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폴 사르트르 & 시몬 드 보봐르
어느 새벽, 안개.
그 촘촘한 밀도의 하얀 벽에서 푸른 피 같은 시가 불현듯 떠올랐다.
그토록 무서운 갈증과 묵직한 슬픔을 껴안고도 사랑을 소유하지 않았던 릴케…,
그의 생각에 빠져 어느새 햇살이 지천에 못을 박는지도 모르고 하염없이 고요 속에 앉아 있었다.
내 눈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 릴케. 루 살로메에게 헌정한 <기도시집> 중
유럽 어딜 가나 여행자의 급한 발걸음에 쉼표와 느낌표가 될 수 있는 것은 많다.
햇살 가득한 노천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내가 정물화의 한 폭처럼 느껴지는 즐거운 착각,
길거리 화가의 스케치를 흘낏 스쳐보는 소소함은 명화를 바라보는 진중함이 없어 좋고,
잠시 발을 멈추고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듣는 버스커들의 가벼운 노래는 탄탄한 심포니와는 또 다른 쌉쌀함이 있어 흐뭇하다.
더디 흐르길 바라지만 여행자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게 마련, 1년 만에 다시 찾아간 파리의 생제르맹 데 프레 거리를 거닐던 지난겨울의 그 어떤 날도 빠르게 흘러갔다.
파리의 세 번째 방문에서야 비로소 몽파르나스 묘지를 찾아갈 수 있었다.
14번과 6번 메트로를 갈아타고 몽파르나스를 찾아간 아침,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렸다.
묘지 입구의 작은 안내소 문을 두드렸다.
- 사르트르와 마담 보봐르를 만나러 왔어요.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는 묘역이 나뉜 번호와 이름이 적힌 안내도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그리고는 아예 내 손에 들려준다.
코팅을 하고 끈이 묶인 것으로 보아 비치용인듯했다.
- 빌려가도 돼요?
- 그러믄요, 되다말다요. 디비종 넘버를 잘 살피면서 가세요, 찾기 어렵지 않아요.
- 감사합니다.
한 손엔 우산, 한 손엔 지도를 들게 된 탓에 걸을 때마다 목에 달린 카메라가 대롱대롱 춤을 춘다.
그곳에 주검들이 있었다.
죽음이란 하나의 정물이 되는 것,
그리 생각하면 아름답다.
같은 사람 없듯, 묘비와 조각은 모두 다르다.
그게 옳다.
이름도 생몰 시기도 비석도 모두 다른 주검을 지나 디비종 넘버를 따라가니 두 사람의 이름이 보였다.
이름과 생몰연도만 새겨져 있을 뿐 아무 말이 없다.
비석은 단순했다.
같은 무덤에 누운 두 사람은 과연 사랑했을까?
묘비 앞에 서니 담담했다.
내가 왜 이곳에 그리도 오고 싶어 했던 걸까?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곳에 가 보고 싶었다.
마침 일요일이어서 근처 방브 벼룩시장을 찾아갔다.
탐나는 앤티크 카메라들이 오래도록 내 시선을 잡아끌고 있다.
하지만 그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
통가죽으로 만들어진 망원경 백을 샀다.
그 또한 크기에 비해 가볍지는 않지만 올드한 낡음이 끌렸다.
가죽 베스트에 크로스로 매면 아주 딱이겠다 싶었다.
10유로 내라는데 5유로에 샀다.
대나무 뿌리 손잡이가 달린 검정 우산도 샀다.
1유로,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
생제르맹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날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에게 온전히 시간을 주기로 했다.
파리 생제르맹 데 프레 거리의 카페나 살롱은 당대 문학가들과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내가 생제르맹 거리를 찾은 이유는 바로 그 카페 때문이다.
생제르맹 데 프레 성당과 카페 뒤 마고 사이에 있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광장’에 카페 뒤 마고와 카페 플로르가 마주 보고 있다.
어디로 갈까?
카페 드 플로르를 선택했다.
사르트르로 유명해진 카페 뒤 마고의 뒤(Deux)는 숫자 2, 마고(Magot)는 인형이라는 뜻이다.
카페 내부의 벽기둥에도 중국 도자기 인형 2개가 장식되어 있고, 찻잔에도 두 개의 인형이 그려있다.
1885년 이후 생제르맹 거리에는 수많은 카페들이 들어서면서 프랑스 상징주의 대표 시인 랭보와 베를렌 등의 약속 장소로 각광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후 피카소, 알퐁스 도데, 앙드레 지드, 헤밍웨이, 알베르 카뮈 등의 아지트로 파리 문학의 산실이 되었다.
그곳이 지금까지 명성을 잃지 않고 있는 이유 중의 하나가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가 아닐까 싶다.
철학자들은 사랑의 유형도 형이상학적인 플라토닉 한 연애를 했으려니 짐작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간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다. 그들이 막장 드라마식의 연애를 알고 나면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연애가 단지 육욕을 탐하는 것에서 그쳤다면 그들의 학문이 역사에 그렇게 깊이 새겨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보부아르가 사르트르를 만난 것은 소르본 대학 철학과를 졸업하고 에콜 노르말에서 교수자격시험 준비 강좌를 청강하면서부터였다.
두 사람은 1929년 치러진 철학교수 자격시험에서 나란히 1, 2등을 차지한다.
시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2등인 보부아르가 수석인 사르트르보다 더 뛰어났다고 수군거렸다.
보부아르는 당시 21세로 합격하여 최연소 철학교수자격 취득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다.
합격자가 발표되자 사르트르가 보부아르에게 다가와 말했다.
“당신은 합격했소. 그러니 이제 당신은 내 거요.”
당신은 내 거라는 말은 소유의 개념이다.
맘이 끌리는 남자에게서 그런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무슨 물건이야?’
하며 펄쩍 뛰는 척하면서 속으로는
‘흥! 눈은 있어가지고는…’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게 보통 여자들의 속성일 것이다.
“이제 당신은 내 거요.”
사실 사르트르의 이 고백은 의례적인 청혼의 의미가 아니었다.
사르트르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기묘한 계약 결혼,
즉 상대를 필연적 사랑으로 여기지만 우연히 다가올 또 다른 사랑을 서로 인정하며 그 내용을 낱낱이 고백하고 인정하자는 걸 제안했다.
일부일처제가 인간을 얽매는 사슬로 여긴 그는 상식적으로 얼핏 수긍하기 어려운 실험을 실천해보자는 것이다. 처음에 정했던 2년 동안의 그 관계는 무려 51년간 지속되었다.
당시 사회 구조로 볼 때 상상도 할 수 없는 새로운 부부의 모습이었다.
여성에게 있어 결혼이란 밥하고 청소하고 남편 뒷바라지하며 아이를 키우는 가사노동자로 밖에 여겨지지 않던 시절이었다.
보부아르로서는 이 제안이야말로 여성인 자신이 완성된 인격체로 완벽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이상적 모델이라고 생각했기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유형은 다르지만 두 사람보다 훨씬 전 우리나라에도 계약 결혼을 실천했던 사람이 있다.
허균은 성옹식소록에서 그녀를 맹인의 딸이라고 했고, 이덕형의 죽창 야사, 송도 기이 등에 그녀의 출생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으나 거의 설화 수준일 뿐 확실치 않다.
그러나 그녀가 만들어낸 다방면의 간판급 사내들과의 스캔들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나이 열다섯에 이웃마을 선비를 상사병에 만들어 죽음으로 내몰고, 30년간의 면벽 수도로 거의 생불(生佛) 수준인 지족선사를 파계시키고, 당대의 대학자 서경덕, 벽계수와 깊은 정을 나누었으며 일생을 통해 그녀가 유일하게 사랑했다던 소세양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남자들과의 관계들이 화려한 여인, 황진이는 선전관 이사종과는 6년 간 계약동거를 했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두 사람을 외모로 따지자면 연인으로 발전할 만한 이유가 없어 보인다.
훌륭한 가문에 늘씬한 몸매, 게다가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보다 훨씬 좋은 조건의 남자들을 얼마든지 고를 수 있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여자에게 호감을 주는 외모가 아니다.
158cm의 단신에 어려서 한쪽 시력을 잃은 사팔뜨기였고, 피부는 울퉁불퉁하고 머리털은 듬성듬성 숱이 적었다.
또한 치아와 손가락은 누렇게 절어있을 정도로 골초였다.
녹슨 쇠뭉치 같은 목소리에 동성애자들과의 질척한 연애와 하이데거스러운 짬뽕 철학에 집착했다.
도저히 이십 대의 싱그러운 청년으로 보이지 않던 그를 생기발랄함에 불같은 열정과 재치, 신선함까지 지닌 그녀가 대체 어떻게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일까?
보부아르를 사로잡은 건 그의 깊고 풍부한 지식이었다.
실상 사르트르는 그의 뒤떨어지는 외모와 상관없이 카사노바 뺨치는 바람둥이였다.
처음에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예기치 못한 외도를 알고 나서 애써 태연한 척했지만 내심 질투심으로 불타올랐었음을 그녀의 자서전에서 고백한 바 있다.
그들 연애의 시작은 삼각관계였다.
보부아르의 첫사랑인 마외를 통해 처음 사르트르를 만나고 난 그날 보부아르는 일기에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삶이다”라고 쓴다.
사르트르가 보부아르를 단 번에 넘어가게 한 작업 멘트는 바로 글쓰기, 제도 밖의 삶, 그리고 자유였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이 말에 완전히 경도되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평생 이 세 가지를 실천했다.
그들은 자신이 만들어내는 연애 이야기를 반드시 글로 남겼으며, 결혼이라는 제도에 매이지 않은 채 자유롭게 사고하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글쓰기는 이미 만들어진 패턴에 따르는 수동적 참여가 아니라 차이를 만들어내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행위였다.
세상의 관습에 저항하는 행위로써의 글쓰기는 두 사람이 완전히 동의하는 인생의 모토였으니, 이런 의미에서라면 그들의 기이한 연애 행각도 일면 이해받을 수 있다.
불륜, 육체적 탐욕, 막장으로 수식되어도 무리가 없을 두 사람의 연애가 범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자신들의 철학을 연인 관계에서는 물론 삶 전체에서 실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펼쳐간 관계의 복잡성은 막장 드라마가 난무하고, 포르노가 일상이 된 요즘 세상에 비추어 볼 때도 여전히 낯 뜨겁지 않을 수 없으며 높은 수위를 자랑한다.
그들의 연애 행각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보통의 사람들이 수용할 범위를 훨씬 벗어난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서로 허용하는 완벽한 자유 속에서 이뤄졌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러시아 출신 17세 여성 올가는 보부아르의 제자였다.
올가는 보부아르에게 그리고 사르트르에게 차례로 매혹돼 삼각관계에 빠졌다.
그뿐 아니라 사르트르는 올가의 여동생 완다와, 보부아르는 올가의 남편 보스트와 관계를 맺었다.
보부아르가 또 다른 제자 비앙카와 정사를 가진 뒤, 사르트르도 비앙카와 관계를 맺는다.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의 애인이자 제자였던 나탈리 소로킨을 유혹했고, 보부아르가 클로드 란츠만과 사귀자 사르트르는 란츠만의 여동생 이블린과 사귀었다.
A는 사운드가 좋고, B는 유연하고, C는 파워가 훌륭해… 하며 마치 연애 파트너가 두 사람이 공통으로 연구하는 학문의 주제인 양 공유한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 게 있다.
두 사람 모두 양성애자였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두 사람과 관계를 맺었던 그 수많은 남녀들도 모두 양성애자?
아니면 두 사람의 지적 의식에 매혹되어 마치 마약에 취하듯 성은을 입은 궁녀처럼 기쁘게 받아들인 것일까?
하지만 여기 언급한 외에도 두 사람이 각각 즐긴 사랑은 수 없이 많다.
게다가 계약의 조건이던 관계의 투명성과 정직함을 지키기 위해 각자가 잠시 만났던 연인들과의 섹스의 순간까지 서슴지 않고 라디오 연속극처럼 조곤조곤 들려주곤 했다.
두 사람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땐 세밀화같은 편지를 주고받았다.
책은 펼쳐져 있었지만 철학을 이야기하기보다 입맞춤이 더 빈번했으며, 손은 더 자주 상대방의 몸을 구석구석 더듬었다.
눈은 문자 위에 머무르기보다 때때로 바뀐 파트너의 눈망울 속에 머물렀다.
그들은 칡넝쿨처럼 얽히고설켜 경쟁하듯 정사를 즐겼다.
서로에게 전부가 되려 하지 않았기에 자타공인 평생의 연인이었으나 제삼자 없이는 그 관계를 이어가지 않았다.
그들이 펼친 연애의 무모함과 선정성은 막장 드라마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사르트르는 어느 여성이든 호감을 가지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소유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필은 수시로 꽂혔고 숱한 결판의 역사가 희극적으로, 때로는 비극적으로 이어졌다.
보부아르 역시 만만치 않았다.
생의 말년에 이르기까지 보부아르 주위에 매혹적인 연하 남 혹은 여자의 자취가 사라져 본 적이 없다.
어찌 생각하면 두 사람은 그저 성도착자에 지나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그런 두 사람에게 우리의 지적 허영을 자극하는 실존주의라는 그럴듯한 허울에 감쪽같이 속아서 세상 모두가 통째로 당하고 만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다.
사랑과 자유는 반비례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사랑과 자유를 함께 누렸다.
말하자면 결속과 독립을 함께 한 것이다.
보부아르가 남자의 육체에 완전한 만족을 느낀 사람은 미국인 작가 알 그렌이다.
보부아르는 알 그렌에게 사르트르와 비슷한 가치를 부여할 정도였다.
사르트르에 비하면 짧은 기간(17년)이었지만 때로는 알 그렌에게 더 비중을 두기도 했다.
보부아르는 한 때 사르트르와의 계약결혼을 포기하고 그와 함께 시카고에서 평범한 주부로 살기를 간절히 원하기도 했다.
‘나는 내게서 당신을 느낍니다.
내가 가는 곳에 당신도 함께 가고, 당신의 시선과 당신의 모든 것이 함께 한다는 것을 느낀답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그 말 밖에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없어요.
저는 항상 당신과 함께 있을 거예요.
시카고의 슬픈 거리에서 지상으로 가는 지하철 철교 아래에서, 고독한 방안에서 저는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있는 사랑스러운 아내처럼 당신과 함께 있을 거예요.
우리는 깨어나지 않을 거 에요.
왜냐하면 그건 꿈이 아니니까요.
당신을 만나서 당신을 만질 수 있다는 생각만 해도 내 가슴이 터져나갈 것 같아요.
이번에 당신을 만나면 얌전한 여자가 될게요.
당신을 위해 요리도 하고 청소도 하고 장도 보겠어요.
난 당신이 원하는 것만 할래요.’
1947년부터 1964년까지 영어로 쓴 수백 통의 편지에서, 보부아르는 알 그렌에게 ‘멀리 있는 나의 남편’, ‘영원한 당신의 아내’라고 썼다.
자신이 항상 비난했던, 사랑에 빠져 남자에게 종속된 여자의 모습으로 돌아가길 바랐던 것이다.
과연 사랑은 여자를 노예의 위치로 전락시키는 걸까?
그러나 알 그렌이 보부아르에게 두 사람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그녀의 선택은 단연코 사르트르였다.
이들이 남녀평등 사상을 완벽하게 실현한 것은 그 시기가 여성의 위치가 지금과 같지 않던 1930년대라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여기서 보부아르의 역할이 당연히 중요했지만, 보부아르의 남녀평등 의지를 기꺼이 받아들인 사르트르의 역할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들의 결혼 생활은 사르트르가 죽는 날까지 51년 간 지속되었다.
갈등과 위기를 극복한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의 임종을 지켰고 그의 죽음이 ‘다시는 내게 말을 걸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가 사망한 지 6년이 되던 바로 그날인 4월 14일, 그녀 역시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보부아르는 알 그렌이 준 반지를 낀 채로 사르트르 옆에 묻혔다.
그리고 보부아르가 세상을 떠난 2006년, 파리 국립도서관으로 연결되는 센 강의 37번째 다리에 사상 최초로 여성의 이름이 붙여졌으니 그 이름은 시몬 드 보부아르 다리이다.
과연 그들은 서로 신뢰하고 허용할 뿐, 질투와 분노의 감정은 없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성을 앞세우기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남녀였기에, 종종 질투와 위기가 따르곤 했다.
하지만 그들은 두 사람을 튼튼하게 묶어주는 지적 교감으로 끊임없이 대화했고 지식을 교환했다.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에게 언제나 다른 여자가 있는 것을 인정했지만 자신이 그의 지적 반려자라는 자리는 양보하지 않았다.
사르트르 또한 보부아르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귀로 생각했다.
그들의 지적 교감은 세상을 똑같은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보부아르가 말했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같은 도구와 체계, 그리고 같은 열쇠를 사용했다.
때때로 한 사람이 시작한 문장을 다른 사람이 끝맺기도 했다.
누군가 우리들에게 질문을 던지면 우리들은 똑같은 답을 할 때도 있었다.
내 인생에서 여지없이 확실한 성공 하나를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사르트르와의 관계이다.”
두 사람은 열망도 같았다.
사회 속에서 스스로를 실험하고자 했다.
자신들이 내세웠던 자유, 존재, 실존의 문제, 페미니즘 등을 끝없이 토론하고 또 경험을 통해 검증해보고자 했다.
그렇게 하나가 될 수 있었고, 더 많은 대화와 생각을 공유할 수 있었다.
둘 사이의 견고한 믿음을 사르트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변하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한 가지 사실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또한 내가 어떤 사람이 되더라도 난 그대 보부아르와 늘 함께하리라는 사실이라오.”
‘인생은 짧다 바람을 펴라’ 기혼자들의 데이트 상대를 소개해주는 웹 사이트 애슐리 메디슨의 광고 문구이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는 천하의 바람둥이였다.
부인 헤라의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눈에 띈 세상의 아리따운 여인들은 모조리 그의 여자가 되었다.
제우스가 바람을 피우지 않았다면 그리스 신화의 재미는 줄었을 것이다.
불륜이 없다면 수많은 소설과 회화와 영화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간통죄라는 단어가 없다.
우리나라도 간통죄가 성립되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인간이 인간을 소유할 수 있는 제도가 법적으로 사라진 것이다.
그렇지만 ‘인생은 짧으니 바람을 피자’ 할 사람이 홍수 난 한강처럼 늘어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디 간통뿐이랴? 절도나 사기, 살인 역시 법이 없어서 벌어지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당신 행복한 거야?”
그녀가 거침없이 빠져들게 된 것은 그의 단 한 마디 때문이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팽팽하고 아름다운 곡선을 갖고 있는 린다는 매년 <가장 부유한 스위스인 300인>에 이름을 올리는 남편 덕에 돈의 구애 없이 살고 있다.
돈만 벌어다 주는 기계 같이 무심하고 뻣뻣한 남편이냐?
아니다.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하며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다.
오직 아이들 뒷바라지만 하며 자기 정체성을 잃어가는 아줌마로 안주해 가는 데서 염증을 느끼느냐?
그 또한 아니다.
명망 있는 신문사의 기자로 사회 문화 전반의 인사들이나 정치가들을 인터뷰하며 자신의 생각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성취감을 맛보는 지성미를 겸비했다.
객관적인 조건으로 볼 때 행복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갖고 있는 셈인 셈이다.
그러나 린다는 언제부턴지 행복엔 관심이 없다.
단지 열정적인 삶을 살고 싶다.
그게 위험한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으니까 말이다.
열정적인 삶에 대한 생각에 빠져들수록 하루하루가 무의미하던 어느 날, 최고의 명망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한 정치가를 인터뷰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그는 린다가 결혼 전 사귀던 남자이다.
“당신 눈에 뭔가 있어.
당신처럼 예쁜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슬픔이 보여.
다시 한번 묻자. 당신 행복한 거야?”
한 때 사랑했던 남자가 행복하냐고 묻는다는 건 아직 관심이 남아있다는 뜻,
즉 여자가 꿈꾸던 열정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와 같은 말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린다는 남편에게 거짓말을 일삼으며 아찔하게 고혹적인 속옷을 사들인다.
그렇게 꿈꾸던 열정의 시간이 이어졌지만 린다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아내에 대한 질투심 때문이다.
린다는 살인 계획을 꾸미게 된다.
거침없는 희열에 눈이 먼 것이다.
그 달콤함은 마약중독자의 그것과 같은 것이라 효과는 잠시 뿐, 전보다 더한 절망이 찾아드는 걸 알게 된다.
남자는 그의 부인과 헤어질 생각이 없다.
오히려 린다와의 관계를 한 여름밤의 꿈처럼 정리하고 싶어 한다.
변하지 않는 것처럼 믿고 싶을 뿐 끊임없이 변하는 게 사랑이다.
권태와 무료함, 우울함은 사랑의 파동이 지나는 길에 마주치는 일부분이다.
그녀는 미약하게나마 모방할 수 있었던 그 순간들이 사라지지 않는 슬픔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첩보전 같이 두려웠던 기쁨의 순간이 막을 내리는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불륜」이다.
일종의 사랑이지만 달콤한 비극이자 두려운 기쁨, 불륜의 속성이 아닐까?
노예가 불행한 건 독립적이지도 자유롭지도 못한 이유일 것이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연인들 사이에 흔히 말하는 ‘누구 거?’ 란 말은 옳지 않다.
부모 자식의 관계에서 조차,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이 될 수 없다.
사랑을 소유로 여기면, 사랑하는 사람을 독립된 개체로 보지 못하고 내 것으로 보게 된다.
즉 내가 가진 물체로 인식하고 상대방의 자유롭고 독립적인 행동을 내 식으로 바꾸어야만 속이 시원해진다.
그러므로 내 것이라 여기는 사람이 내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으면 마음이 아프다.
그뿐인가? 다툼이 일어나게 되고 떠나가게도 된다.
사랑을 빌미로 내가 누군가에게 소유된다면 내 삶은 잃어버리게 된다.
내 삶이 내 것이 아니게 된다는 건 어떤 이유에서든 모순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소유하지 않음을 전제로 해야 한다.
사랑은 눈이 멀게 되는 것이라고들 말한다. 과연 그럴까?
사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사랑만큼 확실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눈이 멀게 된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요구가 없고, 기대가 없으며, 의존이 없다.
나를 행복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내 행복이 너에게 있지 않는 것이다.
「앤소니 드 멜로의 ‘사랑에 이르는 길’ 중」
사랑은 상대에게서 무엇을 받아 자기 자리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릴케가 말했다.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 자기 자신은 혼자가 될 각오를 하는 것,
그것이 행복한 사랑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해와 달이 혹은 바다와 육지가 서로 접근할 수 없듯, 서로 접근하지 않는 게 우리의 과업이야.
우리 두 사람은 말하자면 해와 달이며, 바다와 육지란 말이지.
우리의 목표는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인식하고, 서로를 통찰하고 존경하는 법을 배우는 거야.
상반되는 것이 무엇이며, 서로 보완할 것이 무엇인가를 말이지.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 중」
사랑은 상호적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면, 너 역시 나를 사랑하길 바란다.
이러한 요구에 네가 응할 때 나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너 역시 내게 필요하며 정당성을 지닌다.
그러므로 사랑의 관계에서 나+너=우리가 될 때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사랑은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답고 유혹적이다.
그러나 별의 실상은 쓸모없는 먼지와 돌덩어리일 뿐이라는 차원에서 사랑의 속성과 닮았다.
사랑은 때때로 외로운 기다림이다.
달콤한 고통이며 두려운 기쁨이다.
사랑은 환희와 떨림, 슬픔과 절망의 모순된 또 하나의 아름다운 협주곡, 그러니 너무 애달파하지 말 일이다.
때로 모자라고 아쉬운 것이 외려 따스한 여백이 될 때가 있으니까.
너 비록 멀리 있어도 난 너를 볼 수 있다.
너 비록 멀리 있어도 넌 내게 머물러 있다.
「루 살로메 / 볼가 강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