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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배 여사와 물만골 15화 - 잠

by 꽃보다 마흔

잠: 퇴근하며 스위치를 끄는 시간. 고장 난 잠은 꿈으로 일상을 불러오기도 한다.


단조롭게 산다. 몇 년 전 들렀던 철학관에서 도사 할아버지는 '당신은 직장이 없소'라는 말을 했다. 일을 하고 싶다는 내 말에 철부지 달래듯 '여자가 직장 없이 사는 게 얼마나 큰 복인 줄 아나?'하고 꾸중하듯 되물었다. 그러고 보니 이런저런 일들을 하고 살았지만 여태 직장다운 직장이 내겐 없다.

2021년부터 새벽형으로 살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농사꾼처럼 해지면 자고 일찍 눈을 떴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고선 일어나 책상에 앉기를 습관 들였다. 몇 년 동안 이 생활이 몸에 익었고 자연히 잠자리에 드는 시간도 빨라졌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잠을 줄인 게 아니라 새벽을 위해 밤을 포기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최근 들어 하루 수면 시간이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단조로운 삶에 이해되지 않는 피로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봐야 바쁜 직장인들에게 미안해지기만 한다. 생태계에 교란이 온 듯 입이 헐고 귓병이 도졌다. 점점 다가오는 갱년기 호르몬을 핑계 대는 게 제일 빠른 해석일 것 같다. 규칙적인 낮잠은 물론 요가도 빼먹고 오전부터 잠을 잔 지도 며칠째, 그래도 해소되지 않는 이 피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감하다.


인생을 반으로 접으면 평균값이 나올까? 잠 한 번 푹 자 봤으면 하고 간절했던 때가 있었다. '요렇게 예쁜 거 하나 더 태어나도 괜찮을 것 같애.' 만삭이 되도록 방정맞은 내 말은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착각이었단 걸 보여주었다. 힘들 것들을 예상해 마음을 크게 먹었었지만, 연년생을 키운다는 건 지금껏 해 온 그 어떤 일보다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이와 이제 막 세상에 난 아이는 치타와 화초처럼 성질이 달랐다. 다른 두 우주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키우는 게 내 하루 최대의 과제였고 그 에너지는, 마이너스 통장처럼 잠을 야금야금 빼먹는 걸로 땜질하며 보냈다. 잠투정이 심한 둘째는 반드시 울어야만 잠이 들었고 나는 그걸 수학 문제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리지만 큰 첫째는, 엄마를 통째로 뺏기고도 내 비위를 맞추려는 듯 살포시 이불에 머리를 묻고 잠이 들었고 자고 나면 더 철이 든 듯 방긋 웃어주어 또 새 힘을 내게 했다. 나는 마치 수면이 충족되기만 하면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처럼 잠을 고대했었다. 낮잠은커녕 몇 시간만이라도 깨지 않고 잘 수 있기를 바랐지만, 그 후로도 몇 년간 이루기 힘든 꿈이었다.


"벌써 자면 어떡해, 밤이 긴데"

초저녁에 전화해도 시골 두 양반은 잠에 빠져 있을 때가 많다. 엄마도 나처럼 잠 한번 푹 자 보는 게 소원이었을 시절이 있었을 테다. 다섯 아이에, 철철이 눈치 없이 다가오는 농사에 잠이야말로 사치였겠지. 언제 잠 한 번 푹 자 보나 싶었겠지. 도대체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언제'는 언제였을까? 큰아들 대학 보내면? 둘째 아들 장가 보내면, 셋째 재수 끝나면, 넷째 대학 가면, 막내 요놈 클 때까지만? 울어도 울어도 얻어지는 게 없자 울음을 포기한 아이처럼 잠도 그만 잠을 포기한 걸까? 엄마는 지금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한다. 초저녁에 깜박 잠들었다가 새벽녘까지 멀뚱거릴 때가 많다고 한다. 아무것도 걸릴 것 없이 실컷 자도 될 때가 되었는데.

인생을 반으로 접으면 평균값이 나올까, 잠이 부족해 괴로웠던 그때와 실컷 잘 수 있는 지금을 반으로 접으면? 인생은 얄궂고 짓궂다. 원하는 것을 원할 때 갖기가 대체로 힘들다. 알 것 같다가도 모르겠는 수수께끼가 인생의 속성이다.


"사돈 건강은 어떠시더노?"

친정에 다녀오면 으레 하는 정배 여사의 질문이다.

"잠이 안 온다고 맨날 걱정이네요."

"잠이 안 오면 금강경 쓰면 되지, 나는 잠 안 자고 쓰는데, 잠 안 오면 사돈도 염불하라 카지?"

정배 여사 다운 해석이다. 평생 부처님 귀의해 산 정배 여사에게 불경 필사는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일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금강경 한 권을 매일 필사하고 잠결에도 염줄을 쥐고 계신다. 챙길 가족 없으니 일상을 오로지 당신 컨디션에 따라 사신다. 어떤 날은 밤새 경을 쓰고 종일 잠을 자기도 하고 어떤 날은 초저녁에 잠들어 새벽에 깨서는 낮인 줄 착각하기도 한다. 이러다 보면 서로 며칠간 얼굴을 못 볼 때도 많다.

반면, 엄마는 평생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다. 생일이 되면 상 가득 음식을 차려놓고 영동할맨지 할밴지께 손을 비비고, 애꿎은 정월 대보름날 달집에다 기도하는 걸 본 적이 있으나 정배 여사처럼 기도에 억척인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자식들 위해, 또 죽은 영가를 위해 매일 기도하는 당신은 엄마가 이해되지 않는다. 불면엔 염불만 한 게 없는데 말이다.


잠은 일상의 스위치를 끄는 시간이다. 페르난두 페소아는 『불안의 서』에서 '잠을 잘 수 있는 것보다 큰 쾌락은 없다'라고 했다. 덧붙여 '삶과 영혼으로부터 완전히 꺼져 버리'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삶의 우선순위와 가치를, 때로 차갑다 싶을 정도로 정리하며 사는 편이다. 스위치 또한 잘 끄고 켜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최근 엉망이 된 내 컨디션을 보며 뭐가 문제인지, 뭐가 정답인지 또 의문이 든다.

돼지국밥을 할 때는 꿈에서조차 바빴다. 손님이 밀어닥치는데 막상 밥솥을 열어보면 밥이 없다거나, 뼈를 미처 주문하지 않은 일 등, 좋았던 꿈보다 당황스러운 꿈이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직업 따라 꿈도 바뀐다. 실제론 잘 써지지 않는 시가 꿈에선 빛처럼 확 써진다거나 누군가 한 구절을 불러 줄 때도 있다. 아침까지 기억이 날 때도 있지만, 잊어버리는 게 대부분이라 시 모임에서 아쉬움을 토로하니 그럴 땐 바로 꿈에서 깨서 적어 놔야 한다는 동종업자들의 원 포인트 레슨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꿈에서 본 구절이 좋은 작품이 된 경우가 내겐 없으니 그것 역시 개꿈, 고장 난 꿈이라 해야 할 것 같다.

시도 오지 않는 얕은 잠이 계속된다. 좀처럼 없던 일이라 몸도 마음도 생경하다. 속세를 버리고 창작촌에 들어가는 작가들의 은둔이 너무너무 이해되는 시점이다. 현실에 꼭 묶인 채 창작자로 사는 까탈스럽고 예민한 나를 본다. 젖 달라고 보채는 아이도 없는데, 자도 자도 잠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한창 육아에 정신없던 때처럼 기절하듯 사나흘 자봤으면 싶은 때다. 딸린 식구라곤 부처님밖에 없는 독거 정배 여사가 부러운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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