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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Feb 18. 2019

달콤한 젤리 향이 날 것 같은 궁전

8. 신트라, 페나 성



주말에 비 예보가 있었습니다.

다음 날, 리스보아의 첫 일정은 신트라로 정했지요.

기차역은 묘한 설렘을 줍니다.

공항은 뭔가 복잡하고 거쳐야 할 과정이 여러 가지이다 보니 덜하지 않은가 싶어요.

플랫폼의 천장은 삼각이나 반원형으로 어디나 비슷합니다.

그날따라 그 단순하고 규칙적인 철 기둥과 빔이 아름답게 보였던 건 햇살 때문이었지요.

호시우 역의 플랫폼 바닥에 깔린 돌들이 반질반질 윤이 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모든 바을 돌로 무늬를 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게 분명합니다.







신트라 사람들은 달을 숭배했니다.

그들은 '달의 산'이라는 뜻의 세라 산 꼭대기에 페나 성을 세웠지요.

신트라 왕궁은 포르투갈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중세 왕궁(10세기 무어인:아랍 총재가 사용했던 건물)입니다.

왕궁 외 에도 무어 성, 페나 성, 몬세라트, 헤갈레이라 별장 등 볼거리가 많은 동네라 하루에는 다 돌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페나 성을 택했습니다.


호시우 역에서 기차를 타고 신트라에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성 앞에 도착했습니다.

아직 오픈 시간 전인데 티켓을 사려고 줄을 서 있는 사람이 상당하네요.

비수기인 겨울에도 그 정도인데 여름엔 사람에 떠밀려 다니겠구나 싶습니다.

티켓팅을 하고 일단 안으로 들어가면 셔틀버스를 타고 성 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지만 언덕이 워낙 가파르니 대부분 버스를 이용하더군요.

    

달콤한 향기가 날 것만 같습니다.

캔디나 젤리처럼 선명한 노랑, 빨강, 보라색으로 만들어진 궁전이 신비롭기만 합니다.

백설공주 코스프레 하고 와야 어울릴만한 곳입니다.

호두까기 인형의 봉봉과자의 춤에 나오는 집 같기도 하고요.

노랗고 빨간 벽하며 담장을 둘러싼 모양이 왕관의 테두리를 닮았습니다.

꿈 속이나 애니메이션 속에서 보던 집 같았지요.







이곳에서도 벽면의 아줄레주 타일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페나성은 1854년에 포르투갈의 여왕인 마리아 2세가 세웠고 그 후 포르투갈 왕실의 여름 궁전으로 쓰였다고 해요.

1910년부터 국가 문화재로 등재되어 현재는 신트라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정되어 있습니다.

페나성은 고딕ㆍ이슬람ㆍ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되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국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어요.

놀이동산에서 이와 비슷한 작은 집들을 볼 수 있긴 하죠.

19세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히는데 고풍스러운 가구와 식기 등 중세의 포르투갈 왕가와 귀족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옛날 왕족과 귀족들은 화려함과 사치의 극치를 이루고 살았던 걸 알 수 있는 유물들이 많습니다.

유럽의 많은 궁전과 성당과 박물관을 다니다 보면 어떻게 만들었을까 할 정도로 입이 떡 벌어지는 건축물들이 많지요.

침실 가구며 천장화, 호화로운 의상, 아름다운 식기 등 현재와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당시 서민들의 삶은 비루하기 짝이 없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페나 성의 내부를 돌아보니 다른 나라들의 성과 다를 바 없이 호화롭습니다.

외부와 달리 내부 장식은 민트색, 연두색, 청색, 와인 색등 많은 컬러를 사용했지만 우아하고 품위 있습니다.

그 시절은 평균 신장이 작기도 했겠지만 침대가 무척 작은 모습이 이채로웠지요.

동으로 만든 팬이며 주전자 등 주방 집기들과 접시 등이 고풍스럽고 아름답더군요.

파란 하늘에 시시각각 다른 그림을 그리던 흰구름들이 점점 물러나고 있습니다.

비 한 줄 그을 것 같네요.












중간층 발코니로 나가니 카페가 있습니다.

커피와 달콤한 케이크를 먹습니다.

잠시나마 궁전의 주인이 된 것처럼 몸과 맘과 눈이 모두 달달해집니다.

그렇다고 그런 곳에서 살아봤으면 하는 바람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꿈이 있지요.




페나성을 나와서 버스를 타고 신트라에 도착하니 비가 가랑가랑 내립니다.

처음 신트라에 가서 보았던 아기자기했던 감흥은 없더군요.

피리퀴따 라는 이름의 빵집이 유명한데  단체 여행자라도 들었는지 자리가 없습니다.

그때는 없었지만 2호점이 생겼더군요.

덜 알려진 건지, 아니면 언덕을 좀 더 올라가야 하는 이유인지 그쪽엔 좌석이 여유가 있었습니다.

커피와 나타로 잠시 피곤함을 달래 봅니다.


행은 즐겁지만 피로를 느낍니다.

이유는 눈과 귀가 평소보다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처음 보는 신기한 것, 아름다운 것, 예쁜 것 들을 눈여겨봐야 하고, 모국어가 아닌 언어들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눈을 크게 뜨고 뭔가를 찾을 때도 있으니까요.

이를테면 일상과는 달리 오감이 깨어있는, 아니 바짝 긴장한 상태가 아닐까 합니다.


신트라는 음식점을 고르기도 마땅치 않았어요.

몇 군데를 살펴보고 결국 여행자들의 발길이 좀 뜸한 레스토랑을 찾아 들어갔지요.

썩 괜찮지도, 나쁘지도 않은 식사를 했습니다.

비가 내려서일까요?

바이오 리듬 곡선이 낮은 쪽으로 흘러가는 신호를 보냅니다.

집에 가면 J가 만들어준다는 감자전과 와인 한 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는 리스보아니까요.

  







바람을 닮은, 바람을 담은 꿈


유럽 어느 한적한 마을,

고요한 산책과

가벼운 침묵으로 살고 싶다.


음악에 빚을 지고 돌아오면

쓰다만 글이 나를 반기는 곳,

그곳에서 여행의 뒷길처럼

누군가를 그리워할 것이다.    


가끔씩 남아도는 시간을 즐기며

설핏 잠이 드는 쓸쓸함까지

기꺼이 껴안을 것이다.     


이끼 낀 돌 벤치에 기대앉아 책을 읽다가

하늘을 바라보는 게으름을 즐길 것이다.


큰 창으로 가을빛이 자욱하게 고여 들고

별빛이 자잘한 꽃잎처럼

잔디에 부어지는 걸

오롯이 차지하는 사치를 누릴 것이다.


숲의 고요가 지치는 날엔 시장에 나가

파란 사과 몇 알과 빵 한 바구니,

물망초나 델피니움 한 다발을 사 올 것이다.


더러,

여백이 끝나는 곳에서

목소리가 그리운 시간이면

머플러 속에 고여 있던

기다림을 쏟아내어

가끔은 무효가 된 전화벨을

울릴 것이다.


얼음장 같은 하늘이

쩌렁쩌렁 시린 소리를 내는 새벽엔

네모난 사진첩을 넘길 것이다.


착각 같은 봄이 오면

멍한 시선을 비끄러매고

발뒤꿈치에서 설레는 바람을 데리고 나가

꿈에게 마음을 맡기기도 할 것이다.


비 온 후 올리브 나무 사이로

옅은 구름이 쓸려가는

푸른 하늘 냄새라든가

가랑비 자욱한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노을 냄새를 섞어

바람에 날려 보내면

생명에 가장 가까운 색

연두와 초록을 데려올 것이다.


모두에게 휴식이 내리는 가을엔,

라피스 라줄리를 닮은

저녁 빛을 불러 앉히고

모든 흘러간 과거가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편지로 쓸 것이다.


그 편지는 부재 속으로 찾아드는

침묵의 목소리인지라

길어져도 수다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때 쓰는 글은 음악이 되고

가끔 만나는 한밤의 침묵과

마음 진동하는 책을 읽는 시간은

내가 숨 쉬는 공기가 될 것이다.          


시시로 바람의 고향을 찾아

국경을 넘어 포지타노로 향하거나

몽생미셸에 가서

바다의 엄마가 누군지

하늘의 아버지는 어디 있는지

허적허적 찾아다니는

어린 왕자가 되기도 할 것이다.


생각에 빠져

얼 그레이가 다 식어버리는

흐름처럼

어젠 여름이었고

오늘은 가을인 나날을 보낼 것이다.


그건

내 신발엔 언제나 바람이 그득한 까닭이며

가방 속에 든 음악과

음악 속에 담긴 술과

술잔에 떨어지는 비 때문일 것이다   


내 눈 속에 사는 새 한 마리가

낮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갈까 생각하는 건

소리 없는 반란이자 부활,

살아있는 이유일 것이다.


붉은 달이 뜬다고 했다.

신발에 바람을 담는다.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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