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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Dec 27. 2016

하이델베르크, 독일과 헤어지다

가끔 내게 고마울 때가 있다.


트램에서 내린 곳은 비스마르크 광장, 

하우프트 거리 역시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기념품 상점과 호텔, 레스토랑, 그리고 사람들이 걷고 있다.

        


'신성한 산'이라는 뜻의 하릴리겐베이크에서 유래한 말 하이델베르크,

이곳엔 1386년에 신학부, 법학부, 철학부로 개교한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있다.

그 시절의 대학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앎에 대한 욕구는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만 사람이라는 개체가 신비로운 건 사실이다. 

이 대학 출신 중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7명,

칸트를 비롯해 수많은 학자들을 배출했고 13만 명의 인구 중 3만 명이 학생 및 대학의 직원으로 근무한다니 그야말로 교육 도시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는 그를 보며 동네 사람들이 시간을 알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산책은 곧 칸트였다. 

칸트가 딱 하루 산책을 빼먹은 날이 있으니, 그건 <에밀> 때문이다. 

책에 집중하다 산책 시간을 까먹을 정도였다니 이쯤 되면 <에밀>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기쁨은 얻고 싶어 하면 얻어지는 것이다. 

만사를 까다롭게 만들어, 우리 앞에서 행복을 밀어내는 것은 억측뿐이다.

행복해지는 건 행복한 체하기보다는 백 배나 더 쉬운 일이다. 

안목이 있어 진짜 쾌락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재산이 소용이 없다. 

자유롭게 자신의 지배자가 되기만 하면 된다. 

건강을 누리고 의식에 궁하지 않은 자라면, 

억측에서 오는 행복을 자기 마음에서 뽑아내기만 하면 다 충분한 부자이다. <에밀 중>


좋은 글귀와 명언, 진리의 공통점은 모든 사람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읽고 나면, 듣고 보면, 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다 아는 것 같은 저 말도,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자주 잊곤 한다.

내 얘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식이 공부를 잘하면 법률가가 되기를 바랐다.

차이코프스키가 그랬고 슈만도 그랬다.

하지만 평양 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소용없는 법,

두 사람은 결국 음악의 길을 걸었다.    

슈만도 한 때 하이델베르크 법률대학에서 공부했다.

그가 살던 집에 조그만 명패가 붙어 있다.

‘나비(Papillons)’는 그때 만들어진 피아노 모음곡이다.


Schumann Papillons op.2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학생 감옥이 있다. 

학생이 저지른 범죄는 경찰의 간섭 없이 대학에서 처벌을 하는 형태였다.

학생 감옥에 2주 동안 감금하는 대신 사회적 처벌을 피하게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학생들을 보호하던 기능이다.

수감된 학생은 강의를 들으러 가거나 파티를 열기도 했다.

그러므로 당시 하이델베르크 대학생들은 감옥에 투옥되는 걸 일종의 훈장처럼 여기기도 했다고 한다.  



학생 감옥에서 걷다 보면 성령교회를 만나게 된다.

유럽 도시에서 성당이나 교회 한 두 곳은 꼭 들어가게 된다.

교회 내부는 심플했고 한쪽에 안내를 하는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아름다운 교회니 천천히 구경하라고 하신다.

소박한 파이프 오르간이 눈길을 끈다. 


Bergbahn에서 하이델베르크 성 입장권을 사니 푸니쿨라는 무료로 탈 수 있었다.

쾨니히슈톨산 위에 자리 잡은 성에 오르니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하이델베르크를 관통하는 네카 강 위로 오래된 카를 테오도르 다리가 보인다.

이곳 역시 붉은 지붕의 집들이 펼쳐져 있다.

부서진 성벽과 해자, 뼈대만 남은 빈 창틀은 을씨년스럽지만 복원시키지 않은 옛날 그대로의 모습이 더 좋다.

초록의 이끼 옷을 입은 나뭇가지들이 포근해 보인다. 

독일의 여러 도시들이 복구를 해놓아 말끔한 자태를 자랑하는 것과는 영 대조적이지만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예스러움이 나쁘지 않았다.



무너지지 않은 유일한 건물인 프리드리히관으로 들어갔다.

그곳 지하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와인 오크통이 있다.

정말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크다.


하이델베르크에서 공부했던 슈만은 가곡집 ‘시인의 사랑’을 작곡했다.

하이네의 시집에서 몇 개의 시를 가져와 곡을 붙인 것이다. 

슈만은 하이네보다 13살 어렸지만 같은 해에 세상을 떠났으니 비슷한 시대를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가곡집에 실린 16개의 가곡 중 처음 6곡은 젊은이의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고, 다음 8곡은 실연의 슬픔을, 마지막 2곡에서는 잃어버린 사랑에의 회상을 노래하고 있다.


그러니까 16번 마지막 곡 ‘불쾌한 옛 노래’에 이 거대한 술통 이야기가 나온다. 

‘옛날의 불쾌한 노래, 싫은 꿈을 이제 묻어버리자. 

큰 관(棺)을 가져오라, 그 관은 하이델베르크의 술통보다 커야 한다.’ 


이 술통은 1751년 선제 후 카를테오도어 때 제작되었다고 한다. 

술통의 높이는 약 7미터,  폭은 약 8.5미터로 약 221리터의 술을 보관할 수 있다.

술통 맞은편에는 나무로 만든 난쟁이 인형 페르케오가 서 있다. 

페르케오는 이를테면 술통 지킴이다.

그는 하루에 18리터의 포도주를 15년 동안이나 마신 대주가로 항상 술에 취해 있었다.

어느 날, 의사가 그에게 건강을 위해 술을 끊으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페르케오는 다음 날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그의 나이 80세, 와인은 장수식품인 게 맞는 모양이다.

지하에서 올라오니 와인을 파는 간이주점 같은 게 있다.

한 잔 하지 그래?라는 문구와 페르케오의 그림이 그려져 있지만 와인을 즐기지 않기에 그대로 지나쳤다.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하다.

우리나라에도 의학에 관한 문헌들이 많다.

여러 도시들이 약 박물관을 갖고 있는 걸 보면 의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은 옛날에 약이 얼마나 귀중한 역할을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고풍스러운 장식장 속에 진열된 앤티크 한 도자기 병들이 약과 무관하게 아름답다.

건재 약초나 약재로 사용된 파충류들이 군데군데 걸려있기도 하다.

세상에 있는 모든 어린 것은 예쁘다.

그러나 오래되고 낡은 것에는 아름다움의 깊이가 있다.

아기의 해맑은 미소가 예쁘고 노인의 얼굴에 깊게 패인 주름살은 아름답다.

그게 시간의 이치가 아닐까 싶다.


성에서 내려와 카를 테오도르 다리를 건넌다.

칸트는 일명 철학자의 길이라 불리는 곳을 산책하여 이 다리를 매일 건넜다고 한다.

철학자들은 걷기를 즐겼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한 홉스는 잉크병을 휴대용 지팡이에 달고 다녔다. 

걷다가 생각이 떠오르면 메모하기 위해서란다.

베토벤이 산책을 하다가 영감이 떠오르면 셔츠 깃에 메모를 했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제자들과 사색을 즐겼다.
루소는 “나는 걸으면서 명상에 잠길 수 있다. 나의 마음은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라고 했고,  

키에르 케고르는 “걸으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고백했으며, 

니체는 “심오한 영감, 그 모든 것을 길 위에서 떠 올린다”라고 했다. 



혼자 걷는 시간은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시간이다.

돌아봄, 그리고 지금이 모두 그 속에 들어있다.

함께 걸어 좋은 시간이 있듯 혼자 걸어 좋은 시간이 있다.

여행지에서의 산책은 더더욱 그렇다.


독일에서의 마지막 밤이요, 5일간의 파리 일정만 남아있는 터였다.

헤네시가 떨어진 지 벌써 여러 날,

호텔 옆의 독일 마켓 REWE에 가서 글렌피딕과 치즈, 청포도를 샀다.

가끔 내게 고마운 때가 있다.

그날이 그랬다.


모든 건 지나간다.

그래서 다행이고, 그래서 아쉽다.

함부르크에서 하이델베르크까지 멀지만, 멀지 않은 듯 지나왔다.

그래서 다행이다.


여행 할 때 즐겨듣는,

아니 여행을 떠나고 싶은 노래이기도 한 노래 세 곡이다. 

1. 러시아 민요, 나 홀로 길을 가네               

2. 이탈리아 깐초네, 마음은 집시

3. 그리스 미키스 테오도라 키스 곡, 기차는 8시에 떠나네

                

Viyhazhu Adna Iya Na Da(나 홀로 길을 가네) 스베틀라나
Il cuore e uno zingaro (마음은 집시) 니꼴라 디 바리
To tréno févgi stis okto (기차는 8시네 떠나네) 아그네스 발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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