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전나무 Feb 28. 2017

뭄바이의 런치박스, 다바왈라




'grand라는 단어는 이럴 때 쓰는 거야' 하듯 그랜드 하야트 뭄바이의 규모는 어마어마했습니다.

1층 로비는 인도는 물론이요, 중국, 일본의 유물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 같은 인상이었어요.

압도적으로 큰 조형물이 복도 곳곳에 설치되어있고 큼지막한 응접세트가 전혀 크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널찍하였습니다.

내가 다녀본 호텔 중 단연코 가장 큰 규모의 호텔이었지요.

현대적인 건축물의 밋밋한 외관과는 달리 내부 곳곳에 설치된 예술 작품으로 인해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주변에 이렇다 할 음식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피곤하기도 하여 호텔 내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어요.

사천요리와 중식 일품요리를 내는 차이나 하우스와 정통 이탈리안 레스토랑 셀리니, 탄두리 등 인도 요리 전문점 소마가 있습니다. 그리고 오픈 키친에서 만들어내는 태국, 초밥, 중동, 인도 및 서양식 특선 요리를 즐길 수 있는 뷔페가 마련되어 있는 그곳은 조식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취향에 맞게 골라서 식사를 하라는 것이지만 문제는 값이 비싸다는 것이지요.

차이나 레스토랑을 안내받아 찾았는데 중국 어느 황실로 들어가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어마어마한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더군요.

조명을 받은 나무와 붉은 중국식 등이 켜있는 회랑을 지나 다시 안으로 들어가는 구조입니다.

디너이고 호텔 레스토랑이니 만큼 원피스를 챙겨 입고 간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차림이 소홀했더라면 들어서면서부터 주눅이 들 정도로 넓고 화려했습니다.

오픈 치킨에선 셰프복을 입은 요리사들이 저마다 분주하게 요리를 하고 있지만 질서 정연한 모습이었어요.

클린 치킨 수프, 딤섬 두 가지에 라이스와 생맥주를 마셨는데 10만 원쯤 나왔으니 그곳은 인도라기보다 유로 버금가는 가격이었죠.



저녁을 먹고 호텔 밖으로 나갔습니다.

담 하나 차이일 뿐인데 그토록 다를까요?

궁궐 같은 호텔 담벼락 아래는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운 골목이었습니다.

수십대의 오토릭샤들이 주차되어 있고 길거리 음식이나 수탕 수즙, 또는 짜이를 마시는 서민들이 삼삼오오 서 있어요.

좀 더 걸어서 큰길로 나가본 이유는 산타크루즈 역까지 거리나 위치를 가늠해보기 위해서였지요.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와 빵빵거리는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트래픽 잼에 시달리고 있는 군상들의 모습이 리얼하게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또 한 번 되뇌던 혼잣말, ' 담 하나 차이일 뿐인데...'


건너편이 시장인 듯하여 길을 건너는데 그 또한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달려드는 오토바이들과 오토 릭샤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며 위험천만한 걸음을 옮겨야만 했지요.


노인 세 분이 하릴없이 시멘트 바닥에 나란히 앉아 계십니다.

그분들을 보는 순간 뮌헨의 노이에 피나코테크에서 보았던 페르디낭 호들러의 그림 <생에 지치다> 가 떠오른 이유가 뭘까요?

그중 한 분은 확연한 백내장으로 눈이 흐릿하더군요.

손금보다 깊은 주름살들이 강줄기처럼 얼굴의 이곳저곳을 흐릅니다.

어깨를 겯고 같은 길을 가고 있던 사람들 중, 몇몇은 어느새 뿔뿔이 가버리고 셋 만 남은 듯한 느낌이 훅 와 닿습니다.

삶이란 누구나 저 홀로 써나가는 잡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즉흥곡처럼 사라지는 하루하루 중 무뚝뚝해 보이는 셋이 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약이 되는 사람일 거라 믿었습니다.

하루하루 이 낡은 반복에서 벗어나는 일이 얼마나 다행인가요?

그 순간 세 사람이 흑백 사진처럼 보였습니다.




손님이 차례가 되길 기다리는 곳과 손님을 기다리는 이발소 두 개가 대조적입니다.

저 아저씨도 손님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하며 시장을 한 바퀴 돌아 나오며 보니, 그새 손님이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면도 거품을 가득 얹은 채 이발사에게 얼굴을 맡긴 남자의 얼굴이 거울에 비쳐 보였거든요.

일면식도, 이웃사촌도 아닌 내가 왜 그 모습을 내 일처럼 반겨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면도하는 그의 모습을 다시 카메라에 담았어요.



이발사의 손을 거치면 말끔하고 번듯한 얼굴이 되듯, 누군가의 더러워진 구두를 닦는 일은 하찮아 보이지만 꽤나 뿌듯한 맘일 것 같습니다. 그의 손을 거치고 나면 반짝반짝 광을 내며 변신을 하니까요.

손님 오길 기다리는 구멍가게 아저씨, 상하좌우로 빼곡하게 진열된 과자 가게 아저씨는 우멍한 시선을 떨구고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슬픈 표정입니다.

한 평 남짓될까 하는 수족관 가게에는 돈이 되지 않는 아이들만 자꾸 귀찮게 한다는 표정이에요.

보스 포스 뚱뚱한 남자가 사진을 찍어달라고 합니다.

내키지 않지만 그리 어렵거나 돈이 드는 것도 아니요, 누구라도 원한다면 모두 사진을 찍어주던 터라 맘 없이 셔터를 눌렀더니 사진 역시 느낌이 없네요.

그래요, 뭐든 맘이 없으면 아름다울 수 없어요.

사진이 아니라 사람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거 생습니다.



다음날,

햇살이 정장 차려입듯 젊잖은 아침입니다.

아침을 먹기 전에 이른바 호텔 투어? 에 나섰지요.

풀장에 떨어진 나뭇잎을 걸러내는 사람, 호텔 정문의 검색대를 지키는 사람, 자동차 검색하는 사람, 주차관리원, 정원사, 각 레스토랑의 셰프와 서빙하는 사람, 리셉션과 컨시어지, 벨 보이, 메이드 등 대체 그 큰 호텔을 운영하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을 할까? 궁금할 정도로 구석구석 규모가 크다는 데 놀랐고, 나무랄 데 없이 완벽하게 깨끗함과 친절함에 놀랐습니다.




뭄바이는 6년 전 왔을 때 거의 돌아보았고 아우랑가바드의 아잔타 석굴과 엘로라 석굴까지 보았던 터라 딱히 어딜 가야지 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뭄바이를 떠나는 비행기가 늦은 밤이라 인디아 게이트에 다시 가보리라 생각했어요.

컨시어지는 택시나 릭샤를 타라는 권유 했지만 걸어가겠다고 하니 15분쯤 걸릴 거라 하더군요.  

그러나 그 15분은 틀린 대답이었습니다.

분명  러시아워는 비켰을 거라 생각한 아침 10시 건만 도로에는 각종 교통수단으로 꽉 들어차 있고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사람들로 빼곡해서 밀릴 지경이었어요.

30분쯤 된 같아 물어보니 계속 직진하라고 하는 대답만 돌아옵니다.

멀리 육교가 보이는데 그곳이 역사일 거라 짐 되더군요.

역에 도착했는데 길에서 방향을 물어보았던 청년이 어느새 쫓아와 기차를 타야 할 방향을 가르쳐주며 Church Gate에서 내려서 걸어가거나 택시 또는 릭샤를 타라고 가르쳐 줍니다.

기차 티켓을 어디서 사냐고 물어보니 그냥 타면 된다고 요.

버스처럼 기차 차장이 돈을 받으러 오나보다 생각하는데 기차가 들어오는 게 보였습니다.

기차가 완전히 정차하기도 전에 사람들이 문쪽으로 우르르 몰리더니 날다람쥐처럼 올라타더군요.

객차에 올라서려 할 때 누군가 말하더군요.

- 당신은 레이디스 칸에 타야 해요.

전후좌우 모두 남자들만 몰려있더군요,

안 그래도 사람들이 몰려들어 당황스러웠는데 더더욱 당황스러웠지요.

옆 칸을 보니 여인들이 기차를 타고 있고 출입문 옆에 여성의 옆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좌석은 동나고 나는 둥근 손잡이를 잡고 섰습니다.

울긋불긋한 갖가지 색깔의 사리들을 입은 젊거나 올드한 여인들의 시선이 내게로 향합니다.

당연하지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민망함에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지요.

그런데 이 기차는 도무지 안내방송도 전광판도 없는 오래된 구식 기차입니다.

처치 게이트까지 약 45분 걸린다는 정보 있었으니 대충 비슷한 시간이 되면 누군가에게 물어봐야지 했지요.   

몇 개의 정류장을 지나 좌석이 생겼고 창문 옆에 앉았습니다.

기차 창문은 모두 간격이 좁은 창살로 덮여있어요.

바깥도 잘 안 보이고 답답하더군요.

덜덜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며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듯한 손잡이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갑자기 눈이 환해집니다.

지하철 타면 온갖 상인들이 돌아다니듯 그곳에도 상인이 온 거예요.

머리핀이나 귀걸이, 반지, 헤어밴드, 스타킹, 심지어 화장품까지 온갖 여성용품들을 팔러 옵니다.

그런데 파는 방식이 독특해요.

옷걸이를 닮은 둥근 걸이에 물건들이 줄줄이 걸려있고 물건을 파는 사람은 그 걸이를 손잡이에 걸어 놓습니다.

사람들이 그 걸이를 빙글빙글 돌려가며 물건을 고르는 것이지요.

물건의 질이나 색상이 초등학생들도 사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어 보였지만 그래도 간간히 팔리는 게 신기하더군요.



어느 역에선가 기차가 서더니 떠날 생각을 안 합니다.

안내 방송도 나오지 않았고요.

기다리던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리더군요.

된 영문인지 모르니 앉아있다가 그 시간이 20분을 넘어서기에 내려서 물어봐야 하나? 하는데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밖으로 나갔던 사람들이 다시 기차 안으로 들어왔고 소가 하품하듯 아무 일 아닌 것처럼 움직이더군요.

마침내 처치 게이트에 도착했습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타이의 수도 방콕에 가면 랍짱이라는 특별한 운송 수단이 있습니다.

번호가 붙은 주황색 조끼를 입은 드라이버들이 도로 곳곳에서 손님을 기다리지요.

랍짱이란 오토바이 택시, 그러니까 1인용 택시예요.

교통 체증이 유난히 심한 복잡한 도로에서 퀵 서비스처럼 사람을 배달하는 시스템입니다.


그것과는 차이가 있지만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배달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뭄바이의 명물이라 할 수 있는 도시락 배달부, 다바왈라이지요.

다바는 층층이 쌓인 도시락통,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찬합과 같은 용기를 의미하고 왈라는 그 서비스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빨래하는 사람들 도비왈라처럼 다바왈라 역시 뭄바이의 역사입니다.

19세기가 끝나 갈 무렵, 당시 봄베이라고 불리던 뭄바이는 날로 확장하는 상업 중심지였습니다.

그곳의 영국인과 인도인 사업가들은 사무실에 출근하려면 상당히 먼 거리를 가야 했지요.

교통이 불편하여 오가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당시에도 지금처럼 식당이 별로 없었습니다.

집에서 만든 점심을 먹고 싶었던 사람들은 하인을 고용하여 사무실까지 점심을 나르게 했습니다.

이에 선견지명이 있는 한 기업가는 사업을 시작할 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어요.

일자리가 없는 마을의 젊은이들을 데려다가 집에서 사무실까지 정기적으로 점심을 배달하는 서비스를 시작했고 지금은 번창하는 사업의 일환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바왈라의 역사는 1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것이지요.


집에서 요리한 음식은 경제적입니다.

더욱이, 건강 문제가 있어서 식이 요법을 해야 하는 사람이나 종교적인 이유로 음식을 가려 먹는 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서비스이죠.

오늘날, 약 5000명이 넘는 남자들과 소수의 여자들이 하루에 20만 개가 넘는 도시락을 나른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 사람들의 집에서 도시락을 받아서 2000만여 명이 밀집한 이 도시 곳곳에 있는 사무실로 배달해 줍니다.

다바왈라는 반경 약 60킬로미터 이내의 구역을 담당하는데, 걷거나 손수레에 30-40개의 도시락 통을 싣고 배달하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거나 교외 지역을 연결해 주는 열차를 타고 배달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든, 그들은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사람에게 정확한 물건을 배달해 줍니다. 사실, 그들이 잘못 배달할 확률은 600만 건당 한 건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다바왈라는 신분증을 가지고 다니며, 흰 셔츠와 헐렁한 바지, 흰 모자로 알아볼 수 있습니다. 모자를 쓰지 않거나 합당한 사유 없이 지각이나 결근을 하거나 근무 중에 술을 마시다가 걸리면 벌금을 문다고 해요.

오전 8시 30분, 대개 아내가 음식을 준비해서 도시락 통이나 찬합, 즉 다바에 싸 놓습니다.

다바왈라는 한 지역에서 여러 개의 통을 거두어 자전거나 손수레에 싣고는 재빨리 기차역으로 향합니다.

기차역에 도착하면 같은 그룹의 배달원들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그들은 집배원이 우편물을 분류하듯이 목적지에 따라 도시락을 분류합니다.

각 통에는 음식을 보낸 집의 위치, 가까운 기차역, 도착역, 빌딩의 이름과 층을 알려 주는 코드가 있으며, 이 코드는 문자와 숫자와 색깔로 되어 있습니다.

문맹률이 40%에 이르기 때문에 배달처를 표시하는 주소도 때로는 자신들만이 아는 기호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실제 다바를 보니 알 수 없는 표시가 다르 색깔로 표시되어 있더군요.

같은 지역으로 가는 도시락 통들을 한데 모아 나무로 된 긴 운반용 틀에 담는데, 여기에는 48개의 통이 들어갑니다. 기차가 도착하면 기관실 옆에 특별히 마련된 짐칸에 도시락 통들을 싣습니다. 그 기차가 중심이 되는 주요 역에 다다른 다음에는 다시 통들을 분류하여 도착역으로 보냅니다. 이제 도착역에서 도시락 통을 한 번 더 분류하고 나서 마지막으로 자전거나 손수레를 이용하여 고객에게 배달합니다.

이런 배달 방식은 효율적일 뿐 아니라 비용도 적게 든다고 해요.

게다가 다바왈라는 자전거를 타고 샛길이나 차들 사이로 다니기 때문에 교통 체증에 걸리지도 않습니다.

오후 12시 30분, 정확히 해당 사무실에 음식이 배달됩니다.

이제 열심히 일하는 다바왈라도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15분에서 2시 사이에는 빈 통을 수거하러 다닙니다.

수거한 통을 주인에게 다시 가져다주면, 그 집 식구가 씻어서 다음 날을 위해 준비해 놓습니다.

이 배달 과정은 마치 릴레이 경기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신속하고 능률적으로 진행됩니다.  




인도 영화 <런치박스, 2013년>는 다바왈라한테서 잘못 배달될 확률이 600만 분의 1일에 불과하다는 ‘도시락 배달 착오’가 기적 같은 인연으로 이어지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뭄바이에서 은퇴를 앞둔 회계사 사잔(이르판 칸)한테 어느 날 낯선 도시락이 도착하지요.

무뚝뚝한 남편한테 관심을 얻기 위해 일라(님라트 카우르)가 정성스레 싼 도시락이 사잔에게 잘못 배달된 것입니다. 아내와 사별한 뒤 뚜렷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던 사잔과 사랑에 목마른 일라는 우연히 시작된 ‘도시락 편지’를 주고받으며 깊은 신뢰를 쌓게 되고, 어느 날 일라는 가장 행복한 나라 ‘부탄’ 이야기가 담긴 도시락을 보내고, 사잔은 “내가 당신과 함께 부탄에 가면 어떻겠소?”라는 쪽지로 답합니다.

중년을 넘긴 사잔이 아름다운 일라를 본 뒤 두려움으로 뒷걸음질 칠 때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줄 수 있다”며 기차를 타고 먼저 부탄으로 떠나는 일라의 모습에서 기계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이라면 알싸한 향기를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도의 문(gateway of India)은 1924년에 완공된 뭄바이의 상징물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더군요. 영국의 국왕 조지 5세 부처의 인도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문구가 문 위쪽에 쓰여있습니다.

그 옆으로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호텔이 바로 타지마할 호텔이에요.

인도에 가면 TaTa라는 이름의 자동차가 많이 보입니다.

TaTa는 인도를 대표하는 국민기업으로 140여 년간 타타 가문의 최고경영자가 그룹을 이끌어왔고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결같이 국민에게 존경받는 기업으로 자리매김 해왔습니다.

철강, 수력 발전, 호텔, 항공, 자동차 등등 존경스러운 기업문화를 이끌고 있는 인도의 대표 기업이지요.

타지마할 호텔은 바로 잠세티지 나세르완지 타타가 지은 호텔입니다.

타지마할은 아랍어로 '왕관(Taj)이 놓인 곳(Mahal)'을 뜻하며 1648년 무굴 제국 시대에 세워진 왕비의 무덤 '타지마할'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해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타타는 지금의 타지마할 호텔 부근의 왓슨 호텔에 영국인 친구와 차를 마시러 갔다가 인도인이라는 이유로 쫓겨났다고 합니다. 당시 타타는 이미 충분히 대접을 받을 만한 성공한 기업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인도에서 가장 화려한 호텔을 직접 지어 이용하겠다고 결심했고 인도 제일의 호텔을 짓기로 결심하고 최고의 자재를 사들여 호텔을 건축하였다 합니다.

565개의 객실 창은 모두 바다를 향해있고 외관은 인도, 사라센 양식과 고딕 양식을 혼합하였다고 해요.




인디아 게이트를 한 바퀴 둘러보고 타지마할 호텔로 향했습니다.

투숙하지는 못했어도 인도양이 바라다보이는 자리에서 에프터눈 티 한 잔 할 요량이었지요.

미리 작정하고 나선 터라 단정한 블랙 린넨 원피스를 입고 나섰습니다.

차를 한 잔 마시고 싶다고 하니 2층의 Sea lounge로 안내를 하더군요.

예상대로 라운지는 고급스러운 인테리어가 돋보였습니다.

인디아 게이트가 보이는 바다 전망의 창가에 앉았지요.

품위 있는 지성인들은 목소리가 작습니다.

찻잔에 부딪히는 소리마저 당황스러울 정도지요.

맞은편에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하는 어린 아들과 앉아있는 젊은 엄마는 시종 창 밖을 가리키며 아이에게 말을 합니다.

- 저 배들을 봐, 색깔이 참 아름답지?

- 주문한 음식이 왔구나, 맛있어 보이지?

애피타이저부터 시작하여 그들이 주문한 런치가 속속 나옵니다.

미모의 젊은 엄마는 아이와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지만 분명히 인디언이었지요.

아이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에티켓과 매너를 배우게 되겠지요.



문 밖에는 뜨거운 태양을 고스란히 받으며 어른들에게는 하등의 필요 없는 만화 스티커를 파는 고사리 손의 소녀가 있고,

호텔 안 쪽에는 1인당 10만 원은 족히 넘을 식사를 하고 있는 꼬마 아이가 있습니다.

인도 역시 금수저, 흙수저가 없을 리 만무하지만, 내가 묵었던 호텔의 담 하나 차이일 뿐인데 하던 그 바깥 풍경과 다를 바 없었지요.


물론 그 시각 나 또한 그 안쪽에 앉은 사람이었긴 하지만 어쩌다 한 번 여행자의 자격으로 들어갔을 뿐이지 크게 미안하지는 말자 라고 위안했지요.

200원짜리 로컬 버스 타고 다니면서 만 원짜리 차 한 잔 하는 게 어불성설일지 모르지만 그만한 사치는 할만하다고 여겼으니까요.



저녁 8시쯤 공항으로 가면 되므로 시간 여유가 많았지요.

인디아 게이트에서 1시간쯤 배를 타고 가면 도착하는 엘리펀트 섬에 가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월요일은 케이브가 문을 열지 않으니 다른 케이브로 가는 배를 타라는 호객 군들의 얘기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더군요.


1534년, 포르투갈 군인들이 이 섬에 상륙하여 석굴 앞에 있는 실물 크기의 코끼리 상을 보고 엘리펀트 섬(Elephant Island)이라고 불렀다고 하네요.


어차피 동굴에는 관심이 없는 터라 정식 매표소에서 섬으로 가는 티켓을 구입했지요.

케이브는 닫혀있는데 괜찮으냐고 묻기에 '예스' 했습니다.

동굴을 보지 않아도 뭔가 볼거리가 있겠지, '섬' 그 하나만으로도 매력이 있는 게 아니던가 하는 생각에서요.

해군기지가 근처에 있는지 군함이 보이고 난민들의 요새 같은 게 보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니 완벽한 시멘트 구조물로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옛날에는 죄수들의 감옥으로 사용하던 것인데 지금은 해군 기지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과자를 받아먹기 위해 유람선을 따라가는 갈매기떼가 장관이더군요.




한 시간 후, 엘리펀트 섬에 도착했습니다.

휴일이라 운행하지 않는 꼬마 기차가 좁은 철로 위에 덩그마니 놓여있고 물 빠진 갯벌에 작은 배 몇 척이 놓여있더군요.

쉬는 날에는 손님이 없는 걸 아는 노점은 거의 빈 수레만 자리를 지키고 철 지난 바닷가처럼 쓸쓸하기 짝이 없습니다.  




철길이 끝나는 지점에 다다르니 군 옥수수나 오렌지를 파는 몇몇 노점상과 어슬렁거리는 소 몇 마리뿐 갈 곳이 없더군요. 내가 갖고 있는 섬에 대한 낭만이 깨지는 순간이었지요.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 섬을 떠날 수밖에 없었어요.



왔던 대로 되짚어 처치 게이트로 가서 산타크루즈로 가는 기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요.

아침에 기차를 탔을 때 그 어떤 사람도 기차에서 돈을 받거나 기차 티켓 검사를 하지 않았거든요.

쉽게 말하면 무임승차를 한 거죠.

여성 칸을 찾아 타면서 물었지요.

- 기차 티켓은 어디서 사죠?

- 그냥 타면 돼요.

뭄바이 국철은 모든 승객에게 무료라는 말인가? 의심스러웠지만 시키는 대로 그냥 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앉은 좌석 맞은 편에 눈에 띄는 여성이 앉았어요.

얼굴은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수잔 서랜든을 닮았습니다. 현지인 같은 느낌도 들지만 옷차림이나 들고 있는 빈티지한 가죽 백은 영락없는 서양 사람입니다.

게다가 그녀의 키가 180cm는 족히 되어 보였고 큼지막한 이목구비가 예쁘다기보다 잘 생긴 얼굴이에요.

나이는 나(57세)와 비슷하거나 좀 더 젊어 보입니다.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무슨 동영상을 보더군요.

기차 좌석은 보퉁은 세 명이 앉지만 좁혀 앉으면 넷도 앉을 수 있었습니다.

서서 가던 사람이 양해를 구하면 대부분 서로 양보를 하며 네 사람이 앉았고 나 역시 그랬습니다.

그런데 앞에 앉은 그녀에게 많은 여인들이 다가와 함께 앉도록 양해를 구했지만 그녀는 그때마다 단호하게 '노'라고 말했습니다. 그 대답이나 몸짓이 너무도 단호해서 말한 사람보다 보고 있는 사람이 더 머쓱할 정도였지요. 그렇게 한참을 가는데 그녀가 내게 묻더군요.

- 어디까지 가세요?

아침에 탔던 기차와 달리 그 기차는 현대식 기차로 전광판에 역의 이름이 힌디어와 영어로 번갈아가며 나타났고 다음 역을 안내하는 방송 멘트도 나왔기에 가끔씩 전광판을 보고 있었지요.

- 산타크루즈 역이요.

- 거기서 내리면 다음엔 어디로 가세요?

- 하얏트 호텔이요.

- 나도 산타크루즈 역에 내릴 거예요. 호텔까지는 어떻게 갈 건데요?

도미노 같은 질문이 하나씩 이어지고 그때마다 단답이 이어졌습니다.

- 택시 타고 가려고요. 아침에 걸어왔는데 생각보다 멀더군요.

- 거기엔 택시 없어요. 내가 방법을 알려줄 테니 나를 따라오세요.


산타 크루즈 역에 내려서 성큼성큼 걷는 그녀를 따라 육교를 오르고 내려가니 오토릭샤들이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더군요.

그녀는 오토 릭샤 왈라에게 인도말로 전합니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하얏트 호텔까지 태워다 주라는 뜻이었겠지요.

그런데 뭔가를 몇 번이고 강조하며 다짐을 받는 게 느껴졌어요.

릭샤왈라와 대화를 마친 그녀는 내게 다가와 전합니다.

- 호텔까지는 25루피 정도 나올 거예요. 30루피 이상 안 나오니까 절대로 그 이상 주지 마세요.


그제야 그녀의 의도를 알 수 있었습니다.

릭샤왈라들이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미터기를 꺼놓고 바가지요금을 받는 걸 알고 있기에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나를 도와준 것이었죠.

고맙다는 인사를 받고도 몇 번이나 절대로 돈 많이 주지 마라는 말을 거듭하고서야 그 자리를 성큼성큼 떠났습니다.


한참 퇴근시간과 맞물려 호텔에 도착했을 때 빨간색 미터기 불빛은 37루피를 가리키고 있더군요.

미터기를 사용한 릭샤를 처음 타 본 게 고맙기도 했고 그렇게 적은 금액이 나온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그 여인과 약속을 했으나 50루피를 건네며 잔돈을 가지라고 했더니 릭샤왈라의 얼굴에서 환한 웃음꽃이 피며 고맙다는 말을 거푸 하더군요.


얼굴에서 지성미가 느껴졌지만 냉정한 성격으로 보이는 그 여인이 왜 나를 그런 식으로 도와준 것인지 지금도 알 수 없습니다.

뭐하는 사람인지, 이름은 뭔지, 사진 한 장 없는 그 당당한 여인이 지금도 눈에 선하네요.

그나저나 돌아오는 기차도 무임승차를 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아직도 모릅니다.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습니다.

뭄바이 공항 면세점에는 영화 <내 이름은 칸>으로 국내에서 유명한 인도 국민배우 샤룩 칸의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있고 마하트마 간디 모형이 심심찮게 보였습니다.





아직 써지지 않은 단어를 찾으러 떠납니다.

아직 찾지 못한 문장을 쓰게 되길 바라기도 합니다.

여행은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인도가 그리웠던 건 사람과 컬러 때문이었지요.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웃게 했고, 그들로 하여 눈물이 고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사진을 보고있노라면 오도 가도 못하는 내가 있습니다.

그들에게 영혼을 빼앗긴 듯 빈 병이 되어 돌아온 이유일 겁니다.

병이 채워지면 다시 그들을 찾아갈 것을 예감합니다.

채 문장이 되지 못한 이 미흡한 웅얼거림이 기억의 강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착한 글을 쓰고, 소금 같은 음악을 듣고, 나부끼다 보면 또다시 그곳에 도착하게 되겠지요.

아슬아슬 인디아2,

그 사소한 즐거움이 미열처럼 붉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차는 6시에 떠나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