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을 보는 눈
'아, 또 뭐야.'
낯선 감각이 잠을 깨웠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입술과 입안의 경계가 바삭해지고, 콧구멍과 목구멍의 점막은 물기가 마르다 못해 타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눈을 떠보려고 했지만 눈과 눈꺼풀 사이가 말라붙어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흐읍’
모든 수분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은 건조한 공기를 폐포 깊숙이 넣어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곧 기침이 되어 튀어나왔다.
어젯밤 자기 전에 머리맡에 젖은 수건을 걸어놓는 걸 잊었었나.
조금씩 뒤척여볼 때마다 눈이 까끌거리고 피부가 낯설게 땅겨졌다.
손등이 따갑고 발뒤꿈치가 파삭해진 느낌이 들었다.
어제 잠들기 전까진 멀쩡했는데?
매번 새로운 증상은 갑자기 찾아온다. 심지어, 자다가 갑자기.
더듬더듬 일어나 일단 물을 마셨다.
모래 위에 물을 부은 것처럼, 입과 목의 점막은 물을 삼키고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타들어갔다.
오히려 물을 마시려고 입술을 움직인 결과 바삭해진 입가가 갈라져 따가웠다.
컵을 쥔 손은 손톱 주변이 하얗게 일어나 있었고 손등의 피부는 하얗게 말라붙어 생긴 선이 불규칙적으로 만든 무늬가 자리 잡고 있었다.
핸드크림을 짜서 발라봤지만 건조하다 못해 뻣뻣해진 손등에서 겉돌 뿐이었다.
컵으로 또 물을 마시면 입가가 더 터져 피가 날 것 같아서 일단 립밤을 바르고 다시 물을 마셔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물기를 잃은 울퉁불퉁해지고 보푸라기가 일어난 것 같은 입술에 립밤을 발라보았지만, 바른다기보단 입술에 긁혀버렸다.
이번엔 빨대로 물을 다시 마셔봤는데 역시나 물을 삼키고 나면 입안엔 물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금방 바른 립밤도 입술을 부드럽게 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자기 전에 물에 적셔 침대 머리맡에 걸어놓았던 수건을 만져보았다. 아직도 약간의 수분을 머금고 있었다.
침대 옆에 놓인 습도계의 숫자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꿈인가. 그렇다면 이건 좀 기분 좋지 않은 꿈이다.
눈꺼풀과 말라붙어버린 눈을 인공눈물을 넣어 제대로 뜬 후 가습기를 꺼내 틀었다.
가습기와 나는 같은 공간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것 마냥 내 건조함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했다.
가습기에 입과 코를 대고 숨을 들이마셔봤지만, 점막이 타들어가는 느낌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혀 도움 되지 않는 물을 한 컵 더 마시고 자리에 누웠다. 이미 깬 잠은 다시 오지 않았다.
이건 현실이었다.
집이 많이 건조하더라도 사람들이 북적이는 회사라면 괜찮지 않을까. 내심 그런 기대로 아침을 기다렸다.
아침 출근길 버스 안에서는 버스의 히터가 이렇게 건조한 것이었나 새삼 고통스러웠다.
겨울이니까 건조할 수 있고, 히터를 틀었으니 더 건조할 수 있을 거라고, 일단 회사에 도착하면 이보단 좀 나을 거라는 생각으로 버스의 건조한 공기를 버텼다.
겨울이면 책상 위에 늘 틀어두던 작은 가습기는, 이번엔 거의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다.
키보드 위에서 손을 움직일 때마다 손의 피부가 계속 갈라지는 것 같았고, 모니터와 마주한 눈엔 점점 핏발이 섰다.
물을 아무리 마셔도 입과 혀가 말라붙어 입이 잘 벌어지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해져 왔고 약간 식은땀이 나고 손발에 기운이 빠졌다.
이건 물이 부족하다는 신체 반응인가. 그렇다면 내가 마신 물은, 다 어디로 간 걸까.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점점 흐려지다 곧 빗방울을 떨궜지만, 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낡은 사포 같은 공기가 내 주위를 돌며 피부 표면을 천천히 갉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전신의 모든 감각이 오로지 건조함에만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었다.
건조한 눈은 점점 초점을 잃고 흐려졌다. 뿌옇게 빛이 번져 온 세상이 몽글몽글해 보였다.
난 진짜 여기에 살아 존재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눈부시게 뽀얀 이곳은.. 혹시 여기가 천국인가요.
그때, 난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천국을 보는 눈을 가져버렸다.
한동안 난, 그 천국에 갇혀 있었다.
어느 순간, 난 다시 현실에 돌아와 있었다.
천국을 빠져나오게 된 후에도, 난 종종 아무 예고 없이 그 사막 한가운데로 소환되어 내동댕이 쳐지곤 했다.
소환도 탈출도 내 의지와 상관없었다. 알 수 없는 힘에 붙들려 나는 늘 갑작스럽게 내던져졌다.
갑자기 극도의 건조함에 휩싸여버릴 때면, 텁텁하고 건조한 공기가 나를 표면에서부터 조금씩 갉아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건조한 천국을 반복해 오가다 보면 어느새 난 건조함에 완전히 침식되어 한 줌의 모래더미가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바다의 움직임에 하릴없이 쓸려나갔다가 쓸려 돌아오는 모래알처럼 출퇴근의 물결에 몸을 맡긴 채 건조함에 마모되어 가는 나는 이미 모래알이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모래는 바위보다 힘이 있다. 바위는 사라졌지만 모래는 아직 살아남아있으니까.
모든 모래는 같은 꿈을 꾼다.
하늘을 머리에 이고 바다를 내려다보던 바위였을 때의 꿈.
모래는 바위였다.
아니다, 모래는 모래만 한 바위다.
[히치하이커의 메모] 중요한 건, 부서져도 끝까지 살아남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