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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Feb 18. 2019

판테온에 잠든 검은 돛배

리스보아, 판테온, 아줄레주 박물관




벼룩시장은 언제 어디서나 흥미롭습니다.

여행 중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기도 하지요.

리스보아에도 유명한 벼룩시장이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에 <페이라 다 라드레> 라는 이름의 시장이 열립니다.

라드레 라는 말은 골동품에서 발견되는 벌레에서 파생되었다고 해요.

비가 내린다고 하니 장이 설지 말지 궁금합니다.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겨울 아침 찾아갔던 파리의 방브 벼룩시장은 비와 상관없이 장이 열렸더군요.

호스트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금세 답이 왔습니다.

비가 와도 장이 열리나 되도록 일찍 가는 게 좋다고 합니다.


우버를 불러 타고 일명 도둑 시장이라 불리는 그곳으로 갔습니다.

우버(Uber)는 카카오 택시와 비슷합니다.

스마트 폰에 어플을 다운로드한 후 신용 카드를 등록해 놓고 사용하는데요.

우버 이용 요금이 나중에 청구되기 때문에 그때마다 지불하지 않아 편합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의 주소를 입력하면 내가 위치한 근처에 있던 우버 중 한 명이 컨택을 합니다.

택시보다 저렴하고 운전기사의 이름이며 차 넘버, 차종이 폰에 보이기 때문에 믿을만하지요.

그러므로 해외여행 때마다 자주 사용합니다.

포르투갈은 특히나 저렴해서 여행 내내 열댓 번 정도 타고 다녔는데 총비용이 1인당 3,2000원 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트램 한 번 타는데 3유로이니 대중교통보다 저렴합니다.

게다가 자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가 없는 포르투갈은 모두 수입차 밖에 없습니다.

BMW, 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포드 등 유명하다는 자동차는 모두 타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물론 영어가 하나도 안 되는 기사님을 만날 때도 있지만 별 문제는 없습니다.

스마트폰으로 이미 목적지 주소를 기사에게 전송했으니까요.

게다가 여행지마다 그 나라의 언어를 속성으로 공부하고 오는 똘똘한 J가 있어 걱정 없습니다.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있습니다.

주소지의 철자가 하나라도 틀리면 엉뚱한 곳으로 데려다 줄 수도 있으니까요.




물건을 꺼내 진열하는 남자, 가판이나 파라솔을 펼치는 사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담배를 피우는 아주머니...

시장에 도착하자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옷은 꺼내고 카메라는 지퍼백에 넣어 배낭에 집어넣었지요.

그야말로 벼룩 빼고 다 있는 곳이 벼룩시장이다 라는 말이 맞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든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다양한 종류와 퀄리티들이 다른 물건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지요.



가죽 가방과 작은 소품들을 몇 개 사는 동안 비가 그쳤습니다.

큰 성당으로 보이는 건물 뒤편에 앉아 보온병에 가져간 메밀 차를 마셨지요.

가까운 곳에 가 볼 만한 곳이 있는지 스마트 폰을 검색했습니다.

우리가 앉아있는 그 건물은 놀랍게도 리스보아의 판테온이었습니다.


판테온은 그리스어로 모두를 뜻하는 판(Pan)과 신을 뜻하는 테온(Theon)이 합친 글자입니다.

로마와 파리의 판테온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로마의 판테온은 거대한 구멍이 뚫린 지붕으로 비가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지요.

그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은 내부를 고르게 밝혀 줍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추는 각도가 변하면서요.

해의 위치가 바뀌니까요.

마치 하늘이 판테온의 내부 공간에 스며들어 오는 듯한 느낌이 신에 대한 경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신기한 것은 비나 눈이 내려도 건물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로마 판테온에는 이탈리아와 왕과 왕비, 그리고 라파엘로가 묻혀 있습니다.


로마 판테온 전경
시각에 따라 빛이 비치는 각도가 다른 로마 판테온


파리의 판테온은 프랑스혁명 때 프랑스의 자유를 위하여 이바지한 인물의 묘소로 쓰였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우여곡절 끝에 빅토르 위고의 유해가 안치되면서부터 미라보를 비롯하여 생전에 사이가 안 좋았던 볼테르와 루소, 에밀 졸라, 장 조레스, 퀴리 부인 등이 묻혔습니다.


파리 판테온 전경
파리 판테온 내부



리스보아의 판테온은 원래 산타 엥그라시아 성당이었습니다.

16세기 말 마누엘 왕의 딸 도나 마리아의 요청으로 짓기 시작했는데 무려 300년이 걸렸다고 하네요.

그래서 포르투갈 사람들은 해도 해도 끝나지 않은 일이 있을 때 '산타 엥그라시아 같다'라고 한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그럴 만도 합니다.

포르투갈 그 어느 곳에서도 그토록 정교하고 웅장하며 빼어난 돔을 보지 못했으니까요.

바닥에 깔린 유색 대리석 문양, 사방으로 나눠 놓은 아치 형 돔의 균형은 완벽했습니다.

파이프 오르간은 웅장해 보이지만 화려하지 않았지요.

360도를 뺑뺑 돌며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말문이 막힌다는 표현이 딱 맞는 정경입니다.







2층





19세기에 들어 국립 판테온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국가적 위인, 즉 주앙 1세의 셋째 아들로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던 엔리케 왕자, 바스코 다 가마, 포르투갈의 대통령, 포르투갈의 대표 작가 알베이다 가레트, 축구 선수 에우제비오, 그리고 파두 가수 아멜리아 로드리게스 등의 석관이 있었습니다.



바스토 다 가마 석관



파두는 처연합니다.

'숙명'이라는 뜻의 라틴어 'fatum'에서 나온 이름 때문일까요?

'나 홀로’를 뜻하는 라틴어 'Solum에서 유래한 사우다드의 원뜻은 '강렬한 바람'.

포르투갈 사람들은 노래가 사우다드에서 나왔다고 믿는다고 해요.

심장을 메운 슬픔, 바다를 향한 그리움, 고향을 그리는 간절함 등

파두의 바탕이 사우다드는 우리의 정서인 '한'과 통합니다.

파두는 1800년도 초중반 리스본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음악 장르입니다.

시에 음악을 얹어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부르기 시작했죠.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의 보사노바에 파우사드의 그리움과 애잔함이 남아있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고음을 길게 늘여서 흔드는 창법은 '멜리스마'는 수세기에 걸쳐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해왔던 이슬람의 흔적입니다.

12줄의 현악기 기타라(guitarra)가 뜯어내는 음색 또한 파두를 더 한스럽게 합니다.




Guitarra


바다로 나간 어부를 기다리는 여인,

그러나 검은 돛배를 달고 돌아온 배는 남자의 시신을 담고 있었지요.

여인은 통곡합니다.

울음은 바다를 타고 나가 노래가 되었지요.

그게 파두입니다.


파두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른 이름이 아말리아 로드리게스(Amalia Rodrigues : 1920 - 1999년)입니다.

체리 나무가 꽃 필 때 태어난 아이.

생일을 분명히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의 어머니가 그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가난에서 탈피하려 포르투갈의 북쪽 산악지역인 베이라에서 리스본으로 이주했던 음악가였습니다.

아홉 형제 중 다섯째로 태어난 아말리아는 겨우 생후 14개월에 그녀의 조부모에게 맡겨졌어요.

당시 포르투갈은 인구 500만의 가난하고 낙후된 나라로 문맹률이 70%나 되었지요.





딱히 가지고 놀 장난감 하나 없었던 그녀는 혼자 노래를 부르며 놀았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아말리아에게 노래를 시키고 동전이나 사탕을 주기도 했고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춰 서서 노래를 듣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과일 가게에서 손님들을 호객하는 일로 노래를 부르게 되었습니다.

노래나 음악을 따로 배운 적이 없었지만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소리는 정열적이고 호소력이 있었어요.

과일을 많이 팔게 된 주인에게 받은 돈은 가난에 찌든 살림에 그나마 보탬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초등학교를 끝으로 학교를 다니지 못했습니다.  


열여덟 살 때 1938년 리스본 파두 콩쿠르에 출전을 했지요.

그 계기로 최고의 파두 가수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검은 돛배'(Barco Negro)는 지금도 파두의 클래식처럼 사랑 받고 있습니다.

국가 위인들만 묻히는 판테온에 잠들어 있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의 위상을 짐작할만합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중요한 건 그냥 파두를 느끼는 거예요. 파두는 부르라고 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냥 생겨난 거지요. 설명하거나 이해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느끼세요"


그녀의 노래 <어두운 숙명>과 <검은 돛배>를 느껴보세요.


어두운 숙명
검은 돛배


계단을 따라 4층까지 올라가서 밖으로 나가니 돔의 가장자리를 둥글게 돌아볼 수 있는 거대한 테라스가 있습니다.

먹구름이 심상찮게 밀려옵니다.

비 올 바람인 게지요.

바다 너머로 대서양의 끝 '카보 다 호카'의 십자가도 보입니다.

벼룩시장은 오전만 열리는지 많은 상인들이 물건을 정리하는 모습도 내려다 보입니다.

서둘러 사진을 찍고 테라스 안쪽으로 들어서자 비가 쏟아졌지요.

다행입니다.









비가 내리니 음식점 찾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퀴진(cuisine)이라고 쓰여있는 두 개의 음식점이 도로를 마주 보고 있습니다.

호객을 하는 웨이터가 있는 곳을 마다하고 길 건너편으로 들어갔지요.

크기는 작지만 아담하고 동네 주민으로 뵈는 손님이 꽤 있습니다.

주문을 하고 보니 주방이 보이질 않는 거예요.

알고 보니 길 건너 음식점과 같은 집이고 음식은 그쪽에서 만들어서 가져오더군요.

그러니까 우리가 들어간 곳은 별관 같은 의미였어요.



판테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줄레주 박물관이 있습니다.

버스를 타도 되지만 우버를 이용했습니다.

비도 내리는데 세 사람이니 비쌀 것도 없고 편리하니까요.



아줄은 포르투갈어로 '파란 돌'이란 뜻입니다.

옛날 방식으로 구워진 타일부터 지진이 일어나기 전의 리스보아의 전경을 파노라마로 만들어 놓은 23m의 타일벽화까지 다양한 아줄레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박물관이지만 원래는 성모 수도원이었던 곳으로 금으로 장식된 예배당이 있더군요.

산투 안투니우의 제단과 주앙 3세와 왕비의 초상화가 있었습니다.







복도에는 추상화 같은 현대적 아줄레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페르난두 페수아의 초상도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사람의 얼굴인데 가까이 가보니 사람의 얼굴과는 무관한 각각의 타일들을 배치한 게 꽤 신기했습니다.

5유로 밖에 안 되는 저렴한 입장료에 눈이 호강했지요.

안목이 살짝 높아졌겠다 싶습니다.

리스보아의 하루가 또 지나갑니다.

 


페르난두 페수아



지진이 나기 전의 리스본 전경이 1200 개의 타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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