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0. (3) 도망가느라 바빴던 30대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나의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10. 내 감정을 드러내면 벌을 받고,
내 고통과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1) 영웅의 서사인가, 신의 은총인가
(2) 고통스러웠던 20대
(3) 도망가느라 바빴던 30대
(4) 내 생각과 마음이 가장 중요해
AI 네 컷 만화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나의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나를 치유하는 강력한 열쇠는 내 안에 있다.'
30대는 ‘이립(而立)’이라, 자기 생각과 직업, 삶의 방향이 자립하여 제대로 서 있게 되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30대의 나는 불안하고, 우울하고, 끊임없이 쫓아오는 그림자로부터 도망치며 시작됐다. 나로부터, 타인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신으로부터 쫓고 쫓기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넘어졌다. 그러다 다시 일어서고, 걷고, 뛰고, 또 넘어지는 일을 반복했다. 시험을 보고 떨어지고, 다시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돈을 마련하고 걱정하며, 불안과 두려움을 갑옷처럼 입고 정신없는 30대 초반을 걸었다. 그리고 35살(만 나이 33살), 마지막 시험(국가에서 5회로 정함)을 보고 나서야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빛이 완전히 꺼졌다.
2020년 4월 말, 마지막으로 본 시험 발표가 났다. 그 이후 시간이 어떻게 지나왔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다행인 건 이때부터 꾸준히 블로그에 글을 게시하면서 하루들을 남겨두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이 글을 쓰기 어려웠을 거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희망이 손바닥에서 쑥 하고 미끄러져 내려간 날, 더 이상 도망칠 곳도 기댈 곳도, 붙잡을 곳도 없고, 더 이상 핑계조차 댈 수 없었던 날들이 시작됐다.
최근 식기세척기가 고장 나 새로운 식기세척기를 구입했다. 설치 기사님의 전화를 받았는데, 기사님은 대뜸 나를 ‘아주머니’라고 부르셨다. 그 말이 당연하다는 걸 알면서도, 5년 가까이 사회생활을 전혀 하지 않았던 나는(어쩌면 10년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전에는 수험생이었기 때문이다) ‘아주머니’라는 말이 마음에 날아와 꽂히는 기분을 느꼈다.
"저기 아주머니, 내일 아침 일찍 오전에 방문 괜찮으실까요?"
대뜸 날아온, 너무나도 친절한 음성의 기사님은 나를 부르실 때마다 아주머니라고 불러 주셨다. 설치하러 오신 날, 원래 고객을 아주머니라고 부르시냐고 여쭈었더니, 너무 바쁘고 급하게 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서로 하하 호호 웃었다. 그동안 나는 내가 아주머니인 줄 알면서도, 아주머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기사님 덕분에 자각하게 됐으니, 감사했다.
설치 기사님의 친절한 전화들을 받고 나서, 나는 드디어 내가 아주머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래, 내가 아주머니가 됐었지. 약간 입맛이 씁쓸했다. 아가씨였던 때가 언제였더라. 마지막 시험을 보고 발표가 났을 때(2020년 4월 말) 나이는 35살(만 나이 33살)이었다. 12월에 태어났기 때문에 친구들보다 만 나이를 한 살 더 적게 먹어 갔다. 덕분에 취업시장에서도 서른세 살(33살)이라는 나이를 적어낼 수 있었다. 이때만 해도 내가 너무 늙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40살(만 39살)이 되고 보니 그 나이가 얼마나 젊었는지 알게 된다.
시험에 떨어졌다고 일주일 내내 원룸 방의 불을 꺼 놓고 벽을 보고 울었다. 그때 얼마나 많이 울었던지, 지금은 눈물조차 나지 않을 정도다. 그래도 원룸 월세가 필요했고, 한국장학재단 원금과 이자가 필요했던 나는 움직여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혹시라도 기댈 곳이 없는지라는 생각을 조금이나마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기대는 언제나 무너지는 것이라고 했던가. 내가 기댈 곳보다, 오히려 내게 기대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절연을 선언했다가 다시 이어진 구 가족들의 행사와 요구를 챙기기 시작했고, 사과조차 하지 않던(사과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셨던) 시부모님과는 완전히 차단되었지만 그들의 행사는 살뜰하게 챙겼다. 나는 이때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던 사이, 35년 만에 없었던 외가가 나타났다. 시험 발표를 두 달 정도 남겨둔 때였다. 진작 나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고 하는 그들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세 살 무렵에 끊어졌던 외가와의 인연이 내게 다시 생기다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동생이 다니는 종교에서 나를 위해 준비한 새로운 이벤트는 아닌지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새롭게 생긴 이모와 외삼촌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다. 그러나 사진 한 장도 가지고 있지 않아, 엄마 얼굴을 찾는 일은 외가 식구를 만나서도 불가능했다. 그리고 이모는 선뜻 내 월세를 내주셨다. 실제로는 여행을 가라며 200만 원을 던지듯 주셨는데(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주셨다), 그 돈을 10개월 동안 지낼 월세로 사용했다. 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하는 건, 그 돈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는 점이다.
그 이후 코로나가 나라를 완전히 뒤덮으면서, 이모와 외숙모가 함께하던 사업은 완전히 망가졌다. 통화를 하면 이모는 서럽게 우셨고, 외삼촌은 외숙모와 이혼을 하시면서 완전히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상황이 되었다. 직전까지만 해도 이모는 이제 더 이상 돈이든 뭐든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후에는 오히려 내가 이모에게 받았던 200만 원을 토해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 이모는 새로운 사업을 하신다며, 간접적으로 내가 도울 수 있는지를 물으셨다(“아는 언니 아들, 딸들이 나를 도와주고 있거든.”이라는 말로 시작했다. 그리고 궁궐 같은 외삼촌 집에 가서 살아라고 하든지.). 무엇을 하자고 할 때마다 거절하는 나 때문에 이모와의 사이는 틀어졌고, 이모는 그런 내게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느냐고 했다. 사실 나는 남의 말을 잘 안 듣는 편이긴 하다.
10개월 동안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지금 나이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가만히 있기에는 통장의 잔고가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도 찾아보고(내 나이와 코로나 덕분에 완전히 막혔다), 취업할 수 있는 곳과 내가 할 수 있는 공부가 무엇인지 생각했다. 그러다 정부에서 6개월 동안 매달 50만 원을 지원하는 취업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또 6개월의 숨통이 트였다. 그 사이 취업 문을 두드리며 3차(최종 면접)까지 여러 번 갔다. 서울에 있는 기업들에 지원하며 서울행을 여러 번 반복했고, 그 과정에서 현재 취업 문이 얼마나 단단히 막혀 있는지를 피부로 느꼈다.
컴퓨터 학원에 다니고, 면접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여러 시험을 알아보며 1년 반을 보냈다. 최종이라고 생각했던 3차 면접에서 연이어 어그러지자, 나는 더 이상 취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침 남자친구(지금의 남편)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면서, 이제 하고 싶은 공부를 하라며 내게 기댈 곳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법무사 시험을 공부하겠다며 방법을 찾고, 책을 구입하고,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공부를 어영부영 이어가며 어느새 4년이 채워졌다.
너무나도 젊은 나이이면서도, 사회에서는 결혼을 해야 하고 아이를 낳아야 할 마지막 시기라고 말하는 서른셋, 서른다섯의 여성은 취업시장에서 그리 호락호락한 나이가 아니다. 기업 입장에서도 언제 아이를 낳겠다며 그만둘지 모르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스스로 사업을 하거나, 전문가라고 부를 만한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는 이상(이때 남편은 수능을 다시 보는 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도 모를 나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걸 할 수 있지만, 모든 걸 할 수는 없는 나이가 된 것이다. 결혼 시장이든 취업시장이든 문은 천천히, 혹은 완전히 닫혀 간다. 이 나이에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한다는 건,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불안함을 안긴다.
시험에 떨어지고, 문을 두드리는 곳마다 3차 면접에서 떨어지면서(차라리 1차에서 떨어뜨려 주시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살던 때,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때 얼마나 두렵고 고통스러웠던지,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을 하고 또 했다(지금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때 이모가 내게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그 누구도 “너는 안 와도 된다.”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오지 않을까 봐 올 때까지 전화를 해 대던 사촌 동생, 그리고 이제 막 신뢰와 애정을 쌓기 시작한 구 가족들의 성화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남편(당시 남자친구)과 손을 잡고 장례식장에 갔다. 그때 나는 얼마나 불안하고, 불쾌하고, 화가 나고, 두려웠는지 출발 전 포스트잇에 “괜찮아. 괜찮아. 내가 널 지켜줄게. 괜찮아.”라는 글귀를 적어 놓고, 눈과 마음으로 반복해서 읽었다.
장례식장에 도착한 후, 내 감정이 어떤지 그 누구도 묻지 않은 채 무시하는 가족들을 보며, 냉해진 가슴이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 들어선 내게 화장을 닦으라며 화장지를 건네는 친척 어른, 검은 옷이 그것뿐이냐고 말하는 또 다른 친척, 장례식장에 며칠이나 밤을 새울 거냐며 친절히 검은 한복을 가져다준(자기는 입지 않은) 또 다른 친척 어른들 사이에서, 내 가슴은 무너져 내렸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너만 입을 다물면 된다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한참 동안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할아버지의 착한 손녀 역할을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받으며, 장례식장에서 물기가 말라 탱탱함이 사라져 가는 방울토마토만 연신 씹어댔다. 심지어 방울토마토를 계속 먹는 것이 아까웠는지, 눈치를 주는 친척 어른까지 있었다.
장례식장은 어린 시절 내가 자라온 그 분위기와 환경이 그대로 재현된 자리였다. 몸과 마음은 다 자랐지만, ‘너 따위가 뭐.’라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느껴졌고, 환대하는 것 같지만 ‘네 마음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공기가 흘러갔다. 나는 이때 얼마나 화가 났던지, 내 앞에 앉아 있던 친척 어른에게 “다 죽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날, 10년 동안 연락을 끊었던 동생과 다시 마주했다. 시간이 쌓아 올린 벽이 얼마나 높던지,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반가우면서도 동시에 불안했다. 동생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있었지만, 우리 사이에서 벌어졌던 숱한 일들이 동생의 얼굴 앞에 펼쳐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반갑지만 반갑지 않고, 사랑하지만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상대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일은, 겪어 본 사람만이 아는 감정이다.
며칠을 장례식장에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압박과 말을 무시하고, 나는 한 시간 정도 장례식장에 있다가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 뒤 동생은 장례식 전 과정을 촬영한 영상을 아주 친절하게 만들어 내게 보내왔다. 친부에게 전달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였다. 친부는 이때 알코올 중독이 최상인 상태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친부를 부르지 않았고, 장례 소식도 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게 영상을 전달해 달라는 부탁은, 사실상 모든 책임을 떠맡으라는 말과 같았다. 나중에 상속 문제로(상속 포기) 친부에게 연락이 가면서, 할아버지의 장례 소식을 알게 된 친부는 내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나는 아버지에게 진작 죽었어야 할 사람이 너무 늦게 갔다며,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라고 하고 전화를 꺼 두었다.
시험 실패, 외가 식구와의 만남과 사업 실패, 대학원 학자금 이자와 원금, 다시 시작된 가족들의 역할 놀이, 친부의 알코올 중독까지, 다양한 일들이 한꺼번에 삶 위로 쏟아졌다. 심지어 시골에 계신 아버지는 위로랍시고, 할아버지가 지내던 요양원이 감옥 같았다는 말을 했다. 하루를 살고 다음 날이 되면 또 다른 일이 생겨났고, 그때의 나는 하루라도 빨리 시간이 다 지나 할머니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가슴이 찢어져 울고, 누군가 쥐어 주는 역할에 몰입하며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들에까지 심취했다. 시부모님과의 사이가 이미 완전히 틀어졌음에도, 그들의 행사를 살뜰히 챙기는 나를 보며 나는 그래도 내가 착하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착하다기보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주어지면 무엇이든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무렵, 사랑하던 친구를 스스로 마음에서 떠나보냈다. 잠깐 시간을 갖자고 했던 선택이 어느새 3년이 넘었고, 이 관계를 다시 잇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에게 건강하고 아름다운 인연이, 내가 차지했던 자리를 대신 채워 주기를 간절히 기도하며 보내주기로 했다.
지난 4~5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돌아보며, 그때도 시간이 흘러가긴 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 오늘, 아주머니가 된 나를 다시 바라본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살아갈 수 있어서 다행이야. 라며, 오늘 아침 드디어 30대를 정리하고 있다. 나의 30대는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부채와 이자를 정리하며 보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사실 오늘 40살(만 39살)이 되었는데도 시간이 잘 느껴지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내게 아주머니라고 불러 주면서 깨닫게 된 아줌마 꽃이랄까. 내가 아주머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이제야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아가씨 시절에도 공부하고 학업을 마치느라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같은 생활을 내내 했기 때문에, 학생, 학생, 학생을 푹 건너뛰고 아주머니가 된 느낌이다. 그래도 그 시간들 속에서 나와 만나고 살아남았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오늘 내 가정이 있고 사랑이 많은 남편을 만났다는 사실을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내 감정을 드러내면 벌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내 고통과 말을 누구도 믿어주지 않더라도 이제는 더 이상 상관없다. 왜냐하면 내가 나의 가족이자 친구이며, 내가 내 편이기 때문이다.
지난 시간들을 지나오고 나니, 어떤 문제들은 덮어두고 도망가기만 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 나중에 더 큰 이자를 반드시 물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이제 나는 더 이상 내 문제에서 도망가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덮어버리려 하지 않고,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와 넉넉함이 생겼다. 그래서 이제 살아가면서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다만, 나쁜 일은 더 이상 생겨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과거를 정리하며 다시 세워 가는 내 인생, 그리고 내 회복의 열쇠를 나는 더 이상 상대방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상대가 내게 용서를 빌든,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이제 상관없다. 오늘의 내가 내 감정과 과거를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할 것인지는 온전히 내 몫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삶에서 강요와 협박으로 이어 가는 관계를 선택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한다. 내 글을 읽는 누군가는 나와 비슷하거나, 어쩌면 나보다 더한 환경과 고통 속에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그분에게 꼭 말해 주고 싶다. 이제는 당신을 행복하고, 아름답게 느끼게 하고,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관계들만 삶에 들여도 된다고. 그리고 그래도 된다고.
당신을 아프게 한다면 천년의 인연도 버려야 할 판에, 구 가족으로 엮여 있다고 해서 그 관계가 당신의 마음과 몸을 파괴한다면 굳이 이어 붙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주고 싶다. 당신만의 길을, 당신은 조금 더 빨리 열어 가도 된다고. 그리고 우연히 그 길을 여는 발판 중 하나가 내 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더없이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뒤늦게 알게 된 건, 내가 도망치고 있었던 건 삶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던 감정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도망치지 않기로 한 순간부터, 내 삶은 비로소 내 것이 되어 흘러가기 시작했다.
2부 10. (3) 도망가느라 바빴던 30대
참고 자료
목차
프롤로그
‘상처’에서 ‘자유’로, ‘의무’에서 ‘선택’으로 나아간 김희경 작가의 신작.
가족이라는 감정적 언어 속에서 길을 잃었던 한 개인이 자아와 회복을 향해 걸어온 심리적 여정.
1.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
혈연이라는 이름이 만든 구조적 폭력
(1) 가족이라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을 때
(2) 가장 아름다웠던 날, 가장 잔인한 기억
(3) 생애 첫 기억 속 무가치함의 내면화 시작
(4) 침묵하지 않는다는 것
2. 가족이라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가족이라는 이유로 참아야 한다는 믿음의 해체
(1) 몇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
- 기억 속에 남은 마지막 장면들
(2) 유일한 내 편이면서, 동시에 나를 파괴한 사람
(3) 누가 나를 구원해 줄까
(4)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손조차 잡을 수 없었다
3. 가족 내에 형성된 내 역할을 점검하라
역할고착(Role entrapment)과
삼각관계(Triangulation)
(1) 역할 고착과 삼각관계, 그리고 세습되는 역할
(2) 아이로 태어나 희생자가 되기까지
(3) 희생양이 된 아이, 성인이
되어서까지 희생양을 자처하다
(4) 희생자 가족 재판에 서다
(5) 반복되는 구조, 멈출 수 있는 용기
-추가 : 가족 속에서 반복되는 심리 구조 6가지
4. 불쌍하지 않은 걸 불쌍하다고 말하지 마라
감정의 무효화(Emotional invalidation)와
2차 피해
(1) 기억 속 어머니의 따뜻한 도시락과
차가운 뒷모습
(2) 감정의 무효화와 2차 피해
: 이중의 상처
(3) 가사노동의 굴레 안에서 사라진 존재들
(4) 반복 강박 속에서 깨달은 진짜 감정
(5) 엄마가 너무 불쌍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챙겨야지
(6) 타인의 불쌍함은 타인의 몫이고,
내 감정을 지키는 건
내 몫이고 나의 책임이다.
5.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에 주의하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통제의 언어
(1)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상처의 유산
(2) 사랑이라는 말의 함정
(3) 왜곡된 사랑과 고통의 반복
(4) 성공을 바란다며 발목을 잡는 사랑
(5) 왜곡된 사랑과 경계의 설정
(6) 자기 사랑의 회복과 치유의 여정
-추가 : 알고 가기
6.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연민은 선택이지만,
용서는 강요가 아니다
(1) 아이가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부모들
(2) 단돈 천원도 못 벌어오는
너는 불필요한 존재야
(3) 나중에 나랑 시골에 집 지어서 같이 살자
(4) 여행이 싫은 이유
(5) 용서하지 않아도 괜찮아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1)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라는 신념
(2)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가 만들어낸 생존의 신념들
(3) 나는 사랑받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 - 공의존, 반복강박
(4)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으니, 네가 이해해야 해라는 말의 함정
- 1. (1) 추가 :
(1) [불행은 어떻게 질병으로 이어지는가
/ 네이딘 버크 해리스 지음
/ 심심 출판사]
책 내용 중 ACE 항목을 가져왔습니다.
(2) ACE 점수에 따른 건강
리스크 해석 (Nadine Burke Harris 정리 기준)
2. 내 감정은 타인의 감정보다 중요하지 않다.
감정보다 의무가 우선이다.
(1) 벌써 마흔
(2) 충전되지 않는 삶, 회피에서 글쓰기로
(3)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4) 네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야
(5) 내 감정은 그 누구의 감정보다 중요하다
3. 나는 무언가 부족한 사람이다.
(1) 누구나 마음에 유리조각 하나를 품고 산다
(2) 속옷 속에 숨겨진 이야기
(3) 타인을 완벽하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
(4) 거짓 행복에 매달리지 않겠다는 다짐
4. 내가 무너지면 모두가 무너진다.
나는 중재자이자 책임자여야 한다.
(1) 어린 시절의 상처가 30%만 영향을 준다고?
(2) 당신이 해결하지 않은 과거는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다시 반복된다
(3) 파랑새를 만난 줄 알았다.
- 안전기지의 환상, 반복된 구원의 시도
(4) 여우를 피해 갔더니 호랑이를 만났다
(5)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내가 잠식되어 갔다
(6) 무기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7) 효도라는 이름으로 나는 나를 잃었다
(8) 우리는 서로의 부모가 되어주었다
(9) 더 이상 나를 구해줄 사람을
기다리지 않겠다
5.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림받는다.
있는 그대로의 나는 사랑받을 수 없다.
(1) 어른이 되었어도 일부 미성숙한 사람들
(2) 내가 나라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게 되기까지
(3) 네가 너라서, 딸이라서 버려진 거야
(4) 이랬다가 저랬다가
(5) 나라는 사람 그대로 수용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믿음
(6)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고,
지켜야 한다는 인식이 없을 때
일어나는 일들
(7) 처음으로 나를 위해 경계를 세우다
(8) 진짜 나를 보여주면 버리는 사람들이라면
나도 필요 없다
- 추가 :
(1) 엠패스 테스트
(2) HSP 테스트
(3) GHATGPT
심층리처시를 활용한 HSP,
엠패스, 초예민자에 대한
심리학적, 정신분석학적 통합 보고서
6.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된다.
내가 못하면 사랑은 끊긴다.
(1) 너를 버릴 수도 있어
(2)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하고 싶지 않은
그대를 사랑해야 할 때
(3) 내 냉장고 열어봐 봐
(4) 내가 잘해야만 관계가 유지될까
(5) 내 마음을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나뿐이다
7.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1) 저 감은 시어서 못 먹을 거야
(2)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다
(3) 누더기를 걸친 마음
(4) 가면 속에 감춘 마음
(5) 더 이상 견디지 않아도 괜찮아
8. 내가 선택받지 못한 건 내 탓이다.
(1) 상처의 대물림
(2) 양가적인 감정 안에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할 때
(3) 아직도 매일 꿈속에서 살아
숨 쉬는 언니에게
(4) 나는 더 이상 내가 나인 것이 아프지 않아
9. 나는 언제든 내 것을 빼앗길 수 있고,
내 마음과 몸을 돌볼 자격이 없다.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은 이기적이다.
(1) 붉은 손톱
(2) 너를 통해 나를 봤다
(3) 타인의 과제를 타인에게 돌려주는 연습
(4) 나를 먼저 챙기는 것이 타인을 돕는 것이다
10. 내 감정을 드러내면 벌을 받고,
내 고통과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1) 영웅의 서사인가, 신의 은총인가
(2) 고통스러웠던 20대
(3) 도망가느라 바빴던 30대
(4) 내 생각과 마음이 가장 중요해
가족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전제를 받아들이기까지의 시간
1. 가족은 모두에게 따뜻한 단어가 아닐 수 있다
(1) 가족 신화와 현실 사이
(2) '가족'이라서 참아야 했던 순간들
(3) 이상화된 가족 상(像)이 주는 심리적 함정
(4) 가족의 언어 속에서 탈출하기
2. 구 가족과 신 가족을 구분하라
(1) 원가족과 선택 가족의 차이
(2) 경계를 세운다는 것의 의미
(3) 배우자의 원가족과의 관계
: ‘우리’와 ‘그들’의 구분
(4) 혈연이 아닌 유대로 맺는 가족의 힘
3. 자녀는 부모가 선택해서 태어난 가족이다
(1) 돌봄은 책임, 효도는 선택
(2) 불효라는 낙인이 만든 죄책감
(3) 부모의 한계와 자녀의 권리
(4) ‘돌봄의 책임’을 바로 세우기
4. 타인의 시선에 갇힌 나를 구하라
(1) 사회적 자아와 진짜 자아
(2) ‘좋은 딸’, ‘좋은 아내’라는 가면
(3) 인정 욕구와 수치심의 굴레
(4) 타인의 지옥을 내 삶에 끌어들이지 않기
타인의 지옥, 나의 지옥 각자가 걸어갈 길
5. 돕고 싶다면 나를 먼저 도와라
(1) 자기 돌봄은 이기심이 아니다
(2) 심리적 경계와 윤리적 선택
(3) 먼저 나를 구해야 남도 구할 수 있다
(4) 가장 먼저 용서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
스스로를 연민하지 말 것
6. 스스로에게 행복과 자유를 허락하라
(1) 자기 연민과 자기 인정의 차이
(2) 행복을 선택할 권리
(3) 용서는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4) 가장 마지막에 도달하는 회복의 단계,
그 속도는 온전히 나의 것
1. 삶이 어려울수록 글을 써라.
기록은 치유의 시작이며,
내면의 감정을 안전하게 꺼내는 방법이다
(1) 감정을 언어화하는 힘
: 글쓰기로 마음의 무게 내려놓기
(2) 하루 10분 글쓰기
: 짧아도 꾸준히, 무엇을 써도 괜찮아
(3) 나만의 안전한 글쓰기 공간 만들기
(4) 쓰기를 통한 내 안의 목소리 발견
(5) 기록이 가져다준 회복의 흔적과 증거 쌓기
2.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 찾기
감정적 회복탄력성을 기르기 위한
구체적 실천 가이드
문화, 예술, 취미, 레저의 유익
(1)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작은 실천 만들기
(2) 요리가 즐거워
- 만들고, 먹고, 먹이고
(3) 액세서리를 만들면서 발견한
내 안의 욕구
(4) 식물 속에서 발견한 인생
(5) 작은 소모임 또는 혼자 놀기
(6) 세상과 소통을 멈추지 않기
3. 작은 성취라도 내 노력으로 획득할 것
작은 성취를 통해 내면에 영양제 먹이기
(1) 작은 성취로 자기 효능감 회복하기
(2) 성취를 기록하고 스스로 칭찬하기
(3)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연습
(4) 노력의 과정 자체를 존중하는 태도와 연습
(5)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는 방법을 배우기
가족을 다시 정의하는 것에서 치유가 시작된다.
사랑의 이름 아래 스스로를 잃어갔던 시간을 넘어,
이제 나를 회복하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