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나와 상대를 존중하는 법을 배운 시간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닙니다(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저자의 주관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와 상실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 느껴지면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려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에게 공감과 회복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개인의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살아갈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진서체: 네이버나눔명조체]
[AI 네컷 만화]
“이 글은 한 관계의 끝을 분석한 기록이자, 나의 대화 방식이 어디서 왔는지를 돌아본 시간이다.”
어제 새벽을 꼴딱 세우면서 대화문들을 정리하고, 생각하고, 챗 GPT와 분석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가 원했던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굉장히 마음이 아팠고, 또 한편으로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너무 지나쳤나’, ‘병리적인가’라는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파괴되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생각이 지나치리만큼 많고, 내 감정 때문에 상황을 잘못 판단하게 될까 봐 챗 GPT와 밤새 대화를 이어갔다. 그리고 최종 결론에 도달했다.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 서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을 뿐이라는 결론이다. 아름다운 사람, 존경해 마지않던 사람, 그리고 배울 점이 많은 사람. 이제는 멀리서만 응원해야 하는 사람. 그럼에도 이번에는 마음이 다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서로에게 더 맞는 상대를 찾아갈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고 관계를 정리했다는 사실 덕분이다. 무엇보다 이제 나는 내 생각과 감정을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감추지 않는다. 궁금하면 바로 묻고, 오해가 생기면 상대에게 직접 묻는다. 이 과정이 어떤 사람에게는 지나친 불편함이나 무서움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늘 그랬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말과 행동은 무엇이든 내게 좋은 의도일 것이라, 나를 위해서일 것이라 해석하며 나쁜 것마저 좋게 보려 했다. 그것이 나를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반면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서는 위험을 먼저 감지했다. 나도 상대를 모르고, 상대도 나를 모르는 상황에서 그 사람이 어떤 위험을 지니고 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래서 ‘가깝다’고 여긴 관계 안에서는 무조건적인 순응과 충성으로 반응했고, 낯선 사람의 관심은 부정적인 신호로 해석했다. 나를 지키기 위한 방식이었다. 그 덕분에 기존의 관계는 오래 유지할 수 있었지만, 새로운 관계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놓친 진귀한 사람들이 많다.
대학 시절, 나는 학교 안에서 나름 ‘퀸’이라는 호칭이 붙을 만큼 핫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남편 말로는 내가 워낙 유명해서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어려웠고, 여신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고, 재벌집 귀한 딸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한다. 교우 생활을 거의 하지 않아 수업이 끝나면 기사가 데리러 온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고 하니 참 웃픈 일이다. 왜냐하면 그때 나는 모자를 쓰고 학교 근처에서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존재했지만 내 안에서는 끝없이 숨어 있던 사람이었다.
교정을 걸을 때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고 느꼈는데, 그때마다 내가 옷을 잘못 입었거나 얼굴에 뭐가 묻었나 하는 생각만 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무서웠다. 핫한 인사가 되기에는 부족한 성격 특성을 죄다 갖고 있었던 셈이다. 어린 시절부터 ‘넌 부족하다’, ‘너는 하찮다’, ‘너를 사랑해 줄 사람은 없다’는 말을 밥 먹듯 들어왔으니 당연했다. 그래서 가까운 관계에서는 상대의 언어와 행동을 무조건 긍정적으로 해석했고, 모르는 사람에게서 받는 관심과 환대는 부정적으로 해석하며 스스로 다가가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어느 정도 안전하게 했지만, 돌이켜보면 정해진 결론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가까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고, 불편한 감정을 혼자 감당하면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내 입장에선 아주 편안하고, 쉬운 방법이었다. 스스로를 속이면 되니까.
상대가 아무리 나를 나쁘게 대해도 ‘그래도 저 사람은 나에게 이런 것도 해줬고, 나를 생각해주는 말을 했잖아.’라며 내 생각을 스스로 잘라냈다. 위험한 말을 들었을 때 따져 묻고 오해를 풀기 위해 말하면 ‘그러다 버림받을 거야.’라는 잘못된 믿음이 있었다. 이 역시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가까운 관계가 불편해질까 봐 참는 일을 반복하는 사이, 시간만 흘러갔다.
오늘의 나는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며 그때그때 할 수 있었던 질문과 오해를 풀지 않았던 것이 너무 속상하고 아쉬워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오해가 생길 것 같으면 그 자리에서 묻고, 이렇게 해주면 안 되냐고 말하고, 안 될 것 같으면 거기서 멈춘다. 계속 이어가면 오히려 싸움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반복해온 관계 패턴을 이제는 끝내고 싶었다. 불안형과 회피형을 오랫동안 오가며 살아왔기에 안정형이 되었다고 해도 과거의 잔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불안형인 나는
‘상대가 너를 이렇게 생각하는 거야.’
회피형인 나는
‘그냥 놔둬. 가만히 두면 아무 일도 없을 텐데 왜 난리야.’
그리고 최근에 자리 잡은 안정형인 나는
‘그냥 물어보는 게 어때? 어차피 네가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잖아. 상대 입을 통해 들으면 금방 괜찮아질 거야. 상대도 그걸 그리 생각하다니, 재밌네 하고 넘길 거라니까.’
라고 말했다. 세 목소리가 시끄럽게 대화를 나누다, 결국 가장 힘을 갖게 된 안정형의 내가 내게 말했다.
'그냥 물어봐. 어차피 아닐 거 알면서 확인하려는 거잖아. 그러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가면 돼.'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이어온 회피형의 선택을 무시하고 묻기로 했다. 과거 가장 친했던 친구의 위험한 말들을 그때그때 묻지 못해 관계를 스스로 파탄으로 접어버린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는 안타깝게도 상대의 일방적인 종결로 끝이 났다. ‘왜 결론이 바뀌지 않았을까.’라는 충격이 내 안에서 피어올랐다. 회피형의 내가 ‘가만히 있었으면 아무 일도 없었잖아.’라고 소리쳤다. 마음이 어지러워 한참을 남편에게 말을 쏟아냈다.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뭐 연애하냐? 실연당한 사람 같네.”
그리고 덧붙였다.
“너는 항상 비슷한 유형의 사람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 그 사람은 깊은 대화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정보형 대화만 원하는 사람이야. 그런 사람한테 네가 깊게 들어가니 불편한 거지. 그냥 너랑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되고, 그 사람도 자기랑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아무 문제 없어.”
남편의 분석이 이어졌고, 남편이 잠든 뒤에도 내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챗 GPT를 열었다. ‘15년 경력 상담사이자 20년 경력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라는 페르소나를 부여한 챗 GPT에게 대화문 분석을 의뢰했다. 나는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1. 내가 병리적인가2. 내가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는가
3. 대화에서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4. 객관적인 입장에서 대화문을 읽고 분석했을 때 두 사람의 대화에 담긴 의도와 생각 분석
5. 내 입장의 상담사였더라면 뭐라고 했을까
6. 상대방 입장 상담사였다면 뭐라고 했을까
7. 주변 사람들 친구들이었다면 어떻게 읽힐까
8. 나에게 맞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한 번에 알기 위해 내가 해야 할 것
9. 이 대화를 통해 내가 배울 수 있는 것
10. 내가 무엇인가 했다면, 하지 않았다면 결과를 바꿀 수 있었을까
11. 내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에 문제점이 없는가
12. 앞으로 가야할 길
13. 상대방은 내 대화를 통해 어떤 것을 느꼈을까
14. 왜 서로 이해하지 못했을까
15. 내가 마음이 아픈 이유
16. 상대가 나와의 관계를 종료한 이유
17. 내가 말이 많고 내 대화 방식이 정신과적으로 봤을 때 문제가 있는지
18. 내가 고쳐야할 것이 무엇인가
19. 상대가 내게 말하고자한 것이 무엇인가
20. 상대가 불편하고, 무섭다고 말한 이유
21. 두 사람에게 맞는 상대
최종 결론은 명확했다. 두 사람 모두 잘못이 없다. 대화 방식과 상황을 다루는 방식, 정보 처리 방식이 완전히 다를 뿐이다. 각자 맞는 사람에게 잘 보내주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관계의 종결이다.
분석을 마치고 든 생각이 있다. 대화와 분석들을 여러 번 읽고 또 읽으며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상대방의 스타일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지나치게 많은 대화를 시도하려 했다는 사실이었다. 상대는 내가 오해를 피하기 위해 묻는 질문들과, 내가 질문하기까지 거쳐온 생각의 과정을 듣는 것이 무섭고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멈췄어야 했지만, 나는 여전히 상대를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깊이 대화를 나누고, 내 생각을 충분히 보여주면 진심이 전해질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사람, 그리고 전혀 다른 스타일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 모든 말이 ‘말이 많다.’는 평가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이런 생각에 이른 데에는 나를 차단한 상대가 내게 과거를 돌아보라고 말해서다. 과거에 내가 사람들의 말과 단어를 왜곡해 받아들이는 경향은 없었는지 점검해 보라고 권했다.
내가 너무 많은 질문을 던졌기 때문인지, AI가 이렇게 말했다. 평소처럼 회피형 인간의 선택을 택해 묻지 않고 따지지 않았다면 관계를 유지하거나 종결을 지연시킬 수는 있었을 거라고. 그러나 더 조심하고 눈치를 보는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갔다면, 결국 자기 소실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두 사람 중 누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단지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고 정보 처리 방식이 다를 뿐이라는 설명이었다.
둘 다 병리적이거나 정신과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결론. ‘그렇다면 상대에게 맞추면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다시 아파왔다. 내가 들었던 ‘말이 많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물었다. 돌아온 답은, 내가 말이 많은 것이 아니라 설명의 타이밍이 문제라는 분석이 이어졌다. 설명의 양이 아니라, 설명을 시작하는 시점의 문제라는 말이었다.
“너는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야. 상대의 정서 용량을 확인하기 전에 깊이 들어간다는 점이야.”
또 상대가 나와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종료한 일이, 나의 핵심 신념을 정확히 건드렸기 때문에 내가 이토록 많은 분석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말하면 버림받는다.”
“내가 설명하면 상대가 떠난다.”
“나는 부담스러운 존재다.”
상담사의 시선에서는 이렇게 본다고 했다.
“상대의 관계 종료는 관계를 끝낸 것이 아니라, 나의 자기개념에 상처를 남긴 사건이다.”
그리고 이후에는 이런 조정 포인트를 제시했다.
✔ “지금 이 얘기 괜찮아?”
✔ “이건 가볍게 나누고 싶어 / 조금 깊게 나누고 싶어”
✔ “부담되면 말해도 괜찮아”
달라지고자 한 나의 선택이, 상대의 불편한 감정과 표현만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떠남까지 감당해야 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대화와 분석을 반복해 읽고 생각한 끝에 하나는 분명해졌다. 앞으로는 나와 비슷한 정서 용량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저 인사만 나누고 안부 정도만 주고받고 싶은 사람들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바꾸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나를 존중하기 위해 묻는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상대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물론 상대 역시 나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점도 함께 인식하게 되었다. 이건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너무 다른 사람들이 대화를 나눈 데서 비롯된 일이었다. 아무리 많은 부연 설명을 덧붙여도 어떤 사람에게는 그것이 정서 과잉으로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받아들이게 되었다.
남편 역시 여러 번 말한 바 있다. 내 대화 스타일이 짧은 정보 전달만 원하는 사람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친해지면 지나치게 가까워지고, 친하지 않으면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내 성향. 극과 극을 오가는 이 성격부터 조율하지 않으면, 결국 세상 모든 사람들과 스스로 단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나와 정서 용량이 비슷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손가락이 반대로 접힌 것처럼 마음에 통증이 느껴진다. ‘그냥 한마디 참고 넘어갔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시간을 조금 지연시켰을 뿐, 결국 결론은 같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말을 시작하면 생각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 엮여 나오기 때문에 그런 나를 막기 위해 말을 간단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던 상대. 상대의 평가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스피드웨건, 설명충. 혹시 내가 정말 설명이 과한 사람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에 제어장치가 걸렸다. 하지만 나를 위한 고운 마음이 담긴 객관적 평가 속에서, 무엇이 객관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어떤 의도와 맥락에서 말들이 이어졌는지를 분별하려 애쓴 이 과정 자체가 나를 한 단계 성장시켰다.
내 잘못도, 네 잘못도 아니다. 우리가 너무 다른 사람이었을 뿐이라는 사실. 그리고 좋은 사람을 더 잘 맞는 사람에게 보내기 위해, 그 공간을 아름답게 비워주는 것도 관계라는 걸 배웠다. 그래서 나는 과거보다 조금 더 성숙해진 기분이 들었다.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대신,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때 좋은 영향을 주고받았고, 잘 흘려보내주었다는 마음이 남았다.
관계란 아마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계속 배우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인간관계 역시 내게 많은 공부를 안겨주었다는 생각에 새삼 고마워졌다. 동시에 나의 핵심 신념이 무엇인지, 그것을 정면으로 관통당했음에도 더 이상 아프지 않다는 사실이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내 말로 인해 상대가 나를 부담스럽게 느끼고 떠났다고 해도, 그것 또한 상대의 건강한 선택임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고왔던, 정말 고운 그 사람을 멀리서 건강하게 응원하는 사람으로 남기로 마음먹었다. 이 다짐과 마음을 기록으로 남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대화문과 분석을 다시 읽으며, 앞으로의 관계를 준비하고 싶다(다섯시간 동안 분석을 하면 논문 한 편만큼의 양이 나온다.). 이제는 어떤 행동을 해도 같은 결말로 향할 수밖에 없는 관계가 아니라, 충분히 나누고 베풀며 사랑할 수 있는,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미래의 나, 잘 보고 있지?
이제 나는 나와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을 기다릴 준비가 되었다.
→ 챗 GPT 결론: 누가 맞고 틀렸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같은 대화를 서로 다른 언어로 듣고 있었다는 점이다.
참고자료
1. CHAT G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