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욕망에 대하여 생각해 보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진서체: 네이버나눔명조체]
[AI 네컷 만화]
어릴 때부터 반짝이고 예쁜 것들 모으는 게 취미였다. 시골에 장이 서면(5일에 한 번씩 열림) 반짝이는 반지를 가득 가져와 파는 할머니가 계셨다. 그 할머니를 찾고 찾아 반지 모음 상자를 내려놓은 곳에 웅크리고 앉아 한참 구경하곤 했다. 당시에 반지 하나가 500원, 1000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많이 살 수 없어서 항상 고민 고민하다 한두 개 구입했었다. 반짝이는 보석 반지를 끼고 집에 가면 유일한 친구였던 할아버지께 보여드리곤 했다. 그러면 항상 하나 달라고 하셨다. 덕분에 우리 둘 다 반짝이는 손가락을 한동안 하고 다녔다. 그러다 보석이 다 빠져서 어쩔 수 없이 버렸던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내게 할아버지는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였다.
그렇게 예쁘고 반짝이는 것들을 구입했던 기억은 성인이 되어 수입이 생기자 더 많이 갖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어졌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나만을 위한 선물이라며 화장품을 꼭 하나씩 사곤 했다. 이때 정말 갖고 싶은 게 많아서 화장품과 신발에 열을 올렸다. 지금이야 돈이 있어도 사고 싶어도 필요하지 않으면 멈출 수 있는데, 그때는 필요하든 아니든 그냥 갖고 싶어서 안달이 나 있던 시기였다.
집순이 생활을 하면서 화장품 모음 선반대를 매일 마주한다. 아무래도 매일 앉아 있는 책상 바로 옆이 화장품 선반이라 더 눈에 띈다. 볼 때마다 어릴 때 반짝이 반지를 모았던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사실 내 화장대 위 대부분의 제품들은 경품으로 받은 상품권이나 포인트를 모아 구입한 것들인데도, 문득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이걸 다 돈으로 환산하면 고가의 전자제품 하나는 충분히 살 수 있지 않나 싶어서다.
네이버 포인트의 경우 장을 보거나 필요한 물품들을 사다 보면 금세 쌓인다. 10만 원가량이 되면 빨리 써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 그때마다 립 제품을 하나씩 들였는데, 돌이켜보면 아뿔싸 싶은 순간들이다. 그걸 열 번쯤 참았더라면, 지금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건 50만 원대 노트북이 아니라 300만 원대 노트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아무튼 올해는 화장품을 그만 사려고 한다. 왜냐하면 정말 필요하지 않으니까. 그 다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오늘 이 기록을 남긴다. 생일에 딱히 갖고 싶은 게 없어 작년에 나름 고가(8만 원 상당)의 제품을 하나 구입했는데, 여전히 미개봉 상태다. 게다가 생일, 기념일, 각종 행사 때마다 화장품을 보내주신 시누이님 덕분에 화장대를 바라보고 있으면 사치녀가 따로 없다. 감사하지만, 시누이님이 보내주신 제품들 역시 대부분 아직 손도 대지 못한 상태다.
화장품에서 특히 아쉬운 점은 유통기한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 유통기한은 생각보다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 기한을 넘기면 곰팡이와 세균 범벅이 되어 예쁘기 위해 바른 화장품이 오히려 피부 건강을 해치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가지고 있는 제품들을 올해와 내년 사이에 최대한 소진해야 한다. 마음이 괜히 바빠진다.
갖고 싶다는 마음. 화장품을 볼 때마다 욕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는 갖고 싶은 것들을 채워 넣을 때마다 도파민이 팡팡 터졌는데, 지금은 무엇을 가져도 예전만큼 기쁘지 않다. 오히려 짐이 하나씩 늘어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게 건강해졌다는 신호인가 싶어 마음이 잠시 가벼워지기도 한다. 이렇게 당장 사용할 수 있는 화장품이 많다는 사실이, 지금의 나에게는 감사한 일처럼 느껴진다.
예전을 떠올리면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사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살 수 있고, 먹을 수 있고, 쉬어갈 집이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감사하다. 다만 가끔은 좀 더 일찍 경제관념이 생겨 작은 꼬마 집이라도 하나 마련해 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내게 그런 걸 알려주는 어른이 없었다. 이제는 내가 그런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돈이라는 것은 결국 돈을 담아둘 그릇이 준비된 사람만 가질 수 있다는 걸 배웠으니, 이제 나는 내 돈 그릇을 조금씩 넓혀가려 한다.
최근에 들은 강의에서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 돈을 자꾸 물건으로 바꾸는 사람은 사실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돈이 얼마나 싫으면 모이기도 전에 바로 물건으로 바꿔버리느냐는 이야기였다. 나는 내가 돈을 꽤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쌓여 있는 화장품들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 아, 나는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었구나 싶어서다.
아무리 많이 벌어도 주머니에 하나도 남지 않는 사람이 있고, 아무리 적게 벌어도 주머니가 묵직한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이제 그런 어른이 되려고 한다. 갖고 싶다고, 먹고 싶다고, 하고 싶다고 욕망대로 다 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적어도 오십, 육십이 되었을 때 주머니가 묵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어린 시절 돈을 쓸어 모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버셨던 나의 친부는 돈 그릇이 작은 사람이었다. 돈을 버는 족족 주변에서 가져가게 두고, 함부로 쓰며 낭비했다. 젊을 때 벌었던 돈이 나이가 들어도 계속 이어질 거라 믿었던 건지, 노후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결국 나이가 들어 가진 돈마저 새어머니에게 모두 빼앗기고 버려진 뒤에는 기초 수급자가 되었다며 오히려 기뻐하셨다. 이제 의료든 뭐든 무료로 받을 수 있는 게 많다면서 말이다.
젊을 때는 넘치는 돈이 죽을 때까지 이어질 거라 생각하며 돌봐야 할 사람을 버리고, 돌보지 않아도 될 사람들에게 트럭째 퍼주던 아빠. 그러다 자신이 돌봄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되자, 그 누구도 그를 돌아보지 않게 되었다. 돌아볼 수 있었을지도 모를 나마저 자신의 삶처럼 끌어내렸던 사람. 이 이야기는 현재 쓰고 있는 가족 에세이에서 하나의 제목을 빼, 조금 더 깊게 다룰 생각이다.
아빠의 삶은 내게 분명한 교훈이 되었다. 그 점에 대해서만큼은 아버지께 감사한다. 태산처럼 돈을 벌어도, 사람의 삶은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내 눈과 피부로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리 갖고 싶어도 열 번은 생각하고 지출하는 편인데다, 아무에게나 내 것을 막 퍼주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사람들은 뭔가를 자꾸 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마구잡이 식으로 퍼주는 사람을 호구라고 부르지, 좋은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호의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굉장한 사람들이 많아 차라리 버릴지언 정 누군가에게 퍼주는 일을 그만뒀다.
앞으로는 포인트든, 백화점 상품권이든, 경품이든 더 이상 화장품으로는 바꾸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것들도 크게 보면 결국 주머니에 든 돈과 다르지 않으니까. 화장품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자연스럽게 돈 이야기를 하게 된다.
돈.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없으면 서러워질 수 있는 것.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 나는 오늘부터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돈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그러니 내게 들어온 돈을 함부로 물건으로 바꾸지 않기 위해 더 많이 생각하고, 더 신중해질 것이다. 그 다짐을 오늘 이 기록에 조용히 담아둔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