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골해의 서사시 마말라푸람
다음 날 아침, 호텔 앞에서 대기 중인 라누의 릭샤를 타고 버스 스탠드로 향했다.
버스 티켓을 어디서 사냐고 물으니 그냥 타면 된다고 한다.
버스 차장이 받나 보다 짐작했다.
라누가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알려주었지만 근처에 서 있는 두 소녀에게 재차 물었다.
그녀들도 마말라뿌람에 간다고 하며 친절하게 알려 주었다.
그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 혹시 한국분이세요?
- 네.
- 첸나이 센트럴 역으로 가는 버스가 몇 번인지 아세요?
- 글쎄요, 저는 첸나이 공항으로 들어와서 역은 잘 몰라요.
하곤 옆에 서 있던 두 소녀에게 물으니 그들도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말을 건 사람은 나와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아주머니였다. 여행 중이냐고 물으니 이야기가 복잡하단다. 기관지가 안 좋아서 요양 중인데 비자 기간이 만료되어 인도에 잠깐 와 있다는 것 같았다. 마말라뿌람에서 5일을 지내고 왔는데 무척 힘들었단다. 게스트 하우스도 올라서 1박에 1만 원이나 한다는 말을 했다. 그러던 중 두 소녀가 버스에 타야 한다고 해서 간단하게나마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깡 마른 체구에 얼굴색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은 그분이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 궁금하다.
첸나이에서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60km 떨어진 마말라뿌람까지는 2시간이 걸릴 예정이다. 카키색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버스비를 받으러 왔다. 50루피(1,000원).
다른 도시로 가는 버스니까 일명 시외버스, 그러나 버스는 첸나이를 벗어나는 동안 마치 시내버스처럼 스무 번도 더 서고 가기를 반복했다. 타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리는 사람도 있다. 그때마다 차장은 호루라기를 불어 운전기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가령 내릴 사람이 있거나 탈 사람이 있으면 호루라기를 삑! 하고 한 번 불어 스톱을 알린다. 이제 다 탔으니 떠나요 할 때는 삑삑(출발)! 하고 두 번 분다. 그런데 하필 내가 앉은자리는 사람들이 타고 내리는 뒷문 근처이고 차장은 바로 그 앞에 서있었다. 안 그래도 각종 차들의 경적 소리에 귀가 어지러운데 수시로 불어대는 호루라기 소리가 얼마나 크고 시끄러운지 그때마다 소리 송곳이 귀를 콕콕 찌르는 느낌이다. 음악을 전공해서인지 유난히 청각이 예민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어찌어찌 두 시간이 지나 열어둔 차창으로 흙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채 마말라뿌람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만난 택시 기사의 말대로 뭔가 큰 행사가 벌어진 듯 단체 여행자들 버스가 줄지어 서있고 붉은색 사리를 입은 여인들의 미소가 거리를 채우고 있다.
오토 릭샤 왈라들이 다가왔다.
똑같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멋지고 아름다운 사원들을 다 보게 할 거다. 맘껏 시간을 보내도록 기다릴 것이다...
마말라뿌람은 넓은 지역이 아닌듯해 보였다.
걸어 다녀도 충분할 정도로 짐작되었지만 사정없이 내리쬐는 햇빛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짙은 색상의 선글라스를 쓰고 있어도 눈이 찌푸려질 정도로 빛이 강렬했다.
2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는 것도 문제 중 하나였다.
게다가 폰디체리에서 1박 할 준비를 해온 배낭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오른손의 엄지와 검지는 햇빛 알레르기로 인해 오돌토돌한 좁쌀만 한 두드러기가 빼곡했다. 그래서 일단 릭샤를 타기로 했다.
마말라뿌람은 7세기 빨라바 왕조 시내부터 전국에서 모인 석공들의 도시로 명성을 얻었다. 지금도 곳곳에서 돌을 다듬고 있는 석공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거대한 바위산 하나를 깎아 만든 다섯 개의 사원은 모두 화강암이다. 사원의 외부는 화려한 조각으로 덮여있고 사원 내부는 사람이 통행할만한 공간을 갖고 있다. 그중 정교한 코끼리상이 있는데 실제 코끼리와 같은 크기로 조각되었다.
물과 과일을 파는 상인들의 수레는 무료할 만큼 한가로운 한낮을 지나가고, 붉은색과 노란색 사리를 입은 여인들만이 거리를 수놓고 있다. 가업을 잇는 석공들은 여전히 돌을 조각하고 사람들이 던져준 과자를 받아먹는 원숭이들만 신난 표정이다. 뭔가 잔뜩 심통이 난듯한 목걸이 장사의 표정이 흥미롭다.
등대가 보이는 산 곳곳에도 석굴 사원이 있다. 사리를 입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직 미혼인 두 처자가 자꾸 나를 힐끗거리더니 말을 걸어온다. 자기들과 함께 셀피를 찍자는 것이다. 셀피란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가 2013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자가 촬영 사진’의 줄임말이다. 자신의 모습을 직접 찍은 사진을 의미하는 단어로 우리나라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인 셀카(셀프 카메라)와 같은 뜻이다. 인도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지만 나와 사진을 찍으면서도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하던 그 처자들의 순수함이 촌스러운 외모를 아름답게 만들어주었다.
세계 최대의 부조라고 일컬어지는 아르주나의 고행 역시 바위산에 새겨진 장대한 조각이다. 폭 29m, 높이 13m의 이 부조는 강가(갠지스강)가 이 세상에 내려왔을 때의 이야기를 부조 기법으로 새긴 것이다. 이 바위에는 아르주나가 고행을 통해 가장 강력한 무기인 빠수 빠따를 얻으려고 하는 내용이 새겨있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 작품이 바가 리타의 고행을 표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이 고행은 시바 신에게 천상에 있는 각가가 땅으로 내려와서 선조들의 모든 죄를 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의 갠지스강이 천상에 있던 강이라는 내용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힌두교에서 갠지스강이 갖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마말라뿌람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돌이 있다면 크리슈나의 버터 볼일 것이다. 언덕 위에 불안정하게 놓인 이 바위는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지만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밀어도 꿈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팔라바 왕조시대에는 코끼리에 연결해 끌어내리려는 시도를 해본 적도 있다고 한다. 혹시 바위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게 아닐까? 바위의 한 쪽 단면이 마치 버터를 나이프로 자른 듯하다고 해서 버터 볼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버터 볼에서 오른쪽 끝으로 저 멀리 바위 아래 노란색의 작은 점 같은 게 보였다. 줌 렌즈를 최대한으로 당겨보니 한 노파가 앉아있다. 그녀에게 다가갔다. 손가락으로 먹는 시늉을 하며 뭔가를 달라고 한다. 배낭에 탄두리 치킨과 물, 과일이 들어있었지만 릭샤에 두고 온 터라 갖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바위 아래 혼자 앉아 있는 연유를 모르지만 안타까운 맘이 그지없었다. 백내장인지 석회를 풀어놓은듯 두 눈은 혼탁하고 치아가 없는지 입이 합죽했다. 땀이 줄줄 흐르도록 뜨거운 날씨였지만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는 노인은 한기를 느끼는 것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적으나마 돈을 쥐어주는 것뿐이었다. 노인은 돈을 받아 들고 몇 번이고 나를 향해 합장을 하였다. 그녀에게도 꽃처럼 아름다웠던 시절이 있으리라, 그녀에게도 행복했던 추억이 있으리라, 그녀의 마지막 시간이 고통스럽지 않기를 바랐다. 뒤돌아오는 발길이 무거웠다. 눈물이 한 바퀴 핑 돌고 지나갔다.
뱅골해가 바라다보이는 바다 앞에 세워진 바닷가 사원은 바위를 깎아 만든 게 아니라 돌을 쌓아 올려 만든 것이다. 2004년 쓰나미 때 부분 침식과 일부 조각이 유실되었지만 오랫동안 바닷바람과 파도를 이겨내고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화려함 없이 안정감 있게 서 있는 사원은 품위와 운치가 느껴져서 가장 맘에 드는 곳이었는데 왠지 다보탑이 떠올랐다.
릭샤를 탔던 원점, 버스 스탠드로 돌아왔다.
돌을 조각한 사원들을 돌아보며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감동은 차치하고라도 아~ 하는 느낌도 들지 않았다.
모든 종교가 그렇지만 힌두교에 대한 지식도 없거니와 조각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그 내용이 딱히 맘에 들지 않는다. 감동은 억지로 불러일으킬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보고 싶은 것을 스스로 찾아 나서기로 했다. 그러자면 걸어야 한다. 일단 뭔가를 먹어야겠는데 딱히 음식점이라고 할만한 곳이 없다. 망고주스를 하나 사서 셔터가 내려진 어느 상점 앞 그늘에 주저앉았다. 물티슈로 손을 닦으니 새카맣다. 무려 세 장을 쓰고 나니 그나마 나아졌다. 탄두리 치킨과 청포도로 요기를 하니 금세 힘이 솟는다.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개에게 남은 살코기를 던져주고 쓰레기를 모아 비닐에 챙겨 들고 일어섰다. 아무 데나 툭 던져도 이상할 것 없이 지천이 쓰레기가 넘쳐나는 인도지만 습관이라는 게 무서운지라 어딘가에 있을 쓰레기통을 찾기로 했다.
낡은 수도꼭지와 도무지 물이 나올 것 같지 않은 펌프, 그리고 그들의 옷만큼이나 화려한 색감의 벽과 문을 보는 일이 즐겁다. 그중 가장 아름다운 건 역시 사람, 인도는 사람이다. 내가 인도를 다시 찾은 건 바로 인도의 얼굴 때문이다. 강렬한 피부에 커다랗고 까만 눈엔 심어놓은 듯 풍성한 속눈썹이 참 매력적이다.
버스 차창에 턱을 괴고 생각에 골똘히 빠져든 소년, 인디고 블루 컬러의 셔츠를 입은 남자가 카메라를 든 나를 발견하고는 노란 사리를 입은 여인들 틈에서 코믹한 포즈를 취했고, 보라색 때문에 더 검어보이는 처자들이 손을 흔들며 지나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보는 일이 훨씬 즐겁고 유쾌했다.
마말라뿌람 버스 스탠드에는 폰디체리로 가는 버스가 없다. 릭샤를 타고 가야 했다. 10분쯤 기다렸을까? 버스가 왔다. 그런데 자리가 없다. 버스에 탄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쏠렸다. 급한 대로 배낭을 한쪽 바닥에 내려놓고 손잡이를 잡고 섰다. 좌석의 비닐 커버가 다 뜯겨져 스펀지가 삐질삐질 빠져나오는 낡은 버스였다. 역시나 여러 곳에서 사람들이 내리고 타기를 반복했다. 내가 서 있는 바로 옆 자리 아저씨가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니 거기 앉으라고 귀띔을 해주었다. 고맙다는 말은 했으나 그쪽은 남자들이 앉는 좌석이다. 뒤쪽을 살펴보니 여성도 간간히 앉아있는 게 보였다. 그가 내리는 정거장에서 많은 사람이 내리던 차에 여성이 앉는 좌석에 자리가 생겨서 그쪽에 앉을 수 있었다.
창 밖으로 말린 생선을 파는 모습이 보였다. 생선들이 인도 사람을 닮은 듯 비쩍 말랐다. 하교하는 학생들이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버스 차창에서 내 카메라 렌즈를 발견한 장난꾸러기 학생이 포즈를 취해준다. 사람에 취해 흔들리다 보니 어느새 버스는 폰디체리에 도착하고 있었다.
프렌치 쿼터로 유명한 폰디체리는 어떤 모습일까? 살짝 기대하며 호텔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