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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Feb 14. 2019

빈티지 히베이라

포르투, 도우루 강, 동 루이스 다리



포르투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중 단연 빼놓을 수 뭐니 뭐니 해도 도우루 강변을 잇는 카이스 다 히베이라(Cais da Ribeira, 강변의 부두라는 뜻) 거리입니다. 도우루 강 옆으로는 깎아지른 듯한 집들이 이어지고 동 루이스 1세 다리까지 와인 판매장, 노천 바들이 죽 이어지는 곳이지요. 루이스 1세 다리는 포르투갈의 루이스 국왕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오늘은 히베이라로 방향을 정했습니다.


                                           



포르투의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고 있는 이 다리는 에펠탑으로 유명한 건축가 구스타브 에펠의 제자 테오필 세이리그가 설계하여 1886년에 완공했다고 합니다. 

다리의 1층은 자동차가 지나고, 2층으로는 메트로가 지나다니지요. 보행자 도로는 다리의 양쪽 층에 다 있는데 우리가 건넌 것은 높은 쪽이었습니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며 날고, 언덕에는 파스텔화처럼 빛바랜 집들이 알록알록 어깨를 맞대고 서 있습니다. 깨지고 닳아빠진 아줄레주 장식이 초라해 보이지만 창가에는 나부끼는 빨래들이 사람 사는 정겨움을 전합니다. 와이너리가 몰려 있는 히베이라의 강 건너편에는 와인 통을 실어 나르는 배들이 고풍스럽게 줄지어 정박 중이네요.


도우루 강 유람선


사나운 바람이 불었습니다.

몸을 가누기 어려울 지경이었지요.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습니다.

나중에 알고보니 다리의 높이가 무려 85m더군요.

철로 만든 다리의 중간중간 바닥에 구멍이 뚫려있어 걷다 보면 오금이 저려 발걸음을 떼기가 어려웠어요.

안 그래도 바람 때문에 걷기 힘든데 강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구멍으로 강물이 보이니 갑자기 공포감이 찾아왔습니다.

M과 J는 다리 난간을 잡고 거의 사경을 헤매는 표정이에요.

나 역시 친구들 흉 볼 처지가 아니건만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여 한동안 혼이 났습니다.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길이가 그리 길어 보이지 않았는데 꽤 먼 거리입니다.

우리가 건넌 상층의 길이가 385.25m이고 하층은 172m더군요.

  

히베이라 지구


와이너리가 모여있는 빌라 노바 지 가이아 지구
와인 운반선에 와인 오크 통들이 실려있는 모습
롱 루이스 다리


가까스로 건너고 나니 몸에 힘을 얼마나 주었던지 기운이 하나도 없습니다.

에너지 충전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지요.

강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옆에 위치한 카페로 갔습니다.

건물 전체가 맑은 통유리로 만들어져 햇살을 받아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었지요.

따뜻한 커피와 달콤한 나타를 먹으며 기력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는 강변 쪽 언덕을 내려가 아래층 다리를 통해 다시 히베이라 쪽으로 건너갔습니다.



어쩌면 한 존재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다른 존재들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자리이기 때문일 거예요. 

한 존재의 올바름과 진실함 또한 다른 존재들의 진실함과 올바름을 드러내는 자리가 되기 때문일 거예요. 

그 자리는 영원하지만, 그곳에 머물다 가는 존재들은 덧없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거나, 자신을 그 자리와 동일시할 때 그 자리는 숨어버리지요.


이성복의 책 '극지의 시' 중 아미산의 추억이 생각났습니다.

히베이라, 그곳의 아름다움은 영원하지만 그곳을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들은 덧없으니까요.

나는 그곳의 색을 빈티지 히베이라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빈티지라는 말은 포도가 풍작인 해에 정평 있는 양조원에서 양질의 포도로 만든 고급 포도주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곳은 오래된 와이너리들이 즐비한 곳이니 적당하고, 

빈티지란 옛것으로 품위를 살린 데가 있다는 뜻도 있으니 '빈티지 히베이라' 어울리지 않나요?

          



남녀 버스커들이 노래를 하고 있습니다.

햇살은 따사롭고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을 여행자들이 삼삼오오 눈과 귀를 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행복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들으며 입가에 미소를 짓습니다. 동 루이스 다리 위로는 여전히 자동차와 기차가 오가고 우리가 그랬듯 바람과 맞서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허름한 음식점에 들어가 피자로 식사를 합니다. 허기를 비우는 일은 마음의 밑줄 하나 지우는 일일 거라 생각하면서요.


 



볼사 궁전 앞에서 500번 버스를 탔습니다.

호스트가 추천한 해안 마을 마토지뉴스에 가보기로 한 겁니다.

아무 생각 없이 버스 종착지에 내려보니 한적하게 걸을만한 산책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너무 멀리 온 거죠.

산책로를 찾자고 되짚어 걸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일 가게에서 사과를 샀습니다.

새콤달콤한 사과를 와그작 깨물어 먹으며 빛바랜 벽과 깨진 유리창과 아무도 살지 않는 집들을 지나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만큼 걷다 보니 메트로를 타는 곳에 다다랐습니다. 

티켓을 사고 예정에 없는 전동차를 타고 꾸벅꾸벅 졸며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제는 유리창이 사라지고 없는 빈 창틀이 이상해 보이지 않습니다.

이미 포르투 주민이 되었나 봅니다.




앞 집 발코니의 나무 테이블 위에 놓인 마른 꽃 한 다발과 나무 의자가 밤마다 그림자 그림을 그려줍니다.

내일이면 포르투의 첫 숙소를 떠납니다.

열흘 후 다시 포르투로 돌아오면 다른 집에 묵을 거니까 저 그림자 그림도 마지막입니다.

그리울 거예요.

가로등 불빛이 만들어내던 그림자 그림 속의 의자와 마른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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