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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Feb 24. 2022

다비식

그날의 대치




"애미야, 나 장어탕 한 번만 해도고" 

"예?, 아 예...."


간암 말기, 아버님은 당신의 기력 없음이 병환 때문이란 걸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셨다. 부실한 병원밥이 문제라며 장어탕을 먹으면 곧 일어나실 것 같다고 하셨다. 24시간 병간호를 하시는 어머님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데 들어드리자며 그 소원을 나에게 부탁하셨다. 어머님은 보호자 의자에 앉아 차근차근 장어탕 만드는 법을 설명해 주셨다. "부전시장에 가서 얘기하면 반쯤 죽여준다, 그럼 푹 고와서 다른 거 아무것도 넣지 말고 소금만 좀 넣어 가져온나." 레시피는 딱 한 줄이었다. 간단하기 짝이 없다. 눈 감고도 뚝딱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만 해도 잔머리나 꾀를 부릴 줄 모르는 때였다. '못한다'라고 매몰차게 말하지도 못하는 때였다. 지금 같으면 맛있는 집에서 한 그릇 사다 드렸으면 될 일을 그땐, 아직 착한 며느리 병이 있던 때였나 보다.


수족관엔 미처 승천하지 못한 용들이 우글거린다.

날 꺼내 달라는 비명처럼 입을 벌리며 애원한다. 사장님 손에 잡힌 장어는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을 잡은 듯 기꺼이 물 밖으로 나온다. 그곳이 바로 단두대라는 걸 알 턱이 없다. 미처 탈출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굿바이 인사도 하기 전에 전기 충격기가 머리를 가격한다. 용이 되지 못한 단죄를 묻듯 변명을 허락하지 않는다. 생명줄인 줄 알았던 동아줄은 마지막 피날레였다. 수족관 안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무기들은 감전이 된 듯 퍼드덕거린다. 마치 다시는 헤엄치지 못할 것 같은 경련이다. 

검객에게 당한 장어를 집에까지 모셔왔다. 망에 넣어주셔서 그대로 냄비에 넣으면 끝난다.

가스레인지에 들기름을 두르고 기절한 장어를 넣을 차례다. 아직 붙어 있는 목숨이 무의식 속에 깨어난다. 

'괜찮다, 잘 모셔줄 테니 얌전히 있거라, 부디 그물 없는 곳에 가서 편히 살 거라, 다음 생엔 부디, 용으로 환생하거라'. 최대한의 관용을 베풀어 그들의 환생과 윤회를 기도해 준다.

마지막 염을 하고 한 마리를 달궈진 냄비에 넣었다. 그 순간, 나는 듣도 보도 못한 광경에 처하고 말았다. 어머님도 사장님도 미처 날뛰는 장어에 대한 설명을 안 해주셨다. 마치 한 페이지를 누가 쭉 찢어가 버린 것처럼 그 페이지 설명을 빠트리셨다. 냄비에 들어간 장어는 얌전히 뚜껑이 닫힐 때를 기다리는 줄 알았다. 냄비에 넣은 손이 미처 빠져나오기도 전에 나보다 먼저 승천을 시도한다. 용이 되어보지 못한 미련인 듯 그제야 갑자기 비늘을 돋운다. 냄비 밖으로 뛰쳐나와 하늘을 날 기세다. 들기름 바른 열기구인 듯 솟구친다. 감당하기 힘든 온도다. 하늘을 날기도 전에 후드에 부딪혀 가스레인지 뒤쪽으로 추락했다. 오히려 기절은 염하는 자가 하게 생겼다. 다른 한 마리도 따라서 솟구친다. 이미 정신 잃은 내 손과 발과 머리는 따로 움직인다. 어떻게 뭘 먼저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핸드폰?, 119?, 엄마?. 분간이 안 된다. 

'119가 장어도 잡아주는가?, 이것도 사건사고가 맞나?, 엄마? 엄마는 전화해 봐야 너무 멀리 있다'. 가스레인지 뒤를 보니 꼬리만 보인다. 허리를 숙여 앞쪽에서 보니 놀란 그 눈이 나를 보고 있다. 내가 더 놀란다. 두 마리가 작당을 한다. 2 vs 1, 영원한 갑인 줄 알았던 내가 졸지에 궁지에 몰렸다. 남편이 오려면 반나절도 더 기다려야 한다. 이대로 집을 비우고 나가버리면 어디로 도망가서 숨을지 모른다. 그럼 일이 더 곤란해진다. 소방관 아저씨가 이무기를 잡으러 출동했단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다. 일단 잡아서 냄비에 넣어야 한다. 이럴 어쩐단 말인가? 그나마 저 녀석들이 놀라 움직이질 않으니 다행이다. 바닥으로 점프해 헤엄을 친다면 어떡할 참인가, 빨리 손을 써야 한다. 고무장갑을 끼자. 그제야 몸이 땀범벅이 된 걸 알아차린다. 장갑이 들어가질 않는다. 머리부터 얼굴까지 땀이 흥건하다. 손을 닦고 장갑을 낀다. 호흡을 가다듬는다.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한 손으로 가스레인지 귀퉁이를 들어서 바닥으로 뛰어내리기 전에 움켜잡아야 한다. 시간이 길지 않다. 머뭇거리면 일이 더 커진다. 대담해야 한다. 

물컹한 놈을 잡았다. 저도 나도 비명이 절로 나온다. 발악하는 놈 힘이 어마 무시하다, 왜 아버님이 널 대령하라 했는지 알겠다 이놈아. 한 손으로 모자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제발 부탁이니 한 놈 너, 그 자리에 그대로 가만히 있어줘라. 가스레인지 바닥에 묻은 기름 때며 찌꺼기들이 그놈 몸에 묻었을 테다. 깨끗이 씻어 냄비에 넣어야 하지만 그럴 정신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다 또 놓치면 내가 기절할 지경이다. 한 마리 성공, 무거운 뚜껑을 덮는다. 서둘러야 한다. 다시 한 손으로 가스레인지를 들추고 웅크린 녀석을 붙잡는다. 점프해서 나를 공격 하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가까스로 더러워진 두 마리 장어를 냄비에 넣고 사정없이 센 불로 달궜다. 누르고 있는 냄비가 폭발할 것처럼 두 마리가 뒤엉키는 소리다. 살아있는 다비식이다. 어느 순간 탄내가 나며 정적이 흐른다. 나도 바닥에 그대로 허물어졌다.


"아버님, 장어탕이에요~"

"애미야, 네가 이걸 해 왔나?"

"네 아버님, 드시고 얼른 기운 차리세요~"

아버님을 살리기 위해 내가 죽을 뻔했던 이야기는 차마 하지 못했다. 아버님은 그 속에 든 우여곡절은 알지도 못한 채 숟가락을 뜨셨다. 허나, 가스레인지 밑에서 허우적거린, 장어에 묻은 기름때 때문일까, 아버님은 생각보다 많이 드시지 못했다. 내 공로가 빛나려면 아버님이 꿀떡꿀떡 드시고 훌훌 털고 일어나셔야 하는데, 허무하게도 아버님은 그걸 다 드시지도 못하고 돌아가시고 말았다. 


나 홀로 치른 장어 다비식 얘기를 엄마에게 해줬다. 엄마는 달려오지도 못할 거리에 있으면서도 금방이라도 달려올 것처럼 딸의 놀람에 공감해 주셨다. 그러면서 계속 웃는다. 

그 어떤 눈 맞춤보다 강렬했던 가스레인지 밑의 대치, 아직도 여전히 소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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