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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나무 Feb 25. 2019

렐루는 서점이 아닙니다.

15. 포르투



                                                                               

어둠이 내리고 있는 시각, 여전히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곳이 있습니다.

포르투에 가면 한 번쯤 들른다는 렐루 서점 앞이지요.


고요하면서 자유로운 공간이 서점입니다.

책을 보거나 책을 사러 가는 곳이지요.

그런데 책은 뒷전이고 사진만 찍습니다.

물론 나도 다르지 않았지요.

렐루 서점이 입장료를 받는 이유가 납득이 되었습니다.

매일같이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몰려들어 책은 사지 않고 사진만 찍다 돌아가니까요.

책을 팔아서는 수익을 내지 못하겠지요.

그러므로 2015년부터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티켓값은 점차 올라 렐루 서점에 들어가려면 5유로를 주고 티켓을 사야 합니다.

포르투 인구는 약 20만 명,

렐루 서점의 방문객 수는 연간 120만 명에 달해 한 해의 수익이 700만 유로(약 90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서점이라고 할 수 없지 않나 싶습니다.

서점이 있는 옆 골목에 구입처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요.

티켓을 구입하려고 서 있는 사람들의 줄도 만만치 않습니다.

물론 책을 구매하면 입장료만큼 차감해주지요.



렐루 서점 전경
체크 인이라는 빨간 사인이 있는 곳에서 티켓 구입
티켓 판매처



렐루 서점은 1881년에 렐루 형제가 시작했습니다.

외관은 아르누보 양식으로 꾸미고 안쪽의 붉은 계단과 유려한 곡선의 난간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언뜻 보면 나무 계단처럼 보이지만 석회에 나무 색을 칠한 것이라고 해요.

계단 뒷면의 문양도 꽤 화려하고 독특합니다.

천장에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만든 대장장이 그림이 있는데요.

'Decus in Labore'라는 글씨가 쓰여있습니다.

'노동의 존엄성'이라는 뜻이라는군요.






파두와 프리다 칼로


하루 종일 사람들로 북적거리며 사진을 찍는 렐루 서점의 한 구석에서 글을 쓰고 있는 남자가 눈에 띄었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 뇌 등을 쓴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많이 닮았습니다.

어찌 보면 TV에 종종 나오는 타일러를 닮기도 했지만요.

아무튼 그는 유리창 너머로 눈길 한 번 돌리지 않고 몰두하여 글을 쓰고 있습니다.







화이트 노이즈, 즉 백색 소음이라는 말이 있어요.

원래는 FM 카 라디오의 동조가 엇갈렸을 때 발생하는 ‘솨’ 하는 난조 노이즈를 말합니다.

즉 넓은 음폭을 가져 일상생활에 방해가 되지 않는 소음을 일컫지요.


화이트 노이즈에서 화이트의 의미는 여러 빛을 섞으면 흰색이 되듯이 여러 소리가 합쳐져 듣기 좋은 소음이 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화이트 노이즈는 규칙적인 주파수입니다.

그러므로 귀에 거슬리기보다는 쉽게 익숙해지면서 다른 주변 소음을 덮어줍니다.

오히려 심신 안정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지요.


요즘 카페에서 혼자 공부를 하거나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고 차를 마시는 공간에서 왜 그런 일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화이트 노이즈가 집중력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기의 울음을 달래거나 잠을 재울 때,
학생들의 암기력·집중력 향상과 숙면을 통한 피로 해소,
환자의 심리치료와 이명 치료와 같이 학교, 도서관, 병원, 사무실 등에서 화이트 노이즈가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빗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이트 -> https://www.rainymood.com/


그가 베르나르든 다른 작가든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건 화이트 노이즈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1층의 유리장과 2층의 양쪽 난간에 전시된 책은 렐루 서점에서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책장에 작은 석고상들을 붙여 놓았는데요.

아마도 저자의 흉상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냥 제 추측입니다.



저자 얼굴 모양의 작은 석고상이 붙어 있다.


페르난두 페수아가 생전에 수십 개의 다른 이름으로 출간한 책들





조앤 롤링의 소설 해리 포터 때문에 더 유명세를 얻게 되었지요.

해리포터가 다니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움직이는 계단이 탄생한 곳이 바로 이 렐루 서점이라고 알려졌습니다.

해리 포터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8권의 시리즈가 발행되었고 전 세계 67개의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판매부수는 2016년 기준 4억 5천 만부 이상 팔렸다고 해요.

렐루 서점이 몸살을 앓을 만도 합니다.

평균 하루에 약 10억을 벌어드린 그녀의 재산은 5조가 넘는다고 해요.

근황이 궁금하신 분은 -> https://namu.wiki/w/J.%20K.%20%EB%A1%A4%EB%A7%81


포르투의 마제스틱 카페도 조앤 롤링이 따라다닙니다.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에 있는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 역시 그녀가 해리 포터를 집필한 곳으로 유명해졌지요.

그녀로 인해 수익을 올리는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좋은 일이기도 하지요.


렐루 서점이 더 유명세를 타게 된 해리 포터





서가 한쪽에 렐루 형제의 부조가 걸려 있거나 흉상이 놓여 있습니다.

 




렐루 서점에서 가장 오래된 책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미명으로 유명해진 렐루,

서점은 본디 아름다운 곳입니다.

치장이나 포장할 필요가 없는 곳이지요.

책 속엔 세상이 담겨 있습니다.

책 속엔 생각과 말과 그림과 사진이 들어 있지요.

책이 있는 서점에 무슨 치장이 필요할까요.


그곳에 가기 전엔 생각했지요.

책 한 권 골라 입장료 5유로를 차감받으리라.

그러나 서점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생각을 지웠습니다.

북새통이 되어버린 그곳에서 책을 고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으니까요.

서점이 아니라 연예인 팬 사인회장처럼 나를 포함한 사람들은 너도 나도 사진을 찍는데만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까요.

아름답지만 아름다움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서점을 나서는 발길이 무거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헌책방을 지나갑니다.

그냥 맘이 푸근합니다.

그런 곳이 서점이지요.

렐루는 더 이상 서점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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