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떠나는 여행: 제주도 02
혼자 세화 앞바다에서 스노클링 하려고 새로 산 수영복과 장비를 가지고 제주에 왔다. 그런데 날씨가 꽤 심상치 않다. 그래도 아직 바다에 들어가기 좋은 계절이라고 생각했는데 해가 뜨지 않고 바람이 세게 불어 살짝 춥기까지 했다. 물에 들어가면 추운 건 문제 되지 않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파도가 상당했다. 이 날씨와 이 파도로는 스노클링은 무슨 발에 물 적시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역시 계획이 틀어졌다. 하지만 혼자여서 좋은 점은 계획이 틀어져도 오히려 당황하지 않고 그 날씨, 나의 기분,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해서 다시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날 선택한 것은 올레길이다. 아침밥 먹기 전 동네 산책을 하다가 내가 있는 곳이 올레길 21코스가 시작되는 지점이라는 걸 알았다. 검색해 보니 난이도가 높지 않아서 아침밥을 먹고 운동화를 신고 핸드폰만 들고 나왔다.
아직 성수기가 아닌 제주도의 평일 오전은 매우 조용했고 특히 내가 걷는 올레길은 사람이 없었다. 바람도 많이 불고 해도 구름에 가려 칙칙한 날씨 속 혼자 올레길을 걷다 보니 약간의 두려움이 생겼다. 마을이나 해안도로를 걷는 건 괜찮았는데 21코스의 하이라이트인 지미봉을 오르기 위한 길목이 너무 한적한 밭길로 들어서는 곳이라 발 디디디가 두려웠다. 하지만 그 근처로 딱히 돌아갈 곳이 없어 고민하던 중 처음 출발할 때 찍어둔 안내판을 보았다.
‘혼자 걷는 여성올레꾼은 출발 전 제주올레콜센터로 연락하세요’
보통은 처음 출발할 때 연락을 해야 하나보다. 난 걸은 지 한참 되어서 전화를 했기 때문에 내가 현재 위치한 지점을 상세히 설명했다. 친절하게도 몇 분 뒤, 지미봉 정상에 올랐을 때 전화가 왔다. 그리고 끝날 때쯤 다시 전화를 주신다고 한다. 정말 친절하고도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전화. 그렇게 난 전화 한 통으로 마음이 든든해져 지미봉을 올랐고 그 위해서 본 광경으로 나의 모든 불안한 마음이 사라졌다.
지미봉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한참 느끼다 내려왔는데 익숙한 동네였다. 몇 년 전 친구들이랑 왔던 작고 아기자기한 종달리 마을. 여기서 갈증을 씻어내고 마지막 지점을 향해 계속 걸었다.
걷는 여행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몸이 좀 힘들지만 차로 이동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이 날 바람이 정말 많이 불어 해안가를 걸을 땐 바닷물이 나에게 다 튀기도 했고 바람이 날 밀기도 막기도 했지만, 21코스 종점까지 완주!
종점에서 바로 버스가 있으면 좋으련만 더 걸어 마을 안으로 들어가야 버스가 있다. 버스정류장을 향해 가고 있는데 또 익숙한 가게가 보였다. 종달리에서 묵으면서 친구들이랑 갔었던 밥집. 혼자 걷고 혼자 하는 여행이었지만 이렇게 지난 여행을 되새겨주는 시간이라 지루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