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나이
세상을 두드리는 비의 체온을 느끼는 일이 이젠 익숙합니다.
비를 타고 노는 음악이 낯설지 않고요.
비는 오고 음악이 가는 밤입니다.
비에 앉아 노니 술을 껴안기가 훨씬 부드러워요.
비를 안으면 그 또한 술이고요.
재즈를 리피트로 걸어놓고 밟습니다.
블루스 리듬이 나를 만지네요.
서툴게 내리는 비를 데리고 앉아 그렇게 술과 음악에 젖습니다.
우산을 펴도 좋고 접어도 좋은 날이네요.
바다 안개를 만나본 적이 있나요?
제 몸 적시지 못하는 바다를 젖게 하자고 오는 손님인 해무,
그 작은 물 알갱이들의 날개를 보았죠.
비애 젖은 가로등 불빛이 가스등 같다는 생각과 함께 가스통 바슐라르가 떠올랐어요.
그런 날 취하지 않으면 나쁘죠.
서툰 어른들의 이야기처럼 밤이 깊어 가는데 줄어드는 통잔 잔고처럼 여겨지는 지나감의 아쉬움,
비의 체온이 익숙한 날들입니다.
Rain Tree~
이름이 맘에 들었다.
언젠가 끄적여 놓은 윗글처럼 비를 좋아하는 까닭이다.
비 나무라니~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첸나이 레인 트리 호텔의 3박을 예약했었다.
유럽은 광장을 중심으로 올드 타운이 형성되어 있다.
성당이나 시청사, 미술관들이 자연스럽게 몰려있어 웬만하면 도보로 여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인도는 다르다.
유적이라는 것도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대중교통도 발달하지 않았다.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기차역이 도시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외곽에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인도는 혼자 계획해서 떠날 자신이 없었다.
그러므로 쎄미 배낭여행을 검색했다.
여행사에서 항공과 숙소를 정해주고 도시 간 이동하는 교통편을 책임 지워 주는 것 외의 모든 일정은 자유로 행하는 방법이다.
남인도는 대부분의 도시들이 그만그만한 힌두 사원들과 비슷한 석조 사원들이 볼거리의 전부이다.
단체 여행은 단 시간에 많은 도시를 돌아보는 루트가 많다.
그게 어떤 이들에게는 매력이 될 수 있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다.
게다가 결정적인 것은 네 번의 야간 기차와 한 번의 야간 버스를 타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5년 전 골든 트라이앵글을 돌 때 두 번의 야간열차를 탔다.
악몽이 따로 없었다.
책정된 경비도 만만찮았다.
여행사에서 정해주는 호텔은 뻔하다.
물가가 무척 저렴한 인도라도 예외가 없다.
1박에 3~4만 원이면 족한 호텔에 묵게 된다.
그렇다면 1 박하는데 1인당 2만 원 정도면 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에게 지불하는 금액은 1박에 1인당 10만 원 정도의 금액을 지불하는 게 된다.
2인 1실이니 반 하나에 20만 원을 지불하는 셈이다.
그 또한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결정했다.
여태 해온 것처럼 나 스스로 계획하는 것으로...
콜롬보 인, 뭄바이 아웃의 항공권을 예약했다.
스리랑카와 인도는 비자를 받아야 한다.
스리랑카는 비교적 간단했지만 인도의 E-비자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하지만 대행 없이 무사히 비자도 받았다.
에어컨이 나오는 2등 객실로 야간열차 한 번, 주간 열차 2번의 기차도 예약했다.
콜롬보에서 첸나이, 고아에서 뭄바이까지의 항공도 어렵지 않게 예약했다.
유럽은 보통 3성급 투어리스트 호텔이 1박에 12만 원에서 16만 원 정도이다.
하지만 인도는 12만 원이면 5성급 호텔에 머물 수 있다.
나 같은 평범한 여행자는 평소 해볼 수 없는 세탁 서비스나 룸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그게 인도 물가이다.
3박 하게 될 콜롬보, 첸나이, 고아, 그리고 마지막 도시 뭄바이는 5성급 호텔로 예약했다.
항공과 호텔, 기차까지 모두 예약을 하고 나니 여행사에서 제시하는 금액보다 100만 원 정도 세이브할 수 있었다.
남은 돈으로 편하게 택시도 대절하고 충분히 먹고 다닐 수 있었다.
좋은 호텔에서 자고, 야간열차도 안 타고, 경비도 절약했으니 잘한 셈이다.
레인 트리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서너 평은 될만한 넓은 발코니가 연결된 룸은 넓고 쾌적했다.
Rain tree라는 나무는 실제로 있다.
나뭇가지 위쪽이 둥글게 퍼져 우산처럼 생겼는데 소나기가 오면 사람들이 이 나무 아래로 들어가 비를 피한단다. 그리고 비가 그친 후 바람이 불면 마치 이 나무에서만 비가 내리듯 물이 떨어진다 해서 레인 트리라고 불린다고 한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그 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의 풀꽃>
시인의 말처럼 천천히, 그리고 낮게 다가가야 보인다.
그러려면 되도록 걸어야 한다.
호텔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는 요새부터 가기로 했다.
세인트 죠지 포트는 1653년 동인도 회사가 완공한 건물로 현대 타밀나두 주의 총무부와 입법부로 사용되고 있다는 곳이다.
그곳에 요새 박물관과 인도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영국식 교회(1680년)인 세인트 메리 교회가 있다.
호텔 정문 앞에는 릭샤가 들어올 수 없다.
호텔 입구 쪽으로 내려오니 릭샤 몇 대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스무댓 살이나 되었을까?
그들도 나를 보면 그렇겠지만 도무지 인도 사람들은 나이 가늠이 어렵다.
남자들은 90%는 수염을 달고 있어서 더더욱 그렇다.
그는 분명히 포트를 안다고 했다.
뭔가 미심쩍어 지도를 보여주며 재차 물었다.
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매우 먼 곳이라며 얼마를 내라고 했다.
뭔가를 탈 때마다 흥정을 해야 하는 것에 지치기 시작했다.
어디서 어디까지 얼마를 주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가격을 흥정했고 릭샤는 출발했다.
하지만 라누는 책에 보이는 하얀 건물 비슷한 곳만 나오면
- 여기 맞아? 하고 수시로 물었다.
내가 무슨 외할머니 댁에 가는 것도 아니고, 대체 누가 누구에게 묻는 것인지 모르겠다.
라누는 그러면서 수시로 차를 세우고 길 가는 사람이나 릭샤 왈라들에게 물어보았다.
가까스로 포트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 라누의 장점이 있었다.
다른 릭샤 왈라에 비해 운전을 상당히 안정되게 하는 데다가 순진해 보이는 게 믿음이 갔다.
여행안내 책자를 내밀며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가리켰다.
어차피 첸나이는 대도시인 데다가 썩 내키는 볼거리도 없는 터라 몇 곳만 돌아보고 말아야겠다는 판단이 들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 있게 다 아는 곳이라고 한다.
흥정은 끝났고 포트를 둘러보는 동안 기다리기로 했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가방 검사를 마친 후 건물들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내가 여길 왜 왔지?, 대체 뭐 때문에 꼭 가보라고 책에 쓰여 있는 거지?'
할 정도로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요새 박물관으로 들어가려고 티켓을 사기 위해 돈을 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이 가관이다.
거스름돈이 없다는 것이다.
크레디트 카드는 받지 않는단다.
그런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곳, 그곳이 인도이다.
인도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영국식 교회(1680년)를 찾아보기로 했다.
이름하여 고풍스럽고 성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세인트 메리'라 하지 않던가?
입이 떡 벌어지게 웅장하고 커다란 성당을 상상한 건 아니다.
공세리 성당이나 전동 성당처럼 소박하고 아담하면서도 뭔가 성스러운 아늑함이 있겠지 싶었다.
그러나 상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다.
조악한 꼬마전구 몇 개와 비닐로 만들어진 별이 입구에 걸려 있다.
교회 벽에 걸린 초록색 선풍기들과 전면에 놓인 하얀 트리의 부조화 또한 그랬다.
읽은 후 제자리에 놓아달라는 낡은 성서 몇 권이 위안이 되는 풍경이었다.
인구수만큼이나 많은 신이 있다는 인도에는 300년이 넘은 영국식 교회의 위상이 제대로 설 수 없었던 모양이다.
길이가 13킬로미터나 된다는 마리나 비치로 갔다.
군것질거리를 파는 상인과 해변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는 마리나 비치,
그곳엔 사막에 버려진 공룡뼈 같은 빈 수레와 천막을 지지하던 막대기, 그리고 쓰레기들만 힘없이 바람에 뒹굴고 있었다.
손바닥만 한 그늘을 지붕 삼아 모래바닥에 누워 잠을 자는 사람이 보였다.
캠핑 중인지 스위트 홈인지 분간할 수 없는 천막들이 오래된 환부에 덧대어진 때 묻은 거즈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다.
그들 속으로 별 발자국 모래 걸음을 내딛다가 그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많은 아픔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신들은 누구를 위해 기도하는지, 왜 그들은 그렇게 궁색한 연명을 하며 애타게 신을 찾아야만 하는지,
그 알 수 없는 대답이 듣고 싶었다.
예수의 제자 성 토마스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는 산 토메 대성당 역시나 별 다른 감흥을 주지 못했다.
영국식 교회와 가톨릭 성당을 거쳐 무지갯빛 고뿌람이 있는 힌두 사원 까빨 리 슈와 라르로 갔다.
역시나 신발을 벗어야 한다.
성당이든, 힌두 사원이든, 불교 사원이든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마다 외면하기도 어렵다.
히잡을 쓴 모슬렘 여성들을 제외하고 인도 여인이 검은 옷을 입은 것을 본 적이 없다.
그곳에서 알았다.
인도 여자들이 왜 그리 오색찬란한 옷을 즐겨 입는지, 여자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아니 심지어 구걸하는 할머니까지도 귀걸이, 코걸이, 수십 개의 반짝이 팔찌, 발 가락지와 발찌까지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지를...
힌두 사원 고뿌람에 조각된 신들의 옷이 한결같이 화려했다.
신 따라잡기라고나 할까?
심지어 코끼리 신, 원숭이 신, 쥐 신 까지 울긋불긋하다.
인도 사람들은 천을 입는다.
결혼한 여성들이 대부분 입는 사리(Sari)는 선명한 컬러와 현란한 무늬가 비슷한 게 하나도 없다.
촌스러워 보이는 색깔과 무늬지만 신기할 정도로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다.
남성들은 길거나 짧은 치마를 즐겨 입는데 긴 것은 도티(Dohti), 짧은 것은 문디 (Mundi)라고 한다.
사리나 도티를 입은 사람을 볼 때마다 대체 어떻게 입는 걸까 궁금해 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사실 이것들은 옷이라기보다 한 장의 천이다.
바느질하지 않은 한 장의 천을 둘러 입는 인도 고유의 의복인 것이다.
사리는 대체로 너비 120㎝, 길이 4~8m에 이르는 옷감이다.
이 긴 천을 몸에 휘감아 입는 게 사리인데 그 방식은 8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대체로 '라항가'라는 속치마나 속바지와 촐리(Choli)라는 상의 위에 둘러 입는다.
촐리는 배와 가슴 사이 부분이 드러나는 꽉 죄는 옷이다.
남자들이 즐겨 입는 도티와 문디 역시 넓고 기다란 한 장의 천일뿐이다.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그 옷들이 시장 상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옷이 아니라 그저 넓고 긴 옷감일 뿐이기 때문이다.
접거나 길게 늘어트려 디스플레이를 해놓으니 모르는 사람은 그게 스카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인도의 신들은 공통적으로 꽃을 좋아하나 보다.
사원 근처에는 어디나 꽃을 파는 상인들이 즐비하고 사원 안에는 온통 꽃잔치가 열리고 있다.
다음 날, 버스를 타고 마말라뿌람으로 갈 예정이다.
예약 문화에 익숙한 나로서는 버스 티켓 예매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당연한 이치이다.
지난밤, 첸나이 공항에서 호텔까지 타고 온 택시 기사 말을 믿은 건 아니지만 걱정스럽기도 했다.
- 첸나이에서 며칠 있어요? 다음엔 어디로 갈 거예요?
택시 기사인 만큼 여행자의 행선지를 묻는 건 중요하다.
잘 하면 크게 한 건 할 수 있는 찬스가 될 거라는 건 긴 설명이 필요 없다.
- 버스로 마말라뿌람으로 간 다음 폰디체리로 갈 거예요.
그러나 택시기사는 인도의 무슨 축일로 공휴일이 끼어서 5일 동안 대중교통이나 호텔이 거의 매진이 되어서 차가 없다. 그러니 내 택시를 이용하는 게 어떠냐 라는 말을 했었다.
릭샤 왈라 라누에게 몇 가지 필요한 걸 이야기했다.
'내일 마말라뿌람으로 가는 버스 티켓을 예매하러 버스 스탠드에 가야 할 것, 환전, 그리고 맛있는 탄두리 치킨을 사 갖고 호텔로 돌아가고 싶다.'
그런데 인도는 버스를 예약하지 않는다고 한다. 버스는 자주 있으니 그냥 그때그때 가서 타면 된다는 것이다.
택시 기사의 말과는 전혀 다른 얘기다. 누구 말이 진짜인지 알 수가 없다. 라누 말을 믿기로 했다.
마리나 비치에서 돌아올 즈음, 기름이 떨어졌는지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오토 릭샤 기사에게 1.5리터쯤 되는 오일을 사서 넣었던 라누가 주유소에 들렀다. 시골 간이 주유소처럼 작지만 일하는 사람이 북적북적 많다.
이제 환전할 차례다. 은행 간판이 간간히 보였지만 라누는 한참을 달리고 달려서 환전소에 도착했다.
작은 점포들이 밀집한 아케이드의 한 점포는 은행이 아닌 '금은보석집'.
라누가 그곳으로 인도한 이유를 대략 짐작할 수 있었다.
가게는 크지 않았지만 온통 금은보석으로 휘황찬란하고 에어컨이 켜 있어 시원했다.
40대쯤으로 보이는 보스는 좋은 풍채에 요즘 말로 고급 져 보이는 인상이다.
500달러를 주며 환전을 부탁하니 돈을 준비해야 하니 앉아서 기다리라고 한다.
그러더니 물밑 작업이 시작되었다.
넓이가 10cm쯤 되는 금팔찌를 내밀며 팔에 끼워보라는 둥, 보석을 팔아보려는 작업만 지속될 뿐 좀처럼 돈을 내주지 않는다.
내가 채근을 하자 그제서 계산기를 들이밀며 환율을 제시했다.
전날 공항에서 소액을 바꿀 때 보다 훨씬 좋은 환율이기도 했고 어서 그곳을 벗어나고 싶기도 하여 좋다고 했다.
그리고는 또다시 골드 스토리가 이어졌다.
스리랑카에서 처럼 나는 돈도 없거니와 주얼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
끄덕끄덕하더니 슬금슬금 웃으며 200ml 정도의 작은 생수 병을 내밀었다.
밖에 날씨가 많이 더우니 시원하게 마시란다.
인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건네는 음식이나 음료수를 마시면 위험하다는 걸 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생수를 살 때도 뚜껑이 제대로 잠긴 것인지, 땄던 흔적이 있는 것인지 확인하라고 되어있다.
건망증이 심해졌지만 그런 건 절대로 잊지 않는 법이다.
뚜껑을 돌리니 딱! 하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의심스러워서 아주 조금만 마셨다.
이미 내가 내민 500달러는 직원을 시켜 어디론가 가지고 가고 없는 상황,
혹시나 돈을 안 받았다고 시치미 떼면 어쩌지?
물을 마셨는데 조금 있다 정신을 잃게 되는 건 아닐까?
갖은 시나리오를 쓰며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라누는 옆에서 싱글벙글하며 우리 얘기를 듣고 있는데 직원이 드디어 돈을 들고 왔다.
릭샤 왈라가 외국인을 데려오면 일종의 커미션을 받을 게 뻔했다.
게다가 시간을 끌며 물건이라도 팔면 플러스알파가 있으려니 했다.
안도감에 돈을 받아 들고 그곳을 빠져나오니 바깥의 뜨거운 열기가 훅 끼쳐 들었다.
20분 남짓되는 시간이었지만 긴장한 탓에 시장감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 탄두리 치킨 사러 가자.
탄두리 치킨은 각종 향신료와 요구르트에 반나절에서 하루 정도 재워둔 닭고기를 쇠꼬챙이에 꽂아 원통형 점토 화덕인 탄두리에서 구운 음식이다.
탄두르 안에 비스듬히 두어 한쪽면이 타지 않도록 돌려가며 조리하며, 이때 장작이나 숯으로 훈연을 하면 풍미가 더해진다.
라누가 데려간 곳은 <부하리>라는 호텔 레스토랑, 손바닥 만한 주차장에 발레 파킹 하는 직원이 대여섯 명이나 있다. 오색 터번을 두른 팔자수염의 도어맨이 문을 열어주며 인사를 한다. 점심시간이라 손님이 많았다.
탄두리는 보통 하프 사이즈와 풀 사이즈로 구분한다. 풀 사이즈로 테이크 아웃할 거라 하니 30분쯤 걸린다고 한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좌석이 없어 웨이팅 하는 손님들이 늘어갔다. 첸나이의 맛집인가 보다.
묵직한 치킨 백을 받아 들고 호텔로 돌아오니 2시가 훌쩍 넘었다.
치킨은 1회용 플라스틱 통에 정갈하게 담겨있고 채 썬 적양파와 당근 라임들이 종이봉투에 별도로 넣어있다.
고급 레스토랑답게 1회용 나이프와 포크, 스푼까지 들어있었는데 그 값은 7,000원 정도로 저렴하다.
연두색 소스가 들어있었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 데다 치킨 자체가 간간하여 충분히 소스가 필요 없었다.
늦은 오후, 주변을 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호텔은 대로변에 위치하지만 인도가 별도로 없다.
경마하듯 달려드는 오토바이와 릭샤들 사이로 겨우 발길을 옮기는데 여기저기서 '헤이~ 마담 포토!'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달리는 오토바이나 트럭 속에서 손을 흔들며 사진을 찍어달라는 신호이다.
기꺼이 줌을 열어 그들을 찍는다.
'폰디 바자르'라는 이정표 글씨를 따라 방향을 잡았다.
자전거 릭샤에 족히 열 명의 학생들이 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중인가 보다.
릭샤왈라는 맨발에 페달을 밟으며 사진을 찍는 나를 보며 싱글벙글 웃고, 교복에 맞춘 반 스타킹에 구두까지 신은 어린 학생들은 수줍은 듯 손을 흔들었다.
가방 색깔만 다를 뿐 따 내린 헤어에 리본까지 똑같은 다섯 명의 소녀들이 내 앞에서 걸어가고 있다.
뒷모습만 보일 뿐인데 그들의 환한 미소가 느껴졌다.
폰디 시장에는 꽃을 따서 목걸이처럼 줄줄이 엮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장미는 꽃잎만 따고, 작은 꽃은 1cm의 줄기 있는 곳에서 꽃을 잘랐다.
최소한의 먹거리만 있으면 신에게 꽃을 바친다.
3층까지 이어진 시장 상가에는 1평이나 될까 하는 작은 점포가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호기심을 불러일으킬만한 물건을 없었다. 그중 헌책방 같은 느낌을 주는 서점이 가장 맘에 들었다. 이슬람 왓치를 쓰고 있는 서점 아저씨가 왠지 지적으로 보인 건 책을 배경으로 서 있어서일까?
200원짜리 짜이 한 잔 사 마시고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