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채움의 방향을 바꾸는 해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비난하려는 목적이 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관계와 감정은 특정 인물을 이상화하거나 동일한 관계를 반복하도록 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삶의 구원자, 기준, 전부로 삼는 관계가 지닌 위험과 그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기록한 개인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전적으로 저자의 주관적 경험과 성찰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다만, 이 글은 특정한 관계를 미화하거나 모범 사례로 제시하지 않으며, 독자 각자의 삶과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기를 전제하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 정서적 방임, 상실, 관계 의존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과 안전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나 과도한 감정 반응이 느껴질 경우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거나 누군가를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관계를 돌아보며 회복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한 개인이 겪은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담은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대신해 살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건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이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회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작은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AI 그림
AI 제작
[사진서체: 네이버나눔명조체]
[AI 컷 만화]
항아리를 채우던 아이는 자라서 장바구니를 채우는 어른이 되었다. 올해는 그 방향을 조금 바꾸어 보려 한다.
물건이 떨어질 때마다 하나씩 채워 넣는다. 무조건 예쁘다고, 좋다고, 싸다고 쟁이기만 하면 결국 대부분 버리게 될 수 있다. 1+1, 2+1의 함정은 싸니까 사두는 게 이익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점이다. 샀다 내가 다 사용하지 못할 것 같으면 주변에 나눠주면 되니까 더 좋잖아라는 생각까지 보태진다. 그렇게 계산은 늘 이득처럼 보이는데, 덕분에 지출이 줄어들지 않는다. 할인의 역설이 생기는 지점이다.
세탁 세제와 설거지용 세제가 똑떨어졌다. 장바구니에 담으며 순간 놀랐다. 더 많이 사고 싶은 마음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왕 사는 거 배송비를 생각하면 몇 개 더 사는 게 낫지 않아? 이번에 사면 더 싸잖아. 몇 년 치를 사두면 당분간 신경 안 써도 되잖아. 머릿속 계산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다 멈춘다. 몇 년 동안 마음이 변하지 않을까. 보이지 않는 곳에 이미 하나 더 있는 건 아닐까. 가득 쌓아 두고도 또 부족하다고 느끼는 건 아닐까. 세제를 바라보며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반짝이는 종이로 별을 접고, 천 마리 학을 접어 유리병에 담아 두던 아이. 가득 차 있는 항아리를 바라보는 게 그렇게 좋았다. 비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나도 무언가를 해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으니까.
지금 세탁기 옆에 놓인 세제들을 보며 느끼는 뿌듯함도 비슷한 감정일지 모른다. 나는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가득 차 있는 장면을 사고 있었던 건 아닐까. 비어 있지 않다는 안도감을 사는 건 아닐까. 보석처럼 예쁜 세제를 보며 매일 세탁하는 나를 위한 소비야라고 말해 본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몇 년 치를 쟁여 두는 일까지 나를 위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공간도 돈이고, 관리도 에너지가 많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완벽한 미니멀리스트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멈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새해 첫날 아침, 샤워를 하며 생각했다. 올해는 무엇을 채울 것인가. 답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때그때 해보기라고 정했다. 그중 하나가 베이킹이다. 작년까지 3년 넘게 한식과 양식을 배웠다. 그래서 올해는 반죽을 만져 보고 싶다. 밀가루와 물과 시간을 섞어, 천천히 부풀어 오르는 걸 기다려 보고 싶은 기다림의 미학. 베이킹은 내게 여러 가지 생각과 마음을 허용해 준다. 올해는 베이킹처럼 내가 발효되는 시간들을 보내고 싶다.
물건을 쌓아 두는 대신 시간을 쌓는 해. 수납장을 채우는 대신 하루를 채우는 해. 올해는 채움의 방향을 조금 바꾸어 본다. 이 가득한 기분을 기록으로 남긴다.
새해 복 많이 받아, 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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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