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파티보단 도서관 같은 고요한 생각들을...
아코디언 소리가 들렸다.
페루 음악 '철새는 날아가고'(엘 콘도 파사),
독일 뉘른베르크의 성문 안에서 엘 콘도 파사라니...
치마저고리에 하이힐 신은 격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자석처럼 이끌려 그쪽으로 다가갔다.
성 밖으로 통하는 문은 짧은 터널 같았다.
한 중년의 남자가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다.
지하도에서 연주하는 버스커들의 울림이 근사하듯, 그곳 역시 짧으나마 터널의 효과가 있었다.
오가는 이가 거의 없는 돌 문 안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남자의 표정이 우울해 보였다.
얇은 점퍼에 바지 밑단 아래로 맨 살이 보이는 그가 몹씨 춥겠다 싶었다.
노래 가사가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남자의 소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팽이가 되기보다는 참새가 되고 싶어요
맞아요
할 수만 있다면 정말 그렇게 되고 싶어요
못이 되기보다는 망치가 되고 싶어요
맞아요
할 수만 있다면 정말 그렇게 되고 싶어요
지금은 멀리 날아가버린 한 마리의 백조처럼
나도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어요
땅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은
세상을 향해서 가장 슬픈 신음소리를 내지요
가장 슬픈 신음소리를...
길거리가 되기보다는 숲이 되고 싶어요
맞아요
할 수만 있다면 정말 그렇게 되고 싶어요
이 세상을 내 발 밑에 두고 싶어요
맞아요
할 수만 있다면 정말 그렇게 하고 싶어요
악기 케이스에 2달러를 넣어주고 사진 몇 장을 찍으며 그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바랐다.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마이스터징거 본 뉘른베르크)라는 오페라가 있다.
독일 작곡가 바그너 작품이다.
마이스터징거는 장인을 뜻하는 마이스터(meister)와 가수를 뜻하는 징거(singer)가 합해진 말이다.
직업적인 가수가 아니라 노래를 제일 잘 하는 장인을 뜻한다.
16세기 중엽, 뉘른베르크의 성요한 축일,
마이스터징어 노래 경연에서 우승한 자는 금세공사 포그너의 딸 에파와 결혼하게 된다.
에파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한 발터는 노래 경연대회에 나가려고 하지만 예선에 떨어지고 만다.
그날 밤 발터는 에파와 야반도주를 시도한다.
하지만 에파를 짝사랑하던 홀아비 구두장이이자 마이스터징 어인 작스가 그들을 발견하여 도망에 실패한다.
성요한 축제일 아침,
작스는 어젯밤 자신의 집에서 신세를 진 발터를 도와주기로 하고 그에게 노래를 시켜본다.
그의 노래에 감동한 작스는 기지를 발휘해 발터가 노래 경연대회에서 우승하게 도와준다는 훈훈한 줄거리다.
기차에서 와이파이가 된다.
조용하고 매너 있는 사람들,
품위란 옷 갈아입듯 하루아침에 입혀지는 게 아니다.
일요일이라 한적하다.
거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아 심심할 정도이다.
일본 단체 여행객 한 무리를 만났다.
날개 달린 듯 가볍게 살살대다가 마무리는 스타카토로 끊어지는 일본 특유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 사진, 찍어주시겠어요?
분명 영어지만 일본어로 들리는 기이한 현상이다.
기차에서 본 사람들의 품위와는 정 반대의 느낌을 주는 부부였다.
70대로 보이는 부부의 차림새는 보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 행색이었다.
아방가르드한 아이보리 재킷, 알라딘 바지에 버건디 컬러의 롱부츠를 신은 남자는,
구찌백을 크로스로 매고 있다.
절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캐시미어 울의 펜디 머플러, 도라지꽃을 손가락에 끼워놓은 듯한 보라색 장갑,
날씨와 무관하게 끼고 있는 동그란 프레임의 검은 선글라스,
대머리를 감추기 위한 회색 페도라,
피에로가 따로 없다.
부인은 거대한 아나콘다 코트를 입고 있다.
밑단과 소매에는 친치라 털이 풍성하게 달려있고 연두색 털 목도리를 포인트로 감았다.
목도리와 깔맞춤의 연두색 두건,
뱀부 손잡이가 달린 와인 컬러의 구찌 백은 부창부수라고 남편과 같은 방향으로 크로스로 매고,
주황색 가죽장갑을 낀 손에는 자주색 우산이 들려있다.
그게 끝이 아니다.
패션의 완성은 슈즈라고 했던가?
수박색 스타킹에 하얀 부츠.
부부가 저렇게 쿵짝이 맞기도 힘들겠다 싶다.
두 사람이 치장하는데 든 돈이 어림짐작에 수 천 만원은 돼보였다.
돈도 많은데 왜 굳이 패키지여행을 따라다닐까? 하는 쓸데없는 궁금증이 잠시 들었다.
뉘른베르크의 구시가지는 성으로 둘러싸여 있다.
성의 쾨니히 문으로 들어가 제일 먼저 만나는 건 수공예 광장, 그러나 수공예 샵들도 역시나 굳게 문이 닫혀있다.
성 로렌츠 교회는 뉘른베르크에서 가장 큰 프로테스탄트 교회이다.
쌍둥이 탑이 있는 서쪽이 아름다운데 탑의 꼭대기 뾰족한 부분의 모양이 다르다.
출입문의 조각 양식이 화려하다.
쾨니히 거리에서 중앙광장으로 통하는 다리를 박물관 다리라고 한다.
박물관 다리의 오른쪽에 성 양로원이 있는데 그 풍경이 오래된 유화처럼 고색창연하다.
색감이 너무 맘에 든다.
비교적 비수기인 겨울에는 어느 도시나 보수를 하는 유적들이 많다.
아름다운 분수라는 뜻의 쇠너부르넨이 포장에 가려있다.
프라우엔 교회, 즉 성모의 교회 지붕이 어디서 본듯하다.
기억을 되살려 보니 뮌헨의 성 피터 교회와 모양이 같다.
하지만 크기나 벽돌의 색깔은 영 다르다.
정오에 시계탑 인형이 움직인다고 하지만 이젠 별 관심이 없다.
호기심과 신기함은 반복적으로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KFC에서 치킨 세트로 점심을 먹었다.
값은 우리나라보다 두 배는 비쌌지만 맛은 있다.
게다가 깜짝 이벤트처럼 커피를 주었다.
페스트 푸드 점에서 커피를 서비스로 서빙해 주다니... 아무튼 기분은 좋다.
독일어를 사용하는 올드 타운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제 눈에 착착 들어오는 독일어들이 늘고 있다.
단어에 불과하지만 그 단순한 앎이 모여 언어도 공부하게되는 것이다.
뭔가를 알게된다는 건 참 매력있는 일이다.
Altes 오래된
Rathaus 시청
Tor 문
Brucke 다리
Markt 광장
Frauenkirche 성모교회
burg 성
gasse 거리
성으로 가는데 장크스 제발두스 교회가 보인다.
1225년부터 150년 동안 지었다는 교회는 로마네스크 양식이 가미된 고딕 건물로 그 위용이 대단하다.
성에 오르니 뉘른베르크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카이저부르그는 황제의 성이라는 뜻, 여기서 황제란 신성로마 제국의 황제를 말한다.
유럽 어딜 가나 신성로마 제국의 흔적이 남아있다.
그들의 위력이 얼마나 컸는지 새삼 놀라울 뿐이다.
바위산 위에 서 있는 성은 스산함이 가득할 뿐, 독특한 아름다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우스꽝스러운 일본인 부부가 부산하게 허니~를 부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성에서 내려오니 뒤러 거리이다.
그곳엔 르네상스 시대의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집이 있다.
그 앞에 뜬금없이 거대한 토끼 조형물이 앉아있다.
뒤러의 그림 중 가장 대표작이 토끼라 똑같은 형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라는데 황소만 한 크기의 토기가 징그러워 보였다.
뉘른베르크에서 가장 정감 있는 거리는 바이스 게르버 소로이다.
헹커스테크쪽으로 이동하다 보니 와인하우스(Weinstadel)가 한눈에 들어온다.
와인하우스는 나병환자 수용 목적으로 세워졌는데 16세기부터 와인하우스, 빈민 수용소로 사용되었고 현재는 학생 기숙사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이끼 낀 나무다리는 '사형 집행인의 작은 다리'로 실제 중세에 사형 집행인들이 다니던 다리였다.
일반 사람들이 사형을 당하러 가는 죄수들을 볼 수 없도록 지붕이 덮혀진 형태로 만든 듯하다.
뉘른베르크에는 페그니츠강이 흐른다.
물이 있는 풍경은 부드럽다.
흰 꽃처럼 점점이 떠 있는 새들이 어우러진 강물과 곳곳의 작은 다리들이 품고 있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하나의 보석보다 한 아름의 꽃이나 한 그루의 나무를,
화려한 파티보다 도서관 같은 고요한 생각을,
모피 코트보다 검박한 여행을 선택한 자의식에 감사한 마음을 가졌던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