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욕심

[불을 지키는 사람] 류츠신 글/ 곽수진 그림/ 허유영 옮김

by 도바기

처음 완독했을 땐 무언가 보일 듯 말 듯 했다. 두 번 읽었을 땐 보이는 듯 했으나 흐릿하여 여전히 잘 보이지 않았다. 세 번째, 드디어 사샤가 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눈 앞에 펼쳐졌다.

상대가 행복하기만 해도 풍족해지는 마음, 사랑에 대한 책임. 그리고 욕심.


주인공 사샤는 사랑하는 리디나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불을 지키는 노인’을 찾아서 세계의 끝으로 간다.

노인은 사샤의 이야기를 듣더니 부탁을 들어주면 불을 지키는 일을 해야 한다고 한다. 사샤는 망설임 없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사람들에겐 각자의 별이 있는데 그 별에 문제가 생기면 병이 든다고 한다. 그 별을 찾기 위해선 많은 일들이 필요했다. 사샤가 그곳에 머무르며 ‘고래 이빨 로켓을 만드는 일’ 외에도 노인이 하는 것들을 배워 나가며 여정이 펼쳐지는 이야기다.

여정이 끝난 뒤 사샤는 남겠다고 한다. 그런 사샤에게 불지기 노인이 말한다.

[네가 안 떠날 줄 알았다. 그럴 줄 알고 힘들게 하늘에 올라간 거야.]

[약속을 어기고 싶지 않았어요.]

[아니 아니. 이건 그거와 상관없어. 넌 사랑이 뭔지 알기 때문이야.]


노인이 사샤에게 말한 사랑이 무엇일까. 진정한 사랑일까? 그러면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살면서 지겹도록 들어본 질문은 왜 아직도 이어지고 있을까. 사랑에는 모양도 색도 가지각색일 것이고, 시대에 따라 무수히 많은 형태들이 새로 생겨나기 때문이 아닐까.

그 많은 형태의 사랑 중 나는 강아지의 사랑을 배웠다.

내가 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할 때만 해도 이 말을 들으면 혀끝을 차는 사람들이 수두룩했다. 1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이젠 너도나도 그 사랑이 최고라고 말한다. 강아지 세상으로 봤을 땐 그보다 몇 배가 넘는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그 시간 안에서 우리가 변할 동안 그들은 한결같았다.

최고라고 하는 사랑은 대단한 것도 아니다. 집 앞에 슈퍼를 갔다 와도 하루 종일 못 본 사이처럼 반겨주고, 식사 시간엔 강아지 눈 빛을 의식하다 보면 짧은 영상 같은 건 안중에도 없어진다. 회사를 가든 여행을 가든 군말 없이 늘 있던 자리를 지켜주기도 한다.

단지 동물이라 그런 걸까? 한 번이라도 동물들의 사랑을 받아본 사람들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들도 보고 싶어 하고, 가지 말라며 애타게 조르기도 하고, 문을 열 수 있는 집에 사는 아이들은 문을 열고 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기다리는 시간을 힘들어 한다.

다만 사람과 차이가 있다면 기다림의 끝에 사람은 반갑게 맞이해주는 이도 있지만 화로 표현하거나 아무런 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기다린 만큼 만남의 기쁨을 온 힘을 다해 표현해 준다. 그 기운이 나에게도 전해져 나 또한 행복해질 정도다.

나의 경험으로는 몇 개월을 강아지와 둘이서 지내다 일이 생겨 한 달 정도 떨어져 지낸 적이 있다. 드디어 본가에 가면서 늘 그랬듯 꼬리를 흔들며 반겨주는 모습을 상상했다. 집 앞에 도착해 서둘러 문을 열었다. 방문으로 얼굴만 살짝 내민 강아지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엔 나를 못 알아봤는지 주춤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이내 고개를 번쩍 들면서 ‘왈!’ 한번 짖고는 온 힘을 향해 달려와 반겨줬다. 그 모습이 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다.

한 달이란 시간 동안 강아지는 투정을 부리거나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저 나를 믿고 그 상황을 받아들였고, 만났을 땐 온 힘을 다해 반겨준 것이다.


어떻게 이런 사랑이 가능한 걸까 침대에 누워 나를 바라보는 검고 동그란 강아지의 눈을 통해 생각에 잠긴 적이 있다. 너를 보면 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편안해질까. 네가 무엇을 하든 그냥 바라만 볼 수 있는 거고, 네가 행복하다면 나도 행복할 수 있는 걸까. 네가 귀여워서일까? 몇 가지 질문 끝에 한 가지 단어가 떠올랐다.

[욕심]

강아지와의 사랑에는 욕심이 없었다. 서로가 기다려줄 땐 기다려주고 필요할 땐 옆에 있어줬다. 서로의 안위만 걱정해 줄 뿐 그 이상의 욕심을 바라지 않았다. 책 속의 사샤도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책의 마지막에 사샤가 두 손을 뻗어 햇빛을 어루만지며

[그에게 가장 큰 위안은 리디나가 이 햇빛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라는 구절이 있다. 사샤는 리디나 외엔 관심사가 없을 정도로 그녀를 사랑한다. 게다가 노인이 떠나라고까지 했다. 이 정도면 떠날 법도 한데 불지기와의 약속을 지키며 머문다. 그러면서 그녀의 안위만 걱정한다. 나였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아직도 의문이 가득하다. 이러한 마음이 어렵다는 걸 알기에 더욱 크고 깊게 다가왔다.


욕심내지 않고 행복하기만을 바랄 수 있는 것.

그에 따라 나 또한 행복해지는 것.

불지기 노인이 말한 사랑을 안다는 것의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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