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하고 싶은 마음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비난하려는 목적이 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관계와 감정은 특정 인물을 이상화하거나 동일한 관계를 반복하도록 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삶의 구원자, 기준, 전부로 삼는 관계가 지닌 위험과 그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기록한 개인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전적으로 저자의 주관적 경험과 성찰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다만, 이 글은 특정한 관계를 미화하거나 모범 사례로 제시하지 않으며, 독자 각자의 삶과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기를 전제하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 정서적 방임, 상실, 관계 의존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과 안전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나 과도한 감정 반응이 느껴질 경우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거나 누군가를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관계를 돌아보며 회복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한 개인이 겪은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담은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대신해 살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건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이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회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작은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AI 그림
[사진서체: 네이버나눔명조체]
[AI 컷 만화]
새벽 다섯 시. 남편은 자고 있고, 내 머릿속에서는 캐릭터들이 깨어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아직 한 줄도 쓰지 못한 채 그들 뒤에 서 있다. 어떤 문장으로 시작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또 새벽을 보낸다. 시간 부자(백수)의 특권은 이런 시간에 마음껏 깨어 있을 수 있다는 것, 대신 생각이 깊어진다.
요즘 남편은 내가 만든 스파게티가 맛있단다. 이틀 연속 같은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이 다음 날에도 또 해 달라고 말했다. 정말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래서 조리법을 기록해 두었다. 언젠가 다시 원하면 같은 맛으로 정확히 재현하고 싶어서다.
생각보다 맛의 세계는 훨씬 냉정하다. 맛집이라 불리는 식당도 맛이 흔들리면 단골이 떠난다. 손님은 '맛있다' 보다 '같다'를 더 원한다. 맛은 기본이고, 기대한 맛이 정확히 구현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집 식당도 다르지 않다. 우리 집 식당은 오직 남편만을 위한 식당이기 때문에 남편 입맛에 모든 맛을 맞춘다.
좋은 재료를 고르고, 보관하고, 예산 안에서 계획해 식재료를 들인다. 원하는 맛을 안정적으로 내는 과정이 재미있다. 오직 한 사람의 입맛만 맞추면 되는 세계는 생각보다 평화롭고 안정적이다.
어제 새벽에는 잠이 오지 않아 창고 재고를 정리했다. 무엇이 있는지, 얼마나 남았는지, 소비 기한은 언제까지인지 파악한 후 적어 냉장고 위에 붙였다. 그러자 무엇을 비워야 하고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또렷하게 보였다. 덕분에 급하게 사지 않아도 되고, 할인 기간에 맞춰 물건을 천천히 들일 수 있게 됐다. 나는 이렇게 삶을 관리하는 걸 좋아한다. 확신의 계획형 인간이다.
집안을 정리하고 꾸리면서 미니멀리스트를 꿈꾸지만 쉽지 않다. 맥시멀 리스트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며 꾸려가지만 이마저 쉽지 않다. 덕분에 중간 어딘가에 서 있다. 너무 적어도 불안하고, 너무 많아도 불안하다. 그래서 몇 달, 몇 년 단위로 계획한다. 계획할 때 직장 생활을 하는 남편에게 필요한 것들을 우선한다. 그의 취향을 반영하면 물건을 끝까지 쓸 수 있고, 남는 것이 줄어든다.
설 연휴가 드디어 시작됐다. 남편과 만세를 불렀다. 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다는 단순한 기쁨 덕분이다. 우리 집은 아이가 없기 때문에 조용하다. 편안하지만 동시에 질문을 남긴다. 이대로 계속 아이 없이 살아도 될까.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지금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혹시 내 상처를 아이에게 물려주지는 않을지. 이 문제를 놓고 아직 기도 중이다.
요즘 나는 글을 써볼까 생각하고 있다. 판타지든 로맨스든 무협이든 여러 장르를 오가며 써보고 싶다. 이 생각을 남편에게 말했더니 남편은 유일한 독자가 되어주겠다고 했다. 참 고마운 마음이다. 글이 넘치는 세상이라 하루에도 수많은 책이 태어나고 사라진다고 들을 때면 지레 겁부터 난다. 그러다 그렇다면 더더욱 놀이처럼 써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마음이 기운다.
몇 년 전에는 기타를 배우고 싶었다. 한 번도 쳐본 적 없는 기타를 꿈에서까지 치고 있을 만큼 간절했다. 그래서 악기상까지 갔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러나 그 시기가 지나자 그 마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하고 싶은 마음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그리고 나는 그 사실을 몇 번이나 놓쳤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루지 않으려 한다. 판타지 소설이 쓰고 싶다면 써보겠다고 마음먹고 제목과 표지를 정해 올려놓은 것도 그 일환이다. 어제오늘 사이 전체 가닥을 잡았다. 며칠 안에 첫 삽을 뜰 것이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아침이 밝아온다. 오늘은 옥상에 올라가 새벽 공기를 마실 생각이다. 벌써부터 마음이 부푼다. 이 기록을 남겨 오늘의 생각을 미래의 나에게 보낸다. 오늘과 내일의 나를 위해 고맙고 고운 하루를 기록한다.
하고 싶은 마음에도 유통기한이 있다. 이번에는 마음이 식기 전에 오늘을 채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쓰는 삶을 살아간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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