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상자] 동화. 한강 글 / 봄로야 그림
‘책일기’를 시작한 요즘 한강 작가님의 글에 푹 빠졌다. 한강 작가님의 글을 읽고 있으면 요동치던 감정들이 가라앉으면서 책에 스며든다.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책은 처음일 정도로 스며든다. 그 기분을 끊기 아쉬워 이번에도 한강 작가님의 [눈물 상자] 동화책을 읽었다. 무엇보다 책을 펼치기 전부터 [순수한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이 책을 놓칠 수 없었다.
[눈물상자]는 ‘눈물단지’라 불릴 만큼 눈물이 많던 7-8살 정도 되는 아이와 옷부터 가방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입은 눈물을 사고파는 아저씨가 나온다. 검은 아저씨는 아이의 순수한 눈물을 사려고 찾아오는데, 하필 그 순간엔 눈물이 나지 않는다. 눈물을 기다리는 동안 아저씨는 다른 주문을 받으러 가야 했다. 아이는 고민 끝에 아저씨를 따라간다. 둘이 함께하는 여정에서 아이는 스스로 성장한다. 마지막엔 눈물을 삼키며 대신 웃음을 내뱉을 수 있는 조금은 더 단단한 가슴을 가지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자신이 우는 이유조차 모르던 아이가 울음을 꾹 참는 모습을 보며 참 기특하고 예쁜 동화였다. 동시에 울음이 안 난다는 건 메말라 가는 거라 생각했는데 성장하는 걸 수도 있겠구나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순수한 눈물이란 무엇일까. 어릴 때부터 [순수한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란 뉘앙스의 말을 많이 들었다. 그 말이 꾀나 마음에 들었는지 아이 같은 순수함이면 되는 줄 알고 그 모습을 지키려 무던히 애썼다. 애석하게도 그런 모습은 강함이 아니라 표적이 되기 십상이었다. 세상을 잘 못 보고 있나 싶은 고민으로 잠시 순수한 모습을 옷장 속에 걸어두기도 했다. 원하는 옷을 입지 못하니 메말라 갔다. 그 메마름은 희망을 얻고 싶었는지 순수함을 지켜가는 사람들로 향하게 했다. 그 사람들을 보면서 의아했던 건 나와 그 사람들이 순수함을 지키고자 하는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그 사람들은 원하는 옷을 입고 있을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을 [눈물 상자]에서 검은 아저씨가 말해줬다.
[글쎄다. 순수한 눈물이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눈물을 말하는 게 아니야. 모든 뜨거움과 서늘함, 가장 눈부신 밝음과 가장 어두운 그늘까지 담길 때, 거기 진짜 빛이 어리는 거야.]
/ 특히 강인함 말이야. 분노와 부끄러움, 더러움까지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어두운 부분까지도 정면으로 바라볼 줄 아는 어른. 그곳에서도 자신의 빛을 낼 수 있는 힘. 명예든 돈이든 굳건함이든 각자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지킬 힘이 있었다. 힘이 바탕이 된 순수함은 만만함이 아니라 친절이 되었다.
어른의 순수함이란 단단함과 동시에 너무 말랑하여 어떠한 날카로운 것에도 쉽게 터져버리지 않는 그런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진심으로 대화할 수 있는 순수함과 동시에 세상과 맞설 수 있는 힘.
앞선 작품 [모모]에서도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 회색 신사들의 비밀까지 알아낸 모모가 자신을 잃을 뻔한 순간이 딱 한 번 있었다. 회색신사들로 인해 삭막하게 변해버린 마을에서 모모 곁에 아무도 남지 않아 상실감에 빠져있을 때다. 하지만 모모는 좌절 대신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으며 마을을 구해낸다.
최근에 ‘길복순’이라는 영화를 접했는데 거기에서도 길복순과 그녀의 딸의 대화에서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 새 국무총리 후보자가 아들 대학 부정 입학 의혹으로 뉴스에 나오는 걸 보게 된다. 길복순(전도연)은 당연히 부모가 좋은 대학 보내고 싶은 거 아니겠냐며 세상은 공정하기 힘들다고 한다. 거기에 딸(김시아)이 ‘저 사람 때문에 대학 떨어진 사람이 내가 된다면? 내가 부모면 세상이 불공정하다고 가르치기보다는 정당하게 경쟁하는 법을 가르칠 거야’라고 말한다.
가끔씩 “안녕” 인사 하나로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시절을 생각한다. 내가 좋으면 친하지 않더라도 선물을 건네곤 했다. 그게 가능했던 건 받아주는 친구 또한 다른 생각 없이 고맙게 받아주기 때문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이런 일은 생각에만 머문다. 여전히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는걸 알아버려서 참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오늘도 선물을 건넬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희망한다.
[눈물에 어린 빛깔들이 더욱 복잡해질 때,
네 눈물은 순수한 눈물이 될 거야.
여러 색깔의 물감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지만,
여러 색깔의 빛을 섞으면 투명한 빛이 되는 것처럼]
-[눈물상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