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우리는 더 이상 소진하지 않기로 했다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비난하려는 목적이 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관계와 감정은 특정 인물을 이상화하거나 동일한 관계를 반복하도록 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삶의 구원자, 기준, 전부로 삼는 관계가 지닌 위험과 그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기록한 개인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전적으로 저자의 주관적 경험과 성찰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다만, 이 글은 특정한 관계를 미화하거나 모범 사례로 제시하지 않으며, 독자 각자의 삶과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기를 전제하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 정서적 방임, 상실, 관계 의존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과 안전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나 과도한 감정 반응이 느껴질 경우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거나 누군가를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관계를 돌아보며 회복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한 개인이 겪은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담은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대신해 살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건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이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회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작은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AI 그림
AI 이미지 생성 제작
[사진서체: 네이버나눔명조체]
[AI 컷 만화]
매주 주말을 맞이할 때면 잘 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과거의 나는 주말에도 끊임없이 할 일을 만들었다. 쉬면 뒤처질 것 같았고, 멈추면 게으른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때는 그게 성실이 아니라, 나를 닳게 하는 방식이었다는 걸 몰랐다. 덕분에 오늘의 진한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쉴 새 없이 굴러가는 자동차는 어떤 결과를 맞이할까. 아무리 튼튼한 기계라도 반복되는 과부하는 고장을 만든다. 타이어가 닳고, 엔진이 과열된다. 사람의 몸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전문가는 사람의 신체를 잘 살펴보면 정교한 화학공장, 기계라고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몸은 쉴 새 없이 내가 인지하든 아니든 신체 곳곳을 작동하고, 움직이고, 지워낸다. 그중 하나라도 망가지면 천천히 전체 기관들을 망가트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자가면역질환이라든지 자율신경계 기능 이상 같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질환들이 발현되도록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물론 단독 원인이라는 근거는 없다.).
의학적으로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우리 몸은 HPA 축(시상하부-뇌하수체 -부신 축)이 활성화된다. 이때 코르티솔과 같은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 반응은 원래 생존을 위한 것이다. 문제는 그 상태가 길어질 때다. 인간의 몸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호르몬을 분비해서 염증을 잡는다. 호르몬의 역설은 단기적으로는 생존에 도움이 되지만, 반복적으로 과잉 분비될 경우 신체를 망가트리는 만성화 상태가 된다는 점이다. 만성 스트레스는 자율신경계의 균형을 흔들 수 있고, 면역계 조절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들이 있다. 스트레스가 모든 질환의 직접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회복하지 못한 과부하는 분명 몸의 여유를 줄인다.
만성적인 염증 반응은 혈관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고, 콜레스테롤 수치도 생활습관, 수면, 스트레스 같은 여러 요인에 의해 흔들릴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식습관뿐 아니라 내 삶의 속도와 스트레스 상태도 함께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한 때 기저질환 없이 콜레스테롤 수치가 반복적으로 높게 나왔었다. 병원에서는 명확한 원인을 찾기 어렵다고 했다. 몸은 신호를 보내는데 질병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을 줬다. 그때 병원마다 가서 검사를 하고, 진단을 받았는데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시며 부신피질 호르몬제가 들어간 알약을 처방해 주셨다. 그리고 몸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염증이 과잉 생성되고, 그 염증들이 혈관과 기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때 간과 뇌는 신체 곳곳에 파괴된 세포들을 치료하기 위해 콜레스테롤을 과잉 생성해 혈관으로 내 보낸다고 한다. 몸의 수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묻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의료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면 반드시 원인이 무엇인지 스스로 돌아보고 생각해봐야 한다. 그때 내 삶의 속도와 내용을 들여다보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스트레스는 수면을 흔들고 수면은 호르몬 균형을 흔들고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 결국 대사에 영향을 준다. 지난날들 동안 몸과 마음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생각한 건, 생각보다 훨씬 내가 예민하다는 사실이었다. 예민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내 생각과 달리 나는 특출 나다 할 정도로 예민했다. 예민함이 나쁜 기질은 아니지만, 관리되지 않으면 과도한 책임감과 타인 중심적 배려로 쉽게 변형된다. 나는 남을 챙기는 데에는 능숙했지만, 나를 챙기는 일에는 서툴렀다. 덕분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게 미리 상황과 관계를 살피곤 했는데, 이런 행동들이 오히려 자기 소진으로 이어졌다. 이걸 더 빨리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나는 타인보다 나를 더 많이 배려하고, 잘 재우고, 잘 먹이고, 쉬게 하면서 내 삶을 굳건하게 세워갈 수 있었을 것이다.
몸과 마음의 상호 관계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나는 남편을 통해 나를 본다. 나만큼 예민한 남편의 마음과 몸을 돌보면서 최대한 남편이 오늘의 나처럼 아프게 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직장에 다니더라도 내 역량을 넘어서 구부러짐을 반복하면 20년 일할 수 있었던 것이 5년, 3년, 1년으로 줄어든다. 몸의 건강과 상관없이 마음의 역량이 닳으면 살아갈 힘이 줄어든다. 이건 직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관계에서도, 신앙에서도, 봉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한때 멈추지 않는 삶을 살았다. 보육시설 봉사, 무료 과외, 교회 교사 봉사, 양가 어른들의 무리한 요구들까지 들어주며 주말을 채웠다. 그걸 유지하는 동안 우리는 아주 서서히, 그리고 빠르게 닳아갔다. 과거의 나는 지속적으로 행위로 사랑을 증명하려 했다. 더 하면 더 사랑받을 것이라 믿었지만, 그 믿음이 나를 더 많이 소진하게 만들고, 아프게 만들었다. 그래서 과거의 나는 삶이 항상 피곤하고, 불행했다. 그 불행을 감추기 위해 더 많은 행위를 창조해 냈다. 그리고 스스로를 속이기 위해 닳아 없어지는 기독교인을 표방하면서 삶을 꾸려나갔다.
덕분에 항상 피로에 절어있고, 회복되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마음을 살필 시간이 부족했다. 그 상태에서 하나님이 알아서 해결해 주실 거라며 밀어붙인 결과는 두려움, 고통, 자기 소진, 번아웃으로 이어졌다. 사실 나뿐 아니라 남편 역시 번아웃을 진하게 경험했는데, 워낙 인내심이 강하고 깊은 사람이라 괜찮다는 말로 대부분 넘겼다는 걸 오늘에 와서야 알게 됐다. 지금은 행위주의는 신앙이 아니라 불안의 또 다른 이름일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래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도 남편도 멈추게 했다. 내가 멈추지 않으면 남편도 멈추게 할 수 없어 가장 먼저 나를 멈췄다. 그 일환 중 하나가 양가에 발을 끊는 일이었다. 아무리 해도 그릇을 채울 수 없고, 오히려 더 많이 하지 않으면 욕을 먹는 관계를 제일 먼저 덜어냈다. 가족 관계에서도 호의가 계속되면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지금은 남편에게 과한 일정을 소화하도록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남편이 온전히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일을 우선하고 있다. 그 보조 중 요리, 집안일, 정리, 마음 돌봄 등이 있다. 나와 비슷한 재질을 가진 사람과 살아가는 건 여러 면에서 참 유익이 많다. 내가 말하지 않는 것, 상대가 말하지 않고 버티는 것도 우리는 서로 잘 알아보고, 배려한다.
서로가 있는 주말, 서로를 배려하는 주말, 서로의 마음과 몸 건강을 신경 써주는 주말을 우리는 서로에게 선물한다. 과거에 하나님이 원치 않으셨던 봉사와 복잡한 삶들로 서로를 소진하면서 파괴의 길을 걸었던 것이 생각날 때면 마음이 뜨끔하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이 이렇게 하면 더 사랑해 주실 거야라는 잘못된 생각과 믿음으로 행위주의에 빠진다. 그리고 아주 쉽게 그걸 통해 오늘의 복과 평안을 보상받으려 한다. 과거의 나는 내가 그랬다는 걸 몰랐는데, 돌아보니 항상 주님께 내가 이렇게 많이 했어요. 라며 스스로를 변론하고, 주님께 좋은 것을 당당히 달라고 기도하곤 했다. 지금 와선 참 부끄러운 기도들을 많이 드렸다는 생각을 한다.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뭉치고 흩어지는 일을 반복하면서 마음이 복잡해질 때면 이렇게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쓴다. 글을 쓰고 나면 마음이 정리되고, 평안해져서다. 최근까지 놓지 못하고 고민했던 내용 중 하나는 누군가 나를 평가한 일이었다. 어른이 되고 나면 누구도 나에 대해 고칠 점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게 가장 무서운 일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누군가의 평가와 질책을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생각하고, 정리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럴 때면 스스로를 괴롭히고, 관계의 시작점까지 가서 그 관계를 시작한 스스로를 탓하게 된다. 사람 보는 눈이 여전히 없다고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상대가 말한 내가 정말 나인 것처럼 느껴져 고통스러웠다. 이런 일을 반복하면서 드디어 상대도 불완전한 인간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누군가 덕분에 내가 한층 더 성장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상대가 뭐라고 하든, 뭐라고 생각하든 그게 나의 전부는 아니다. 그리고 상대가 말한 나 역시 상대가 만들어낸 또 다른 존재일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상대 역시 불완전한 인간일 뿐이다. 고민을 반복하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규정과 판단은 오직 나만 할 수 있다.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선물하면서 아침을 깨웠다. 내가 이상한 것 같아. 내가 문제야.라는 말속에 스스로를 묻어버리고 속상해하는 것보다 그냥 원래 인간이라는 게 다 조금씩은 이상해라는 마음으로 나를 바라봤다. 오늘 아침에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남편이 바라보면 분명 말을 건넬 것이다.
"괜찮아? 넌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가장 괜찮고 고운 사람이야."
라고. 뭔가 말을 건네지 않아도 표정과 행동만 봐도 내가 위로가 필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과 사는 삶은 100억 자산가 부럽지 않은 삶이다. 물론 100억까지 있다면 정말 더 행복하겠지만.
주말을 맞이하면서 이번 주말엔 좋아하는 뭘 해줄까 고민한다. 밥 값을 못하면 밥을 굶어야 한다고 속상해하며 밥을 잘 먹지 않던 남편이, 오늘의 대식가가 되기까지 참 많은 요리를 해 왔다. 남편이 잘 먹고, 맛있게 먹고,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식탁에 올리는 일을 반복하면서 함께 행복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이번 주말엔 그래서 더 많이 맛있는 걸 해 먹을 생각이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요리를 억지로 먹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원하고, 먹고 싶어서 부탁한 요리 위주로 구성할 생각이다.
출근했다 돌아오면 주말이라니, 벌써 신이 난다. 이번 주말엔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우리 만의 주말을 완성할 생각이다. 그래서 평일 동안 서로 원하는 것들을 잘 이뤄갈 수 있도록 온전한 휴식을 누리도록 나와 남편을 도울 생각이다. 오늘의 나는 더 이상 나와 우리를 소진하지 않기로 했다. 남을 챙기듯 이제는 나를 먼저 챙길 것이다. 나를 챙기는 선택이 결국 우리를 지키는 선택이라는 걸 알게 됐으니, 나에게 쉼을 허락한 것처럼 남편의 시간과 공간을 존중하는 주말을 보낼 생각이다.
나는 나를 지키는 방식으로 살아가기로 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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