 하다 기절을 여러 번 했다. 이 덕분에 병원에 가서 뇌출혈 검사까지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폭식과 절식(일주일 씩 물이나 당근만 먹으면서 굶었다.),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던 때 나는 50kg이었고, 통통한 편이었다(사실 배만 좀 통통했다.). 이때 다이어트를 멈췄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날씬한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때 지나친 운동과 절식을 한 덕분에 몸이 완전히 망가졌기 때문이다. 근육이 거의 사라지니 몸무게는 10kg- 20kg 을 널뛰기 하듯 왔다갔다 했다.
심리학에서는 폭식과 절식, 먹고 토하는 일이 정서 조절의 실패와 통제감을 회복하기 위한 왜곡된 방식, 수치심에 대한 자기 처벌의 한 형태로 본다. 그래서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의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새로운 방법을 배우는 일이라는 것도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폭식 후 토하는 행위는 죄책감을 씻어내려는 의식 같았다. 이 정도는 견뎌야 한다는 자기 처벌의 방식이었고, 동시에 그래도 내가 뭔가는 통제하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그렇게 해서라도 아픈 감정을 해소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는지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감정을 말로 표현해 본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슬픔이나 분노를 ‘말’로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감정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몸으로 흘러갔고, 몸을 혹사시키는 방식이 내가 가장 먼저 배운 생존 기술이었다. 말하지 못하는 감정을 몸으로 처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은 복잡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불안과 수치심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날 수 있도록 해 줬다. 나중에서야 음식을 조절하고 몸을 몰아붙이는 일을 통해 사실은 내 감정과 나와의 관계를 통제하려고 애쓰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 나는 돈이 생기면 공부하고, 책 사는데 돈을 사용하다 보니 여가생활을 할 돈도 없었다(부족할 때). 지금 이때 일찌감치 돈에 대해 배웠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생각을 한다. 책은 5권 -10권 살 줄 알았지, 열악한 환경이었던 10만 원 월세 집을 벗어날 생각을 못했다. 월세를 밀리면서도 자격증을 위한 돈을 내고, 책을 사댔던 내가 지금도 부끄럽다. 그때 중요한 건(문제는) 책 자체가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는 착각이었다. 불안한 현실을 견디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했다. 만약 이때 조금 더 나를 살뜰히 보살피는 방법을 이때부터 공부했더라면 그 이후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반복강박'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열등감과 결핍 덩어리였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버려지지 않기 위해선 소위 '멋진 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멋진 여성이 무엇이냐라고 했을 때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멋진 몸매 갖기, 아름다운 피부를 위해 관리하기, 머릿결 관리하기, 옷을 깔끔하고 아름답게 입기 등 온통 외적인 것에 치중했다. 내가 갖춰야 할 것들이라며 적힌 글들이 있는 일기장이 여전히 내 서랍장에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었는데 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때의 나는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고, 그것밖에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없었다. 나는 존재로서 사랑받는다고 믿지 못했다. 오직 성취를 통해서만 사랑을 얻을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게다가 이때 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있던 때였다. 내가 서울행을 과감하게 결정했던 이유도 톱니바퀴가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즈음 아버지는 나를 불러 앉혀 놓고 말했다. 자신의 직장에 있는 한 어머니가 어쩌다 나를 여러 번 보게 됐다고 했다. 그 어머니의 아들은 나보다 6-8살 정도 많았던 것 같은데(기억이 희미하다. 그냥 나보다 한참 어른인 아저씨네.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6살 정도면 동네 오빠 정도지 않나 싶다.), 행정고시에 합격했다고 했고, 결혼을 위해 아파트도 구입해 놨다고 했다. 곧 졸업이 다가오는 데다, 외모까지 최상(내 생각이다.)이었던 때라 친부는 내게 그 집에 시집 가라고 했다. 그 어머니가 나를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한다고. 그 집에 가면 집도 있고, 생활비 걱정도 없고, 아이 하나 잘 낳아 키우면 끝이라고 말이다. 마침 유일한 가족을 잃었고, 가난하고, 제대로 된 부모가 없으며(좋은 집에 시집가려면 양 부모가 있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것이 필수요건이다.), 내세울 만한 성취가 없고, 마침 나를 좋은 집에 팔아먹을 생각만 하던 친부를 보면서 휴학과 서울행을 결심했다. 모든 것이 맞물려 떨어지던 그때 나는 서울에 가서(신림동 고시촌) 사법고시를 공부하겠다며 친부 앞에 10장이 넘는 편지를 놓았다. 그리고 서울로 향했다.
사법고시 하는데 모든 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던 친부는 3개월이 지났을 때 음주 운전 사고를 내셨다. 그 3개월 사이 새어머니는 돈을 자꾸 받아가면 아버지를 독살하겠다는 둥 다양한 협박 전화를 매일 해 오셨다(하루에 받 때까지 적어도 20번씩 전화를 하셨다.). 나는 서울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내내 불안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몸이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심리적으로 그곳에 메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때 철저하게 배웠다. 친부는 음주 사고 이후 집행유예 2년을 받고 집 생활을 다시 시작하셨다. 일(운전을 업으로 하심)을 열심히 하다가도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다시 일하다 음주운전 사고를 내는 일을 반복하셨다. 그래서 친부는 1년 일하고 2년 놀고, 1년 일하고 2년 노는 일을 내가 대학원 생활을 하는 동안까지 반복하셨다. 그럼에도 친부의 이제 다 끝났다며 이제 걱정하지 말라는 호언을 듣고 기대를 놓지 않고 그에게 의존하려고 했다. 나도 참 같은 행동과 생각패턴을 반복했던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된다. 지금 돌이켜보면, 친부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기대했다가 무너지고, 다시 기대하는’ 패턴이 내 20대의 인간관계와 선택에도 그대로 이어져 있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반복강박이라고 부른다. 익숙한 고통일수록 더 안전하게 느껴져, 오히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때 나는 만성 염증이 끊이지 않아 아픈 곳도 많았다. 마음의 병이 신체화되기 시작했을 때 여러 과 병원을 찾아다니며 약을 먹었는데, 선생님들조차 원인을 알 수 없다며 만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약을 주셨다. 식도염(먹고 토하기를 반복했으니 당연한 결과), 만성 위염, 만성 장염, 만성 중이염, 만성 두드러기, 원인을 알 수 없는 음식 알레르기, 만성 천식, 만성을 붙일만한 별의 별 염증성 병들에 잠식됐다. 병원에 다니고 약을 제대로 먹으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만성 이름이 붙은 병들은 30대가 넘어서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약을 먹으면 잠깐 증상은 괜찮아지는 듯했지만, 이내 불이 붙은 듯 다시 활활 타올라 일상을 마비시켰다. 염증은 마음이 몸에 보내는 경고였지만, 그 신호를 읽을 줄 몰랐다.
마음이 늘 공허했던 20대의 나는 하나님께 매달려야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교회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새벽 예배에 다니고, 십일조를 내고, 가난한 이웃을 돕는 등 하나님이 원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면 사랑받지 못할 거라고,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두려움에 떨었다. 이 신앙은 어린 시절 경험했던 조건부 사랑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잘해야 사랑받고, 잘못하면 벌을 받는다.’는 내면의 오래된 공식이 신앙의 언어로 다시 재현된 것이었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상처라도 주면 죄를 지었다는 고통에 잠식되어 염증으로 나타나 몸과 마음이 활활 불탔다.
그동안 나는 20대를 열심을 다해 살아냈던 때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 몸에 벌을 주고, 내 마음에 침묵을 강요하고, 누군가에게 버려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나를 조여대던 시기였다. 신의 은혜를 받기 위해 영웅처럼 버티고, 믿음이 좋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다. 그러나 실제 나는 스스로를 구조할 생각을 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구조받지 못해 물속에서 허우적대던 어린아이에 가까웠다. 서울 생활 3개월 후 더 이상 돈이 없어 서울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짐을 꾸려 다시 동생이 있는 10만 원 월세방으로 돌아왔다. 이후 다시 아르바이트를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하나님께 매달리면서 이 시간들을 버텼다.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을 사랑의 근원이 아니라 심판자로 생각했고, 신앙이 위로가 아니라 나를 더 조이는 도구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게다가 이때 동생이 사람들이 사이비종교라고 말하는 곳에 들어가 끊임없이 나를 전도하려고 했기 때문에 동생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동생은 그곳에 진리가 있다고 진짜로 믿었다.).
이전 글들에 반복해서 말했지만 그 이후엔 대학원 준비를 했고, 그 과정 중에 살인미수 사건 피해자가 됐으며, 수험 생활을 3년 동안 하면서 이 시간을 버텼다. 그리고 대학원에 들어가선 드디어 터져 나온 내면의 염증인 인정 중독에 제대로 걸려 그 시간들을 채웠다. 이 글을 쓰기 위해 20대를 돌아보면서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친구의 책 '아름다움이 나를 저주한다.'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온통 외적인 것에 치중하고, 타인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버려지지 않기 위해선 내 것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이 주를 이뤘던 때, 그리고 그것을 철저하게 부숴줬던 벽돌 퍽치기 살인미수 사건까지. 내 20대는 내면의 염증들이 곳 곳에서 튀어나와 폭발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채워졌다.
누군가에 의해서라고 핑계 대고 싶지만, 사실 모든 것들을 선택한 것은 나였다. 무의식이 사람을 선택하고, 상황을 선택하고, 결론을 이끌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아프고, 속상하고, 우울하다. 그럼에도 오늘의 내가 되어 과거를 바라보면 반드시 지나왔어야 할 길이었다고 생각한다. 방을 나오기 위해선 방문을 열고 나와야 하는 것처럼, 내리는 소나기를 반드시 맞아야 할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내가 선택했던 사람과 상황들은 그 방을 나오기 위해, 지나오기 위한 과정이었다.
살인미수 사건 이후의 나는 내 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몸을 빌려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잠에서 깨면 이미 하루 절반이 지나 있는 날이 많았고, 정신이 돌아오면 언제 누군가의 습격을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늘 초조하고 두려웠다. 그때의 내 세계는 마치 커다란 구멍이 난 배 같았다. 그 시기부터 다시 본격적으로 고통을 ‘말’이 아니라 ‘몸’으로 처리하기 시작했다. 폭식했다가 며칠씩 굶고, 토하고, 밤새 운동하며 몸을 혹사시키는 일상을 반복했다. 몸에 힘을 줘야만 감정이 잠잠해진다고 믿었고, 쓰러질 만큼 달려야만 불안이 가라앉았다. 나를 괴롭히는 감정들을 ‘밖으로’ 꺼내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결국 전부 ‘안으로’ 집어넣고 몸으로 태웠다. 감정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고통을 언어가 아니라 몸으로 해소했다. 방식은 위험했지만 당시엔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생존법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내가 너무 어린아이였기 때문에(자라지 못하고 멈춰있는) 그 아이는 한 번도 안전하게 울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랬던 20대를 보내고 나서 30대를 맞이했을 때도 해결하지 못한 과제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 모든 선택 뒤에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살아남기 위한 전략들’이 있었다. 불완전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로 최선을 다해 버텼다. 그리고 제대로 된 상황과 사람을 만났을 때 폭죽처럼 빵빵 터지며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20대와 30대를 돌아보면서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들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최근에서야 좋았던 기억은 좋았던 기억으로, 나빴던 기억은 나빴던 기억으로 그대로 가지고 있어도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굳이 나쁜 기억을 지우기 의해 좋은 기억을 덮어 씌우려 할 필요 없다고 말이다. 모든 기억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잘라낼 건 잘라내고 오늘을 살면 된다고 생각하며 20대 돌아보기를 마친다. 20대의 나는 너무 오래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던 아이였다는 걸 이제는 안다. 덮어두면 나아지겠지, 괜찮아지겠지라는 건 환상일 뿐이다. 누군가는 이 사실을 조금 더 일찍 깨닫고, 나보다 일찍 자유를 얻길 바란다. 나는 20대에 해결하지 못한 왜곡된 신념을 품은 채 30대로 들어섰다.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더 멀리 도망가고, 더 열심히 버티는 방식으로 말이다.
2부 10. (2) 고통스러웠던 20대
참고 자료
1. Freud, Sigmund, 『The Ego and the Id』, W. W. Norton, 1923
→ 사용된 개념: 반복강박(Repetition Compulsion), 죄책감·수치심 기반 자기 처벌 메커니즘
→ 이론 분야: 정신분석학
3. Fairbairn, W.R.D., 『Psychoanalytic Studies of the Personality』, Routledge, 1952
→ 사용된 개념: 내면화된 비난적 대상(Internalized Bad Object), “진심을 드러내면 벌을 받는다”는 핵심 신념의 형성
→ 이론 분야: 대상관계이론(Object Relations Theory)
3. Bowlby, John, 『Attachment and Loss, Vol.1: Attachment』, Basic Books, 1969
→ 사용된 개념: 조건부 사랑(Conditional Love), 불안정 애착, 버림받을 불안
→ 이론 분야: 애착이론
4. van der Kolk, Bessel, 『The Body Keeps the Score』, Viking, 2014
→ 사용된 개념: 신체화(Somatization), 감정의 신체적 표현, 만성 염증의 심리적 원인
→ 이론 분야: 트라우마 심리학
5. Herman, Judith, 『Trauma and Recovery』, Basic Books, 1992
→ 사용된 개념: 감정 억압과 생존 반응, 도피·해리 기반의 생존 전략
→ 이론 분야: 트라우마·정신의학
6. Linehan, Marsha, 『Cognitive-Behavioral Treatment of 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Guilford Press, 1993
→ 사용된 개념: 정서 조절 실패(Emotion Dysregulation), 폭식·절식·과운동의 감정조절 기능
→ 이론 분야: DBT·정서조절 이론
7. Bruch, Hilde, 『Eating Disorders: Obesity, Anorexia Nervosa, and the Person Within』, Basic Books, 1978, 1979
→ 사용된 개념: 폭식·절식의 통제감 회복 기능, 자존감 기반 섭식 패턴
→ 이론 분야: 섭식장애 심리학
8. Porges, Stephen, 『The Polyvagal Theory』, W.W. Norton, 2011
→ 사용된 개념: 만성 불안·경계 상태에서의 생리적 과각성(Hyperarousal), 운동과 절식을 통한 자율신경계 조절
→ 이론 분야: 자율신경·신체심리학
목차
프롤로그
‘상처’에서 ‘자유’로, ‘의무’에서 ‘선택’으로 나아간 김희경 작가의 신작.
가족이라는 감정적 언어 속에서 길을 잃었던 한 개인이 자아와 회복을 향해 걸어온 심리적 여정.
1.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
혈연이라는 이름이 만든 구조적 폭력
(1) 가족이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을 때
(2) 가장 아름다웠던 날, 가장 잔인한 기억
(3) 생애 첫 기억 속 무가치함의 내면화 시작
(4)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2. 가족이라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한다는 믿음의 해체
(1) 몇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 기억 속에 남은 마지막 장면들
(2) 유일한 내 편이면서, 동시에 나를 파괴한 사람
(3) 누가 나를 구원해 줄까
(4)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손조차 잡을 수 없었다
3. 가족 내에 형성된 내 역할을 점검하라
역할고착(Role entrapment)과
삼각관계(Triangulation)
(1) 역할 고착과 삼각관계, 그리고 세습되는 역할
(2) 아이로 태어나 희생자가 되기까지
(3) 희생양이 된 아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희생양을 자처하다
(4) 희생자 가족 재판에 서다
(5) 반복되는 구조, 멈출 수 있는 용기
-추가 : 가족 속에서 반복되는 심리 구조 6가지
4. 불쌍하지 않은 걸 불쌍하다고 말하지 마라
감정의 무효화(Emotional invalidation)와
2차 피해
(1) 기억 속 어머니의 따뜻한 도시락과
차가운 뒷모습
(2) 감정의 무효화와 2차 피해
: 이중의 상처
(3) 가사노동의 굴레 안에서 사라진 존재들
(4) 반복 강박 속에서 깨달은 진짜 감정
(5) 엄마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챙겨야지
(6) 타인의 불쌍함은 타인의 몫이고,
내 감정을 지키는 건
내 몫이고 나의 책임이다.
5.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에 주의하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통제의 언어
(1)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상처의 유산
(2)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
(3) 왜곡된 사랑과 고통의 반복
(4) 성공을 바란다며 발목을 잡는 사랑
(5) 왜곡된 사랑과 경계의 설정
(6) 자기 사랑의 회복과 치유의 여정
-추가 : 알고 가기
6.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연민은 선택이지만,
용서는 강요가 아니다
(1)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들
(2) 단돈 천원도 못 벌어오는
너는 불필요한 존재야
(3) 나중에 나랑 시골에 집 지어서 같이 살자
(4) 여행이 싫은 이유
(5)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라는 신념
(2)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생존의 신념들
(3)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 공의존, 반복강박
(4)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으니, 네가 이해해야 해라는 말의 함정
- 1. (1) 추가 :
(1)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 심심 출판사]
책 내용 중 ACE 항목을 가져왔습니다.
(2) ACE 점수에 따른 건강
리스크 해석 (Nadine Burke Harris 정리 기준)
2. 내 감정은 타인의 감정보다 중요하지 않다.
감정보다 의무가 우선이다.
(1) 벌써 마흔
(2) 충전되지 않는 삶, 회피에서 글쓰기로
(3)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4) 네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야
(5) 내 감정은 그 누구의 감정보다 중요하다
3. 나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다.
(1) 누구나 마음에 유리조각 하나를 품고 산다
(2) 속옷 속에 숨겨진 이야기
(3) 타인을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
(4) 거짓 행복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다짐
4.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진다.
나는 중재자이자 책임자여야 한다.
(1) 어린 시절의 상처가 30%만 영향을 준다고?
(2) 당신이 해결하지 않은 과거는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다시 반복된다
(3) 파랑새를 만난 줄 알았다.
- 안전기지의 환상, 반복된 구원의 시도
(4) 여우를 피해 갔더니 호랑이를 만났다
(5)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내가 잠식되어 갔다
(6) 무기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7) 효도라는 이름으로 나는 나를 잃었다
(8) 우리는 서로의 부모가 되어주었다
(9) 더 이상 나를 구해줄 사람을
기다리지 않겠다
5.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림받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
(1) 어른이 되었어도 일부 미성숙한 사람들
(2) 내가 나라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3) 네가 너라서, 딸이라서 버려진 거야
(4) 이랬다가 저랬다가
(5) 나라는 사람 그대로 수용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
(6)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고,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없을 때
일어나는 일들
(7) 처음으로 나를 위해 경계를 세우다
(8)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리는 사람들이라면
나도 필요 없다
- 추가 :
(1) 엠패스 테스트
(2) HSP 테스트
(3) GHATGPT
심층리처시를 활용한 HSP,
엠패스, 초예민자에 대한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통합 보고서
6.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
내가 못하면 사랑은 끊긴다.
(1) 너를 버릴 수도 있어
(2)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고 싶지 않은
그대를 사랑해야 할 때
(3) 내 냉장고 열어봐 봐
(4)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될까
(5) 내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뿐이다
7.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1) 저 감은 시어서 못 먹을 거야
(2)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3) 누더기를 걸친 마음
(4) 가면 속에 감춘 마음
(5) 더 이상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8. 내가 선택받지 못한 건 내 탓이다.
(1) 상처의 대물림
(2) 양가적인 감정 안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할 때
(3) 아직도 매일 꿈속에서 살아
숨 쉬는 언니에게
(4) 나는 더 이상 내가 나인 것이 아프지 않아
9. 나는 언제든 내 것을 빼앗길 수 있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볼 자격이 없다.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은 이기적이다.
(1) 붉은 손톱
(2) 너를 통해 나를 봤다
(3) 타인의 과제를 타인에게 돌려주는 연습
(4)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이 타인을 돕는 것이다
10. 내 감정을 드러내면 벌을 받고,
내 고통과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1) 영웅의 서사인가, 신의 은총인가
(2) 고통스러웠던 20대
(3) 도망가느라 바빴던 30대
(4) 내 생각과 마음이 가장 중요해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1. 가족은 모두에게 따뜻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1) 가족 신화와 현실 사이
(2) '가족'이라서 참아야 했던 순간들
(3) 이상화된 가족 상(像)이 주는 심리적 함정
(4) 가족의 언어 속에서 탈출하기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1) 원가족과 선택 가족의 차이
(2) 경계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
(3) 배우자의 원가족과의 관계
: ‘우리’와 ‘그들’의 구분
(4) 혈연이 아닌 유대로 맺는 가족의 힘
3. 자녀는 부모가 선택해서 태어난 가족이다
(1) 돌봄은 책임, 효도는 선택
(2) 불효라는 낙인이 만든 죄책감
(3) 부모의 한계와 자녀의 권리
(4) ‘돌봄의 책임’을 바로 세우기
4. 타인의 시선에 갇힌 나를 구하라
(1) 사회적 자아와 진짜 자아
(2) ‘좋은 딸’, ‘좋은 아내’라는 가면
(3) 인정 욕구와 수치심의 굴레
(4) 타인의 지옥을 내 삶에 끌어들이지 않기
타인의 지옥, 나의 지옥 각자가 걸어갈 길
5. 돕고 싶다면 나를 먼저 도와라
(1) 자기 돌봄은 이기심이 아니다
(2) 심리적 경계와 윤리적 선택
(3) 먼저 나를 구해야 남도 구할 수 있다
(4) 가장 먼저 용서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
스스로를 연민하지 말 것
6. 스스로에게 행복과 자유를 허락하라
(1) 자기 연민과 자기 인정의 차이
(2) 행복을 선택할 권리
(3) 용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4) 가장 마지막에 도달하는 회복의 단계,
그 속도는 온전히 나의 것
1. 삶이 어려울수록 글을 써라.
기록은 치유의 시작이며,
내면의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는 방법이다
(1) 감정을 언어화하는 힘
: 글쓰기로 마음의 무게 내려놓기
(2) 하루 10분 글쓰기
: 짧아도 꾸준히, 무엇을 써도 괜찮아
(3) 나만의 안전한 글쓰기 공간 만들기
(4) 쓰기를 통한 내 안의 목소리 발견
(5) 기록이 가져다준 회복의 흔적과 증거 쌓기
2.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찾기
감정적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한
구체적 실천 가이드
문화, 예술, 취미, 레저의 유익
(1)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작은 실천 만들기
(2) 요리가 즐거워
- 만들고, 먹고, 먹이고
(3) 액세서리를 만들면서 발견한
내 안의 욕구
(4) 식물 속에서 발견한 인생
(5) 작은 소모임 또는 혼자 놀기
(6) 세상과 소통을 멈추지 않기
3. 작은 성취라도 내 노력으로 획득할 것
작은 성취를 통해 내면에 영양제 먹이기
(1) 작은 성취로 자기 효능감 회복하기
(2) 성취를 기록하고 스스로 칭찬하기
(3)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연습
(4) 노력의 과정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와 연습
(5)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기
가족을 다시 정의하는 것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사랑의 이름 아래 스스로를 잃어갔던 시간을 넘어,
이제 나를 회복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