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여행 preview - 토론토
아무 이유 없이 어떤 도시를 찾는 경우는 드물다.
비 내리는 겨울날, 음울한 파리의 몽파르나스 묘지를 찾아간 이유는 사르트르와 시몬 보부아르를 만나기 위함이었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알렌산드르 넵스키 수도원을 찾아갔던 건 차이코프스키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나고 싶음에서였다.
토론토라는 도시는 글렌 굴드(Glenn Herbert Gould, 1932년 9월 25일~1982년 10월 4일)를 맨 먼저 떠오르게 한다.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묻힌 도시, 그곳에 가면 피아노를 칠 때마다 웅얼거리던 그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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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고 검은건반 위로 손끝이 내려앉는다. 누르거나 때린다기보다 살짝 닿는다는 느낌이다. 피아노의 목덜미에 뮤즈의 숨결이 스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때마다 피아노가 떨면서 소리를 흘린다. 가볍디가볍고 선명 하디 선명하다. 날아갈 듯한 속도로 음들을 휘몰아 청자를 음의 세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글렌 굴드의 피아노 연주는 그 천재에 대한 매혹을 도저히 피할 수 없게 한다. 그리고 음악 애호가들은 이미 잘 알고 있는 굴드의 인생 기행(奇行)은 그 매력을 갑절로 두껍게 한다. 지나친 결벽증과 심기증 탓에 세균이 옮을까, 손을 다칠까 두려워 사람들과 악수하는 것조차 꺼리고, 어깨를 살짝 건드렸다는 이유로 병원에 가서 깁스를 하고, 감기에 걸릴까 봐 한여름에도 두꺼운 코트를 입었다는 기벽 말이다. 게다가 서른 초반의 전성기에 콘서트 연주를 포기하고 대중과 접촉을 끝은 채 오직 리코딩으로만 음악 행위를 하면서 생애 대부분을 은둔자로 살다가 한창나이인 50대 초반에 갑자기 뇌졸중으로 세상을 뜨지 않았는가. 이 괴팍한 천재는 한 번 녹음한 곡은 다시 녹음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살았다. 하지만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만은 두 번 녹음했다. 한 번은 음악 인생의 첫머리를 장식하면서 화려하게 이름을 떨치는 출사표로 연주했고, 한 번은 별안간의 죽음을 앞두고 레퀴엠으로 연주했다. 그야말로 우발적으로 생겨난 이 음악적 수미쌍관은 상징이 되어 글렌 굴드라는 천재를 20세기 음악사의 중심 신화로 고양한다.
글렌 굴드의 피아노’는 세 개의 다리로 서 있다. 책은 글렌 굴드라는 천재 피아니스트의 전기이고, 그가 갈망해 왔고 마침내 찾아내 중요한 곡들을 녹음하는 데 사용했던 피아노 이야기이며, 그 피아노를 섬세하게 다루어서 연주자에게 맞출 줄 알았던 조율사의 이야기다. ‘세 다리 위에 쓴 로맨스(A Romance on three legs)’라는 원제는 이런 의미에서 우아하고 적확하다. 제목은 세 개의 다리가 달린 피아노의 물질적 실체를 독자들 머릿속에 떠올리게 하는 동시에 그 피아노를 통해 20세기 고전 음악사의 이면에 대한 풍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굴드가 사랑한 피아노 이름은 CD 318이다. 태평양 전쟁이 한창인 1940년대 초반 피아노의 명가인 스타인웨이에서 만들어졌다. C는 스타인웨이에서 예술가들의 콘서트를 위해 특별 제작한 피아노라는 뜻이고, D는 이 회사가 제조한 피아노 중 가장 크다는 말이다. 스타인웨이는 독일의 피아노 장인 집안이 19세기 말 미국으로 건너와서 차린 회사로, 자사 피아노 제품을 홍보하려고 연주 여행 중인 콘서트 예술가들에게 피아노를 대여해 주었다. 계약을 맺은 연주자들은 자기 피아노를 갖고 다니지 않고도 전 세계 어느 도시에서든, 최상급 피아노를 항상,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CD 318은 그런 피아노 중 한 대였다.
신경증 환자였던 굴드는 자기 연주를 완벽하게 통제하여 전달할 수 있는, 극도로 예민한 피아노를 찾고 있었다. “아주 복잡한 대위법의 섬세한 뉘앙스를 능수능란하게 통제”하기를 바랐던 그는 건반을 힘껏 때려 소리 내는 방식으로 연주하고 싶지 않았고, 그 연주를 필연적으로 요청하는 쇼팽이나 리스트를 싫어했다. 굴드는 “손가락의 분명함, 더 명료한 규정과 느낌”을 확보하면서 연주할 수 있는 바흐를 선호했으며, “손가락 끝에서 깃털 같은 움직임이 느껴지는” 피아노를 원했다.
글렌 굴드가 바라던 모든 것을 악기에 구현해 준 사람은 선천성 백내장을 앓아 거의 장님에 가까웠던 조율사 에드퀴스트였다. 맹인 학교에서 피아노 조율을 배운 그는 거의 절대음감을 타고난 사람으로, 피아노의 음을 색채로 표현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피아노는 서서히 진화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현장에서 피아니스트와 테크니션이 적절하게 결합해 소모된 것들을 다시 만들고 다듬어 수없는 조정을 거치면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갖추게 된다. 태평양전쟁 종식 직후, 세상에 나온 CD 318 역시 같은 운명을 겪는다. 스타인웨이사에서 13년 동안 수없이 콘서트에 대여되었지만,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이 피아노는 1958년 토론토의 이튼 백화점의 한 홀로 옮겨지고 1960년 퇴역을 위해 한구석에 치워졌다가 우연히, 마음에 맞는 피아노를 찾지 못해서 짜증을 부리던 글렌 굴드와 운명적으로 마주친다. 그리고 그 백화점에는 이미 굴드의 마음을 사로잡은 조율사 에드퀴스트가 일하는 중이었다. 비상을 위한 세 개의 다리가 마침내 갖추어진 것이다.
굴드와 마찬가지로 에드퀴스트 역시 이 피아노의 “톤과 깃털처럼 가볍고 빠르게 반복되는 액션”을 한 번에 알아보았다. CD 318은 “영혼이 있는 피아노”였다. 굴드와 그의 개인 조율사가 된 에드퀴스트는 1960년대 내내 이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수천 번 작업을 같이하면서 굴드의 중요한 리코딩 전체를 함께 한다. 20세기 피아노 역사의 한 장은 이렇게 이룩되었다. 굴드와 운명을 함께했던 이 피아노는 연주를 위한 운송 도중 어이없는 실수로 파괴되어 버린다. 굴드는 자신의 영혼만큼이나 소중했던 CD 318을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하려 했지만, 결국 제 음색을 찾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스타인웨이 피아노와 결별하고 야마하 피아노로 갈아타게 된다.
- 굴드의 피아노 케이티 중
타인의 삶이나 예술에 대한 완벽한 이해나 공부란 없다. 그저 나름대로 느끼고 즐기면 된다. 고요함과 외로움이 지속되는 즈음, 그때 평화로울 수 있다. 삶과 마주 보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 수 있다. 그건 떠남의 이유 중 한 가지이기도 하다.
맨 먼저 만나보고 싶은 것은 벤치에 앉은 굴드, 그 모습은 CBS 방송국 앞에 가면 볼 수 있다. 그곳에서 방송 데뷔를 한 이유에서 만들어진 모양이다. 방송국에 있는 글렌 굴드 스튜디오도 둘러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서 그의 묘지가 있는 마운트 플레즌트에 가려고 한다. 그곳에 가기 전 바흐와 어울리는 꽃이 뭘까 고민해야 한다. 그의 유언이 되어버린 듯한 바흐 골드베르그 변주곡 아리아에 어울리는 꽃을 그의 묘비 위에 놓아두고 싶기 때문이다.
차이나타운과 이어진 던다스 스트리트에 있는 온타리오 미술관 [ART GALLERY OF ONTARIO]에 갈 것이다. 수요일 저녁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수요일 밤, 토론토에 도착한다. AGO는 1호선 St. Patrick 역에서 가깝다. 피카소나 워홀 같은 그림들이 마치 덤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갤러리의 구조 때문일 것이다. 설치 미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근사한 회랑에 부드러운 곡선의 나무들이 하늘을 받치고 회오리바람, 또는 소용돌이치는 물결 모양의 경사로 또한 삭막한 도시 생활자들의 마음을 부드럽고 따뜻하게 녹여줄 태세로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그곳이 궁금하지만 아직 오롯이 남은 시간 동안 아껴두는 마음 또한 즐거움이다.
사진만 봐도 아찔한 CN타워의 skywalk는 스릴과 도전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양보하리라 생각한다. CBS 방송국에서 멀지 않아 그 거리에서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겐 별 의미 없는 건축물이며 와이어에 몸을 매달고 하늘에 발을 내어놓는 일이란 게 도무지 흥미롭지 않기 때문이다.
시장 구경은 언제 어디서든 흥미롭다. 살아있는 느낌이 절절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색을 입고 있는 먹거리들이 곡간처럼 꽉 차게 늘어선 모습이 풍요롭다. 토론토에서 맨 먼저 생겨났다는 시장인 세인트 로렌스 마켓을 둘러보며 여행자로서의 한계에 부딪힌 아쉬움이 있을 터다. 보기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갖가지 컬러의 올리브와 과일들, 연어를 사다가 버터구이를 하거나 파이도 구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생각할 터였다. 기껏 아침에 먹을 빵과 복숭아와 체리 몇 알을 사게 되겠지만 그만으로도 가슴 충만한 행복에 겨우리라 짐작해본다.
로렌스 마켓에서 15분 정도 걸으면 과거 북미에서 가장 큰 양조장이던 디스틸러리 디스트릭트를 만날 수 있다.
2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곳이지만 2003년 양조장이 없어지고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라고 한다. 지금은 부티크 샵이나 갤러리, 공방, 카페, 레스토랑들이 들어서면서 현지 사람들 뿐 아니라 여행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빅토리아 양식의 건물 외형은 양조장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둔 채 내부만 이색적으로 재단장하여 내 취향과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공간 이리라 여겨진다. 그곳에 가면 이것저것 멋지거나 예쁜 그 무엇들을 사고 싶은 욕구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멋짐에 감동하다가 맘에 드는 카페에 들러 향 좋은 커피 한 잔 마시며 여행이 끝나가고 있음에 대한 아쉬움을 되새김할 것이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토론토 대학교에 들러 청춘의 고민과 웃음소리를 느껴보고 싶다.
지하철 1호선을 타고 St. Clair 역에서 내려 20분 걸어가다 보면 언덕 위의 성, 카사 로마 (Casa Loma)가 보일 것이다. Loma는 스페인어로 '언덕 위에' 라는 뜻이라 하니 적절한 이름이다. 카사 로마는 나이아가라 폭포로 수력 발전을 만들어 대부호가 된 헨리 펠라트 경이 1911년부터 3년에 걸쳐 지은 성이다. 98개의 방, 243m 길이의 내부 터널, 옛날식 마구간, 커다란 정원이 볼만하다니 가볼 참이다.
토론토 심포니가 상주하는 로이 톰슨 홀 Roy Thompson Hall의 외관이 독특하다. 아쉽게도 바캉스 시즌이라 공연 스케줄이 비었다. 내부 구경이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 스트리트에 위치한 대규모 쇼핑몰 이튼 센터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마치 미래 과학 공상 영화에서 볼법한 커다란 규모가 시선을 압도하는 건축물이다. 2개 블록에 걸쳐 300여 개의 상점이 있는데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 옆에 있는 빅토리오 에마뉴엘 2세 갤러리아를 본떠 만들었다고 한다. 유리 천장과 회랑 구조로 만들어졌으며 상점 곳곳에 독특한 장식들이 눈길을 끌 것이다. 쇼핑몰 내부에는 시어스 백화점과 서점, 레스토랑 등 각종 편의시설 및 쇼핑시설이 입점해 있어 쇼핑 이외의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니 사람들의 발걸음에 묻혀 흐르듯 걸어보려 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되기 전, Jack Layton ferry terminal에서 워즈 아일랜드행 페리를 타려고 한다. 그곳에서 석양에 물들어가는 토론토 빌딩들의 스카이 라인을 볼 참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레이하운드를 타고 나이아가라로 향할 것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많이 잡는다고 여행의 마지막 날이니만큼 하루를 쏠쏠하게 지내보자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한다. 악마의 목구멍이라 불리는 이과수 폭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에 있다. 270여 개의 폭포가 2.7km에 걸쳐 흐르며 평균 낙차가 70m나 된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긴 빅토리아 폭포는 아프리카의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을 가르며 떨어지는데 최대 낙차가 108m나 된다. 그리고 나이아가라 폭포는 높이가 55미터에 폭은 671미터에 달한다. 폭포는 고트 섬에 의해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동쪽은 아메리칸 폭포이며 왼쪽은 캐나다의 호스슈 폭포이다.
폭에서 쏟아진 물이 흐르는 위로 미국과 캐나다를 잇는 다리가 있는데 그 이름은 레이보우 브릿지다. 두 나라는 각각 폭포로 다가가는 유람선을 운항하는데 미국의 크루즈에 안개의 하녀(Maid of mist)라는 재미있는 이름이 붙여있다. 캐나다 쪽의 혼 블로어 유람선에 타는 사람들은 파란색 비옷을 입고 미국 쪽 유람선을 탑승한 사람들은 빨간색 비옷을 입는다.
나이아가라라는 이름은 인디언 말에서 유래했는데 '천둥과 같은 소리를 내는 물'이라는 뜻의 주라 카레(Jourakahre)와 '머리를 옆으로 놓았다'는 뜻의 니아 가아라(nee-Agg-arah), 그리고 '평지를 나눈다'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세 가지 설이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 스카이론 타워가 있다. 그곳에 오르면 폭포의 전체 경관을 볼 수 있는 레스토랑이 있다. 약 한 시간 동안에 걸쳐 360도 회전을 하므로 식사를 하며 폭포 주변을 편히 즐길 수 있다는 거다. 어차피 점심 식사를 해야 하니 미리 예약을 신청했다. 고맙게도 1인임에도 불구하고 예약이 가능했다.
항공권을 구입하고 어느덧 4개월이 지났다.
홀로 여행에 대한 걱정은 없다.
상상하는 맛이 더 쏠쏠하다.
외로움보다 해방감이 기대된다.
캐나다로 떠날 날이 천천히 다가오기를 바랐지만 세상에서 가장 성실한 시계는 정직하게 돌고 돌았다.
이제 20일 후면 캐나다에서 20일을 지내게 된다.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넓은 대륙에서의 20일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미약한지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두 달쯤 살아보는 마음으로 재촉하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보고 싶다.
내 안의 나에게 질문을 하며 가끔은 눈물도 흘리고 아주 조금만 외로워보기로 한다.
나에게 주는 28,800분이라는 시간이라는 선물이 잊히지 않는 한 페이지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