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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Feb 15. 2019

줄무늬 하우스, 코스타 노바

4. 코스타 노바



포르투갈에 코스타 노바라는 이름의 도자기 브랜드가 있습니다.

별 다른 무늬 없이 단순한 디자인이 맘에 들어 몇 개 갖고 있지요.

 


포르투갈에는 그 이름과 같은 도시가 있습니다.

그곳은 특이하게도 집 외관이 스트라이프, 그러니까 줄무늬 색깔의 집들로 유명합니다.

아베이루에서 버스나 택시로 20~30분이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코스타 노바 역시 아베이루처럼 거대한 폭풍이 지나간 후 퇴적에 의해 형성된 땅입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줄무늬 집 앞 쪽으로 아베이루 강을 따라 내려온 물과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습니다.


비릿한 냄새가 이끄는 곳으로 들어가니 바닷가답게 수산물을 판매하는 시장입니다.

생전 처음 보는 생선이며 문어, 고등어, 새우 등이 펄펄 살아 있는 듯 싱싱합니다.

돌아갈 때 바지락을 사서 봉골레 파스타를 해 먹어도 좋겠다 싶습니다.

생선을 파는 아주머니들이 건강하고 씩씩해 보이는 것은 그곳 역시 예외는 아니더군요.

삶은 저렇듯 치열한 것이구나 하다가, 그들은 내가 여기는 것처럼 고달픈 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그저 일상이 되면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의 추측과는 다르니까요.

내가 하고 있는 일은 거꾸로 남이 보면 쉬워 보이나 실상은 말 못 할 스트레스와 고통이 따르니까요.

세상에 쉬운 일은 없습니다. 좋은 걸 다 가질 수도 없습니다. 평범한 게 가장 좋은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평범하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내가 처한 상황과 가진 것에 만족하면 그게 행복이려니 합니다.

 


버스 유리창에 비친 나무


배가 고픈 건 아니지만 습관처럼 카페를 찾아 들어갔습니다.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브런치를 들고 계시네요.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고소한 나타와 향긋한 커피로 한가로움을 느낍니다.  

그냥 괜찮아 보여 들어갔는데 그곳은 코스타 노바에서 맛집으로 꼽히는 카페 아틀란티다입니다.

맛있는 빵과 커피는 언제나 진리입니다.

커피 한 잔을 더 마시고 나서 만족한 기분으로 자리를 떴습니다.




포르투갈은 여늬 유럽과 달리 집의 크기가 작습니다. 코스타 노바도 다르지 않더군요.

하지만 깔끔하고 정갈하게 가꾼 흔적이 느껴집니다. 아기자기한 모티브를 찾아 사진을 찍고 있을 때였어요.

옆 집의 문 앞에 서 계시던 할아버지가 손짓을 하십니다.

아무리 봐도 나를 부르는 것이고 당신 집으로 들어오라는 뜻이에요.

키가 작고 선해 뵈는 할아버지의 초대에 의심은커녕 기쁜 마음으로 따라 들어갔지요.


거실은 아주 작았습니다. 벽 한 쪽엔 오래된 옛 물건들을 진열한 액자들이 선반엔 아기자기한 소품들이 아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습니다.

자수로 만들어진 초상 액자를 가리킵니다. 나이가 들어 뵈는 남자는 파이프를 물고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데 그의 초상을 가리키며 포르투갈 말로 뭔가 말을 시작하십니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으나 추측으로 your papa?

하니 만면에 미소를 띠며 끄덕끄덕하셨지요.



그의 부친은 항해사였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할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나침반이며 매듭 등, 세상에 없는 소중한 물건들의 소개와 설명이 하나하나 이어졌습니다.

대부분이 부친과 관련된 물건들이었고 그는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했지요.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야말로 이름도 성도 모르는 타국의 여행자를 불러 당신의 아버지를 그토록 자랑하시는 걸 보니 참 많이 사랑하셨구나 싶습니다. 더불어 쓸쓸하시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돌아가신 분의 유품을 항상 바라볼 수 있는 거실에 두고 추억하는 모습이 가슴 따듯하고 보기 좋았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물건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은  나 자신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지만 잠시 가슴 훈훈한 시간이었습니다.

잊고 있었습니다. 그리움도 사랑이라는 것을요.



아무리 봐도 그림 같습니다.

일부러 만들어 놓은 색깔이 아닙니다.

얼룩이 묻은 창문에 하늘과 건너편 집의 벽이 반영되어 들어있습니다.

녹이 슨 창틀은 앤티크 한 액자의 역할을 제대로 합니다.

한 장의 유화처럼 보입니다.

바람과 비와 햇살이 오랜 시간을 지나오면서 만들어진 창틀과 문과 벽의 얼룩이 자연스러운 멋을 풍깁니다.

티 없이 깔끔한 원색의 스트라이프 집들이 늘어선 동네지만 내 눈엔 그 집이 더 아름다웠습니다.

그런 걸 보면 오래된 시간은 참 소중합니다.




오가는 이 없이 적막한 마을은 소박하지만 깨끗하게 정돈되고 조용했어요.

여름에는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로 북적거릴 것이 분명한 곳입니다.

고요가 지칠법한 그런 곳에서 살아가는 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합니다.




마을 뒤편에 있는 대서양의 해변으로 가려면 모래 언덕을 넘어야 합니다.

모래가 넘어오지 않도록 나무로 기다란 데크를 만들어 놓은 모습이 이색적이었습니다.

바닷가라 바람이 불고 추울 거라던 예상은 크게 어긋났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4월 하순 정도의 기온에 바람도 없으니 겉옷을 벗어도 전혀 춥지 않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 배운 해양성 기후는 온난하다는 말이 떠올랐으니까요.


자전거를 탄 사람이 지나갑니다.

가끔 손을 잡은 연인들이 데크를 걷기도 하고요.

반려견과 한가로이 해변을 산책하는 모습은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합니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칼로 자른 듯 수평선이 선명합니다.

분명 하늘이 바다를 비추고 있는데 바다가 더 파랗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일상에서 그런 한가로운 정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모래에 찍힌 갈매기 발자국을 따라 걸어 들어가 해변에 앉았지요.


푸른 하늘이 불렀던 노래 겨울바다가 저절로 흥얼거려졌습니다.

'겨울 바다로 가자, 메워진 가슴을 열어보자...'

 

바다와 하늘에 눈을 주고 바람을 느끼던 짧은 시간, 노래 가사처럼 메워진 가슴을 열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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