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 42. 환상 속 그대

42. 환상 속 그대

by 김희경 작가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비난하려는 목적이 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관계와 감정은 특정 인물을 이상화하거나 동일한 관계를 반복하도록 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삶의 구원자, 기준, 전부로 삼는 관계가 지닌 위험과 그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기록한 개인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전적으로 저자의 주관적 경험과 성찰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다만, 이 글은 특정한 관계를 미화하거나 모범 사례로 제시하지 않으며, 독자 각자의 삶과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기를 전제하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 정서적 방임, 상실, 관계 의존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과 안전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나 과도한 감정 반응이 느껴질 경우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거나 누군가를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관계를 돌아보며 회복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한 개인이 겪은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담은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대신해 살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건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이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회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작은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AI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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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Q.JPG AI 생성

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42. 환상 속 그대


[사진서체: 네이버나눔명조체]

[AI 컷 만화]



문득 삶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삶이 뭘까, 사는 게 뭘까. 인생에서 이뤄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내지 못했을 때, 삶이 망가졌다고 느낄 때 할 수 있는 건 뭘까. 가끔 그런 생각을 붙들고 있으면 심연 끝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나는 늘 황급히 돌아 나온다.


어제 드디어 나의 팬이 누군지 찾아냈다. 캐릭터로 활동하면서 대표 이름을 내세우고 있지만 도통 누군지 알 수 없었던 사람이 있었다. 가끔 내게 글을 잘 보고 있다고, 힘내라고 말해주고, 조언을 한 번씩 던져주고 사라지던 사람. 여성인 것 같았고, 나와 나이가 비슷할 거라 짐작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달에 두어 번 말을 건네는 그녀가 왠지 모르게 고맙고, 혼자 애틋했다.


그러다 정말 그녀가 누군지 알고 싶어졌다. 시간이 많은 시간 부자는 이럴 때 탐정 놀이를 한다. 누군지 모를 그녀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요즘은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해도 실마리를 모을 수 있다. 누구길래 내게 관심을 가지고 응원을 보내주는 걸까. 혹시 그녀와 내가 친구가 될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품고 검색을 시작했다.


여러 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결국 그녀의 카카오톡을 찾아냈다. 이렇게까지 집요해질 수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재밌는 하루였다. 카카오톡에 추가된 후 뜬 사진을 보는 순간 멈칫했다.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내 글을 읽고, 응원을 보내고, 책으로 꼭 나오길 바란다고 말했던 사람이 오래전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충격이면서도 고마웠다.


말을 걸었다. 내게 탐정이냐고 되묻는 상대에게, 그렇게 할 말만 남기고 사라지니 궁금해서 찾아봤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공백의 시간에 대해 주고받았다. 삶은 각자 굽이쳤지만, 그 안에서 살아낸 상대의 삶은 단단하고 아름다웠다. 존경을 표하고 대화를 마쳤다.


저녁에 남편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신기하고, 이상하고, 묘한 기분이라고. 왜 굳이 자신을 감추고 말을 걸었을까. 상대가 말했다. 그냥 응원을 하고 싶었다고. 상대는 글을 보다가 힘이 되고 싶었다고. 나와 상대는 오래 연락을 끊고 살았기에 굳이 다시 엮일 사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사이였다. 고맙고, 새롭고,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종종 밤에 쉽게 잠들지 못한다. 오늘 새벽이 그랬다. 행복이란 뭘까, 슬픔이란 뭘까, 삶이란 뭘까.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과 내가 겪었던 모든 일들이 정말 사실일까. 나는 이 삶에서 무엇을 이루고 싶을까.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닿고, 연결되고, 끊어지고, 다시 연결되는 수많은 인연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고운 마음을 주고받고 있을까.


나는 평소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말을 많이 하면 피곤하고, 누군가에게 관심을 가지면 깊이 파고드는 편이라 스스로를 제어한다. 남편과 대화를 할 때도 대부분 그가 먼저 말을 꺼내고 이어간다. 내 삶이 낭떠러지 언저리에 떨어지고 난 이후, 관계들이 더 버거워졌다. 누군가 다가오면 생각이 먼저 달린다. 또 무엇을 해야 하지. 무엇을 나눠야 하지. 어디까지 열어야 하지. 그렇게 계산하다 보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어쩌면 이름과 얼굴 모르는 상대에게 더 애착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정체를 모르는 관계는 안전하다고 느낀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책임도, 실망도, 설명도 필요 없고 더 이상 이어나갈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응원이라는 말만 남고 관계는 더 진전되지 않고, 시작조차 되지 않는다. 과거의 나는 오랫동안 관계 속에서 필요 이상으로 책임을 떠안아왔다. 그래서 가볍게 이어지는 그 대화가 오히려 위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삶은 끝없이 이어지고,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반복된다. 더 이상 거창하게 이루고 싶은 건 없다. 대신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 곁의 소중한 사람을 더 많이 품고, 더 많이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 더 이상 부정적인 생각과 기억으로 스스로를 괴롭히지 않겠다는 다짐. 그래서 나는 무료하지만 잘 굴러가는 삶을 살고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무엇을 먹고 싶은지 귀를 기울이고, 지금 해결해 줬으면 하는 것이 있는지 묻는다.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타인을 사랑했던 것처럼 나를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어제의 탐정 놀이는 무료한 일상에 떨어진 작은 물방울 같았다. 찾는 과정이 재밌었다. 혹시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는 마음이 소녀처럼 부풀었다. 결과는 “이 자식, 보이스 피싱이냐?”라는 농담으로 끝났지만, 과정은 생생했고 재밌었다.


돌아보면 나는 원래 파고드는 사람이었다. 벽돌 퍽치기 살인미수 피해자였을 때도 그랬다. 당시 나는 강력계 형사님들과 자주 만나 내가 적어둔 일기와 메모를 보여드렸다. 시계열 정리(한 시간 시, 분 단위로 10여 줄씩 기록한 일기), 상대의 행동과 표정, 자세, 느낌까지 기록한 메모들. 형사님들은 내가 형사와 잘 맞는다고 했다. 기록은 나의 생존 방식이었다. 혼란을 구조로 바꿔 생각을 털어내도록 해 주는 장치 중 하나였다.


나는 아직도 많은 것을 기억하며 산다. 그래서 가끔 스스로가 피곤하다. 상대가 “그것까지 어떻게 알아?”라고 물을 정도로 많은 것을 머릿속에 담고 사는 사람은 쉽게 편해지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적어두면 기억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팬을 잃은 걸까, 얻은 걸까. 가끔 10년도 넘게 연락이 끊겼던 인연들이 인터넷 연결망을 통해 다시 나타난다. 그럴 때마다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잘 지내지?”라는 인사에 한마디를 잇지 못하는 내가 있다. 그래서 어쩌면 그는 팬이라는 얼굴을 빌려 말을 걸었던 건지도 모른다.


나는 글을 쓰지만 사람들과 깊은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는다. 겁이 나기도 하고,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다. 글 속에서 연결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낀다. 글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환상을 만든다. 나 역시 그 안에서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연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향해 내가 만들어낸 이미지가 환상이었듯, 누군가에게 나도 환상일 수 있다.


오늘도 아침이 왔다. 새벽 내내 사념에 붙잡혀 잠을 설친 덕분에 반쯤 감은 눈으로 남편을 깨웠다. 보들보들한 볼에 입을 맞추고 커피를 내렸다. 그가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다시 침대에 누워 잠을 보충했다. 하루는 흘러가고, 책과 글과 생각과 남편이 내 삶을 가득 채운다. 과거의 전쟁 같던 날들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고요가 남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가 이제는 행복이다. 나는 더 이상 누군가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그 과정을 종이에 옮기며 오늘도 조금 성장했다고 스스로를 감싼다.


안녕, 나 오늘 잘 살고 있어. 그러니까 곧 우리 만나자.라고 미래의 내게 사랑 편지를 보내본다.



참고자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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