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미하엘 엔제 지음/한미희 옮김
[모모]를 다 읽고 책상 위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책을 바라봤다. 이야기 하나가 그려졌다. [ 머나먼 할아버지가 “마음속 꽃 한 송이를 잃지 말거라!”라는 유언을 남기고 떠나갔습니다. 하지만 세대가 지나면서 유언은 서서히 희미해지고 우리는 똑같이 변해갔습니다. 어느 날 할아버지의 유언이 담긴 책을 발견하게 되었고, 우리는 잃어버렸던 마음속 꽃 한 송이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모모]는 총 3부로 구성된 이야기다. 여유와 이야기가 넘치던 마을 1부. 회색 신사들이 1분 1초를 아껴 ‘시간 저축 은행’에 저축하라고 한다. 그렇게 ‘엉터리 시간 계약’으로 점점 각박하게 변하는 마을 2부. 모모가 회색 신사들한테 빼앗겼던 ‘시간의 꽃 ’을 되찾아 옛날 모습으로 돌아오는 마을 3부.
3부 속에서 각 요소가 상징하는 바를 해석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 해석들을 통해 [모모]에게 들리는 바가 다양할 것 같다. 나는 ‘시간의 꽃’을 [여유] 혹은 [꿈]으로 해석했고, [시간 속의 여유]라는 말이 계속 들려왔다.
[모모]에서 여유가 필요하다고 직접적으로 말해주는 구간이 ‘하얀색 구역’이었다. 아무 데도 없는 집을 찾아갈 때 지나는 두 개의 구역 중 첫 번째 구역이다. 이곳은 [느릿느릿 갈수록 더욱 빨리 갈 수 있으며,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더욱 천천히 간다]는 비밀이 있다.
시간과 시간 사이에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길 위에 장벽을 지나 앞으로 나아가려면 틈이 있어야 한다. 틈이 없다면 길이 가로막혀 고립되어 버린다.
20대 후반쯤, 나도 틈이 없어 고립된 적이 있었다. 고립의 정적은 일분일초를 버리는 듯했다. 조급함에 서두르기만 했다. 분명 서둘러 앞으로 가고 있는데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기분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든 시선이 신경질적으로 변해갔다. 스스로가 싫어지고 있을 때쯤, 모모가 찾아준 ‘시간의 꽃’이 나에게도 도달했다. 시간과 시간 사이에 틈이 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그 틈으로 과거의 나의 모습이 보였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아 불안하다 생각했는데 쉬지 않아서 불안했던 것이다.
가령 ‘책 한 권 쓰기’라는 목표를 잡아 놓았지만 종종 글을 쓰기 싫을 때가 온다. 틈이 없을 땐 ‘글쓰기는 내 방향이 아닌 걸까.’라며 불행의 씨앗을 뿌렸다. 그 씨앗은 빠르게 줄기를 틀고 온몸을 감싸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했다. 반면 ‘시간의 꽃’을 다시 찾았을 땐 ‘아 내가 피곤하구나 하루 정도는 잠을 더 자야겠다.’로 바뀌었다. 신기하게도 푹 쉰 다음날엔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글을 쓰고 있었다. 물론 속도는 조금 느려지지만 항상 끝이 있었다.
유명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하루에 5시간, 10장 이상은 쓰지 않는다고 한다. 한번씩 영감이 떠오를 때 마구 뱉어내고 싶어질 때가 있을 것이다. 작가는 그런 것들을 여유로 담아내며 다음날의 에너지로 아껴둔다고 한다.
크게 보면 삶도 그런 것 같다. 종종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거예요]라는 말을 듣다. 처음엔 작은 씨앗 같았던 말이 먼 훗날 뒤돌아 봤을 때 큰 나무가 되어있다. 싹이 났는지, 잎이 났는지, 꽃은 폈는지 하루하루 여유를 가지고 키워가는 것이다. 만약 이제 막 나온 싹에게 나무만을 생각하며 비료와 물을 쏟아붓는다면 과습과 온갖 벌레로 시들
어 버릴 것이다.
2부에서 모모는 ‘아무 데도 없는 집’에서 시간을 관리하는 호라 박사에게 시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호라 박사는 이렇게 답한다.
[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
허나 슬프게도 이 세상에는 쿵쿵 뛰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 멀고 귀 먹은 가슴들이 수두룩하단다. ]
어느 순간 눈 멀고 귀 먹은 가슴을 가지게 되었다면, 두 손으로 두 눈을 가려보자.
그대로 어둠 속에서 내 가슴에 있는 ‘황금빛 시간의 사원’을 찾아보자.
하루하루 황금빛 시간의 사원을 걷다 보면 나만의 ‘시간의 꽃’이 활짝 피어 반겨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