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 37. 안녕, 나의 우상

37. 안녕, 나의 우상

by 김희경 작가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비난하려는 목적이 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관계와 감정은 특정 인물을 이상화하거나 동일한 관계를 반복하도록 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삶의 구원자, 기준, 전부로 삼는 관계가 지닌 위험과 그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기록한 개인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전적으로 저자의 주관적 경험과 성찰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다만, 이 글은 특정한 관계를 미화하거나 모범 사례로 제시하지 않으며, 독자 각자의 삶과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기를 전제하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 정서적 방임, 상실, 관계 의존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과 안전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나 과도한 감정 반응이 느껴질 경우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거나 누군가를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관계를 돌아보며 회복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한 개인이 겪은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담은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대신 살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건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이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회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작은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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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 글에는 트라우마와 상처를 자극할 만한 글이 포함되어 있으니 주의해 주시길 바랍니다. 오직 제 치유를 위해 작성한 글이니, 읽지 않으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37. 안녕, 나의 우상


[사진서체: 네이버나눔명조체]

[AI 네컷 만화]


가장 아름다웠고, 찬란했을 20대. 나는 20대를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한 구간으로 떠올리곤 한다. 사실 오늘의 내가 과거를 되짚을 때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간은 20대뿐만이 아니다. 그녀를 처음 만난 건 어느 수업에서였다. 아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건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더 이상 그 시절의 시간 위에 서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별처럼 반짝이는 까만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을 잊을 수가 없다. 어릴 때부터 타인의 눈을 보지 않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맑고 예쁜 눈으로 몇 분 동안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따갑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 친인척 어른들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던 나에게 친인척 어른들은 눈을 쳐다보지 못할 때까지 벌을 주고 매질을 했다. 폭력은 설명 없이도 사람을 길들인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만났을 때까지 타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고, 누군가 나를 바라보면 하늘을 보거나 땅으로 시선을 피하곤 했다. 그래서 누군가와 가까워질 기회가 있어도 늘 한 발 비켜 서게 되었다.


그때까지의 나는 타인의 시선과 눈을 피하는 것이 예의라고 믿었고, 눈을 마주치는 것은 위험하다고 배운 사람이었다. 타인의 시선 안에 오래 머무는 일은 내면의 무언가를 들키는 일 같았고, 벌을 부르는 행동처럼 느껴져 두렵고 불편했다. 그래서 그녀의 눈을 마주하고 서 있던 그 몇 분이 내게 불편하고 두려운 시간이 길게 늘어지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그때는 타인의 시선이 나를 해칠 것만 같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어느 날, 친했던 선배가 내게 말했다. 항상 내가 하늘만 보고 다녀서 ‘사람들을 무시하고, 제 잘난 맛에 사는 아이’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했다.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들이 내 주변을 떠돌고 있던 시기였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 나를 바라보면, 그 시선을 호감이 아니라 적대의 신호로 먼저 해석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외부의 신호를 위험으로 인식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선배는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겸손해 보이려는 표현이라고 받아들였다고 했다. 나중에 대학을 졸업할 즈음 다른 후배들을 통해 들은 내 소문은 또 뜻밖의 것이었다. 내가 학교에서 이른바 ‘3대 미녀’ 중 한 명으로 불리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 역시 사실이라기보다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내가 타인의 말과 눈빛을 두려워한다는 사실이 오히려 사람들을 더 놀라게 했다고 했다.


나는 오랫동안 수치심과 불안, 우울과 어둠을 내면에 안고 살아왔다. 그래서 남들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좋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버티기 위해 20대의 대부분을 사용했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한참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내게 말했다.


“사람은 눈을 쳐다보지 않고 말하는 사람의 말을 쉽게 신뢰하지 않아. 그러니까 너도 사람을 만날 때 눈을 보고 말하는 연습을 해봐.”


그때 얼굴을 들어 한참 동안 마주했던 그녀의 눈이 별처럼 반짝였고, 그 시선은 나를 다시 숨 쉬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내가 눈을 오래 마주쳐도 나를 탓하지 않았고, 오히려 조용한 미소로 안아주었다. 그 이후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며 말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그 과정에서 그녀 이외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도 조금씩 늘어났다. 지금은 누군가가 먼저 시선을 피할 때까지 눈을 마주할 수 있을 만큼 내 마음도 예전보다 단단해졌다.


지금 돌아보면 그녀의 그 말 한마디가 나를 살린 동시에 나를 묶는 언어였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때의 나는 그 말을 하나의 기술이나 조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은 나를 세상 쪽으로 끌어내 준, 살아남는 법을 가르쳐 준 말이었다. 그때의 나는 조언을 선택지로 듣지 못했고, 허락이 필요했다. 그것이 안정감을 느끼게 해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이후 그녀의 말은 조언을 넘어, 내 삶의 기준이자 방향이 되었다. 그때는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내게 좋은 말을 건네는 사람은 학교 선생님이나 교회 선생님 외에는 거의 없었다. 어쩌다 오아시스처럼 스쳐 지나간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면, 내가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할 사람들 가운데 구가족(가족과 친척 포함)은 없었다. 그들은 필요에 따라 칭찬을 했고, 그 외에는 나를 비난하거나 모욕했다. 그 대부분은 친아버지에 대한 불만이 나를 향해 옮겨온 결과였다. 어린 시절의 나는 가족의 구성원이라기보다 부정적인 감정을 마음껏 전가해도 되는 대상이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잘못된 말과 행동들을 내게 쏟아내는 것이 당연한 일처럼 여겨졌다. 그들이 서로 가족으로서의 경험과 기쁨을 나눌 때, 나는 닫힌 문 옆 마루에 앉아 그들의 웃음소리를 귀동냥하며 그 시절을 보냈다. 외롭고, 차갑고, 쓸쓸했다. 도란도란, 깔깔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그래서 나는 구가족들이 그어놓은 선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쓰고 또 애썼다. 하지만 노력할수록 그 선은 더 깊고 두꺼워질 뿐, 내 손가락 하나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누군가 해야 할 피곤한 일이 생겼을 때였다. 특히 가족 사업과 관련된 일 앞에서 나는 ‘가족’이라는 말로 묶여, 그들의 몫을 대신 감당해야 했다. 그것이 때로는 제사 준비였고, 농축산업을 돕는 일이었으며, 친인척 동생들의 숙제를 대신하는 일로 이어지기도 했다. 가족이니까 함께 짊어져야 한다고 했지만, 좋은 것들은 늘 내 몫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처럼 길러졌지만, 동시에 나만을 위해서는 좋은 것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왜곡된 믿음을 마음 깊이 심게 되었다. 이런 경험들은 오랜 시간 만성적인 긴장과 결핍으로 남았고, 결국 신체 곳곳에 통증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나는 몸이 아파, 거의 누워 지내는 날들을 반복했다.


심리학자 베셀 반 데어 콜크(Bessel van der Kolk)는 어린 시절의 반복적 스트레스와 외상이 성인기의 신체 증상과 밀접하게 연결될 수 있음을 여러 연구와 저작에서 설명한다. (Bessel van der Kolk, 『The Body Keeps the Score』) 심리학을 공부하며 나는 감정과 기억이 신체에 어떻게 각인되고 재구성되는지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과거 여러 병원과 다양한 진료과를 전전하며 진단을 받고 약을 먹던 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마음 한편이 답답해진다.


그렇게 나는 오래전부터 가족 안에서 쓸모 있는 존재, 쓸모 있어야만 허락되는 존재로 살아왔다.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필요해지기 위해 존재해야 했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있는 그대로 두고 바라봐 준다고 느껴질 때마다, 그것을 사랑이라고 착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만나고 난 뒤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말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옷을 입는 방식부터 공부의 방향, 미래의 선택과 직업, 만나야 할 사람들까지 그녀가 정해주는 대부분의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 결정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더 깊이 묶어 두었다. 때로 그녀는 예고 없이 전화를 걸어 내게 묻곤 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


“응. 열심히 하고 있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말하지 않아. 오히려 늘 부족하다고 느끼니까.”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너, 지금 공부 많이 안 하고 있지. 당장 학원 알아봐.”


“돈이 좀 생기면 해볼게.”


“그게 언제인데. 지금 공무원 학원 가서 등록하고 와.”


그녀의 말은 겉으로는 배려처럼 들렸지만, 점점 명령에 가까운 형태가 되어갔다. 다행이라고 느끼는 지점은 그녀가 매우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었고, 그녀가 선택해 준 많은 것들이 실제로 내 삶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녀가 정해준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그녀가 권한 책을 읽었으며, 그녀가 연결해 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까지 그녀에게 묻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내 판단과 경험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었다. 과거의 나는 타인의 의존이 힘들다고 말하던 사람이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눈이 반짝이던 그녀에게 사소한 감정의 결까지 맡기고 있었다. 느끼고, 느껴야 할 감정들마저 의존하게 되자 나와 그녀 사이의 경계가 서서히 흐려졌다. 결국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에까지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서른 중반을 훌쩍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깨달음 이후 그녀가 감당해야 했을 나와의 관계가 얼마나 무거웠을지를 생각할 때면 여전히 미안해진다. 그럼에도 그녀와 분리된 지금 처음으로 나 자신을 책임지는 어른이 된 듯한 충만함을 느낀다.


대학 시절 그녀는 내게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으라고 했고, 치마보다는 청바지가 낫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운동화를 샀고, 청바지를 입고 학교에 다녔다. 대학 시절 나의 기본 차림은 원피스에 하이힐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녀가 보기 편한 모습으로 점점 바뀌어 가고 있었고, 어느새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치며 형편이 어려워져서 좋은 옷과 신발을 가져보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생이 된 후 뒤늦게 한을 풀 듯 예쁜 옷과 장신구, 구두에 집착했다. 예쁘게 하고 다니면 사람들에게서 애정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서기도 했다. 그래서 매일 아침 머리카락과 얼굴에 팩을 하고, 찰랑이는 긴 생머리에 하늘거리는 원피스와 굽 있는 구두를 신었다. 한 팔에는 두꺼운 책을 끼고 집을 나섰고, 수업이 끝나면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랬던 내가 그녀의 말 앞에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처럼 아무런 의심 없이 나를 바꾸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대로 나를 바꾸기 시작하자, 학교생활과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었고 오랜 시간 학교에 머물며 공부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녀의 조언을 따르는 일이 실제로 내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말과 충고를 점점 더 의심 없이 내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녀는 내게 근로장학생 자리를 부탁해 마련해 줄 만큼, 현실적인 도움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나는 그녀에게서 받은 상처들이 그녀가 내게 준 도움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사소함’이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의 나는 ‘효율’과 ‘성장’이라는 말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설득했다. 더 잘 살기 위해, 더 멀리 가기 위해 나를 바꾸는 일이, 내 의지와 생각을 유지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믿었다. 문제는 변화의 방향이 언제나 내 안이 아니라, 그녀의 시선에서 시작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동안 내가 그녀를 의지했던 이유는 그녀가 특별해서라기보다 내가 마음 놓고 나를 맡길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녀는 여러 면에서 특별한 사람이었지만, 나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자리에 그녀를 올려놓고 많은 부분을 맡겨버렸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렸다. 선택을 대신해 줄 사람, 판단의 기준이 되어 줄 존재, 흔들릴 때 붙잡을 기둥이 필요했고, 그녀는 그 모든 역할을 묵묵히 감당해 주었다.


그녀가 과거 내게 건넸던 수많은 좋은 말들과 글, 문자 메시지들이 모두 일기장에 남아 있다. 그 말들을 정성스럽게 적어 두었던 이유는 당시 나에게 그녀의 말이 유명한 명언집의 문장들보다 훨씬 더 절실하고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 기록들 사이에는 나를 깊이 흔들어 놓았던 말들도 함께 적혀 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나는 그녀에게 조심스럽게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조심스럽게 마음을 꺼내 묻는 내게, 그녀는 그런 말을 한 기억이 없다며 되묻듯 말했다. 왜 지금에서야 그런 이야기를 꺼내느냐고, 혹시 일부러 자신을 불편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냐고도 했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말문이 막혔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그녀는 다음 날 일터에 나가야 하는데 이 통화로 잠잘 시간이 줄어들었다며 지나가버린 시간에 대한 불편함을 드러냈다.


사실 그날의 전화는 그녀가 먼저 무언가를 묻기 위해 걸어온 전화였다. 평소에도 그녀는 신앙의 고민이나 힘든 일이 있을 때 내게 전화를 걸어 한참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날 역시 그런 대화가 이어지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묻어 두었던 질문을 꺼냈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반응 앞에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직장 없이 공부만 하던 내가 일터에서 하루를 겨우 버텨내고 있는 그녀를 더 힘들게 했다는 생각이 들자 죄책감과 수치심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녀는 이어서 내가 오랫동안 공부만 하고 있어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충분히 나누지 못했던 순간들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 질문을 던지기까지 일기장에 적어 둔 기록들을 여러 번 다시 읽으며 오래 고민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그 기록 역시 내가 나의 관점에서 적어 둔 것이기 때문에 객관적일 수 없다고 답했다. 그 순간 나는 이야기를 이어가려는 모든 설명이 오히려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더 이상의 말을 삼켰다.


그래서 그 일 이후로는 오해가 생기면 그때그때 바로 물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실제로 다시 비슷한 상황이 왔을 때 곧바로 질문을 꺼냈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이전과 같았다. 왜 그런 식으로 해석하느냐고, 왜 그런 말을 해서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느냐며 강하게 반응했다. 한 번은 그녀가 전화를 걸어와 집을 사기 위해 받은 대출 때문에 이자와 원금을 감당하는 일이 버겁다고 말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매달 월세를 내는 것이 쉽지 않다고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너는 항상 네가 나보다 힘드니까. 그래서 힘든 이야기를 잘 못 했어. 네가 항상 나보다 더 힘드니까.”


나는 속으로 '그래도 월세 내는 것보다 집을 사서 대출금을 갚는 게 낫지 않나.'라고 생각했지만 꺼내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녀와 비슷한 자리에 서 있지 못한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고, 미안했고, 속상했다. 그녀의 어려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후 나는 마음속에 오해가 생기면 그때그때 바로 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오해를 할 것 같아 질문을 꺼내면 그녀는 왜 그런 식으로 해석하느냐며 화를 냈다. 반대로 화를 낼까 봐 오래 고민하다가 조심스럽게 묻으면, 그런 일은 없었다며 내가 착각한 것이라고 말했고, 왜 자신을 불편하게 하느냐고 다시 화를 냈다. 그래서 더 이상 그녀가 무슨 말을 하든 가능하면 묻지 않고 따지지 않게 되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내 안에 어떤 불편함이 생기더라도, 그것을 드러내거나 확인하려 해서는 안 되는 자리에 내가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녀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가능하면 묻지 않고 조용히 내 안에 묻어두는 쪽을 선택하게 되었다.


평소 일기에 적는 글씨는 엉망일 때가 많다. 하지만 그녀가 했던 말들을 옮겨 적은 기록만큼은 눈에 띄게 정갈하게 적혀 있다. 그 문장들을 그렇게까지 공들여 적어 두었던 이유는 언젠가 아이를 낳고 손자가 생기면 그 말들을 다시 읽어주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녀의 말은 내게 명언집의 문장들보다 더 귀하고 소중했다. 반대로 마음에 상처로 남은 말들이 적힌 부분에는 이해하려고 애쓰고 또 애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 그녀와의 관계를 정리하며 그 기록들을 다시 마주했을 때 비로소 그 기록들이 감정을 증명하는 자료가 아니라, 관계의 구조를 이해하게 해 주는 흔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말이 사실이었는지, 아니면 내 오해였는지 이제 중요하지 않다. 그녀가 하지 않은 말을 내가 마음대로 적어 놓았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오늘의 내가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는 지점은 따로 있다. 너무 오랜 시간 그녀의 말들을 혼자 붙잡고 이해하려 애쓰며 씨름해 왔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그녀가 내게 건넸던 말들을 다시 읽으면 눈물이 나고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한다. 살면서 내게 그렇게 오랫동안 따뜻한 마음을 건네 준 사람은 그녀가 거의 유일했기 때문이다. 이제 와 돌아보면 어쩌면 그녀 역시 어느 순간부터는 나에게 기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쉽게 보이지 않는 모습들을 내게는 많이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있는 그대로의 인간이 아니라 마음대로 신격화해 왔다. 가끔 그녀가 내가 알고 있던 모습과 다르게 느껴질 때조차, 그 차이를 받아들이기보다 다시 완벽한 사람으로 덮어씌우는 쪽을 선택했다. 그래서 그동안 내가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믿었던 대상은 그녀 그 자체라기보다 내가 만들어 낸 환상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완벽하지 않은 사람을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의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사람, 나에게 위험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 환상을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당시의 나는 충분히 지쳐 있었고 외로웠다.


20대 초반, 사채를 내서라도 돈을 마련해 달라며 화를 내고 협박과 회유를 반복하던 구가족의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절대 해주지 말라고. 만약 그 요구를 들어준다면, 나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내가 불행해지는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했다. 그때의 나는 가족을 잃는 것보다 그녀를 잃는 것이 더 두려웠다. 그녀는 20대의 내 삶에서 빛이었고, 행운이었으며, 선물이자 구원처럼 느껴지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를 잃는다는 것은 내가 붙들고 있던 세상 전체를 잃는 일처럼 느껴졌다. 과거의 그녀는 여러 순간에서 나를 지켜 주었고, 실제로 나를 구해 주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더 의지했고, 그녀를 불완전하고 약한 한 사람으로 바라보지 못한 채 완전한 존재로 고정해 두려 했다. 고마운 점은 그 시절 그녀가 내 인생에서 옳고 좋은 판단을 대신 내려주었기 때문에, 나는 그 곁에서 아주 천천히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그녀는 뿌리가 약했던 나에게 독립을 준비하게 해 준 단단한 토양이 되어주었다.


그때의 나는 선택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해도 되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녀의 말은 조언이 아니라 허락처럼 들렸다. 나는 내 감정과 내 미래를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그녀에게 맡기고 허락을 구하는 일을 반복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어지던 그녀와의 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제3의 인물이 관계 안으로 깊이 들어오면서부터였다. 나는 그를 악성 나르시시스트라고 부를 만큼 혼란스러웠지만, 어떤 진단이든 그것은 전문가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가 보였던 거짓말과 관계 속 정치, 이간의 방식이 어릴 적 내가 가족 안에서 익숙하게 보아왔던 행동들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과거 ‘나르시시스트’나 ‘소시오패스’ 같은 개념과 이름을 몰랐을 때 나는 사람은 본래 선하다는 믿음에서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갔다. 그 시절 나는 그녀와 그 사람의 관계를 이유로 그의 잘못된 말과 행동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리고 언제나 그래 왔듯 시간이 충분히 흐르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믿으며 입을 닫고 기다리는 쪽을 선택했다.


문제를 적극적으로 나서 해결해야할 때조차 어릴 때처럼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밝혀지고 나쁜 것들은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고 믿으며 회피했다. 사실 그때 내게 다른 선택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 사람은 그녀가 아끼는 인물 중 하나였고, 그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꺼내는 순간 그녀와의 관계 자체를 잃게 될 것만 같았다. 그녀는 내게 세상과 같은 존재였지만, 나는 그녀에게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두려움은 나를 더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오랜 시간, 이 문제를 덮고 또 덮었다. 그녀에게는 그 사람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라며, 마음에도 없는 말들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 믿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누구와도(가족을 포함해) 만나지 않는 생활이 이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그의 영향은 오히려 그녀를 통해 더 깊이 스며들어 왔다. 그리고 결국 내가 가장 사랑하던 그녀를 통해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 한때 나의 구원이었고, 행복이었고, 빛이었던 그녀는 나 때문에 그 사람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나로 인해 친구 관계들이 흔들리고, 나와의 관계를 지키기 위해 그와 얽힌 관계들까지 내려놓게 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녀에게 나를 버려 달라고 말했다. 나를 놓고, 그들에게 돌아가 달라고 말이다. 그러자 그녀는 그들보다 내가 그녀에게서 등급이 더 높아 나를 선택했다고 했다.


이 말이 나오기까지 여러 가지 방법을 제안했었다. 삼자대면을 통해 해결해 보자고 했고, 미안함을 느끼지 못하는 내가 그녀를 위해 먼저 사과해 보겠다고도 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적어 둔 일기들을 보내 판단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때에도 일기라는 것은 객관성이 없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내 감정을 말할 수 없다는 것보다 내 감정이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확인하게 되었다. 내 불편함과 아픔은 관계의 중심이 아니었다. 대신 문제 있는 나를 그녀가 받아주고 있다는 일방적인 구도가 관계의 빚처럼 남아 있었다. 익숙함은 나를 안전하게 하지 않았고 상대를 의심하지 않게 만들었다. 나는 늘 그랬듯 버티는 쪽을 선택했고, 기다리는 자리에 나를 놓았다. 그래서 또다시 오랜 시간 덮고 덮었다. 그리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나를 지워내는 방식은 결국 아무도 지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그녀와 대화를 나누던 최근 몇 년은 가족(시댁 포함)과의 관계 속에서 암흑기를 지나고 있던 시기였다. 그들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왜 그래도 된다고 여기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나는 또다시 상대방은 선할 것이라는 가정 아래 나 자신을 먼저 의심하고 파괴했다. 그들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고, 기대만큼 사랑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나쁜 사람으로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 불쾌감과 무능감이 만들어내는 수치심과 죄책감, ‘효’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정서적 폭력에 장기간 노출된 상태로 버티고 있었다. 그 시기 나는 매일 감정을 소진하며 겨우 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가족들과의 이야기를 그녀에게 여러 번 반복했다. 평화롭고 아름답다고 말하는 그녀의 시댁과 달리 나의 시댁은 언제나 희생자의 위치에 나를 세워두고 가족이 되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내어놓으라고 하는 관계였다.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그녀에게 상당한 부담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해 본다. 그래서 그녀는 내게 같은 이야기를 한 번만 더 하거나 그들을 다시 만나면 친구 관계를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조건의 말을 세 번째로 들었을 때, 나는 그녀와의 관계를 내 손으로 내려놓았다. 가족과 시댁,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족 구성원들을 마주할 때마다 반복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관계들을 통해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보게 하시려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더 이상 짊어지지 않아도 되는지 말이다.


가족, 시댁, 친구.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족 구성원들을 마주할 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반복적으로 생각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내게 무엇을 보게 하시려는 걸까. 하나님은 왜 내게 이 관계들을 주셔야만 했을까. 이 상황은 왜 쉽게 바뀌지 않는 걸까, 왜 해결해 주시지 않으실까라고 말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과,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가족이 된 사람들이 나를 아프게 해도 그 모든 책임을 온전히 내 몫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느낄 때, 나는 어릴 때 마주했던 무력감의 벽 앞에 다시 서 있었다. 그리고 넘을 수 없어 보였던 그 벽은 내 안에서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응축되어 터져 나왔다. 돌이켜보면 많은 관계는 내가 선택해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선택으로 시작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종국에는 수치심과 죄책감이 뒤섞여 내가 사라져야만 이 상황이 끝날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매일 더 깊은 죄책감의 수렁에서 허우적거리며 나는 가장 어두운 내면으로 점점 더 깊이 가라앉았다.


오랫동안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제정신으로 일상을 살아내기 어려웠던 시기. 그래서 온전히 의존하던 대상인 친구에게도 많은 상처를 주었을 것이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불쾌감과 수치심, 걱정과 불안을 적절히 감당하지 못해 그녀에게 떠넘겼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친구는 나를 위해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는 의미에서 극단적으로 들릴 수 있는 처방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도, 심리적 여력도 없었다.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고갈된 상태였기 때문에 그 말들은 위로가 아니라 화살처럼 마음에 꽂혔다. 처음으로 벽과 마주한 기분이었다. 아니, 오래전 마주했어야 했던 높고 두꺼운 벽 앞에 마침내 서게 된 순간이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나는 다시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했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에 그제야 신에게 손을 뻗었다.


지난날 심리 공부를 하며 한 가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친구를 우상의 자리에 놓고, 그녀에게 마음대로 프레임을 씌워 그녀가 아닌 또 다른 존재를 만들어 왔다는 사실이다. 내 기준으로 그녀를 찬양하고(그것을 그녀가 원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를 여신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어쩌면 그래서 그녀는 누군가의 우상으로 존재해야 하는 역할을 감당하며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불완전하고 불안한 인간이 신의 자리에 놓이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자신을 지워야 하는지, 이제야 생각하게 된다. 요즘 세상에는 스스로를 구원자라 부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들 중 일부가 결국 자기 자신을 감당하지 못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인간이 신의 자리에 앉는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실감한다. 믿음이라는 이름이 너무 쉽게 소비되는 시대라는 사실이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하다.


지난 날 내가 했던 우정은 사랑이라기보다 서로의 삶을 감당하지 못한 채 책임을 나누어 맡기는 관계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의존하며 일정한 방향 없이 흘러가던 관계였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삶을 살아낼 힘조차 없던 시기에 그녀는 잠시나마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든든한 토양이 되어주었다. 그래서 여전히 나는 그녀에게 많은 부분 감사한다. 오늘의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데에는 그녀의 존재가 분명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그녀를 기억하지만, 이제는 그녀에게 혹은 그 누구에게도 나를 맡기지 않는다. 그녀와의 오랜 관계 덕분에 배운 가장 큰 은혜는 내 삶을 대신 살아줄 사람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감사는 남기되 어렵게 되찾은 내 삶을 내가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 오늘을 산다.


이제 그녀에게 의존하던 나를 떼어내 서로 진짜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줄 때가 왔다. 그동안 내가 그녀에게 얼마나 많은 짐을 지우고 있었는지, 이제는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를 놓아준다. 나 때문에 더 이상 힘들지 않기를 바라며, 아름다웠던 이야기와 슬펐던 기억, 속상했던 시간들을 조용히 흘려보낸다. 내가 평생 갈망했던 우정과 사랑을 그녀를 통해 경험했기에 나는 그녀에게 감사하며 살아가려 한다. 그녀가 내게 알려준 좋은 것들, 관계 속에서 배운 교훈을 마음에 담고 오늘과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 이제 그녀를 놓아줄 시간이다. 언제나 행복하기를, 언제나 건강하기를,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총이 그녀의 삶에 머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제 나는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내 경험과 내 책임 위에서 나를 선택하기로 했다.


안녕, 나의 우상. 안녕, 나의 스무 살.




참고자료


1. van der Kolk, Bessel, 『The Body Keeps the Score: Brain, Mind, and Body in the Healing of Trauma』, Viking, 2014

→ 사용된 개념: 복합 트라우마(Complex Trauma), 발달 외상, 신체화(Somatization), 외상 기억의 신경생물학적 각인, 감정·기억의 신체 저장, 트라우마와 만성 신체 증상 간의 연관성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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