맷집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물리적인 통증에는 물리적인 치료가 즉각적인 효과를 보이는 것 같다.
그걸 알게된 후 도수치료, 추나치료, 거기에 따라오는 온열/척추/수압 마사지 베드, 물리치료기계 등을 마치 놀이공원에 놀러 가서 놀이기구 골라 타듯이 하고 다녔다.
각각의 특징과 효과와 비용과 시간이 다 달랐고, 통증별 효과를 비교해 가면서 나름대로 조합해서 회사 휴무일에 맞춰 병원 방문 스케줄을 짜서 치료를 이어나갔다.
처음에는 효과가 있다가도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효과가 한계치에 다다른 것처럼 더 이상 변화가 없을 때가 오기도 한다.
꾸준히 받던 치료도 효과가 더 이상 없는 것 같으면 치료 스케줄에서 빼고 새로운 뭔가를 넣어야 했다.
갱년기 세계를 탐험할 땐 새로운 길목 곳곳에 놓인 함정인지 아이템인지 모를 무언가를 끊임없이 시도해보고, 그에 따라 매번 경로를 새로 짜야 하는것이다.
그게 이 세계의 매력이자 징글징글함이다.
이번에는 지인 추천으로 물리적인 치료에 안마를 넣어보았다.
추천 사유는 안마원을 나오는 길에 침침했던 눈이 확 밝아지고 몸이 가벼워졌다는 것이었는데 그 정도면 내 귀를 팔랑거리게 만드는데 충분했다.
그 추천의 의견을 듣고, 집 근처 국가공인안마사가 운영하는 안마원을 검색하고 후기를 비교해 예약까지 완료하는데 만 하루가 걸리지 않았다.
난 피부과에서 하는 마사지 정도만 받아봤던 터라 안마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굳어있는 근육을 뼈에서 한 줄 한 줄 힘으로 뜯어내서 '너는 사실 다른 어디에 뭉치고 붙어서 기생하는 게 아니라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독립적인 근육이다.'라는 걸 근육 하나하나에게 교육시키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것은 흡사 나에게 행하는 물리치료가 아니라 내 근육에 대한 물리교육에 가까웠다.
뚝. 뚝. 소리가 날 때마다 ‘오. 그건 뼈인가요.’ 하고 물으면 ‘아뇨, 근육이 뼈처럼 뭉친 거예요.’라는 대화가 여러 번 반복되었다.
‘머리가 엄청 굳었는데, 평소 두통이 있나요? 무릎관절이 나이에 비해 많이 안 좋으신데 무릎 안 아파요?’
‘오오. 맞아요, 맞아요!’
이 대목에서는 마치 용한 점집에 가서 말하지도 않은 내 상황을 쏙쏙 맞추는 점사를 듣는 것 같았다.
도중에 아프면 참지 말고 아프다고 얘기를 하라고 했지만, 난 아프지 않았다.
누르면 눌러지는 거고, 당기면 당겨지는 거고 거기에 통증이라고 불릴만한 감각은 없었다.
아프단 얘기가 없으니까 안마사는 계속 말을 걸면서 내 목소리를 체크하고 있었는데, 이 정도면 꽤 아플 텐데 목소리가 너무 편안하게 들린다고 했다.
‘안 아프니까요.’
‘이 정도면 웬만한 남자들도 엄청 아파하는데.’
‘그럼 안 좋은 건가요. 진짜 안 아파요.’
‘안 좋은 건 아니고.. 맷집이 엄청 좋으신 거죠.’
와우, 세상에. 난 태어난 지 십 수년 만에 그동안 모르고 있던 피지컬 재능을 찾은 것이다!
학창 시절 내가 제일 못하는 과목은 체육이었는데, 정말 열심히 연습해야 남들 하는 만큼 따라가는 수준이었다.
체력장 같은 건 물론이거니와 기본적인 달리기나 구르기 조차 연습이 꽤 많이 필요했고, 선생님은 연습해도 못하는 아이에게 노력이 가상해서 점수를 주는 지경이었다.
그런데 사실 내 재능은 그런데 있었던 게 아니라 맷집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뗀석기를 기가 막히게 잘 만드는 재능을 타고났으나, 태어나보니 인공지능 시대라 재능을 알아채지 못하는 그런 것과 같을 것이다.
난 원래 통증에 엄청 예민한 사람이었는데, 통증 모드로 오래 지내다 보니 통증의 역치가 엄청 높아진건지도 모르겠다.
술을 전혀 하지 못하는 알쓰가 매일매일 조금씩 술을 마셨더니 어느새 말술이 되어있더라는 그런 무용담처럼.
난 갱년기 세계에서 각종 통증과 싸우면서 나도 모르게 새로운 스킬을 획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안마를 받고 나오던 첫날, 지인의 추천처럼 눈이 밝아진 건 아니었지만, 전신에 피가 싹 도는 느낌과 함께 어깨가 정말 가벼웠다.
평소 잔잔하게 머리를 죄던 두통기도 걷혔다.
잔잔하게 존재감을 뽐내던 허리 어디쯤의 시큰한 느낌도 사라졌다.
목을 돌릴 때마다 우두둑 소리가 나서 일하다 지루해질 때쯤 한 번씩 돌려보곤 하던 목에선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4-5일쯤 지나자 다시 서서히 사라졌던 그것들이 다시 스멀스멀 다가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렇다면 이건 확실히 안마의 효과다.
이로써, 내 치료 루틴에 안마 항목이 하나 더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내 갱년기 세상을 탐험하는 샛길이 하나 더 생긴 셈이다.
그리고 새로이 획득한 스킬은 통증으로 의기소침해질 때마다 용기와 희망이 될 것이다.
[히치하이커의 메모] 모든 통증엔 일장일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