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뒤모습을 남기고 갔다
오랜만에 아들이 왔다. 독립한 지 1년이 조금 넘었다. 집에 오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풋살 게임 장소를 부산에서 회사 근처로 옮기고부터선 일부러 시간을 내어야만 집에 오고 있다. 경제적 독립까지 하고 나니 오라가란 말조차 이제 쉽지 않다. 온전히 분리된 성인이 되었다.
며칠 전, 집에 있는 킥보드를 가져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남편이 운전 못하는 나를 위해 샀는데 바퀴 달린 것이라곤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으니 흥미 떨어진 장난감처럼 처박혀 있었다. 때로 당신이 장 보러 갈 때나 겨우 사용하는 물건이 되어 버렸다. 남편은 차나 자전거보다 더 조심해서 타야 한다고 몇 차례 주의를 주고서 허락했다. 걸레로 깨끗이 닦고 헬멧이랑 충전기도 미리 꺼내 놓는 모양새가 그이도 아들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실어다 주는 게 좋지 않겠냐는 말에는 지하철 타고 가도 된다며 말을 잘랐다.
우리 예상과는 달리 아들은 차를 빌려서 왔다. 하루 대여료가 7만 원이란다. 잔소리가 막 나오려는 찰나 '그래, 넌 나 같지 않으니 나보다 잘 살겠다.'란 생각이 들어 더하지 않았다. 어차피 2년 동안은 돈 모을 생각이 없다는 아이다. 갖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해 보고 싶단다. 못마땅하지만, 내 말 들을 나이가 아니다. 월급 안에서만 쓰라고 동의 아닌 동의를 했다. 대출받아서만 쓰지 않으면 된단 말도 덧붙였다. 늘 부족했던 용돈처럼 월급이 부족한 건 아니냐고 묻자 아직 다 쓰지도 않았는데 또 월급이 들어왔다고 철없는 말을 한다. 그 말은 이젠 얼추 갈증을 해소했단 말 같기도 하다. 여태 빠듯한 용돈으로 산다고 고생했는데, 숨구멍이 트이는 듯해 보인다.
오랜만에 식구가 다 모였다. 밀키 마저 흥분해 좁은 집이 틈 없이 꽉 찬 느낌이다. 커다란 녀석이 강아지와 노는 모양에 엉성한 사랑을 느낀다. 대책 없이 까부는 녀석에게 팔을 한 번 흔들어주니 밀키는 세 배나 흥분한다. 저녁을 먹고 오래지 않아 축구장 갈 시간이라고 일어섰다. 아들이 마당으로 차를 가져오는 사이에 남편을 킥보드를 꺼내왔다. 조작법과 주의 사항을 다시 한번 알려주고도 미덥지 않아 타 보라고 한다. 같이 사는 동안 이미 여러 차례 봤으나 마음이 놓이지 않는 모양이다. 정작 당사자는 태연한데 말이다. 눈앞에서 한 바퀴 타는 걸 보고서야 트렁크에 실어주며 마르지 않는 당부를 멈춘다.
우리 눈엔 초보 같으나 제법 여유로운 자세로 운전석에 앉아 인사를 하고 돌아간다. 얼굴은 보이지도 않는 차 꽁무니를 우린 한참이나 바라보고 서 있었다. 마치 한 번 돌아 봐주기라도 할 것처럼.
"여보, 아들 데리고 처음 바다에 갔던 날 생각난다. 기억나?"
"아니"
말도 빠르고 운동신경도 좋아 내가 특별한 녀석을 낳은 줄 알았다. 오랫동안 제 어미를 착각에 빠트렸다. 빚 갚기라도 하듯, 이른 나이에 기쁨을 선불로 준 녀석이다. 돌이 지나 처음 맞는 여름, 바다를 보러 갔다. 그림책에서나 봤을 바다였다. 나를 닮아서 겁도 없던 녀석이었다. 기대하고 간 바다였는데 도착하고 보니 이 녀석 표정이 굳어 버렸다. 저 많은 게 다 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렇게까지 많은 모래는 필요하지 않다는 듯 해변을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파도가 슬쩍 발을 건드리자 발가락을 구부리고 경계했다. 아직은 너랑 친해지고 싶지 않다는 듯 무릎을 떨었다. 두어 번이면 적응할 줄 알았으나 낯가림이 심했다. 물장난 치기 좋아하는 녀석이 남편 무릎에 달라붙어 있다가 가슴을 파고들더니 결국 목까지 오르고 나서야 파도를 관망했다. 철썩이는 파도만큼 두려움도 출렁거렸을 테다. 바다 앞에서 그렇게 어리숙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일들은 사라져가는데 마음은 여전히 파도 앞의 돌잡이 같다.
두려움이 컸던 날엔 유독 젖을 더 찾았다. 철없이 아이를 낳고 키웠지만 유일하게 풍족했던 게 젖이었다. 그거 하나만은 그립게 하진 않은 것 같다. 청춘의 혈기가 고스란히 전염된 아이다. 엄마는 건강했고 왕성한 식욕은 좀체 사그라지지 않았다. '소를 한 마리 더 키웠으면 키웠지 너는 못 키우겠다'라는 아빠의 우스갯소리를 듣고 자랐다. 타고난 성격 탓인지 내게 온 근심은 맥을 못 쳤고 눈 뜨자마자 먹는 밥도 맛있었다. 식욕도 복일까? 시댁 식구들은 친정보다 더한 대식가들이었다. 음식솜씨는 없지만, 손은 큰 어머님 아래서 음식 귀한 줄 모르고 살았다. 귀한 손자 키우는 며느리라 코밑엔 늘 음식이 있었다. 갓 아이 낳은 여자에게 음식은 곧 젖이었다. 아이는 목구멍에 넘어가는 것보다 더 많은 젖 때문에 종종 사레가 들렸고 물총처럼 쏘는 젖에 일방적으로 당하기도 했다. 나중엔 초보 엄마도 요령이 생겨 유축기로 미리 짜낸 후에 먹이거나 화장실에 가 젖을 짜버리고 먹이기도 했다. 화장실 바닥에 쏟은 뿌연 젖을 보며 이 양이면 아이 하나는 더 키우겠다는 생각도 했다. 어머님은 며느리 넘치는 젖을 마치 금은보화 보듯 좋아하셨다. 아들은 젖무덤에 두려움을 다 묻어버린 탓인지 유독 위험한 일 중에서도 위험한 일을 찾아갔다. 오히려 위험하지 않은 일이 어디 있느냐며 우릴 위로했다.
품에 있던 녀석이 마치 뻥튀기처럼 어른이 된 것 같다. 장난감 자동차만 가지고 놀던 녀석이 진짜 자동차를 끌고 왔다. 발을 간지럽히던 파도도 무서워하던 녀석이 주말마다 서핑을 하러 간단다. 소방서 견학하러 온 아이들에게 '아저씨' 소리를 듣는다며 씁쓸한 어리광과 허세를 동시에 부리고 직원들이 제일 꺼리는 구급차를 운행한다며 센 척한다. 어느새 훌쩍 자란 나무처럼 우리를 내려다본다.
그 쬐그마한 녀석이 뒷모습을 남기고 돌아갔다. 우리는 약속한 것도 아닌데, 말없이 한참 동안 차 꽁무니를 바라보았다.
"자기 무릎에서 떨어지지 않던 녀석 기억 안 나?"
"안 나는데?"
그날의 일을 육아일기에서 찾아 멍청한 그에게 내밀었다. 왜 공감해 주지 못하느냔 투정이다. 이마와 입이 툭 튀어나온 채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사진 한 장과 목마를 타고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깐돌이 같은 아기가 있다. 아이는 자라 남편을 닮은 청년이 되었고 남편은 시아버님을 닮은 중년이 되었다. 니체의 영원 회귀와 '씨도둑질 못 한다'라는 동서양 철학이 오버랩된다.
우린 육아일기 속 사진을 쳐다보며 잠시 젊은 날로 돌아갔다. 갈비뼈와 가슴과 품으로 키웠는데, 뒷모습을 보는 날이 더 많아졌다. 품에 두어 비비고 빨고 싶지만, 이 감정도 일회용이라는 걸 안다. 배웅하고 돌아서는 우리 표정이 나쁘지 않다. 우리 것인 줄 알고 착각하며 키우는 동안 충분히 행복했으니 그걸로 됐다. 잘 분리되어 돌아가니 여러모로 좋은 일이라며 나를 위로한다. 앞으로 점점 더 커질 아들의 뒷모습에 천천히 나를 껴안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