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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Mar 18. 2018

비에하는 400살

아바나 2

                            



비에하 광장의 졸고 있는 남자


비에하는 스페인어로 '오래된'이라는 뜻이다.

1640년에 만들어졌다니 거의 400년이 되었다.

비에하 광장에는 100년 된 카페 엘 에스꼬리알('Café el Escorial')이 있다.  

광장에 은은한 커피 향이 퍼지는 시간, 야외 테이블은 금세 꽉 찬다. 

진한 에스프레소, 하얀 거품의 카푸치노가 맛도 좋아 아바나에 머무는 동안 2번 갔었다.



커피를 마시고 난 후 광장을 벗어나 사진을 찍으며 느린 걸음을 걷고 있었다.

뭔지 모를 허전함이 뒤통수가 싸하다.

순간 온몸이 얼어붙는 한기를 느꼈다.

어떤 말도,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오직 달리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 순간만은 칼 루이스 못지않았을 거다.

지갑은 물론이요, 여권이며 중요한 게 모두 들어있었다.

여행지에서는 거의 크로스 백을 메고 다닌다.

그날따라 멕시코시티 인류학 박물관에서 구입한 숄더백을 메고 나간 게 화근이었다.

쿠바엔 우리나라 영사관이 없다.

여권을 잃어버리면 멕시코 영사관으로 연락하라는 문자 메시지가 매일 날아들고 있었다.

에스꼬레알에서 커피를 마시며 가방을 의자 팔걸이에 걸어놓은 채 떠나온 것이다.

여행자는 물론이요, 거리 악사며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수없이 오가는 곳이다.

노천카페의 가장자리에 앉았던 터라 누구든 슬쩍 가져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터였다.


비에하 광장의 카페 엘 에스꼬레알


우리가 앉았던 자리에 중년 커플이 앉아있는 게 보였다.

의자 팔걸이에 걸려 있어야 할 내 가방은 깜쪽 같이 없어진 후였다.

눈 앞이 캄캄했다.

헐레벌떡 뛰어오는 나를 본 남자가 웃고 있었다.

혹시 가방을 보았느냐고 묻기도 전에 그가 말했다.

가방을 커피숍 안 쪽에 맡겨두었으니 걱정마라고 한다.

큰 절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카운터에 가서 가방을 찾은 후에도 가슴이 계속 콩닥거렸다.

나를 뒤쫓아온 친구가 얼마나 빠른지 도저히 따라올 수 없었다고 했다.

극한 상황에서는 초인적인 힘이 생기는구나 싶었다.


카페 에스꼬레알 실내


비에하 광장에는 쿠바에서 유일하게 수제 맥주를 만들어 파는 곳이 있다. 

팩토리아 플라사 비에하( Factoria Plaza Vieja)가 그곳이다.

그곳 역시 야외 테이블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늘 만원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대신 그곳에서 라이브 연주를 들으며 저녁을 먹기로 하고 예약을 했다.

맥주는 Brown beer, White beer, Black beer 중 초이스 하면 된다.

맥주 외의 다른 술을 마시는 사람은 없다.

1m는 족히 돼 보이는 타워 맥주가 눈길을 끈다.

돼지고기, 닭고기, 쇠고기를 끼워 만든 꼬치 요리와 흑맥주를 주문했다.


광장의 화가


연주자들은 별 신명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듣는 사람들도 모두 심드렁한 표정이다.

분명 흥겨운 음악인데 연주자들은 그저 의무적인 일을 하듯 뚜하다.

유일한 여성인 플루티스트는 관객들을 수시로 외면하고 악기를 연주했다.

쿠바에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흰옷을 입은 여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조상들이 믿어오는 종교적인 이유라고 한다.


팩토리 플라사 비에하의 플룻 연주자


대신 주변 테이블에 앉아있는 손님들에게 눈을 돌렸다.

영화의 한 장면 같이 아름답다.

평범한 티셔츠에 무심한 듯 스카프 하나 걸쳤을 뿐인데 은은한 조명 때문인지 분위기가 좋아 보여 찰칵!


팩토리아 플라사 비에하의 여행자들


레스토랑의 내부와 외부로 나뉘는 중간쯤에 수염이 멋진 노신사가 눈에 띄었다.

블랙 페도라가 무척 잘 어울렸다.

내 카메라를 감지한 남자는 무언의 포즈를 취해주었다.

셔터를 누른 후 엄지 척! 감사의 뜻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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