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 46. 스스로 선택할 때

46. 스스로 선택할 때 나는 살아난다

by 김희경 작가

이 책은 저자의 개인적 경험과 감정, 그리고 그로부터 얻은 심리적 통찰을 바탕으로 구성된 에세이입니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사생활 보호를 위해 가명으로 처리되었으며, 실제 인물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본문은 사실을 단정하거나 특정 개인, 단체를 지칭·비난하려는 목적이 없습니다. 인물, 장소, 관계, 시점, 상황의 일부는 가명, 합성, 변형되었으며, 식별 가능한 세부 사항은 변경되었습니다.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는 순전히 우연입니다.


이 글에 등장하는 관계와 감정은 특정 인물을 이상화하거나 동일한 관계를 반복하도록 권유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삶의 구원자, 기준, 전부로 삼는 관계가 지닌 위험과 그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기록한 개인적 성찰임을 밝힙니다.


저자는 타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침해할 의도가 없으며, 본문의 해석은 전적으로 저자의 주관적 경험과 성찰에 기반한 것입니다. 이 책은 유사한 경험을 지닌 독자에게 위로와 통찰을 전하기 위한 진솔한 기록입니다. 다만, 이 글은 특정한 관계를 미화하거나 모범 사례로 제시하지 않으며, 독자 각자의 삶과 상황에 그대로 적용되기를 전제하지 않습니다.


본문에는 가족 내 학대, 정서적 방임, 상실, 관계 의존 등 트라우마를 환기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글을 읽으실 때 스스로의 마음과 안전을 가장 우선하시고, 불편함이나 과도한 감정 반응이 느껴질 경우 언제든 읽기를 멈추셔도 괜찮습니다.


저자는 이 글을 통해 과거를 고발하거나 누군가를 단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관계를 돌아보며 회복에 이르는 과정을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을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닌, 한 개인이 겪은 성장과 치유의 여정을 담은 성찰의 결과물입니다.


이 기록이 비슷한 경험을 가진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대신해 살거나 누군가에게 자신을 맡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건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글이 각자의 속도와 방식으로 회복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작은 용기와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AI 그림



AI 제작



쓰는 삶을 살아갑니다


46. 스스로 선택할 때 나는 살아난다


[사진서체: 네이버나눔명조체]

[AI 컷 만화]


스스로 선택할 때 나는 살아난다


아뿔사~! 너무 많이 샀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차곡차곡 정리했다. 페페론치노가 사고 싶어서 알아보다가 용량 대비 가격이 너무 비싸게 느껴져서 베트남 고추를 구입했다. 알아보니 베트남 고추를 넣어도 된단다. 맛이 약간 다르긴 한데, 베트남 고추를 넣고 볶은 스파게티도 꽤 맛있었다.


어쩌다 보니 너무 많은 양을 사서 고민이 됐다. 냉동실 칸도 부족하고, 이걸 1년 안에 다 먹을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나눠줄 사람이 없어서 냉동실에 다 넣긴 했는데, 다음엔 먹을 만큼만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앞으로 이걸 넣어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을 하나씩 찾아 만들어야겠다.


음식을 매일 조리하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내가 생각보다 훨씬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는 거다. 음식을 만들 때마다 중학생 때 가정실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던 시간이 떠오른다. 그때 내게 스승이 되어주셨던 가정 선생님은 내가 할 줄 아는 게 많아서 나중엔 뭘 하며 살아야 할지 고민될 거라고 하셨다. 그런 말을 자라는 동안 자주 들었는데 공부만 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좀 신기하다.


사실 여러 가지를 잘하는 건 좋은 일이지만, 한 방향으로 밀어붙이지 않으면 흩어지기도 한다. 나는 이것저것 배웠지만, 그중 하나를 끝까지 밀어본 적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중 하나를 선택해 직업으로 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전혀 다른 길인 공부만 주야장천했다.


가정실에서 배운 건 스텐실, 뜨개질, 가방 만들기, 생활 소품 만들기, 십자수, 샌드위치, 탕수육 같은 요리들이었다. 너무 많은 걸 알려주셔서 지금은 다 기억나지 않지만, 만들고 또 만들던 그 시간만은 또렷하다. 국립학교라 선생님은 1년 부임 후 다른 학교로 가셔야 했고, 떠나시며 나를 많이 아쉬워하셨다. 조금 더 이 학교에 있을 수 있었다면 나를 이쪽 방향으로 키워보고 싶었다고 말씀하셨다. 가시면서 다음 선생님이 여자 선생님이시면 꼭 나를 부탁하고 가시겠다고 하셨다. 안타깝게도 기술, 가정 과목으로 남자 선생님이 오셨다.


그 후에는 가끔 들르던 미술실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매일 풍경을 그리고, 인물화를 그리고, 종이에 물감을 칠했다. 그때 내게 미술을 알려주셨던 선생님이 미술협회 회장을 맡고 계신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를 꼭 미술 계로 키워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 일환으로 미술 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오셔서 미술로 키워보자고 하셨지만, 결국 이야기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형편이라는 말이 그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나는 하고 싶은 게 생기면 스스로 스승을 찾아다녔다. 피아노가 치고 싶으면 학원을 찾아가 설득했고, 뜨개질을 배우고 싶으면 고수를 찾아갔다. 그렇게 배우고, 만들고, 또 다른 걸 배우며 시간을 쌓아왔다. 어쩌면 그런 시간들이 어린 시절을 견딜 수 있게 해 줬던 게 아니었는지 생각한다.


새벽마다 할아버지의 염소를 돌보고 농사를 돕던 시간도 여전히 내 몸에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누가 깨우지 않아도 새벽에 일어난다. 빵을 굽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수경 재배를 하고, 요리를 하는 모든 것들이 어린 시절에 했던 관성이 그대로 남아 발현된 거라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나는 특별하진 않지만 오래 가는(하는) 사람인 것 같다. 특출나게 잘하는 건 없지만,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요리든 만들기든 글쓰기든, 질리지 않고 계속할 수 있는 힘이 내게 있다는 것이 고맙다. 물론 개 중엔 하다 그만 둔 것들도 있다.


오늘 아침 불을 켜고 생크림을 만들면서 생각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나는 또 무언가를 하고 있다. 나는 누가 시키면 오히려 하기 싫어지는 사람이라, 스스로 시간과 할 일을 고를 수 있는 지금의 삶이 마음에 든다. 통제 속에 있으면 숨이 막히고, 자율 속에 있으면 숨이 트인다. 이제야 그 차이를 명확히 안다.


요즘 가끔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내가 복을 받으며 살고 있구나. 인생은 정말 살아보고 볼 일이라는 생각. 평소 주말에는 글을 잘 남기지 않는데, 오늘은 남겨야 할 글이 쌓여 있어 적는다. 하루에 하나씩은 꼭 쓰겠다는 약속을 이어가는 중인데, 며칠을 빼먹으면 마음이 쫏겨서 쓰게 된다. 이것도 누가 시킨 게 아니라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선택한 일이니까 매일 즐겁게 무엇이든 기록하고 있다. 남편과 함께 살아가며, 남편과 나의 행복을 생각하며 살 수 있는 삶. 내가 나를 소중히 대하는 법을 배워가는 시간 속에서 오늘도 하루를 선택한다.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오늘은 더 감사하다. 타인이 아니라 나를 위해 별것 아니어도 내가 고를 수 있는 하루를 산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복이라고 느낀다. 나는 이 삶을 누리면서 내 행복을 나와 내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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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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