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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Feb 17. 2019

리스보아의 노스탤지어

7. 리스보아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막연한 꿈처럼 그냥 아련했습니다.

막상 타보면 별 감흥도 없을 텐데 하면서도요.

리스본에 처음 다녀왔던 2012년 이듬해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개봉했습니다.

                                                              

스위스 베른에 사는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는 고전문헌학을 강의하는 교사입니다.

저녁이면 집집마다 페치카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듯 새로울 게 없는 일상을 살아가지요.

폭우가 쏟아지던 어느 출근길,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되는 순간을 맞게 됩니다.

다리 위에서 강물에 뛰어들려고 하는 낯선 여인을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구합니다. 

그녀는 비에 젖은 빨간 코트와 오래된 책 한 권, 그리고 리스본행 열차 티켓을 남긴 채 홀연히 사라지지요.

그레고리우스는 난생처음 강렬한 끌림에 의해 의문의 여인과 책의 저자인 ‘아마데우 프라두’(잭 휴스턴)를 찾아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싣습니다.

자신이 맡고 있는 수업에 대한 책임감이 투철하고 매사 명확한 그레고리우스의 이 행동은 명백한 일탈입니다.

도올 김용옥이 ‘여행은 이탈이다’라고 한 말과 같은 맥락이지요.


"삶의 방향이 영원히 바뀌는 결정적인 순간은 엄청나게 드라마틱하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드라마틱한 삶의 순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누구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대사)


그레고리우스는 무작정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리스본으로 향합니다.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그 결정이 부러웠던 건 나 혼자만은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삶이라는 게 맘 내키는 대로 할 수 없으니까요.  

리스본은 영어 이름이고 포르투갈어로는 리스보아입니다. 

리스보아가 훨씬 부드럽고 정겹지요.

당시 리스본행 야간열차라는 제목은 멋진 의문부호처럼 다가왔었습니다.

그곳에 다시 갔습니다.


영화 리스본행 야간 열차



대항해 시대를 살면서 최고의 부를 이루었고

바다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며 파두(fado)를 노래하고

1755년, 역사상 5위 안에 든다는 대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었던 리스보아,

여전히 좁디좁은 7개의 언덕을 낡은 트램이 오가고, 

포투 와인을 마시며 정어리를 손질하고 평범한 삶을 이어갑니다.

리스보아는 포르투갈어로 '매혹적인 항구'라는 뜻입니다.

발음만 들어도 취할 것 같은 리스보아, 왠지 그 부드러움에서 진한 노스탤지어가 느껴집니다. 


리스보아 알파마 지구를 오가는 28번 트램


일단 육중한 나무 문을 힘껏 당겨 열어야 합니다. 

그다음 철창의 미닫이 문을 열고 엘리베이터에 탄 후 드르륵 닫으면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움직이지요.

유럽에서는 아직도 흔히 볼 수 있는 옛날식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가 숙소입니다.


흰 벽과 세련되고 깔끔한 가구들이 우리를 맞았습니다.

리스보아의 호스트 아나 루이사는 착하고 순하고 밝은 인상입니다.

넓은 거실엔 묵직한 그레이 컬러의 소파가 놓여 있고 그 무거움을 살짝 보완해주는 겨자색 쿠션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어요. 벽의 한 면을 모두 차지한 유리창으로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그 옆으로는 노란 의자 네 개를 대동한 직사각형 디너 테이블이 튼튼한 다리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리스보아 숙소


아나의 어머니는 시종 곁에서 이것도 이야기했니? 이것도 알려 줘라 하시며 주방으로 욕실로 따라다니시며 조목조목 딸에게 이릅니다. 어머니들은 어디나 다 비슷합니다.

우리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호스트들에게 줄 작은 선물을 준비하곤 합니다.

대부분 우리나라 전통 디자인의 물건이지요.

숙소를 빌려주는 것에 대한 고마움과 한국의 정을 전하려는 뜻입니다.

선물은 하나인데 어머니가 함께 계셔서 살짝 미안했지요.

준비한 선물은 거울의 뒷면에 수를 놓아 만든 나무 손거울입니다.

지끈을 풀고 포장한 한지를 벗겨낸 후 상자 뚜껑을 열어본 아나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집니다.

우리도 덩달아 웃습니다. 

받은 사람과 준 사람 모두 기분 좋은 게 선물입니다.


호스트들에게 전하는 선물


에드와르도 7세 공원 옆에 위치한 숙소는 여러 가지로 흡족했습니다.

일주일이라는 다소 넉넉한 기간 때문에 한결 느긋하고 가볍습니다. 

좁은 트렁크에 웅크리고 있던 코트를 꺼내어 옷걸이에 나란히 걸었지요.

2박씩 짧게 머물렀던 아베이루, 코임브라, 오비두스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으니까요. 


이번 여행은 친구 자매와 나, 셋이 여행을 합니다.

방 하나를 계속 나 혼자 사용하지요.

싱글 차지(charge) 없이 독방 차지한 셈이라 숙소를 옮길 때마다 늘 미안한 맘입니다.

어떤 여행이든 일정의 반이 지나가면 시간의 흐름이 더 빠르게 느껴지는 건 누구나 공감하실 겁니다.

그 반이 지났습니다.

리스보아에서 일주일을 지내고 다시 포르투로 가서 5박을 하면 비행기를 타게 될 테니까요.

흐르는 강물처럼 잔잔하고 매끄러운 여행이 이어집니다.

착하고, 배려심 깊고, 솜씨 좋고, 부지런하고, 스타일 멋지고 알뜰한 친구 자매 M과 J덕입니다.

"오브리가다 M&J"


M과 J (버킷 리스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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