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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Feb 13. 2019

언덕, 그리고 225개의 계단

포르투, 클레리구스 종탑



포르투갈을 여행하려면 다리 근력이 좋아야 합니다.

여행자들이 찾는 거의 모든 도시들이 언덕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지요.

물론 걷고 또 걷는 게 나의 여행 스타일이라 경보하듯 빠른 걸음은 아니더라 하더라도요.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도우로 강' 하구에 위치해 항구 도시로 번성하며, 수백 년의 전통을 간직한 건축물과 거리의 모습이 남아있는 포르투 역시 수십 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225개의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클레리구스 성당 옆 종탑은 좁디좁습니다.

배낭과 코트 자락이 돌 벽에 스치는 소리가 현대 음악처럼 슥슥,

오르거나 내려올 때 사람이라도 만나면 대책이 없습니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의 돔 꼭대기에 오르려면 463개의 계단을 올라야 합니다.

파리 개선문은 284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죠.

클레리구스 종탑에 오르는 일은 그보다 더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그게 나이인가 봅니다.

1년 후면 아름다울 예순이네요.    


클레리구스 종탑
클레리구스 성당 내부



포르투의 왕관이라 불리는 종탑 꼭대기에 오르면 잘 익은 홍시를 널어놓은 듯한 붉은 지붕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하지만 꼭대기 역시 좁은지라 몸을 한 바퀴 돌다 사람을 만나면 몸을 모로 접어야 하는 형편입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재촉하듯 내려와야 했지요.




허기가 몰려듭니다.

포르투갈에는 싱싱한 해산물이 많습니다. 

염장 대구인 바칼라우와 문어 요리가 유명합니다.

포르투갈은 음식을 주문하기 전에 식전 빵과 올리브, 버터와 치즈를 먼저 가져다주더군요. 

서비스로 주는 게 아니라 계산에 포함됩니다. 원치 않는 경우 먹지 않으면 계산하지 않으니까 상관없지만 대체로 올리브와 빵이 맛있습니다.

각종 조개와 새우, 갑각류들을 쌀을 놓고 끓여낸 해물밥(야호스 지 마리스쿠)과 문어(볼푸)를 주문했습니다.

죽 느낌의 해물밥은 그 양이 어마어마했는데 짭조름한 맛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감자와 함께 요리한 엄지 손가락보다 굵은 대왕 문어의 식감이 어찌나 부드러운지 깜짝 놀랐습니다.

흐물흐물한 게 아니라 쫄깃하면서도 고소하여 자꾸 손이 가더군요.




에그 타르트는 리스본의 벨렘 지구에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수녀님들이 처음 만들어 먹었다고 전해집니다. 

수녀님들이 수녀복의 하얀 옷깃에 풀을 먹일 때, 계란 흰자를 사용하는데 이때 버려지는 계란 노른자로 빵을 만들어 먹은 게 에그 타르트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수도원에서 만들어 먹은 에그 타르트는 맛난 간식이 되었고, 나중에 그 비법이 빵가게에 전해지면서 오늘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에그 타르트가 된 것이지요.

리스본에 가면 1837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벨렘 빵집을 다시 찾아가겠지만 포르투에도 맛있는 에그 타르트(포르투갈어로 나타) 집은 많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에그 타르트보다 좀 크며 겉은 페이스추리라 최고로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고 부드럽습니다. 하나에 1유로가 안되니까 디저트로는 그만입니다.

진한 에스프레소에 시나몬과 슈가 파우더를 살짝 뿌린 에그타르트는 중독성을 갖고 있습니다.

친구들과 여행 내내 1일 1나타를 즐기는 시간들이 빵 맛만큼 달콤하고 고소했습니다. 





포르투갈의 길거리에는 군밤 장수들이 심심찮게 보입니다.

소금에 밤을 굽는 게 특이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밤이 꽤 달고 맛있더군요. 값이 싸지는 않지만 그 또한 심심풀이 주전부리로 훌륭했습니다. 다리가 아프면 길가 의자에 앉아 밤을 까먹고는 했으니까요. 1월이지만 포르투갈의 기온은 섭씨 15도 남짓하니 꽤 포근합니다. 그러니 길거리 벤치에 앉아 노닥거리는 일이 가능한 일이지요. 




해리포터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런던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해리포터와 관련된 기념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상점은 물론이요, 해리포터를 콘셉트로 하는 카페나 클럽들이 허다했으니까요.


조앤 롤링은 1991년 11월부터 포르투의 영어학교에서 교사로 일을 했습니다.

1992년 현지 방송사 기자인 3세 연하의 조르즈 아란테스와 결혼해 1993년 딸을 낳았지만 그해 이혼을 했지요. 어린 딸에게 먹일 우유를 살 돈도 없이 정부의 보조금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그녀를 버틸 수 있게 해 준 것은 글쓰기였다고 하지요.  온종일 카페에서 커피 한 잔으로 버티며,  유모차를 밀어 아기를 재우고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곳이 바로 카페 마제스틱입니다.     

고풍스러운 아르누보 양식의 이 카페는 해리 포터 중 호그와트 계단의 모티프가 되었다는 렐루 서점과 함께 포르투의 명소입니다. 그 카페가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산타 카타리나는 포르투 역사지구 중심가의 거리로 옷가게, 잡화점, 기념품점 등의 상업 시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사람들의 활기가 느껴집니다.    

     



클레리구스 종탑에 올라갔던 일이 아무래도 무리였나 봅니다.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슈퍼 마켓 핑구 도스에서 과일, 달걀, 요구르트 등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지요.

비릿하고 짠내 나는 허연 말린 대구(바칼라우)가 보란 듯이 누워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비주얼이나 냄새가 식욕을 부르진 않더군요.

새나라의 어린이처럼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포르투의 2번째 밤이 지나갑니다.

다음 날, 근교 도시 브라가로 가는 기차를 탈 예정입니다.


슈퍼마켓 핑구 도스
바칼라우
크리스마스 때 설치한 조명이 불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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