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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Feb 12. 2019

파란 나라

1. 포르투, 아줄레주




게으름은 또 다른 게으름을 낳는 게 분명합니다.

캐나다, 멕시코, 쿠바, 아일랜드, 영국이

작가의 서랍에서 길게는 1년이 넘도록 잠을 자는 중입니다.

브런치에서의 멋진 데뷔를 기다리고 있음이지요.

1년 잠에서 깨어나 다시 브런치를시작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구독 버튼을 눌러주시는 독자들께 미안하고 감사합니다.


파란, 그 파아란 아줄레주와 그보다 더 파란 하늘이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 전에요.

포르투갈에는 또 다른 블루가 있습니다.

깨진 유리창과 무너진 집들, 그리고 노숙자와 걸인들.

그들은 또 다른 푸름, 멍입니다.

여러 가지 블루가 존재하는 나라, 포르투갈에서 23일을 지냈습니다.

모든 여행은 아쉬움이 함께 합니다.

인생이 지난하지만 봄날처럼 짧게 느껴지는 건 그래도 삶의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일 겁니다.

포르투갈 역시 여행의 퇴근 시간은 어김없이 다가왔습니다.

매일매일 함께했던 크레마 가득한 1유로의 커피와 나타(에그타르트)가 그리운 오후입니다.





2015년 크로아티아의 자그레브를 시작으로 그동안 여러 나라의 31개 도시에서 에어비앤비를 이용했습니다.

집을 못 찾아 불볕더위에 쩔쩔매기도 하고,

렌트한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엉뚱한 동네(같은 이름의 지명)에서 헤매기도 했습니다.

유럽의 대부분은 아직도 키 패드 대신 열쇠를 사용합니다.

묵직한 주물 열쇠를 구멍에 넣고 돌려서 따야만 비로소 집으로 들어갈 수 있지요.

호스트가 알려준 키박스를 찾아 몇 백 미터 거리를 오가는 곳도 있었지요.

가장 최악은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런던에 도착하던 날이었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1주일 전부터 메일을 수차례 보냈으나 호스트의 메아리는 돌아오지 않았고 체크인을 못하여 급하게 공항 근처의 호텔에서 하루 숙박을 하는 불상사를 겪기도 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에어비앤비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묵었던 숙소 대부분의 만족도가 높고 가성비가 좋습니다.

호텔의 이그제큐티브 룸도 절대로 따라올 수 없이 넓은 널찍한 거실,

어떤 음식도 맘대로 요리할 수 있는 주방,

그리고 그 나라의 독특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장점들이 그 이유입니다.


포르투갈의 호스트들은 남달랐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이나 여행 중, 언제든 필요한 질문과 부탁에 응답이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또한 모든 호스트들이 우리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빠르고 편안하게 체크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환영의 의미로 마련해준 와인과 과일, 빵 등은 매우 훌륭했지요.



유럽 여행이 그렇듯 첫 도착은 대부분 밤늦은 시각입니다.

비행 스케줄 때문입니다.

첫 도착지인 포르투 역시 밤 11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지요.

밤늦게 도착할 예정이라 미안하다는 나의 메시지에, 상관없으니 걱정 말고 무사히 오길 바란다는 따뜻한 답을 매번 전해왔습니다.

유럽은 어느 나라, 어느 도시이든 집을 떠나 여행지의 숙소까지 거의 24시간이 걸립니다.

비행시간은 10시간 내지 16시간 정도지만 공항까지 가는 시간, 환승 시간, 입국 심사며 짐을 찾고 숙소까지 이동하면 대부분 그렇습니다. 첫 숙소에 도착하면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건 당연합니다.


호스트 마누엘라는 에너지가 넘치는 부인이더군요.

집안 곳곳의 소개가 끝나자 지도를 펼쳐놓고 끝도 없는 설명이 이어집니다.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포르투의 아름답고 맛있고 멋진 장소들이 그녀의 입에서 줄줄 쏟아집니다.

피곤하지만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의 친절한 설명에 귀 기울인 게 어느덧 1시간이 지나 날짜 변경 시각에 이르렀지요. 그쯤 되면 친절도 병입니다.

어찌어찌 마무리를 하고 작별 인사를 나누며 인사치레로 그녀의 코트가 멋지다고 칭찬을 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가뭄에 물꼬 튼 저수지처럼 30년 전에 남편이 사주었고 남편은 이탈리아 사람인데, 블라블라...

또 한 바탕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거실에 마련된 웰컴 와인과 초콜릿


새벽 2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지요.

이불에서 향긋한 미모사 향이 났습니다.

어느새 포르투 어느 골목집의 침대 위에 누워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낯설지 않습니다.

오래 입은 옷처럼 편안합니다.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사위는 캄캄한데 알람이 설정된 자동인형처럼 눈이 떠집니다.

8시가 되어야 해가 뜰 테니 아직 캄캄하였지요.

포르투갈은 우리나라보다 9시간이 늦으니 서울은 오후 3시입니다.

나는 껐다가 다시 켜면 현지 시간으로 자동으로 맞춰지는 스마트폰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 몸은 시차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것도 따지고 보면 비정상이라 할만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여간 고마운 게 아니지요.

어딜 가나 시차에 적응하느라 고생하는 일이 없으니까요.

이번 여행의 시작점인 포르투는 처음에 도착해서 4박, 그리고 마지막에 5박으로 총 9박 10일이니 여유롭습니다. 무엇을 한다거나 어디부터 가야지 하는 계획이 없어도 좋을 나날이 될 거니까요.

여유가 있어 더 행복합니다. 


포르투에서의 달콤한 2019년 1월을 환영하는 메시지라 여기고 찰칵


포르투갈은 2012년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그때도 1월이었지요.

포르투갈에 다시 가면 꼭 해보리라 하는 게 두 가지 있었습니다.

리스본의 노란 트램 타고 언덕 오르내리기, 그리고 파두 공연 듣기.

하지만 베이스엔 묵직하게 자리 잡은 아련한 그리움이 따로 있었어요.

파란 하늘과 푸른색 아줄레주였습니다.

2012년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하늘을 보면서 비로소 '저게 바로 하늘색이구나' 했었더랬습니다.

그 파랑이 문득문득 그리웠어요.




포르투갈은 태양의 나라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햇살을 가지고 있다. 그곳엔 예술을 사랑하고 창조해낸 흔적이 햇살처럼 고스란히 남아있다. 영광과 상처가 뒤범벅된 역사의 굴곡마저도 푸른 하늘 아래에서는 그저 한 줌의 모래처럼 아득했다. 대항해 시대를 이끈 나라의 꼿꼿한 자존감으로 선명했다. 아! 기막히게 아름다워서 감탄사를 소리 내고 나면 더 이상 꽉 차오른 감정을 비집고 들어갈 그 어떤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라도 상관없다. 왜? 그 아슬아슬함이 여행의 매력이요, 벗어남의 특권이며 인생의 플러스 요인이니까. 리스본의 골목을 걷다가 조그만 바에 들러보고 싶다. 가슴을 후비듯 애잔하고 서정적인 파두를 들으며 독한 술 한 잔 마시는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처럼 검은 옷을 입고 말이다. 이처럼 파두는 내게 있어 포르투갈에 대한 일종의 화두(話頭)였다. 28번 트램을 타고 7개 언덕을 오르내리며 타일 벽화 아줄레주를 머릿속에 복사하듯 새기고 싶다. 마음의 현을 요동치게 만드는 슬픈 노래 파두의 나라, 독하고 달콤한 포트와인의 나라, 대항해의 시대를 열어 16세기의 슈퍼파워였던 나라로의 여행은 자유롭게 흘러갔다. 

12줄의 현악기인 기따라(기타의 일종)의 애조 띤 반주에 구슬픈 멜로디가 창자를 쥐어짜듯 고통스럽게 뱉어내는 노래 파두(Fado)는 소태처럼 쓰고 처연하다. 파두는 숙명이란 뜻을 지닌 포르투갈의 전통음악으로 리스본 선창가 카페에서 불리던 노래였다.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부른 ‘검은 돛배(Barco Negro)’는 배를 타고 나간 연인을 그리다 그의 죽음을 의미하는 검은 돛의 환영에 미쳐버리는 여인을 노래한 것이다. 하지만 노래의 끝자락에 다가서면 슬픔을 내뱉는 그 거친 목소리에서 묘하게도 삶의 용기가 읽힌다. 파두라는 장르 자체가 절망과 희망이 섞인 삶의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식을 갖춰 나간 까닭일 터다. 지구의 가장 서쪽에 자리 잡은 포르투갈은 자원도, 사람도 부족한 나라였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남자 나이 열 너 댓 살만 되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연인을 기다리며 여인들이 부둣가에 주저앉아 부른 노래 파두. 아말리아 로드리게스가 타계하자 정부가 사흘간의 애도기간을 두었다 하니 그녀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음악은 삶을 대변하는 예술이다. 아르헨티나 국민 가수 메르세데스 소사의 ‘삶에 감사하며’, 쿠바 재즈밴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의 ‘꽃들의 침묵’, 아말리아 로드리게스의 ‘이상한 삶의 방정식’, 또는 맨발로 노래하는 아프리카의 디바 세자리아 에보라의 노래를 들어보라. 뜻은 알 수 없지만 가슴 뭉클함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의 감정은 모두 비슷하기 때문이다. 모험의 세기는 끝나고 포르투갈은 화려한 무대에서 조용히 물러났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포르투갈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신비한 동화를 만날 수 있었다. 낭만과 재치가 넘치는 이상한 도시가 펼쳐지는 가운데 이어폰에선 파두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전문 ->  (전나무 브런치 '신이 그어놓은 테두리 같은 나라' )


fado(guitarra & guitar)

국명의 어원이기도 한 포르투는 부두(port)에서 유래한 지명입니다.  

포르투갈의 영토는 남한보다 작고 1인당 GDP는 서유럽에서 최고로 낮습니다.

좁은 골목길과 가파른 계단의 낡은 벽에 비치는 한 줄기 햇살이 찬란한 샹들리에보다 빛날 것을 짐작합니다.

꼭 가봐야 하는 곳이 많은 파리, 런던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푸근합니다.

물론 몇 번씩 가보아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요.



아줄레주(Azulejo)가 아름다운 상 벤투 역으로 향합니다.                                                                             

아줄레주는 아랍어로 '작고 아름다운 돌'이라는 뜻입니다.

지금은 포르투갈의 대표하는 독특한 타일 장식을 일컫는 명사처럼 쓰이고 있지만요.

포르투갈에서 아줄레주가 시작된 것은 마누엘 1세로 비롯됩니다. 그가 스페인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을 방문했을 때 이슬람 문양의 타일 모양에 매료되었고 자신의 궁전에 푸른 타일 장식을 하면서 비롯됐습니다. 

그 후 아줄레주는 포르투갈 특유의 모양으로 변화했지요.

대지진 이후 불에 강한 건축 재료로 아줄레주를 선호하면서 일상적인 장식이 되었다고 합니다. 



상 벤투 역은 포르투 근교에 있는 브라가, 아베이루, 기마랑이스 등으로 가는 기차를 이용할 수 있는 곳입니다.

역사 내부의 아줄레주 벽화는 당대 최고의 포르투갈 화가, 조르주 콜 라소가 1905년부터 1916년까지 공들여 그린 작품이라고 해요. 포르투갈의 역사적 장면들을 세세하게 그린 타일들이 모자이크처럼 붙어 있습니다. 

한 장 한 장이 모두 다른 타일이 모여 하나의 캔버스처럼 만들어놓은 정성이 놀랍습니다.

다시 드는 생각입니다.

'예술은 위로다.'


상 벤투 역의 아줄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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