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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Jul 01. 2016

삶,
겹쳐질 수 없는 불협화음의 협화음

<영화 페인티드 베일, 에릭 사티의 그로시엔느>





  슬픔을 배제한 아름다움은 완벽하지 않다. 또한 누구나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사랑과 죽음이다. 이미 누구나 한번쯤 해봄직 했을만한 진부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영화 <페인티드 베일>의 엔딩 크레디트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남자의 눈은 슬펐다. 배신당한 사람의 눈은 분노로 불타지만, 상심한 남자의 눈엔 슬픔이 가득하다. 그것이 주인공 월터(에드워드 노턴)의 눈을 잊을 수 없는 이유다. 아내인 키티(나오미 왓츠)를 용서할 수도,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는 월터의 마음을 간파한, 지인 워딩턴(토비 존스)은 이렇게 말한다. ‘남편은 부인께 얘기할 때도 부인을 쳐다보지 않더군요. 주위를 응시하거나 바닥을 봅니다.’ 그렇다. 월터의 슬픈 눈은 아름다운 아내 키티의 눈을 마주하지 못한다. 영화에서 진정성을 일구어낼 수 있는 배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페인티드 베일에서의 나오미 왓츠와 에드워드 노튼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이 곧 월터이며 키티였다.


  <페인티드 베일>은「달과 6펜스」,「인간의 굴레」를 쓴 작가이며 영국의 모파상이라고 불리는 윌리엄 서머셋 모옴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1920년대 중국, 냉철한 성격의 세균학자 월터는 영국 런던의 한 파티에서 도도한 아가씨 키티를 만나 결혼한 뒤 연구를 위해 중국 상하이로 건너간다. 월터는 연구와 독서에만 매달리고 쾌활한 성격의 키티는 사교모임에서 만난 외교관 찰리와 사랑에 빠진다. 아내의 배신을 눈치챈 월터는 콜레라가 퍼져 있는 메이탄 푸 지역의 병원을 맡겠다고 하며 키티를 반 강제로 그곳에 데려간다. 마을은 문명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 오지 중의 오지, 사람들은 콜레라로 속속 죽어 나간다. 월터는 키티의 존재를 무시한 채 연구와 치료에 전념하고 키티는 공포와 절망의 한 복판에서 수감생활과 같은 나날을 보낸다. 처음 월터를 배척하던 마을 사람들은 월터의 헌신에 마음을 열게 되고 키티도 수녀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봉사한다. 어느 날 그녀는 쳄발로에 가까운 쇳소리를 내는 낡은 피아노로 사티의 그로시엔느를 연주하는데 그 소리는 더 없이 처연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피아노를 치는 그녀의 모습에서 월터는 런던에서의 아름다웠던 키티를 오버랩하며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사랑을 되찾는다.


Eric Satie - Grossienne No.1



  ‘우리는 서로에게 없는 것을 찾으며 불행해했지’ 하는 월터의 대사에서 가슴을 후벼 파는 공감을 느꼈다. 두 사람은 사랑과 배신의 엇갈림 속에서 서로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입히지만 죽음이 자신들을 위협하는 지역에서 인간 정신의 숭고함을 보여주는 서로를 조금씩 존중하며 애증을 풀어간다. 콜레라 감염지역에서 매일 수녀들이 죽어나가는데도 결코 철수하지 않는 원장 수녀가 어느 날 키티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17살에 하느님과 지독한 사랑에 빠졌어요. 그 사랑의 열정은 너무나 깊었는데, 하느님은 그 후로 나를 돌보지도 않았고, 무시하셨어요. 그러나 나는 계속 남아 있었고, 지금은 나란히 늙어가는 노부부처럼 말없이 서로 편안한 소파에 앉아 바라보듯 지내고 있어요.’ 수녀님의 독백은 사랑의 현실적인 모습 그 이상을 표현하고 있다. 그가 나를 지극히 사랑하며 아껴 주리라 생각하지만, 매번 서로를 돌본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매번 그 사람의 마음을 다 받아준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너무 늦게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한 두 사람, 그러나 운명은 그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정녕 삶은 겹쳐질 수 없는 것들이 내는 불협화음의 협화음일까? 결국 월터는 콜레라에 감염되어 죽고 키티는 런던으로 돌아간다. 



  영화에서 영상과 음악, 대사는 중요 요소다. 잘 쓴 음악 하나만으로 감정표현이 충분하며,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울 같은 대사 한 줄에서 기쁨을 찾는다. 중국 황산의 빼어난 산과 물안개 피는 강기슭, 온갖 푸른색으로 물든 아름다운 풍경은 몰입도를 높일 수 있었고 한 컷 한 컷이 모두 잘 잘 찍은 사진 같다. 의상 또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으며 음악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la claire fontaine, (맑은 샘에서) 장미꽃이 아직 장미 나무에 피었다면 좋겠네, 나와 내 친구가 같은 사랑 안에 있다면 좋겠네>은 홀로 남겨진 키티의 감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음악을 담당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는 내가 손에 꼽는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색계> 등의 음악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음악가다. 또한 랑랑이 연주한 페인티드 베일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에릭 사티의 그로시엔느)음반은 2006년 LA영화비평가협회 상, 2007년 골든 글러브상을 수상했다. 영상이나 음악 말고도 인간의 깊은 내면까지 완벽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영화, <페인티드 베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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