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갚지 않아도 충분한 삶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비난하려는 목적이 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관계와 감정은 특정 인물을 이상화하거나 동일한 관계를 반복하도록 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삶의 구원자, 기준, 전부로 삼는 관계가 지닌 위험과 그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기록한 개인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전적으로 저자의 주관적 경험과 성찰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다만, 이 글은 특정한 관계를 미화하거나 모범 사례로 제시하지 않으며, 독자 각자의 삶과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기를 전제하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 정서적 방임, 상실, 관계 의존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과 안전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나 과도한 감정 반응이 느껴질 경우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거나 누군가를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관계를 돌아보며 회복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한 개인이 겪은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담은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대신 살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건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이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회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작은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AI 그림
AI 그림
[사진서체: 네이버나눔명조체]
[AI 컷 만화]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는 여러 개의 서랍장들이 보였다. 꿈속에서 보인 서랍장들에는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옷들이 정갈하게 개어져 있었다. 거의 10년 넘게 천천히 모아 왔던 원피스와 옷들이 보였다. 꿈속에서 나는 어딘가 다녀왔다가 방으로 다시 들어갔다. 어린 시절 살았던 집은 창호 바른 나무 문이 있고, 뼈대에 흙을 덧바르고 덧발라 만들어 놓은 집이었다. 황토를 가득 발라놓은 덕분에 집 안으로 바람이 잘 드나들어 여름에는 시원하고 공기가 쾌적했다. 겨울에는 따뜻하게 데운 방바닥에 붙어 두꺼운 솜이불을 둘러쓰고 차가운 공기를 코로 가득 들이켰다. 그럴 때면 겨울 공기는 차갑기보다 개운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그 집과 내 방이 가끔 생각날 때면 고개를 둘러 젓곤 한다. 그 이유는 그 집이 내게 삶과 죽음을 동시에 경험하게 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나는 서랍장을 열었다. 사방으로 나뉘어 있던 여러 개의 서랍장 모두 비어 있었다. 나를 키웠던 어머니는 빈 서랍장을 바라보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다 팔아버렸어. 이 집도, 이 방도 네 거 아니잖아. 이제 집에 돌아올 생각일랑 말어.”
이미 지나간 과거들이 꿈과 엮여 가끔 이런 이상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서랍장에 들어 있던 옷들은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옷들이고, 꿈속 장면은 중학생 무렵의 어머니와 나다. 현실과 과거가 뒤섞인 이 장면에서 나는 서랍장에 들어 있던 옷들이 어디에 팔렸냐며 찾아와야 한다고 울부짖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싹수없게. 키워준 것 고마운 줄도 모르고. 다 팔아서 16,000원 받았어. 그 정도면 충분하잖아.”
그 말을 듣는 순간 화가 났다. 서랍장 속 옷들은 매년 시즌이 끝날 때나 역 시즌에 맞춰 마지막 한 장 남았다는 옷들을 하나씩 사 모은 것들이었다. 어머니는 재활용 장수가 와서 킬로그램 단위로 값을 쳐 갔다고 했다. 나는 당장 찾아오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어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외출 준비를 했다.
방 안에 남아 울부짖고 있는 동안 집안에 제사가 있는지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각지에 흩어져 있던 친인척들이 그 집으로 들어왔다. 어머니의 남편이 도착했을 때 나는 내 모든 물건과 옷들이 팔려 사라졌다고 말했다. 잠깐 난감한 표정을 짓던 그는 이내 “할 수 없지.”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아버지는 어떤 일에서든 늘 담담함을 유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나는 불편함을 그에게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
꿈은 또 다른 장면으로 넘어갔다. 어린 시절 친척들을 태우던 친부의 대형 버스가 보였다. 사람들은 하나둘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화가 나서 박스 한 귀퉁이를 찢어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여기에 그 사람 핸드폰 번호 적어주세요. 전화해서 찾게요.”
“몰라. 너 알아서 해.”
나는 소리를 질렀고, 어머니는 키워준 은혜도 모른다며 손을 내밀라고 했다. 손바닥을 때리겠다는 뜻이었다. 나는 말했다.
“내가 왜 잘못한 것도 없는데 맞아요? 이제 당신이 뭐라고 하든 맞아주지 않을 거예요.”
그 말을 듣고 어머니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아무 말 없이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올라탔다. 나는 버스 계단에 앉아 적당한 곳에서 내려 달라고 말했고, 그 장면을 끝으로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깬 뒤 생각했다. 사람들은 왜 나를 볼 때마다 키워준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말했을까.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끝없이 요구받는 것은 늘 어딘가 이상했다. 감사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감사함 안에는 늘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함이 남아 있었다.
어린 시절 보육시설에 머물렀던 때에도 먹여주고 재워주는 일은 아주 잘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먹여주고 재워준 은혜라는 말은 보육시설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 장애인 시설에서 원장이 아이들에게 잔인한 학대를 했으면서도 “버려진 아이들을 먹이고 입혀줬다.”라고 주장하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어린 시절 마주했던 친척들이 떠올랐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듯 당당했던 그 태도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꿈에서 어머니와 서랍장 안에 개어졌던 옷에 대한 장면을 반복해서 꾸곤 했다. 그 꿈에서 깨어나면 항상 불쾌하고 불편했다. 현실에서는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고, 원하면 무엇이든 살 수 있는 여력이 생겼는데도 여전히 그 장소에 머물러 있는 나를 마주한다. 비슷한 꿈들이 이어질 때마다 그 장소에서 여전히 울고 있는 내가 보여서 안타까웠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 어머니는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내 물건들과 상장들을 기숙사로 보내면서도, 내가 입고 쓰던 옷과 속옷은 하나도 보내주지 않았다. 그것들은 모두 나눠주거나 태워버렸다고 했다.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 내내 단벌 신사였다.
어머니의 남편은 그 사실도 모른 채 집에 오지 않는 나를 탓했다. 주말마다 집에 가면 소금을 뿌리고 뺨을 때리는 어머니를 마주했고, 아버지 얼굴은 볼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집에 오지 않는 내가 서운하다고 말했다. 키워준 공을 모르는 아이라서 오지 않는 거라고 친척들이 말했다고, 아버지께서 내게 말했다. 그 사이 이유 없이 아프기 시작했고, 병원에서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지금에야 그때의 몸이 감당하지 못한 스트레스의 결과였다는 걸 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어두운 시기였다.
그럼에도 숨을 놓지 않고 살아낼 수 있었던 건 어린 시절 나를 붙잡아 주었던 믿음 때문이었다. 그래서 키워준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말은 이미 오래전에 끝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는 사람들이 내게 보내준 물건조차 자신의 것이라 여겼고, “네가 미워서 아랫집 딸한테 줬다.”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그 말들은 내가 좋은 것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남았다. 심지어 그 아랫집 딸은 동네에서 가장 부잣집 딸이었다.
나의 가장 큰 문제점이자 장점은 받은 것보다 더 많이 주려고 한다는 점이었다. 조금만 잘해줘도 스스로를 소진하면서까지 갚으려 했다. 그러다 한 드라마 속 대사를 들었다.
“신세 졌으면 신세 진 것만큼만 갚으면 되죠.”
왜 나는 늘 더 갚아야 한다고 믿었을까. 종교적 신념과 감정이 엉켜 만들어진 초자아는 나를 소진시키는 방식으로만 관계를 유지하게 했다. 꿈속에서 이유 없이 맞아주지 않겠다고 소리친 장면을 떠올리며, 나는 처음으로 자유로움을 느꼈다.
사실 지금 생각해도 차라리 보육시설에서 계속 자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곳이 더 따뜻했을 것이라서가 아니라, 적어도 그 안에서는 보호와 학대의 경계가 제도 안에 놓여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내 선택지가 보육시설과 친척집 두 가지뿐이었던 어린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보육시설에 남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른다. 피로 이어진 관계 안에서 벌어진 일들은 미워하지도, 단절하지도 못한 채 감정의 빚으로 남았다. 그래서 나는 불쾌하고 어두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데 사용해야만 했다.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이유로 요구된 지속적인 감내는, 그 자체로 이미 충분히 치러진 몫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꿈에서 깨어난 뒤, 더 이상 내 것을 잃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이제 내 옷과 물건이 버려지거나 태워질 일은 없다는 사실, 안전한 가정을 가졌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그러니 키워주고 먹여줬다는 말에 더 이상 감사하지 않다는 것이 내 진짜 마음이다. 나는 이미 갚을 만큼 갚았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1을 주고 10을 요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고마움이 아니라 착취라고 부른다. 어린 시절 나를 안아준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 신이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느낀다. 신은 줬으니 반드시 돌려내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은 언제나 사랑으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사랑하라, 자유로워라, 행복해라. 라고.
이제 더 이상 나는 그들에게 묶여 있지 않다. 오늘의 나는 힘없고 약한 아이가 아니라, 내 걸음과 호흡으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그러니 더 이상 누군가를 더 사랑하기 위해, 잘 보이기 위해 내 감정과 내 것을 잃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이제 나는 내 것을 충분히 누리며 살아도 된다고 매일 스스로에게 말한다. 그 사실을 오늘 또 스스로에게 건네기 위해 이 기록을 남긴다. 진짜 사랑은 갚으라고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으로 걸어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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