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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Feb 27. 2017

기차는 6시에 떠나고

빠나지와 올드 고아



정든 호스펫을 떠나는 아침, 그날 역시 눈 뜨자마자 밖으로 나가 짜이 한 잔 사 마시고 아침을 먹었지요.

350m 거리에 있는 호스펫 정션을 향해 러기지를 끌며 걷습니다.

고아의 마드가온으로 가는 8시 10분 기차를 타기 위해서예요.




역에 도착한 시각이 7시 30분, 

작은 역이지만 도착과 떠남을 알리는 현대식 전광판이 있고 그곳엔 영어와 힌디어가 번갈아가며 나타납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출발을 알리는 쪽은 텅 비어있고 도착을 알리는 글씨만 계속 나타나는 거예요.

불길한 예감은 빗나가는 때가 드문 법,

역 창구로 가서 물어봤지요.

돌아온 답이 가관입니다.

- 마드가온으로 가는 기차는 6시 20분에 떠났습니다.

기가 막히더군요.

인터넷으로 예매한 티켓 프린트를 보여주었더니 아침 8시 10분 기차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드가온 행은 매일 아침 6시 20분 한 번뿐이라고요.

귀신에 홀린 느낌이었어요.

그럼 다음 기차는 언제 있느냐고 하니 밤기차 밖에 없다고 해요.

그럼 이 티켓은 뭐냐고 물으니 온라인으로 예매한 것이라 자기는 모른다면서 옆 건물의 사무실로 가서 물어보라고 하더군요.

남자가 말한 사무실로 찾아가 물어보니 자기네는 모르니 다시 매표창구로 가라고 합니다.

내가 무슨 탁구공도 아니고 양쪽에서 서로 몰라라 하니 초조해지더군요.

무슨 희대의 사기극에 휘말린 것처럼 아무리 침착하려고 해도 답이 없었어요.

게다가 릭샤 왈라들은 옆에 와서 떠들어댑니다.

고아로 가는 버스 역시 기차처럼 나이트 버스 밖에 없으니 택시를 타야 한다... 블라블라, 

짜증 나더군요. 




역 내에 있는 매점 아저씨께 재차 물어보니 대답은 같았어요.

마드가온 행 기차는 매일 아침 6시 20분밖에 없으며 내가 가진 티켓은 환불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밤 기차나 밤 버스를 탄다면 이미 예약된 고아의 호텔 1박을 포기해야 하고 카페나 커피숍 하나 없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그때까지 하루 종일 우두커니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어떤 쪽이든 빨리 결정해야 할 필요가 있었지요.


첫날, 호스펫에 도착했을 때 만났던 릭샤 왈라가 집요하게 달라붙었습니다.

고아까지 택시로 보통 10,000루피를 받지만 8,500루피에 해 주겠다는 얘기였어요.

흥정할 기분도, 타협할 기운도 없었지요.

호기심 많은 인도 사람들은 나의 불행을 즐기기라도 하듯 재미있는 구경거리 보듯 모여들었습니다.



릭샤왈라인 고피에게 '네 차가 어디 있느냐? 차를 보여다오' 말하니 저 뒤에 있다고만 하고 미적거렸습니다.

고아의 호텔 이름을 알려주며 그곳까지 태워다 주는 조건으로 7,000루피에 택시를 타기로 흥정했지요.

마드가온 역에서 호텔이 있는 도시 중심까지는 약 47km의 다소 먼 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얘기한 것입니다.

고피가 어디론가 전화를 했고 5분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늙은 당나귀 같은 택시 한 대가 왔습니다.

그리고는 차에서 내린 기사를 가리키며 자기 브라더인데 그가 운전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고아까지 운전할 브라더라는 사람의 이름은 슈와,

기름을 넣어야 하니 3,000루피 먼저 달라고 했고 그 또한 의심스러워 주유소에서 주겠다고 했습니다.

택시 지붕 위에 얹힌 러기지는 밧줄로 꽁꽁 포박당하는 게 영 못 마땅했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구경꾼들을 뒤로한 후 출발을 했지요.

이번 여행에서 가장 우려했던 것이 기차였습니다. 

그 이유는 인도 철도는 예고도 없이 수시로 취소 또는 딜레이 된다는 것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이토록 예상치 못한 황당한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사람이든 짐이든 풀로 채워야만 달릴 수 있다는 듯, 인도의 운송 수단은 는 만원입니다.



택시는 털털거렸지만 그나마 선풍기 바람보다 약간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에어컨이 있어 다행이었습니다.

3시간쯤 지났을까? 철길을 건너게 되었는데 마침 기차가 지나가서 정지했지요.

그 기차는 다름 아닌 마드가온 행, 그러니까 내가 타고자 했던 기차였습니다.

택시임에도 불구하고 고아의 호텔에 도착하기까지 무려 8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에서 부산 가는 거리쯤인데 배가 넘는 시간이 걸린 셈이지요.

좁고 털털거리는 노후한 자동차 안에서 긴 시간을 보내는 건 그야말로 고역이었어요.

짜이를 몇 번 사 먹고 배낭에 들어있던 초콜릿과 청포도를 먹었을 뿐이라 허기가 지더군요.

기사에게 몇 번이고 배 고프지 않냐? 고 물었지만 괜찮다고 대답했습니다.

호스펫으로 언제 돌아갈 거냐고 물으니 그날 다시 돌아갈 것이라 하더군요.

다음 날 새벽이나 되어야 호스펫에 도착하겠구나 싶었지요.



드디어 호텔 앞에 도착, 검은색 철문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경비원이 가로막더니 자동차의 보닛을 열라고 하더군요.

네 개의 바퀴까지 샅샅이 조사를 마친 후에야 철문이 열렸고 그제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기사의 당황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더군요.

호스펫이라는 촌 동네에서는 도저히 볼 수도, 상상도 못 할 분위기였으니까요.

깔끔한 제복을 입은 벨 보이들이 러기지를 챙기는 동안 나는 점심도 굶고 먼 길을 운전해준 그에게 500루피의 팁을 주며 시장할 테니 가다가 식사라도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마드가온 역에서 호텔까지의 거리가 100km라면서 1,000루피를 더 달라고 합니다.

마드가온에서 호텔이 있는 빤짐 까지의 거리가 47km라는 걸 이미 알고 있던 나는 침착하게 설명했습니다.

애초에 당신의 브라더, 고피와 호텔까지 태워주기로 약속했고 호텔 이름도 미리 알려주었다 라고요.

그리고는 검색대를 통과한 카메라와 크로스 백을 집어 들고 호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맨발의 운전기사는 5성 호텔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고물 자동차를 타고 철문을 빠져나갔겠지요.

물 먹은 솜처럼 무겁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말이죠.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500루피 더 줄 걸 하는 후회를 했습니다.

내게 500루피는 별 게 아니지만 그에게는 대단한 돈일 수 있으니까요.

예정에 없던 많은 돈을 지출했기에 생각이 짧았던 거예요.


리셉션으로 향하는데 한 아가씨가 작은 조개껍데기로 만든 목걸이를 걸어줍니다.

이어 다른 아가씨가 빨간 빈디를 이마에 칠해주고 또 다른 아가씨가 주스를 건네었지요.

게스트를 환영하는 호텔의 프로그래밍된 절차였지요.

존재하지도 않은 기차표를 들고 황당했던 아침, 게다가 8시간 동안 차를 타고 왔던 지라 피곤이 엄습했고 그들의 환영식이 현실감 없이 얼떨떨했습니다.



비반타 바이 타지 호텔은 고아의 다른 이름 파나지(파나지의 옛 이름 : 빤짐)의 중심가에 위치했습니다.

고아라는 도시가 아라비아 해변을 끼고 발달한 곳이니 씨푸드를 먹기로 했지요.

호텔 바로 옆에 fisherman's Wharf라는 씨푸드 레스토랑으로 들어갔습니다.

한눈에 고급스러움이 묻어나는 곳으로 대부분의 손님이 외국인이었어요.

새우와 킹 크랩을 주문하니 대게는 없고 작은 것 밖에 없다며 생물 생선을 들고 나와 보여주더군요.

대하 한 마리가 우리 돈으로 만원이니 제법 따끈하죠?

새우와 게 요리는 적절하게 짭짤하며 고소하고 맛이 있었습니다.

단 좌석이 실외여서인지 모기들의 집중 공격을 당했던지라 느긋하게 오래도록 앉아 있을 수 없었지요.



아침 산책을 나갔습니다.

청담동쯤 되는 곳인가 봐요.

규모가 무척 크고 깔끔한 주택이 늘어서 있습니다.

집사나 가정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청소를 하고 있는 모습이 심심찮게 보였어요.

그날은 올드 고아로 가보려고 하는데 택시나 오토 릭샤 가격이 만만치 않아요. 흥정도 쉽지 않았지요.



그러던 중 시내버스가 내 앞에 서더니 버스 스탠드(복합 터미널 같은 버스 정류장)를 외칩니다.

그곳은 버스 스톱도 아니고 손을 들어 버스를 세우지도 않았거든요.

차장 아저씨에게 올드 고아로 간다고 하니 그곳에서는 올드 고아로 가는 버스가 없으니 버스 스탠드로 가서 바꿔 타라고 알려주더군요.

엉겁결에 버스를 탔고 친절한 버스 기사와 차장 덕에 버스 스탠드에서 올드 고아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습니다.

얼마냐, 깎아다오 실랑이하지 않고 버스 두 번을 갈아타며 단 돈 400원에 올드 고아까지 갔습니다.

뒷자리에 앉은 여성이 내 어깨를 툭툭 치더군요.

여행자에게 던지는 일상적인 질문을 몇 가지 하더니 자기 아들이 아프니 병원비를 기부해 달라고 합니다.

빨간색 사리에 꼬불꼬불 퍼머 머리, 그리고 짙은 화장이 그녀 말의 신빙성을 떨어트리고 있었지요.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로 일축했습니다.

기분이 좋지는 않더군요.



고아는 인도의 고아 주 북쪽에 있는 도시로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포르투갈령 인도의 수도였습니다.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던 이 도시의 인구는 20만 명에 이르렀다고 해요. 

1986년 기독교 건축물의 일부가 유네스코 세계유산 목록에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옛 포르투갈의 식민지 수도였던 올드 고아는 17세기, 전염병과 종교재판 등을 거치면서 쇠락의 길로 가다 1843년 수도를 빤짐으로 옮기면서 퇴락했다고 합니다.

식민지 시절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을 그대로 재현했다 해서  '동방의 귀부인'이란 별칭을 지녔다는 올드 고아는 그 명성만큼 규모가 큰 성당과 수도원들이 많았습니다.

올드 고아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더군요.

곳곳의 성당들의 규모도 유럽 못지않게 크고 웅장한 것이 포르투갈이 제대로 느껴졌습니다.

도금된 나무 조각과 프란시스 성인의 일생의 모습을 묘사한 벽화, 그리고 16세기 가문의 문장들로 가득 찬 성 프란시스 성당, 일명 성 캐더린 성당이라고도 불리는 쎄 성당은 올드 고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성당입니다.

이 성당의 최고는 소리가 아름다워 골든 벨이라 이름이 붙여진 종이라고 합니다.

성 카제탄 성당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을 모델로 하여 만들었다는데 내벽의 새하얀 색이 화려하게 느껴지네요.




포르투갈 식민지 시절, 새로운 총독의 부임을 환영하는 의미에서 만들어졌다는 총독의 아치를 지나니 아라비아 해가 펼쳐져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최초로 대성당(바실리카)이라는 칭호를 받은 봄 지저스 성당은 규모도 크지만 사람들이 바글바글 시끄러울 정도로 많습니다.

성 아우구스틴 교회의 탑(Church Of Saint Augustine's Ruins). 46m 높이의 무너진 탑이 우뚝 솟아 있는 폐허가 을씨년스러우면서도 고풍스럽습니다.        



물을 사러 들어간 상점에 페스츄리가 먹음직스러워 보여 샀지요.

그런데 빵 속에는 크로켓처럼 소가 들어있는데 그게 향신채가 가득하여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도 여행 중 가장 불편한 것은 편의점이나 카페가 없다는 것입니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쉴만한 공간이 도무지 하나도 없어요.

음식점에서 주문한 커피는 투명한 물컵에 담겨 나왔는데 커피가 장화 신고 놀다간 듯 싱겁고 미지근해서 영 맛이 없었어요.  

         


포르투갈 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판짐(파나지의 옛 이름) 라틴 쿼터로 갔습니다.

낡고 허름한 집들이 좁은 골목 안에 주욱 늘어서 있습니다.

타일에 그림을 그린 포르투갈의 명물인 아줄레주도 간간히 보였어요.

하지만 좁은 골목에는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빼곡하게 주차되어있어 사진 찍기가 영 불편하더군요.

하지만 아름다운 건물들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오래된 포르투갈식 형태에 인도식 컬러가 입혀진 낡은 집들이 너무 아름다웠으니까요.



빤짐의 주요 볼거리인 동정녀 마리아 성당은 1541년에 설립되었는데 현재도 매일 미사가 열리고 있다고 합니다.  

어딘가 허접한 느낌의 페인트칠이 되어있지만 산의 중턱에 우뚝 세워져 있는 위엄이 좋은 경관을 가진 사찰처럼 위풍당당하더군요.

여행책자에서 추천하기도 했거니와 택시 기사가 추천한 레스토랑 비바 빤짐을 찾아가 저녁을 먹었습니다.

기대치가 높아서인지 내 입맛에는 그저 그랬는데 웨이팅 하는 외국인 손님들이 많더군요.

그곳에서 이제 막 배낭여행을 시작한 학생을 만났습니다.

4학년인데 1달 반 예정으로 인도 여행을 할 것이고 이제 나흘 되었다고 하더군요.

몇 가지 유의할 팁을 알려주었지요.

그의 블로그 주소를 받았었는데 찾을 수가 없네요.

음식점을 나와 낮에 먹었던 망고 아이스크림집을 다시 찾아가 먹고 호텔로 돌아가는데 한 여름의 산타클로스 같은 노숙자가 벤치에 앉아있는 게 보였습니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아 몰카를 시도했지요.

누군가의 아들로 태어나 사랑을 받았을 테고,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던 시간이 있었겠지요.

무슨 연유인지 모르지만 덥수룩한 수염과 불룩 나온 배가 그가 가진 삶의 무게를 대변하는 듯 무겁고 거추장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방랑 사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하나로 위안했지요. 

호텔 조명과 그가 입고 있던 바지 컬러가 묘하게 비슷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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