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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Feb 25. 2017

돌의 꽃, 함피




온 천지가 바위산이며 돌로 지어진 사원들이 산재해 있는 곳, 함피

단순하기 짝이 없는 그 한 가지 지식에 근거하여 내가 준비한 것은 단지 샌들 대신 워커를 선택한 것뿐이었습니다.

왠지 그곳이 썩 내키지 않았어요.

뭐랄까, 척박하거나 투박한 것에 별 관심이 없는 이유?

돌길, 돌계단, 돌담은 좋아하는데 유독 바위 산이나 돌로 만들어진 사원에는 정이 가지 않아요.

며칠 전 마말라뿌람에서 보았던 사원들 역시 별 감흥을 주지 못했고 내 관심에서 벗어났던지라 더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릭샤 왈라의 말에 의하면 함피는 유적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어서 보통은 이틀 동안 돌아봐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하루에 1000루피씩 2000을 달라고...

대답을 하지 않고 필요하면 전화하겠다며 전화번호만 받아놓았었지요.


호텔 컨시어지에 문의하니 호텔 자동차로 하루 투어를 하는데 1700루피랍니다.

물론 하루에 모두 돌아볼 수 있다는 얘기였고요.

이틀 동안 털털거리는 릭샤에서 온몸으로 갖은 흙먼지를 다 뒤집어써야 할 이유가 없음이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즐기며 자동차를 이용했습니다.

운전과 함께 친절한 가이드가 이어졌어요.

문제는 기사가 100마디 하면 한 두 마디 알아들을까 말까 하는 거였지요.

분명 영어인데 인도어처럼 들려요.

굴곡 심한 억양과 발음이 세다 못해 부러질 정도예요.

소통이 안되니 귀가 무척 피곤하더군요.

그러나 어쩌겠어요.

하루 동안 내 발이 되어줄 가이드며 기사이니 소머즈 흉내라도 내야 할 참입니다.


맨 처음 도착한 곳은 비루팍샤, 메인 템플이라며 구경하고 오라고 합니다.

걸을 때마다 흙먼지가 풀풀 거리는 걸 보면 비가 내린 지 상당한 날들이 지난 걸 알 수 있었지요.


영국 남부 윌트셔 주 솔즈베리 평원과 에이브 버리에 높이 8미터, 무게 50톤에 달하는 거석 여든 여 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돌무덤은 선사시대 유적으로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지요.

바로 스톤 헨지입니다.



스톤헨지와 달리 함피는 함피(Hampi)는 데칸고원의 비자야 나가르 왕국의 수도로 알려진 곳입니다.

남인도에 영향력을 떨쳤던 마지막 힌두 제국이지요.

만들어진 시기와 누가, 왜, 어떻게라는 것이 알려지긴 했지만 내 눈엔 그저 돌무덤 속에 피어있는 공룡 꽃처럼 무겁게만 느껴지더군요.


함피는 1336년 하리하라 1세와 그의 동생 부카라야 1세 등 다섯 형제가 창건하였습니다.

장엄하고 엄숙하게 느껴지는 함피는 마지막 힌두 왕조인 비자야 나가르(Vijayanagar) 왕조의 수도였어요. 상당히 부유한 왕족들은, 14세기∼16세기 여행객들의 찬사를 받은 드라비다 양식의 사원과 궁전을 건축하였지요. 비자야 나가르는 산 크리스 트어로 '승리의 도시'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1565년, 데칸 모슬렘에게 정복된 이 도시는 6개월 동안 약탈을 당한 뒤 버려졌습니다.

이 제국은 북인도 지역에서 시작된 12-13세기 이슬람 세력의 인도 침공에 대한 남부 힌두 세력의 반발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생겨났으며, 끊임없이 주변의 이슬람계 왕조들과 싸우며 17세기까지 세력권을 지켰지요.

유적이 몰려 있는 함피의 헤마 쿠타 언덕 일대는 거대한 화강암 바위 언덕으로 수십 개의 크고 작은 사원 유적이 산재되어 있더군요.




커다란 고뿌람을 통과해서 사원으로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신발과 모자 벗기.

워커 덕에 양말을 신었기에 찜질방 같은 돌의 뜨거움을 그나마 면할 수 있었지요.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한 원숭이들이 누구의 가방을 소매치기해볼까 하는 자세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바람을 잡습니다.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왔는지 모두 사복을 입고 있어요.

한결같은 2:8 가르마의 헤어가 왁스칠을 해서 반짝반짝 빛납니다.

학교를 벗어날 때 색다른 치장을 하는 게 우리네 학생들과 다르지 않네요.  

그런데 명색이 겨울이라 그들은 추운가 봅니다.

모두 긴소매를 입은 건 둘째치고 플리스 후드 집업을 입은 학생도 있어요.

한 여름엔 50도를 육박한다니 섭씨 30도가 추울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사원 안에 향년 스물아홉 살 된 락쉬미가 있습니다.

축복을 해주는 코끼리예요.

락쉬미에게 돈을 건네면 코로 받아 주인에게 전달합니다.

그러면 주인은 락쉬미에게 풀 한 주먹을 상으로 전달하고 코끼리는 돈을 준 사람 머리에 코를 갖다 대고 툭툭 두 번 치더군요.

믿거나 말거나 재미 반, 축복 반, 기념사진 반, 하는 마음으로 저마다 손에 손에 돈을 쥐고 줄 지어 서있더군요.

내키진 않았지만 그 대열에 끼어 톡톡을 받았습니다.

옆에 앉은 남자는 그야말로 돈을 쓸어담더군요.

한 사람이 코끼리 세례를 받는 시간은 단 1분도 채 되지 않으니까요.



사원을 지나 바위에 만들어진 계단을 따라 '신들의 사원'이라는 헤마 쿠타 언덕으로 올라갑니다.  

간간히 바위산을 오르는 사람과 그늘에서 책을 보는 사람이 보일 뿐 돌과 돌집, 태양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림자 짧은 한낮, 나무 하나, 풀 한 포기 없는 돌 위엔 태양만 지글거리고 바위산의 쓸쓸한 울림이 위독한 풍경처럼 펼쳐져 있어요.



락쉬미 나라심하 템플로 가는데 길거리에 모녀로 보이는 두 여인이 앉아있어요.

임산부가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소두증 아기를 출산한다고 하죠.

나이는 꽤 들어 보이는데 비정상적인 몸짓을 하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딸이 앉았고 엄마는 구걸을 하더군요.

그 생에 도움이 돼 줄만한 건 없었습니다.

초코바 한 개와 약간의 돈을 주었을 뿐인데 자꾸만 돌아보게 되더군요.

그런데 템플에 조각되어 있는 신의 얼굴과 방금 본 그 소두증 아이가 왜 그리 닮아보였는지요.

제 눈에만 그렇게 느껴진 것인지 모르지만 수많은 사원 중 엄마와 아이가 왜 하필 그곳을 택했는지 알 것 같기도 하더군요.



카다레 카루 가네샤 템플로 갔습니다.

가네샤(산스크리트어)는 인도 신화에 나오는 인간의 몸에 코끼리의 머리를 지닌 모습을 한 신입니다.

함피에는 유난히도 가네샤 조각이 많더군요.



몽골 사람이 하는 음식점으로 수제비 맛을 제법 내는 음식점이 있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기사에게 물었더니 모르더군요.

적당한 음식점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잠시 쉬는 동안 같은 배경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는데 같은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느낌이 모두 다른 게 재미있더군요.

근처 퉁가바드라 강에 유명한 바구니 보트가 있는데 타보겠느냐고 권하는 기사의 말에 나는 보트나 물을 무서워해서 싫다고 했는데도 집요하게 권하는 바람에 무척 피곤했습니다.

 

퉁가바드라 강 바구니 보트


작은 마을엔 게스트하우스와 기념품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습니다.

가죽 가방 집이 몇 있어서 들어가 봤어요.

크기에 비해 가죽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가뿐해서 물었더니 낙타 가죽이라고 하더군요.

낙타는 동물 중 가장 길고 풍성한 속눈썹을 갖고 있습니다.

세 개의 눈꺼풀에 각각의 속눈썹이 나있지요.

그중 2개는 모래가 눈에 들어가는 걸 막고, 나머지 속눈썹은 자동차 와이퍼 마냥 좌우로 움직이며 눈썹에 붙은 모래를 털어낸다고 합니다. 엄청난 모래폭풍을 만나도 사람처럼 손으로 막아가며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이유지요.

낙타는 한 번에 엄청난 양, 그러니까 2리터짜리 생수 약 60개를 마실 수 있다고 해요.

사람들은 흔히 낙타의 등에 불쑥 튀어나온 혹을 물주머니로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 안에는 지방이 담겨 있고 낙타는 사막을 여행하는 동안 필요한 수분을 그 지방을 분해해서 얻는다고 합니다.

인간은 체내의 수분이 10%만 줄어들어도 생명이 위독하지만, 낙타의 경우 40%까지 줄어들어도 괜찮다고 합니다.

그러니  낙타는 가죽마저도 이토록 가벼울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성점의 안 쪽에 진열된 가방들은 가죽이 너무나 깨끗해서 멋스러움이 느껴지지 않을뿐더러 색깔도 맘에 들이 않았어요.

바깥에 디스플레이용으로 걸린 것들에 눈이 갔어요.

오랜 시간 태양의 바람과 먼지를 뒤 짚어 쓴 덕? 에 거뭇거뭇한 때가 묻고 앞뒷면이나 옆면의 가죽 색이 보기 좋게 선탠이 되어 있는 것 중 하나를 골랐습니다.

사실 30년쯤 묵어서 이젠 버려야 할 것 같은 낡은 그 가방은 좋게 말하면 엔티크요, 나쁘게 말하면 히피족이 쓰다 버린 그런 느낌의 백이죠.

줄을 늘이고 줄이는 버클에도 약간의 녹이 슬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맘에 드는 겁니다. 짙은 수박색 면으로 덧댄 안감도 나쁘지 않고요.

내가 생각해도 독특한 취향이지 싶어요.

1000루피(18,000원)에 샀습니다.



아주 오래된 실크에 수를 놓아 만든 대형 벽걸이 조각보가 담벼락에 멋지게 걸려 있습니다.

값을 물어보니 내가 안 살 것을 눈치챘는지 아주 비싸다고만 하고 말을 안 하네요.

쥔장은 반 관상쟁이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값도 그렇지만 그 무게와 부피가 어마어마하기에 선뜻 사지 못했을 테니까요.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던 조각보 벽걸이

마하 나바미 신전과 로터스 마할로 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가는데 원숭이들이 한 여인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별의별 신을 숭상하는 나라이니만큼 그곳에서는 원숭이도 신입니다.

귀찮을 법도 한데 흙먼지를 날리며 달려드는 원숭이 떼들을 마다하지 않음이 신기하네요.



물 저장고도 돌 탱크예요.

건기임에도 불구하고 물이 남아있는 게 신기해요.

Queen's Bath는 외관은 소박하지만 내부는 화려한 큰 장방형의 구조입니다.

사각의 회랑과 튀어나온 발코니를 갖고 있는 목욕장으로 정교한  치장 벽토의 유물과 변화를 준 장식이 두드러집니다.

그곳은 후궁의 거처로 추측하기도 한다고 해요.

속옷 같은 작은 방들이 그 시절 영화를 짐작하게 합니다.

마하 나바미 신전은 피라미드를 닮았네요.

비자야 나가르의 왕이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두르가 여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왕실 터가 한눈에 들어오는 쪽에 세워졌어요.  

우리 학생들이 경주로 수학여행 가듯 곳곳에 학생들이 많네요.

싸구려 선글라스로 한껏 멋을 낸 청년들이 갖은 폼을 다 잡으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합니다.

그때마다 기꺼이 찍어주었고 사진을 본 그들은 '슈퍼 슈퍼'라고 말합니다.

'좋아 좋아'라고 해석했는데 맞는 말인지 모르겠네요.

 



비탈라 템플로 갈 때는 전기 차를 타야 합니다.

식당 서빙은 물론 호텔 메이드 마저 남자일 정도로 많은 일들을 남자가 하는 곳이 인도예요.

그런데 전동차 운전은 모두 젊은 여성인 게 신기합니다.

비탈라는 함피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사원입니다.

코끼리가 끌면 실제로 굴러가는 돌로 만든 전차가 아주 유명하지요.

규모면에서도 다른 사원보다 압도적으로 크며 조각이 꽤 정교하고 화려합니다.

사원 밖의 커다란 회랑을 찾는 사람은 없었지만 저는 고적한 그곳이 더 맘에 들었습니다.


  


함피의 마지막은 돌산에 올라 일몰을 보는 것입니다.

마팅가 힐은 높지는 않지만 온통 돌산이라 미끄럼을 주의해야겠지요.

차를 타고 마팅가 힐로 이동하는 동안 작은 마을을 지나갔습니다.

언덕으로 오르기 전에 작은 절을 통과하는데 음악 소리가 들렸어요.

우리나라 절에서 스님이 염불 하는 것과 비슷한 의미로 여겨질 정도로 거의 같은 음조와 빠르기가 이어졌지요. 특이한 건 리듬의 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것이었죠.

인도 악기는 시타르, 비나, 타블라 등이 대표적인데 열 시간 넘게 연주가 이어지는 명상 음악들이 유명합니다.

언젠가 그 음악을 경험해보고 싶은 생각을 가진 적이 있지요.

  


어디서 나타났는지 느닷없이 원숭이 분장을 한 두 사람이 나타나 정신을 못 차리게 합니다.

피할 수 없이 사진 몇 장을 찍게 한 후 돈을 달라고 했지요.

그들은 그곳에 올라오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걸려들 수 없는 위치에 있었기에 하루 벌이가 꽤 쏠쏠할 것 같더군요.

석양은 구름이 많아야 황홀한데 그날은 구름 없이 흐리기만 했어요.

바위마다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고 편한 자세로 서쪽을 바라봅니다.

어딜 보나 사방에 천지가 돌이고 간간히 나무들이 모여있어요.

기대가 그다지 컸던 것은 아니지만 호스펫 호텔 방에서 보던 노을만도 못하게 미지근하게 해가 졌습니다.

완전히 어두워지만 내려가는 길이 어려울까 서둘러 일어섰지요.

인도에서 노을을 볼 날이 이제 6일 남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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