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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Mar 02. 2019

오브라가다 포르투갈

16. 포르투




여행지에서는 VCR 빨리 감기 하듯 시간이 더욱 빠르게 느껴집니다.

포르투갈에 온 지 어느덧 20일이 지났어요.

이틀 후면 집으로 돌아갑니다.


흰 벽에 하나의 발코니가 있습니다.

주변에 단순한 검은 점들을 알알이 찍어 놓았어요.

벽이 한 장의 그림입니다.

흑백이 주는 아름다움이 대단했어요.

예술은 절제된 단순함에서 더욱 빛난다는 걸 또 한 번 실감합니다.


일요일이라 곳곳에 장이 섰습니다.

젊은이들이 만든 실험적인 작품들을 파는 곳도 있고 골동품을 파는 벼룩시장도 있었지요.

안드레 빈센트 곤코베스가 찍은 창문 사진들이 프린트된 T셔츠를 하나씩 샀습니다.

바흐나 모차르트, 쇼팽 등 작곡가에 따라 음악의 특징이 다릅니다.

그림도 그래요. 피카소와 고흐, 클림트 등 그들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이 있어요.

글이나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마다 독특한 풍이 있습니다.










안드레 빈센트 곤코베스(André Vicente Gonçalves)는 포르투갈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는 컴퓨터 공학도였지요.

이탈리아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를 하다가 컴퓨터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요.

그는 사진이 하고 싶었던 겁니다.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고 지금은 유명한 사진작가가 되었지요.

세계를 여행하며 찍은 창문의 사진을 조합해서 만든 세계의 창문(Windows of the world)이 CNN에 소개되면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안드레 빈센트 곤코베스


렐루 서점과 가까운 곳에 까르무 성당이 있습니다.

외벽 한 면이 모두 아줄레주로 되어있어 아름다운 성당인데요.

그곳은 사실 세 채의 집이 나란히 붙어있는데 언뜻 보면 하나의 성당처럼 보입니다.

왼쪽은 카르멜리타스 성당, 그리고 오른쪽이 까르무 성당인데요.

잘 보면 가운데 짙은 녹색의 철문이 보이고 2층과 3층에 유리창이 하나씩 있는 게 보입니다.

까르무 성당의 수도승과 카르멜리타스 성당의 수녀들의 순결을 지키라는 의미에서 만든 집이라고 하는데요.

글쎄요. 아무리 생각해도 어불성설입니다.

까르무 성당의 대각선 쪽에는 포르투 대학이 있습니다.

안쪽으로 얼마나 큰 공간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담하고 소박해 보였습니다.



사진의 왼쪽이 카르메리타스 성당, 하늘색 표시가 성당 사이의 좁은 집, 오른쪽이 까르무 성당


포르투 대학


까르무 성당 앞에 18번과 22번 트램 종점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합니다.

오래된 빈티지 트램의 컬러와 무늬가 참 아름다웠지요.

갑자기 경쾌한 음악 소리가 들립니다.

남녀 한 쌍이 신나게 춤을 춥니다.

보통 솜씨가 아닙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남자의 손을 잡은 여인은 마네킹이더군요.

순간 좀 섬뜩했습니다.











포르투의 맥도널드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기에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전면에 스테인드 글라스와 화려한 샹들리에 외에는 별 다를 게 없어 보이는데 사람들이 무척 많습니다.

빈 좌석이 없어서 바깥에 앉았는데 비둘기들이 자꾸 날아드는 통에 편치 않았지요.

버거 사이즈가 얼마나 큰지 다 먹기 힘들었지만 맛은 좋았답니다.







엊그제 벙글던 목련이 활짝 폈습니다.

튤립도 만개했고요.

홍매화 가지를 들고 가는 남자의 뒷모습이 멋집니다.

셔터 소리를 들었는지 갑자기 뒤돌아보기에 멋쩍게 웃으니 포즈를 취합니다.

그야말로 '꽃을 든 남자'답게 마음이 너그럽습니다.








호스트인 디노는 포르투에서 할 수 있는 것, 가보면 좋을 곳 등

추천 장소를 자세한 설명과 함께 링크할 수 있도록 보내왔습니다.

그가 소개한 곳이 무려 60~70군데는 되어요.

그의 꼼꼼하고 자상함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되시죠?

언제든 오븐에서 갓 구워진 따뜻한 나타를 먹을 수 있다는 나타 카페 만테이가리아를 찾아갔습니다.

빈 좌석이 없을 정도로 인기 있는 곳이었어요.

그의 말대로 갓 구워 따뜻하고 바삭한 나타를 먹을 수 있었지요.

커피는 또 얼마나 맛있게요.

지금 또다시 그 맛이 그리워지네요.


  

... to taste the famous ‘Pasteis de Nata’, we suggest the Manteigaria - always coming out warm from the oven:

https://www.google.pt/maps/place/Manteigaria/@41.148781,-8.6071866,17.37z/data=!4m5!3m4!1s0x0:0xa3fd5ef6a3af9b09!8m2!3d41.1485857!4d-8.6069616













집에 들러 두어 시간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쉬었습니다.

동 루이스 다리 건너편의 세라두 필라르 수도원에서 석양을 보기로 했거든요.

수도원은 꽤 높은 언덕 위에 있는데 친절한 우버 기사님이 꼭대기까지 태워주셔서 편하게 도착했습니다.

사람들이 많더군요.

갈매기는 더 많고요.

히베이라와 와인 양조장 등 모든 것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하늘에 그려놓은 구름,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온, 수도원을 비추는 붉은빛, 키스하는 남녀,

매일 뜨고 지는 해이지만 그곳에 서니 특별히 아름다워 보였지요.

하늘은 시시각각 빛깔을 달리했습니다.

갈매기들은 하늘을 무대로 춤을 추는 댄서들 같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포르투의 하늘을 훔쳐오고 싶었습니다.

푸르고 맑은 하늘을 한 조각만이라도 떼어 갖고 싶었습니다.
























이제 파두를 들으러 갈 시각입니다.

파두 공연은 밤 9시가 넘어서 하는 곳이 많더군요.

6시에 시작하는 곳을 찾아 디노에게 예약을 부탁했습니다.

약 50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작은 공연장 의자에는 번호가 붙어있고 우리는 4번째쯤 되는 좌석을 배정받았습니다.

앞 열에는 우리와 비슷한 또래로 뵈는 아주머니 넷과 덩치가 아주 큰 남자가 앉았지요.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앞의 여자가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습니다.

팔을 높이 쳐들고요.

게다가 옆에 있는 여자는 흥을 참지 못하고 앉은 채로 몸을 들썩이며 춤을 추기 시작했어요.

속닥거리기도 하고 영 주의가 산만해서 집중이 안되더군요.

이를테면 유럽의 중국풍 아주머니라고 할까요?

의자를 포기하고 맨 뒤로 가 서서 음악을 들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여성은 가녀린 체구지만 허스키한 음색이 파두와 썩 잘 어울렸습니다.

기타라 연주자의 솜씨가 보통은 넘어 보였고요.

인터미션에 포르투 와인을 한 잔씩 주었습니다.

다시 노래는 시작되었고 기타를 치는 남자가 듀오로 노래를 불렀는데 보기 드문 미성이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오니 불빛들이 빼곡하게 강물 위에 반짝입니다.

그때 연주자들이 나오길래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니 흔쾌히 응하더군요.

밤의 포르투도 아름다웠습니다.

  














모레는 비행기를 타러 가야 하니 심적으로 여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음 아침, 새벽 산책을 나가기로 마음먹었지요. 

여행을 할 때마다 새벽 산책을 나가곤 했습니다.

동 틀 무렵의 빛을 즐기는 이유도 있지만 오가는 이 없는 이른 아침의 적막함을 좋아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한 번도 새벽 산책을 하지 못했습니다.

못했다기보다 안 했다는 게 맞을 겁니다.

그냥 떠나기엔 서운한 생각이 들었지요.

리스보아에서도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왔거든요.

28번 트램이 다니는 좁은 골목을 새벽에 다시 한번 더 가리라 맘먹었지만 망설이다 하지 못했거든요.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라던 버나드 쇼의 묘비 문구가 또 한 번 생각났습니다.

 

카메라와 스마트폰만 챙겨 들고 살금살금 집을 빠져나왔습니다.

딱히 어디로 가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푸르스름하고 축축한 공기가 하늘을 뚫고 나온 듯합니다.

아침 일찍 어디론가 떠나는 배낭 여행자들의 발걸음이 활기차 보여요.

청소하는 아저씨, 방금 문을 빵집,

길거리에 놓아둔 쓰레기 봉지를 뒤져 먹을 것을 찾는 갈매기들,

복잡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는 도심의 새벽은 참으로 심심해 보였지요.

1시간쯤 걸었을까요.

크게 즐거운 것도, 기막히게 좋은 것을 본 것도 아닌 시간이었지요.

후회는 하지 않게 되었으니, 그러니 되었습니다.








느지막이 아침 식사를 하고 다시 히베이라를 찾아갔습니다.

포르투는 뭐니 뭐니 해도 히베이라가 가장 아름다웠으니까요.

어린아이처럼 아이스크림을 먹는 노부부, 와인 잔을 부딪히는 남녀, 노래를 부르는 버스커,

강 건너 보이는 파스텔빛 집들, 루이스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모두가 그리울 걸 압니다.






























이틀 전 히베이라의 골목에서 로컬 맛집이라 생각해서 들어갔던 음식점에서 거의 식사를 못했었지요.

이번에는 신중을 기해 맛집을 찾았습니다.

포르투갈에는 프랑세지냐 라는 음식이 유명하다고 알려졌습니다.

프랑세지냐는 작은 프랑스 소녀라는 뜻인데 일명 내장 파괴 버거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그만큼 칼로리가 높다는 뜻입니다.

새로운 음식에 대한 흥미가 많은 미식가 J가 도전해봅니다.

두툼한 패티에는 치즈가 흘러내리고 소시지와 토마토 등이 층층이 쌓여 있네요.

그 위에 집집마다 다른 독특한 소스를 얹고 감자튀김과 곁들여 나왔습니다.

사람마다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맛이었나 봅니다.

별로 먹지 못했으니까요.

 








온통 핑크 핑크 한 골목입니다.

벽은 물론이요,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마저 핑크색입니다.

러블리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 같아요.

포르투에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인도하는 노란색 화살표가 곳곳에 보입니다.

그런데 그 골목에는 초록색 화살표가 여기저기 그려져 있습니다.

초록색 화살표를 따라가면 무엇이 나올까 궁금했지만 다른 쪽으로 걸어갔지요.

그러니까 초록색 화살표는 가지 않은 길로 남은 셈이지요.










다시 큐빅 광장으로 내려오니 어느새 사람들이 무척 많아졌더군요.

벽에 기대 세상 부러울 것 없이 편안하게 햇빛을 즐기는 사람,

배낭을 잠시 내려놓고 브레이크 댄스를 즐기는 학생들,

모두가 여유 있는 모습들입니다.

여행은 이탈이 아닌 일탈입니다.

삶의 궤도에서 잠시 빠져나와 또 다른 시간을 살아보는 거죠.

춤추던 시간이 또 끝났습니다.

틈에서 틀로 돌아갈 시각입니다.

돌아갈 곳이 있어 행복합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사진입니다.

어느 쇼 윈도에 놓인 나무 촛대입니다.

촛농이 흘러내리는 게 눈물처럼 보였습니다.

마치 작정하고 찍은 듯 그 슬픈 표정의 나무 조각이 마지막 사진이라는 가슴 찡했지요.





디노는 우리가 부탁한 대로 공항으로 갈 택시를 예약해주었습니다.

우리가 떠나기 전에 집으로 와서 작별 인사를 하겠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러시아워라 차가 막혀서 약 7분 정도 늦겠다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택시가 왔고 디노를 만나지 못한 채 집을 떠나 공항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디노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한 장의 사진을 보냈습니다.


" Did You forget this wonderful pieces?"


사진 속의 도자기는 내가 포르투의 벼룩시장에서 산 것입니다.

하지만 무게도 만만찮고 가져가다 깨질 우려도 있어 디노의 집에 선물로 두고 온 것이지요.

선물이라고 답을 하니 디노는 무척 고마워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장의 사진을 보냈습니다.

디노의 부인인 이네스가 보낸 선물인데 전하지 못해 슬프다고 하더군요.

서로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아름다운 호스트와 게스트인 거죠.


우리는 숙소를 떠날 때 처음 도착했을 때와 똑같은 집 상태를 만들어 놓습니다.

식기며 모든 집기들을 깨끗이 닦아 원위치하고 침실의 베딩도 가지런히 해 놓습니다.

사용한 타월도 욕실 바닥 한쪽에 가지런히 개켜 놓고요.

마치 스캔이라도 했던 것처럼 모든 걸 완벽한 상태로 만들어 놓고 떠납니다.

그건 일종의 에티켓이자 매너요,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호스트들에게 항상 베스트 게스트라는 후기를 받게 되지요.

어느 호스트들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게스트로요.   

 


벼룩시장에서 산 도자기
이네스가 우리에게 주려고 했던 선물


파란 하늘과 파란 아줄레주,

노란 나타와 커피,

겨울을 수놓던 온갖 꽃들,

빈티지한 트램들,

맑은 공기,

순박한 사람들,

치장하거나 허세 부리는 것들이 없어서 더 빛나는 곳 포르투갈

이제 그곳을 떠납니다.


올라 포르투, 아디오스 포르투~~


* 포르투갈에 이어 아일랜드와 영국의 여름을 찾아 나서려고 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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