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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보다 마흔 Mar 22. 2022

스며드는 것

스며든다는 것은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 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에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기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안도현 님의 '스며드는 것' 전문이다. 이 시를 읽고 나면 대부분 눈물을 찍어내거나 비위가 약한 사람은 다시는 간장게장을 못 먹을 거라 말하기도 한다. 나도 처음 이 시를 만났을 때 짠하고 먹먹해졌던 기억이 있다. 마치 곁에서 그 장면을 본 것처럼 생생해 측은지심이 들게 한다. 화면과 그림 없이도 선명한 시각적 효과를 주는 건 잘 쓴 글이 주는 힘이다. 한 바닥으로 장황한 묘사를 한다 해도 이렇게 생생하게 표현하기 어렵다. 긴 글을 함축해서 전하는 '시'의 기능에 감탄한다.

 이 시를 읽고 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의 제목을 '간장게장'으로 기억한다. 나 역시도 다시 찾아보려고 검색창을 열어 '게장'이나 '간장게장'을 쓰는 오류를 범했다. 작가님은 제목을 왜 '간장게장'이라 하지 않고 '스며드는 것'이라 했을까? 글의 무게를 단순히 게가 아니라 '스며드는 것'에 대한 의미 확장을 유도할 목적이 아니었을까?

  또 '불 끄고 잘 시간이야'하고 자칫 놀랄 아이들을 껴안고 잠을 청하는 담대한 어머니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항소하지 말고 수의를 입으라는 안중근 어머니쯤 되어야 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이렇게 침착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라면 설령 그것이 미심쩍다 하더라도 어머니를 믿고 잠을 청했을 것 같다. 이미 어미 게의 침착함이 스며들어 있을 것 같다. 게의 모습에서, 스며드는 것은 물론 깊은 모성애와 대범한 어미의 자세도 본다.


 요리 블로그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게 요리가 올라오는 때가 있다. 간장게장, 양념게장, 게 된장국, 게 찜. 블로거들이 올리는 요리 사진과 설명을 보면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사진만 보고선 음식 맛까지 알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사진 기술과 비싼 장비로 비주얼 위주로 찍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그림과 설명만 믿고 도전했다가 낭패를 본 경험도 있다. 얼른 AI가 맛을 전해주는 기술을 만들어 내길 바란다.


  달짝지끈한 양념게장을 만들기 위해 살아있는 할 꽃게를 주문했다. 블로그에서 방법을 익히고 재료를 주문했다. 몇 가지 미심쩍은 부분도 있지만 25년 차 주부라면 능히 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가족들에게 맛있는 양념게장을 해 주리라고 큰소리를 쳤다. 기장시장에 양념게장 맛나게 하시는 할머니가 계신데 멀기도 하거니와 가격도 만만치 않아 큰마음먹고 도전해 본다.

 하지만 부푼 각오와 결심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설레며 택배 상자를 열어본 순간, 이미 내 도전이 무모했음을 깨달았다. 상상치 못했던 그림이다. 바다에서 펄떡이던 싱싱한 녀석이 그대로 담겨있다. 돼지고기를 주문했는데 살아있는 돼지가 온 것처럼 예상치 못한 상황이다. 택배차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음에도 상자를 열자 눈을 반짝이며 반갑게 나를 바라본다. 마치 광명을 찾게 해 주신 하느님처럼 나를 쳐다본다. 블로그용으로 찍으란 뜻인지 연신 손가락 '김치'를  한다. 반갑다고 손을 내민다. 미안하지만 악수를 거절하고 상자를 덮었다. 신이시여, 왜 저를 시험에 들게 하니이까, 하필 남편 출장 간 날 이게 뭐랍니까? 왜 저는 이렇게 무모한 일을 아무 생각 없이 벌인답니까?


 흉측한 일을 내 손으로 치러야 했다. 뉴스에서나 봤던 끔찍한 토막 살인사건, 그 생생한 현장, 그 범인이 바로 내가 되어야 한다. 감행해야 한다. 재빨리, 눈치채기 전에, 퍼떡, 샤샤삭.

 이것은 게가 아니라 음식이다. 그냥 음식이다. 주문을 건다. 장갑을 낀다. 손으로 잡을 수 없어 상자째 싱크대에 비운다. 톱밥과 등딱지에 묻은 때를 솔로 살살 씻어낸다. 아직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게는 내 손길에 간지럼을 타며 키득거린다. 오랜만에 물 만난 게는 고무장갑을 물며 집게발의 성능을 테스트한다. 물놀이는 끝났다. 집게 끝과 살 없는 작은 다리들은 잘라내야 한다. 하지만 생략한다. 다음 단계, 생략할 수 없는 오늘의 하이라이트, 등딱지 떼어내기, 최고 난이도다. 건담 로봇처럼 딱딱한 그들의 갑옷을 벗겨야 한다. 스스로 변신하는 로봇이면 좋겠지만 여기까지 미치지 못한 테크날러지다. 몸에서 뼈를 떼어내는 잔혹함이다. 무지막지한 내 손이 그들의 유채 이탈을 자행한다. 나에게 배신감을 느낀 게들이 저항하기도 전에 넋을 잃는다. 나도 이미 넋이 나갔다. 이 생명체를 먹고자 수없이 클릭질해 댄 내 손을 경멸한다.

 청주와 간장을 섞어 껍질과 분리된 그들의 몸을 담근다. 상처에 간장을 부었으니 비명을 질렀을 테다. 10여 분을 기다린다. 잠시 후 그 간장 양념에 고춧가루, 물엿, 다진 마늘과 생강, 홍고추, 양파, 액젓을 조금 넣어 매콤 달짝지근한 맛을 낸다. 블로그에서 봤던 것처럼 그 이하 과정은 간단하다. 통에 담아 냉장고에서 하룻밤 스며들기를 기다린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과 아이들이 게눈 감추듯 먹어 치우는 걸 보니 성공이 확실해 보인다. 넋 나간 내 영혼 따위는 아무도 공감해 주지 않는다. 어제까진 생명이었으나 차가운 냉장고에서 밤을 보낸 게들은 맛있는 음식으로 탄생됐다. 오늘은 그저 양념게장에 불과하다. 소스라친 나조차도 어느새 쪽쪽 빨아가며 그 맛을 즐기고 있다. 잔인하다. 잔인하다 뿐일까. 인면수심 한 내 비위다.


 스며드는 것, 그것이 비록 간장뿐이랴. 우리는 모든 것에 이미 스며들어 있다. 자식은 부모에게 스며들어 있고, 가정은 그 구성원들로부터 스며든다. 무색무취로 태어난 나도 수많은 스며든 것들에 의해 이루어져 있다. 거름 밭에 있다 오면 거름 냄새가 스미고 난초 곁에 있다 오면 난초 향이 스민다. 긍정을 먹으면 밝음이 우러나고, 미움을 먹으면 미움이 나로부터 우러난다. 나에게 스며드는 모든 것에 대한 취사선택, 그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고 나의 인생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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